MEMORIZE RAW novel - Chapter 784
00783 군신(軍神)의 전설. =========================================================================
낙빙의 영향으로 라이칸들의 진형은 와르르 무너졌다. 깔려 죽은 놈들만 여럿이며 잔해의 후폭풍으로 상처 입은 놈들은 헤아릴 수 없다. 무엇보다 추적할 때부터 시종일관 유지해온 오와 열이 완전히 흐트러졌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물론 그 기회를 놓칠 사용자들이 아니었다. 라이칸들이 혼란해 하는 틈을 타 각자 무기를 휘두르며 짓쳐 들어갔고, 삽시간에 서로 뒤엉켜 난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선두로 달려간 사용자는 바로 거구의 사내였다.
훙훙훙훙!
공찬호는 수라마창을 풍차처럼 돌리며 라이칸들을 덮쳤다. 어떻게 싸울지 어떻게 움직일지는 이미 머릿속에 없다. 모든 것은 야성에 맡긴 채 본능이 시키는 대로 무차별적으로 창을 휘둘렀다. 불길(不吉)을 흘리는 수라마창이 사방으로 호쾌하게 뻗어 나간다.
뻐억, 뻐억!
단 일격에 머리통이 으깨어지고, 살짝 스쳤음에도 옆구리가 뻥 터졌다. 독사처럼 파고든 창 끝이 꼬챙이처럼 복부를 꿰뚫었다. 그것을 휙휙 돌려 힘껏 떨치니 핑그르르 날아가 부딪친 라이칸이 퍽 소리와 함께 핏물을 토해냈다. 한 군데 성한 부분은커녕 아예 곤죽이 돼버린 동료의 시체를 보며 주변의 라이칸들이 펄쩍 뛰었다. 낙빙으로 인한 혼란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난데없이 웬 괴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난리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까 질서 정연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자에 쫓기는 양의 모습만이 남았을 뿐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쉴 틈 없이 창을 휘두르던 공찬호가 돌연 광기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뭐 하는 거냐! 덤벼라! 죽을 각오로 덤비라는 말이다!”
우렁차게 외치는 공찬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언뜻 붉은빛도 스치는 게, 흡사 광인의 눈을 보는 듯했다. 그럴수록 수라마창이 내뿜는 마기(魔氣)는 한층 강렬해져, 라이칸들은 까닭 없이 온몸이 저릿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커허허헝!”
라이칸들이 계속해서 주춤거리자 공찬호는 마치 화를 내는 것처럼 광포하게 달려들었다. 근력 능력치 102 포인트라는 엄청난 괴력을 앞세워 상대를 압도적으로 짓이기고 터뜨렸다. 기합과 함께 휘두른 너덧 마리가 한꺼번에 걸려들어 모조리 피를 쏟아낸다. 손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감각은 공찬호의 말초 신경을 계속 자극해, 상황은 곧 전투가 아닌 학살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변했다.
이제는 라이칸 쪽이 불쌍하다고 생각될 지경이었으나, 그렇다고 언덕 왼쪽의 상황도 별반 다른 건 아니었다.
아니. 아주 조금 다른 점은 있었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각개 전투는 분명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지만, 유독 한 곳만큼은 매우 고요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침묵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크르르르….
수십의 라이칸이 둘러싼 공간의 중앙으로, 한 여인이 오연히 서 있다. 차가운 빛이 흐르는 갑옷을 걸치고 시린 냉기를 뚝뚝 흘리는 얼음 칼을 거머쥐었다.
문득 여인의 고개가 한쪽으로 살며시 갸울어졌다.
“더 안 올 거니?”
당연히 알아들을 리는 없다. 허나 여인, 아니 남다은 주변의 라이칸들이 옴짝달싹 못 하는 이유는 비단 저 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냐면 이미 남다은 주변의 눈밭으로 약 스무 구에 달하는 동료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흘러나온 핏물이 풍기는 냄새가 후각을 강하게 자극한다. 라이칸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말인즉 복수보다는, 공포가 앞선다. 아까 도망치는 걸 추적할 때와는 상상도 못 한 상황이 발생했으니까.
“덤비는 게 더 좋은데…. 어쩔 수 없나.”
조그맣게 투덜거린 남다은의 몸이 한순간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검후의 고유 능력 ‘여왕은 절대로 손에서 검을 놓지 않는다.’ 가 발동된다. 폭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청량하고도 신이(神異)한 기운을 마주한 라이칸들은, 온몸이 딱딱히 굳는 듯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동시에 시야가 빛으로 방해 받는 순간 남다은이 스르르 움직였다.
남다은은 빛살처럼 치고 들어가 곧장 검을 휘둘렀다. 깜짝 놀란 라이칸이 반사적으로 몸을 수그리며 뛰었지만, 남다은은 자연스럽게 궤도를 수정해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결국 라이칸은 스스로 자신을 헌납한 꼴이 돼버렸고, 그대로 머리통이 쪼개지고 말았다.
곧바로 검을 끌어올린 남다은은, 바로 옆 엉거주춤 서 있던 놈의 등을 깔끔하게 베며 지나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작스레 몸을 회전해 등 뒤로 살금살금 접근하는 놈을 향해 직선으로 찔러 넣는다. 푹, 틈을 노리던 라이칸의 미간에 일자 구멍이 뚫렸다.
3초 만에 세 명을 결딴냈지만, 공격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발악적으로 달려드는 라이칸들을 보며 경쾌히 발을 놀린다. 몸이 사선 방향으로 나는 듯 미끄러지는 동시, 꽃잎 같은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직절(直切).”
특수 능력 ‘직절’.
쉬칵!
살짝 기울어진 얼음 칼이 스치듯, 그러나 북풍한설처럼 차갑게 허공을 가른다. 어른거리는 희미한 잔상이 눈을 박차고 오른 일단의 무리를 비스듬히 자르며 사라졌다. 이윽고 보랏빛 섞인 냉광(冷光)이 번뜩인 순간, 라이칸들의 몸 곳곳에 기다란 자상이 생겨나며 핏물을 왈칵 토했다.
캐앵, 캐앵!
고요하던 공간이 비명으로 달아오른다. 허나 남다은은 허공에서 떨어지는 라이칸을 가볍게 걷어내고 담담히 새 표적을 찾는다. 그리고 시선이 한 곳에 꽂힌 순간 몸은 또 한 번 미끄럼틀을 타듯 미끄러졌다.
한 번 휘두름에 라이칸이 나뒹굴고, 조금 모여 있다 싶으면 여지없이 냉광이 번쩍였다. 날카롭게 뻗어오는 발톱을 고개를 살짝 트는 것으로 피하며 검을 올려 친다. 종아리를 물려는 놈은 턱을 가볍게 걷어차며 검을 내리꽂는다.
남다은의 행동은 진정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공찬호처럼 요란하게 날뛰는 맛은 없지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율을 추구한다. 그야말로 극한에 이른 몸놀림이요, 검의 여왕다운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좌우가 서서히 정리되고 있을 즈음, 중앙에서는 마법사들과 사제가 쉴 새 없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현란한 공격 마법은 날아다니지 않는다. 그들이 현재 외우는 주문은 보조에 맞춰져 있었다. 근원은 김수현이 미처 말하지 못한 ‘상대는 높은 마법 저항을 지니고 있다.’ 는 점을 신속히 전달했고, 근접 계열들을 보조 주문으로 지원하기로 의견이 모인 것이다.
물론 근접 계열이 전부 나간 건 아니었다. 김수현이 항시 키퍼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두 명의 근접 계열 사용자가 남았다.
그 중 한 명인 이유정은, 좌우로 정신 없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오른쪽에서는 백한결이 걸어준 반사 보호막 아래, 공찬호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고 있다. 왼쪽으로는 하승윤이 하승우의 보조를 받으며 착실하게 라이칸들을 상대한다.
특히 깔끔한 폼으로 차곡차곡 시체를 쌓아나가는 하승윤을 보며 이유정은 질근질근 입을 짓씹었다. 연이어 들려오는 비명에 몸이 근질근질한 듯 연신 숨이 거칠어진다.
“너무 흥분하지 마라.”
그때 누군가 턱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흠칫 놀란 이유정은 마치 잘못을 들킨 어린 아이처럼 뺨을 붉혔다.
“싸우고 싶은 기분은 알겠는데, 지금은 키퍼잖아. 네가 나가면 누가 마법사와 사제를 보호한다는 거냐.”
“아, 알고 있어. 딱히 말하지 않아도.”
“그럼 가만히 좀 있어라. 아무리 유리한 전투라도 키퍼는 있어야 한다. 김수현이 항상 하던 말이잖아.”
“매, 맨날 오빠만 들먹이고는….”
이유정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랫입술이 닭 부리처럼 툭 튀어나온 게, 여전히 불만 가득한 낯빛이다. 긴 한숨을 흘린 허준영은 차분히 왼쪽을 응시했다. 사실 허준영이라도 싸우고 싶지 않겠느냐마는, 적어도 나설 때와 지켜야 할 때를 구별할 분별력은 있었다.
“정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그때 침착히 전황을 관찰하는 허준영의 시야로 무언가 빛나는 것이 반짝였다. 찰나의 순간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노리기라도 하듯이.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허준영은 지체 않고 고성을 터뜨렸다.
“차소림! 저격!”
“……!”
외침을 들은 걸까. 막 한 놈을 꿰어 올리던 차소림은 순간적으로 창을 던졌고,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힘껏 뒤쪽으로 뛰었다.
그 순간 차소림은 확실히 느꼈다. 굉장히 차갑고 예리한 것이 목덜미를 스쳤다는 사실을.
그리고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갑옷 이음새 부근을 파고들려는 것을.
푸욱!
“아악!”
날을 잔뜩 세운 발톱 같은 것이 부드러운 살결을 찢고 틀어박혔다. 속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차소림의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둔해졌다. 하나는 용케 피했다고는 하나, 설마 암기가 두 개였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그 기회를 놓칠 라이칸들이 아니었다. 마치 이때만 기다려왔다는 듯, 자세가 무너진 차소림을 향해 곳곳에서 뛰어들었다. 절절한 울음을 토하며. 도망칠 곳은, 없다.
“엎드려!”
입을 질끈 깨문 찰나 호통 같은 외침이 터졌다. 차소림은 몸을 숙이는 대신, 그대로 드러눕는 걸 선택했다.
쐐애애액!
흡사 유성이 지나가는 소리가 이럴까?
워낙 급하기도 했고, 또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차소림은 자세히 보지 못했다. 그저 정수리가 따끔따끔한 게, 무언가가 살짝 닿아 지나갔다는 것만 인지할 뿐.
투둑, 투두두둑!
그러나 다음 순간, 주둥이를 쩍 벌린 채 공중으로 뛴 라이칸들이 모조리 이등분되며 조각나 떨어진다. 차소림이 신속히 창을 챙기며 뒤를 돌아보자, 오른팔과 오른발을 앞으로 크게 내뻗은 채 허리 숙인 허준영을 볼 수 있었다. 수평으로 베었다고 추정되는 기다란 칼날은, 언덕 벽을 베어 뚫고 깊숙이 박혀 있다.
이유정이 입을 멍하니 벌렸다.
“그, 그건 무슨 능력이야?”
“발검술. 유성 검.”
허준영은 시큰둥하게 말하며 검을 거뒀다. 그러나 한껏 가늘어진 눈은 매의 눈동자처럼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빠른 대응으로 차소림의 목숨은 구했지만, 저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정답이었다. 왼쪽 언덕 위 잘린 면에 라이칸 한 마리가 서 있었으니까.
은빛 눈동자는 비틀거리는 차소림을, 정확히는 희고 가느다란 목에 꽂혀 있다. 그리고 뒤로 힘껏 당긴 무언가를 움킨 손은 이미 세 번째 저격 준비를 끝마쳤다는 사실을 드러내 주고 있었다. 조금씩 좌우로 움직이는 게 신중히 거리를 재는 듯하기도 했다.
잠시 후, 비척거리는 차소림에게 안솔이 황급히 달려간다. 동시에 조준을 끝마친 라이칸이 씩 이를 드러냈다. 두 눈은 끊임없이 차소림을 직시하며 털로 덮인 길고 탄탄한 팔이 앞으로 쭉 뻗어진다.
그 순간이었다.
휘리리릭!
푸욱!
막 투척이 이루어지려는 찰나, 갑작스레 라이칸이 보던 시야의 절반이 사라졌다. 허나 불현듯 찾아온 통증에 비명을 지르기도 전, 또 한 번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시야가 완전히 캄캄해졌다. 비로소 두 눈에 불타는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카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라이칸은 심히 비틀거리더니,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퍼억, 낙하 충격으로 사지가 박살 난 라이칸에게 누군가가 담담히 걸어간다.
“회수 걱정은 덜었군.”
양 눈에 틀어박힌 단검을 회수하며 키득거리는 사내는, 바로 우정민이었다. 차소림은 우정민이 자신을 저격한 괴물을 역 저격해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봉우리가 잘려나갔다고는 하지만, 저 높은 위치에 있는 상대를 정확히 맞췄다는 건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절로 감탄이 일어나 차소림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응? 아아. 나보다는 허준영한테 하는 게 나을걸.”
차소림은 곧장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허준영은 무심한 눈으로 좌우를 둘러보고 있었다.
“거의 끝난 것 같은데….”
어느새 언덕은 비릿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차소림의 자리는 진수현이 재빠르게 달려와 채웠다. 그 말은 앞서 상대하던 괴물을 모두 처리했다는 뜻.
사실 시작부터 낙빙으로 절반에 달하는 수를 처리하기도 했거니와, 남은 놈들도 태반이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애초 멀쩡한 상태의 라이칸이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낙승은 예견된 일이었다. 홀로 오른쪽을 맡은 공찬호는 이미 씩씩거리며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왼쪽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쿠웅.
문득 먼 곳에서 터진 굉음이 언덕 틈으로 스몄다. 어찌나 강력한 힘인지 공기가 약하게 떨리는 착각마저 일 지경이었다.
쿠웅, 쿠웅.
연달아 굉음이 들려온다. 이쯤 되면 그냥 넘길 수만은 없는 현상이었다. 제갈 해솔은 엄지 손톱을 씹으며 약간 불안해하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무슨 소리죠? 그냥 적당히 교란만 해달라고 했는데.”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말 그대로 모종의 이변이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확실하다. 만일 본대가 없었다면 진작에 도우러 왔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김수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말인즉 경사면 너머로 무언가….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언덕 전투는 끝난 것과 다름없다. 잠깐 서로를 쳐다본 사용자들은 간단히 진형을 꾸리고 신속히 언덕을 벗어났다. 그리고 완만한 경사면을 올라 끝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
쿠웅!
한층 강렬해진 소음이 귓전을 울리는 동시, 세차게 불어온 바람에 모두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잠시 후,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사용자들은 멍하니 아래를 응시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전원 침묵했다.
경사면 아래에는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해야 하나.
아래는 언덕에서 보았던 것보다 몇 배나 돼 보이는 괴물들이 있었다. 못해도 수백에 달하는 라이칸들은 마치 누군가를 지키려는 듯, 한 지점을 에워싼 채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버티지 못하고 처참히 죽어간다. 정말로 결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지만, 저지선은 이제 거의 뚫려가는 중이었다. 그것도 단 한 명에 의해서.
콰콰콰쾅!
그저 검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이다. 칼날에 걸린 건 서넛 놈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할진대 주변에 있는 놈들까지 모조리 말려들어 뻥뻥 터져 나가지 않는가. 처참하게 찢긴 사체가 허공을 점점이 수놓는다. 보는 입장에서는 진정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윽고 김수현이 왼손에 든 검을 쭉 뻗었다. 검 끝은 발악하며 달려드는 라이칸들을 향한다. 이어서 빅토리아의 영광이 허연 빛으로 물들며 수십의 빛의 칼을 토해냈다.
채채채챙!
크라라락!
눈부신 빛무리가 무리로 스며든 순간, 스무 마리에 달하는 라이칸이 일거에 핏물을 뿜으며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김수현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친다.
그 광경은 흡사 소용돌이와 같았다. 에워싼 라이칸들이 악을 쓰고 있었지만, 달려드는 족족 폭풍처럼 몰아치는 풍압에 휘말려 해체되고 분쇄된다. 그것은 도저히 말로 형언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미…. 친….”
공찬호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온다.
예전에 오만에 빠져 살았을 때는 몰랐다. 그러나 천외천(天外天)을 깨달은 후, 열등감을 버리고 순수한 강함을 추구했다. 그러한 결과, 이 자리에서 적어도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지금 김수현이 보여주는 돌진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생각해버렸다. 멋있다고. 김수현처럼 해보고 싶다고.
얄궂은 일이었다. 1회 차서 김수현이 공찬호를 보고 했던 생각을, 2회 차에 이르러 서로 처지가 바뀐 것이다.
물론 공찬호도 언덕 전투서 오른쪽을 홀로 도맡는 등 나름 준수하게 활약하기는 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제갈 해솔이 차려준 밥상을 손쉽게 먹었을 뿐, 현재 김수현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수백에 달하는 놈들이 도처를 둘러싸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데, 성하게 뚫고 나갈 자신은 없는 것이다.
마침 김수현도 비슷한 생각을 한 걸까.
“귀찮다!”
언짢아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뒤흔든다. 휘두른 손등으로 라이칸을 터뜨리는 동시, 하늘을 향하던 무검이 180도 돌아 지상을 향한다. 그리고 땅으로 힘차게 무검을 박아 넣었다.
꾸웅, 폭음이 울리며 인근의 땅이 크게 들썩였다. 한순간 라이칸들의 균형이 이지러졌다.
단순히 검을 꽂은 게 아니었다.
해답은, 1초 후에 나왔다.
불현듯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덜덜 떨리는가 싶더니,
꽈아아앙!
흡사 수십의 지뢰를 터뜨린 것처럼 일거에 땅이 쪼개지고 뒤집혔다.
노도처럼 치솟는 기운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라이칸들이 하릴없이 하늘로 솟구쳤다. 분수처럼 뿜어지는 핏물과 찢어발겨 진 팔다리는 덤이었다.
전투는 종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내용을 추가하느라 많이 늦었습니다. 7시에 올리는 건 또 오랜만이네요. 어서 생활 리듬이 정상으로 돌아와야 할 텐데요.
아, 인터뷰 올라왔습니다. 네이버에 조아라 블로그라고 치시면 블로그 두 개가 나오는데, 그 중 (주) 조아라 블로그 사이트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잠깐 덧글을 봤는데 기쁘네요. 아직 적기는 하지만, 드디어 저를 사내로 인식해주시는 분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