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90
00789 조우(遭遇). =========================================================================
쩌정!
크게 금이 가는 소리가 울렸다.
소슬한 공간이었다. 둥근 호선을 그리는 원형 공간의 지름은 100미터는 넘어 보였고, 천장은 그보다 더 높다. 벽이나 바닥은 투명한 얼음으로 돼 있으나 이상하게도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다.
워낙 고요해 쓸쓸하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사방이 밀폐돼 있음에도 내부는 외려 신선한 향기가 흐르고, 이따금 빛을 흘리는 얼음은 신성한 기운이 서린 듯하다. 어떤 장애물도 없음에도 접근을 불허하는 듯한 권위를 풍긴다. 흡사 신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보는 듯했다.
공간의 중심에는 10미터 높이의 얼음 기둥이 여섯 개, 아니 네 개 솟아 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누어 둔 기둥은 누군가를 감싸듯 둥글게 배치된 형태였다. 허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좌측의 두 개가 산산이 부서져 흩어져 있었다.
남은 얼음 기둥의 수는 네 개. 조각을 하다 만 듯 듬성듬성 깎인 기둥의 외면에는 형이상학적인 기호들이 빼곡히 아로새겨져 있다. 네 기둥의 구심점에는 바닥부터 천장을 잇는 거대한 크기의 얼음 기둥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기둥의 아랫부분에 웬 형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랬다. 나무가 뿌리를 내린 듯 유난히 굵은 기둥의 아랫부분에는, 전라(全裸)의 여인이 얼음 속에 갇혀 있었다. 그것도 굉장한 미인이다. 언뜻 보면 훤칠하고 가녀린 몸이지만, 구석구석 늠름하면서 밝은 느낌을 풍겼다. 허리까지 가지런히 흘러내린 은발은 아직도 빛을 잃지 않았다. 아주 살짝 떠진 실눈 속 은백색 눈동자는, 잠에서 덜 깬 듯 몽롱함을 품어 몹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딱 하나 이상해 보이는 게 있다면 여인의 표정이었다. 자세히 봐도 모를 정도로 오묘했지만, 언뜻 고운 아미가 좁혀져 있는 것 같고, 혹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여인은 깨어나 있는 게 아닐까?
그때였다.
쩌저저정!
느닷없이 연달아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남은 네 개의 기둥이 한꺼번에 어긋나 비틀어지며 여지없이 깨져 조각났다. 이제 중심의 커다란 기둥만이 남았다. 문득, 여인의 몸이 꿈틀 움직인 찰나였다.
퍽!
짧고 강한 폭음과 함께 중앙 기둥의 아랫부분마저 폭발하듯 터졌다. 허공으로 비산하는 얼음 조각 사이로, 마침내 일부 해방된 여인의 상반신이 앞으로 꺾이듯 굽혀진다. 갇혀 있던 머리카락이 흔들거리며 흘러내리고, 오므려져 있던 입술이 살그머니 열렸다.
다음 순간,
“우욱!”
헛구역질하는 소리와 동시, 입안에서 무언가가 꿀렁 튀어나왔다. 마치 토사물처럼 흘러나온 그것은 뭉클뭉클하면서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연기 같기도 하고 진득한 젤리 같기도 하다. 이내 미끄러지듯이 바닥에 닿자마자 한데 뭉쳐 덩이 지더니 서서히 모종의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한다.
그걸 바라본 여인의 얼굴이 애절하리만치 이지러졌다.
“아, 안 돼….”
그러나 헛된 저항에 불과했다.
아니. 애초 저항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왜냐면….
“어, 어째서 이렇게 빠르게…? 우우우욱!”
또 한 번 헛구역질이 이어졌다. 늘씬한 허리가 고붓하게 휘어지며 검고 진득한 것이 계속 흘러나온다. 시커먼 것이 형체를 갖춰가는 속도는 점차 빨라졌고, 그럴수록 여인의 낯빛에 어두운 절망이 드리웠다.
“아…. 아아아아아악!”
*
“어휴.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관 주변을 살펴보던 이유정이 볼멘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처음 볼 때부터 느낌이 별로였다니까? 이게 뭔 놈의 신녀곡이야? 이름만 거창….”
그러나 곧 찔끔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는데 왼쪽 어디서 따가운 눈총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가 노려보는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라 일부러 고개 돌리지 않았다. 그저 얌전히 수색할 뿐.
“후유, 그러게요. 저도 이번 원정은 엄청나게 준비했는데, 그냥 시간만 허비한 느낌이에요.”
그러나 눈치라고는 밥 말아 먹었는지 옆에서 수색하던 안솔이 종알종알 맞장구를 쳤다. 한층 따가워진 눈초리를 느낀 이유정은 얼른 말을 받아 넘겼다.
“그, 그래? 무슨 준비를 그렇게 했는데?”
“후후. 드디어 제 가치를 깨달았다고 할까요!”
양손을 척 허리에 얹은 안솔이 거드름을 피웠다. 잠깐 저 볼을 꼬집어 이리저리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유정은 애써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니까 뭔데. 안달 나게 하지 말고 얼른 말해봐.”
“헤헤. 실은 별것은 아니고요. 예전에 오라버니가 가지고 온 상자 기억하시죠?”
“아~. 그 마법 진 나오는….”
“네네. 개봉만 하면 괴물이 막막 튀어나오는 거 있잖아요.”
“알아. 그거 사용자 상점에 있는 거 아니야?”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아니라고?”
“네. 저도 하나 사려고 찾아봤는데 품목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오라버니한테 슬쩍 여쭤봤는데요. 비밀 상점이라는 게….”
그때였다.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불현듯 탁탁 뛰는 소리가 울렸다. 한 명 한 명 뒤를 돌아보자 곧 누군가가 조각난 얼음 잔해를 밟고 뛰어들어왔다. 상기된 얼굴로 숨을 몰아 쉬는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백한결이었다.
“모, 모두 나오세요!”
“으응?”
뜬금없는 외침에 이유정이 한쪽 눈을 치떴다. 실수를 인지했는지 백한결은 머리를 도리도리 젓고는 말을 정정했다.
“클랜 로드 님이 모두 나오라고 하셨어요!”
“오빠가?”
“네! 신녀곡을 찾으셨대요!”
“…뭐라고?”
뜻밖의 말이라 그런지 반응이 살짝 늦었다.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고 웅성웅성 어수선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백한결이 급하다는 듯 나오라는 말을 반복하자 모두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통로를 빠져나갔다.
잠시 후, 13명의 사용자는 하나같이 떠름한 낯빛으로 바다를 내려다보게 됐다. 그들은 전원 산등성이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동료들이 나오는걸 확인한 김수현이 곧바로 산등성이 꼭대기로 이동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산등성이 높이가 작은 언덕만 하기도 했지만, 날개를 가진 김수현이 직접 옮긴 이도 여럿이라 이동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이들이 떨떠름해 하는 건 산등성이로 이동해서는 아니었고, 물에 흠뻑 젖은 모습을 한 김수현 때문도 아니었다.
“이 아래에…. 신녀곡이 있다고요?”
김한별이 믿을 수 없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신녀곡을 찾았다며 산등성이로 끌고 오더니 난데없이 잠수해야 한단다. 그러나 아주 안 믿을 수도 없는 게 확실히 수면에 비친 그림자는 이상했다. 게다가 김수현이 직접 확인까지 했다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저…. 그럼요. 물속에서 호흡은….”
전전긍긍해 하던 안솔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안솔의 낯빛도 딱히 좋지는 않았으나 김수현은 단호히 입을 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안쪽에서 강한 기운을 느꼈으니까.”
“기운이요?”
제갈 해솔의 반문에 김수현이 가만히 머리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알아낸 건 아닙니다만. 수중 동굴과 주변으로 강한 기운이 장막처럼 처져 있는 건 확인했습니다. 아마 그 안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종의 공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확신은 아니다. 그러나 저번 야만 왕의 무덤 때 비슷한 현상을 겪은 만큼, 김수현이 말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관 짝에 적혀 있던 기록도 있지 않은가. 이러니저러니 갈등이 일었지만, 이대로 허탕을 치기 싫다면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아무래도 농담은 아니신 것 같은데요. 아무튼,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한 번 들어가 봅시다. 들어간다고 설마 죽기야 하겠습니까?”
하승우가 빙긋 웃으며 입고 있던 로브를 풀었다. 그러자 서너 명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안솔도 그렇지만, 특히 김한별은 의연한 척하려 애썼으나 불안해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수영 못하는 사용자 있습니까?”
들어가려 폼을 잡던 김수현이 돌연 돌아보며 물었다. 두어 명이 웅얼거리기는 했으나 손을 든 사용자는 없었다.
김수현은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럼.” 이라고 말하고는 앞장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휙 낙하하는가 싶더니 풍덩 소리가 나며 세찬 물보라가 일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미약한 비명이 들렸지만, 이내 거리낌 없이 뛰어내리는 하승우를 시작으로, 곧 한 명 한 명 다이빙을 시도했다. 연달아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망설이는 사용자도 소수 있었다. 대부분이 뛰어들었음에도, 김한별과 안솔은 머뭇머뭇하며 섣불리 내려가지 못했다. 그러나 같이 남아 있던 이유정이 기습적으로 둘을 붙잡고 뛰어내리는 바람에 두 명은 강제로 다이빙하고 말았다. 꺄아아악, 긴 비명이 추락한다.
그리하여 14명 전원이 입수하는 데 성공했으나 부작용도 있었다. 몹시 놀란 안솔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김한별과 이유정이 투덕대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러나 소란은 곧 사그라졌다. 김수현은 잠수 직전 서너 가지 주의 사항을 전달했다. 거리는 약 200미터, 길은 자신이 선도할 테니 따라올 것, 안력을 높여둘 것, 바닷속은 어두우니 마법사들은 라이트 마법을 활용할 것.
짧은 시간에 전달을 마친 후, 마법사들은 조용히 라이트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물이 차가운지 오들오들 떨며 영창 하기는 했지만, 간단한 마법이라 무리 없이 발현할 수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준비가 완료된 걸 확인한 김수현이 주변을 쓱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김수현의 몸이 서서히 물속으로 잠겼다.
*
바다는 확실히 추웠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의 한기가 온몸을 엄습한다. 물론 화정이 있는 이상 크게 문제 될 건 없고, 소망의 셔츠로 행동도 자유롭다. 물속에 있음에도 어떤 중압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였다. 다른 이도 같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최대한 빨리 도착하는 게 관건이다. 나는 아까 발견한 장소로 방향을 잡고 발을 움직여 비스듬히 내려갔다. 그나마 물살이 정지한 듯 잔잔한 덕분에 내려가는 데 크게 무리는 없어 마력까지 이용해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방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고요하다. 걱정과는 다르게 동료 대다수가 상당히 수영을 잘했다. 특히 제갈 해솔은 나를 따라오는 것도 모자라 아예 옆자리를 점거했는데, 아마 마력을 이용하는 방법을 체득한 듯싶다. 물살을 가르며 거침없이 내려가는 게 흡사 인어를 보는 듯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전방에 보이던 허연 얼음이 점차 가까워지는 동시, 약 20미터쯤 아래로 커다란 구멍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나는 헤엄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래의 동굴을 손으로 가리켰다. 뒤따라오던 동료들은 잠깐 갸웃했으나 이내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급히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슬슬 호흡에 곤란이 오는 듯했다.
나는 아직 동굴로 들어가면 안 된다. 아직 여유가 남아 있거니와, 분명 낙오자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제갈 해솔을 시작으로 열 명 넘게 동굴로 보냈지만, 아직 두 명이 오지 않았다. 시선을 올리자 역시나. 김한별과 안솔이 확연히 느려진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꽤 따라오는가 했는데 내려올수록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우선은 기다려볼 생각에 지켜봤으나 곧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했다. 두 명의 행동이 눈에 띄게 둔해지는가 싶더니 돌연 김한별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안솔이 대차게 하얀 거품을 발사하더니 그대로 몸이 뒤집혔다.
염두에 둔 상황이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날개까지 움직여 신속히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재빠르게 김한별의 손을 잡은 후, 안솔의 허리를 안고 최대한의 속력으로 동굴로 들어갔다. 중간중간 안솔이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게 느껴졌지만, 조금만 참으라는 의미로 꽉 안으며 속도에 가속을 붙였다.
아래로 잠수할수록 시야가 어두워지기는 했으나, 동굴 안은 훨씬 더 어두웠다. 그나마 김한별이 유지하는 라이트가 미미하게나마 앞을 밝혀주었고, 덕분에 동굴이 직선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비스듬히 위로 꺾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곧바로 방향을 틀고 위쪽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그렇게 5분 같은 5초가 지났다고 느꼈을 때, 별안간 위쪽으로 희미한 빛이 나타났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저 빛으로 가야 한다는 게 느껴져 나는 온 힘을 기울여 위로 솟구쳤다. 안솔의 몸부림이 어느 순간부터 약해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 빛은 흡사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이 우리를 강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
첨벙!
“하아! 하아!”
“푸후우우! 푸후우우우욱!”
밖으로 솟구쳐 신선한 공기가 닿은 순간, 좌우로 거친 신음이 터졌다. 흘끗 눈을 들자 앞서 도착해 있던 동료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원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있었지만, 깜짝 놀라며 우리를 부축해 밖으로 끌어냈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처음 겪는 상황이다. 주변 풍경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딱히 위험은 없을 터.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곧장 두 명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악! 하아아악!”
거칠게 숨을 내뱉는 김한별.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으나, 어쨌든 크게 지장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안솔의 상태는 약간 심각해 보였다. 이유정이 등을 펑펑 두드려주는데, 아예 엎드린 자세로 연신 웩웩거리는 게 막판에 물을 엄청나게 들이켠 것 같았다. 얼른 다가가 등에 손을 대고 화정의 힘을 일으켰다. 화정도 이번에는 군소리 않고 힘을 빌려줬다. 안솔의 전신이 삽시간에 맑은 불꽃으로 휩싸인다.
치이이익!
화정의 힘은 역시 강력했다. 순식간에 수분이 증발되며 창백하던 낯에 혈색이 돌아오고 옷도 마르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 안솔이 진정될 때까지 쉬지 않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후우우욱! 후욱, 후아아아….”
화정의 기운이 톡톡히 효과를 본 걸까. 곧 안솔의 떨림이 상당히 잦아들었다.
“괜찮니?”
무수한 걱정하는 시선 속에서 안솔은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네, 네. 괜찮아요. 오라버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솔직히 말해서, 놀랐다. 사실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안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외려 억지로 웃어 보이면서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정말로 안솔이 맞는 건가?
“괘, 괜찮아요. 정말로 괜찮아요.”
여전히 호흡은 안정되지 않았지만,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안솔은 괜찮다고 반복했다. 문득 조금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랜 로드.”
그렇게 간신히 상황이 정리되자 하승우가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클랜 로드의 말씀이 맞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하승우는 정면을 가리켰다.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앞에는 얼음으로 된 복도처럼 보이는 길이 쭉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길의 끝으로는 좌우로 동물을 조각한 듯한 상(像)이 서 있었는데, 역시나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신전을 연상케 하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적당한 크기의 얼음 신전을 보자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드디어 진짜 신녀곡을 찾아낸 것이다.
“하우, 진짜 죽겠네. 그나저나 여기는…. 도대체 또 어떤 공간인 거예요?”
제갈 해솔이 흠뻑 젖은 로브를 비틀어 짜며 감탄했다.
– 신역.
대답은 화정에게서 들려왔다.
‘신역이라고?’
– 아, 그래. 이제야 알겠네. 여기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악, 아악, 아아아악…!
불현듯.
시, 싫어어어어어어어…!
처절히 울부짖는 듯한 애처로운 절규가 온 사방에 메아리쳤다.
============================ 작품 후기 ============================
다음 회에는 독자 분들의 눈살이 찌푸려질 수 있는, 상당히 잔인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원치 않는 독자 분들은, 해당 내용이 나온다 싶으면 그냥 넘기시는 걸 권합니다. 감사합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