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98
00797 내조(內助)의 여왕. =========================================================================
게헨나의 뺨에 서린 홍조가 서서히 사라져 갈 즈음, 나는 간신히 벗어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얼얼한 입을 문지르며 주변을 둘러보자, 눈에 들어온 광경은 나를 크게 놀라게 만들었다.
집무실, 서재, 테라스, 욕실, 침실을 아우르는 100평이 넘는 방대한 공간이 하나하나 시야로 들어온다. 잘 정돈된 커다란 책상. 둥근 탁자와 고풍스러운 소파. 황금색 테두리를 번쩍이는 푹신한 레드 카펫. 벽면을 치장하는 화려한 장식물 등등.
여기는….
“내 방이잖아?”
머셔너리 캐슬, 4층 집무실이지 않은가. 잠결에 익숙한 감촉을 느끼기는 했으나 설마 정말 집무실 침대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꽤 괜찮은 공간이더구나.”
천연덕스러운 음성이 들려온다. 어느새 침대에서 내려간 게헨나는, 오른손으로 왼 팔꿈치를 잡은 채 느긋이 몸을 피고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화려히 기지개를 켜는 붉은 장미를 금빛으로 물들인다. 그냥 일상 생활이 화보구나.
“…응?”
그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묶어 정리하던 게헨나가 흘깃 나를 쳐다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살그머니 손을 오므렸다. 이런, 나도 모르는 사이 넋을 잃은 건가.
어색한 헛기침 후, 나는 간신히 원래의 놀라움(?)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게헨나.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으음? 이건 네 방이지 않느냐.”
왜 나한테 물어보느냐는 투로 말하기는 했지만, 게헨나의 낯에는 숨길 수 없는 장난기가 서려 있다. 아무래도 그냥 말해줄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며칠이나 잠들어 있었지?”
“쓰러진 직후, 나흘을 내리 잤으니. 오늘이 닷새째겠지.”
“흠…. 그럼 또 목숨을 구원받은 건가?”
“그렇기는 하다만, 낯간지러운 소리는 되었다. 인간에게 생명력을 나눠주는 일 따위, 대양(大洋)에서 바닷물 몇 바가지 푸는 것과 다름없으니.”
별것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으나 게헨나의 목소리는 굉장히 지엄했다. 이번 기회를 빌미로 또 부끄러운 말을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왠지 이번에는 입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우선 차곡차곡 쌓인 의문부터 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금번 ‘빙하의 설원’ 원정은 장장 왕복 삼 개월로 계획된 먼 길이었다. 이것도 제갈 해솔의 수송 어빌리티를 계산해 잡은 일정이다. 말인즉 가는 데 45일이 걸렸으니 오는 데 45일이 걸리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45일이라는 시간을 건너뛸 수 있었던 걸까? 공간을 도약하지 않고서야….
“아.”
문득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 탄성을 들었는지 게헨나는 싱겁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대가 쓰러져 있는 동안 이 세상에 대해 조금 알아봤다. …사실, 조금 놀랍더구나.”
그렇게 말한 게헨나는 돌연 입을 닫았다. 나를 빤히 응시하는 얼굴에서 말할까 말까 갈등하는 낯빛이 스치듯 지나쳤다.
“어땠는데?”
궁금한 기분에 묻자,
“모르겠다. 고작 수백 년이 지났을 뿐인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퇴보했어. 아니. 실로 퇴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야.”
게헨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발끈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사실이니까. 시간차가 있기는 하나, ‘용이 잠든 산맥’에서 조우했던 영웅들과 현재의 거주민들을 생각해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게헨나의 말대로 퇴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설마 설마 했지만, 공간 이동도 제대로 못 할 줄이야. 조금은 한심하다고 느꼈다.”
“공간 이동은…. 그래도 제갈 해솔이.”
“아, 그 아이 말인가. 보기는 봤는데, 상당히 야만스럽고 원시적인 방법이더구나. 효율적인 운용은커녕, 마력을 무작정 쏟아 붓는 방식이더군.”
“그, 그래?”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종말의 용’ 마그나카르타도 천재라고 극찬한 제갈 해솔이, 게헨나 앞에서는 예외 없이 평가 절하된다.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가.
“…뭐, 현 세태를 감안하면 나름 창의적이기는 하다만.”
게헨나는 쯧쯧 혀를 차다가 나를 흘끗거리며 말을 이었다. 조금 심했나, 눈치 보며 말을 정정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래서, 공간 이동으로 바로 날아온 거야?”
“그래. 좌표가 약간 문제였지만, 마침 그대의 거주 장소가 내가 아는 이정표와 가깝더구나.”
“이정표?”
“못났기는. 네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벌써 잊은 게냐.”
게헨나가 핀잔 주듯 말하자 그제야 어탑(御榻)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어색이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정표는 아틀란타와 반나절 거리에 있다. 내가 닷새째에 일어났다고 하니까. 그럼 못해도 사흘 전에는 도시로 돌아왔다는 소리다.
문득 궁금함이 일었다.
게헨나가 도대체 어떻게 소환됐는지.
내가 잠든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게헨나는 어떻게 말했는지.
클랜원들은 어찌 반응했는지.
하지만, 무엇보다.
그 어떤 것보다 제일 중요한 질문이 있었다.
앞으로 게헨나는 어떻게 되는 건지, 즉 거주 여부가 가장 궁금했다.
그러나 선뜻 물어볼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왜냐면 너무 불안했으니까.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후후. 나쁘지는 않겠지.’
‘허나.’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때 게헨나는 그랬다. 자신은 중간 세계에 허락 받지 못한 존재라고. 설령 같이 간다고 해도 언젠가는 돌아와야 한다고.
게헨나가 계속 중간 세계에 있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그만한 제물을 모을 여력이 없다. ‘감당’이라는 말은, 그런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
“…….”
어느새 살금살금 내려앉은 침묵이 나와 게헨나를 감돌고 있다.
나는 필사적으로 다른 화젯거리를 생각해내려 애썼다. 침착히 눈을 돌리자 마침 볼록이 부푼 배가 눈에 밟혔다. 그래. 저게 좋겠다. 이름이 수나라고 했었나…?
“저….”
“몸은 이제 괜찮느냐.”
입을 연 찰나, 게헨나는 스리슬쩍 한 걸음 물러나더니 단호히 내 말을 끊었다. 멍하니 머리를 주억이자 돌연 게헨나의 입가서 웃음이 사라졌다.
“다행이구나. 그럼….”
“……?”
“이제 그대의 책무를 해야겠지.”
“책무?”
반문하자 게헨나는 엄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보니 그대는 이 도시를 대표하는 클랜의 수장이라고 하던데.”
“그, 그런데. 그건 누가 알려줬어?”
“그건 조금도 중요치 않다. 여하튼 한 도시를 이끄는 왕이라면,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을 터.”
“게헨나. 그건….”
나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미처 한 걸음 내디디기도 전,
“무릇 왕이라 함은.”
짧지만, 서슬 퍼런 호령이 내 접근을 불허했다.
“다스리기 전, 모든 것을 아우를 줄 알아야 한다.”
추상(秋霜) 같은 눈동자가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고요히 타오르는 선홍 빛 눈동자가 나를 직시하며 말을 잇는다.
“그대에게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일의 경중을 따지라는 말이다. 내게 신경 쓰는 건, 현재 그대의 자리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나서가 맞는다고 생각한다.”
“게헨나.”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부디,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
게헨나의 목소리는 마치 엄히 꾸짖는 것처럼 엄하면서 정숙했다. 이어지는 말들은 흡사 비수처럼 날카로워 속을 할퀸다.
문득 머릿속에 한 줄기 맑은 기운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게헨나의 말은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옳다. 금번 원정도 되짚어야 하고, 업적 보상 메시지도 확인해야 한다. 또한 굳이 원정이 아니라도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간신히 자세를 바로 할 수 있었다.
“그래, 게헨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자 게헨나의 눈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더니 다시 잔잔한 미소를 보였다.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이해해줄 줄 알았다.”
“아니. 괜찮아. 하하.”
“물론 나라고 사랑 받고 싶지 않겠느냐마는…. 후후. 그대가 여태껏 이뤄온 근간을 흔들면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굴러갈 돌이지 않느냐.”
“그건 우리 속담인데. 혹시 누가 그렇게 말하기라도 했어?”
게헨나는 아무 말도 않고 빙긋 웃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 말하려던 게헨나는 느닷없이 말을 흐렸다.
불현듯 게헨나의 걱정이 무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헨나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굴러갈 돌이 아닌 굴러들어온 돌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의도적으로 굴러갈 돌이라고 했다면….
그런가. 어차피 옆에 박히지 못하고 지나칠 돌이니, 이미 박힌 돌들을 돌아보라는 소린가. 게헨나는 그렇게 선을 그은 건가.
꼬르륵!
그 순간이었다. 가슴이 아릿해지려는 순간, 난데없이 배 끓는 소리가 채신머리 없이 울렸다. 이어서 심한 공복감이 찾아오는 동시, 낯에 화끈한 기운이 샘솟는다.
“킥.”
게헨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손으로 황급히 입을 가렸다. 그러나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걸 보니 들은 게 분명했다. 젠장, 하필 이때….
“일이고 나발이고, 우선은 식사부터 해야 할 것 같구나.”
“이건 어쩔 수 없어. 인간은 신체 구조상 밥을 먹어야 해서….”
왜인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궁색한 변명처럼 느껴졌다.
*
어색함을 무릅쓰고 문을 열고 나온 찰나, 나는 그대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
“어머.”
복도에는 집무실 방향으로 걸어오던 여인이 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다. 놀란 잿빛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수, 수현.”
“고연주?”
“일어…. 나신 거예요?”
“예…. 방금 깨어났습니다.”
그러자 “하~아.”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 내린 고연주는, 침착히 낯을 추스르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마주 보며 처연히 웃어 보였다.
“다행이네요. 괜찮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말 걱정 많이 했어요.”
“아…. 미안합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전혀 이상은 없어요.”
잠깐만. 한데 고연주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분명 아직 사용자 아카데미 교관으로 들어갔을 텐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고연주는 배시시 미소 지었다.
“걱정 마요. 확실하게 말해놓고 나왔으니까. 당분간 출퇴근으로 할 예정이에요.”
“출퇴근이요? 이효을이 허락해줬습니까?”
“수현의 상태를 살짝 흘렸어요. 그분도 꽤 놀랐는지 예외적으로 허락해주시더라고요.”
“그런….”
그때였다. 고연주가 갑자기 옆으로 눈을 돌리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게헨나의 기척이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 아차 싶었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시야가 어지러이 이지러진다.
그러나.
“아….”
놀랍게도,
“언니도 같이 계셨어요?”
고연주는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음. 슬슬 깨어날 때라고 여겼으니까.”
게헨나 또한 익숙하다는 듯 회답했다.
한순간 다른 의미로 정신이 멍해졌다.
그러나 고연주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게헨나의 팔에 살며시 팔짱을 꼈다. 게헨나도 고연주의 행동을 딱히 거부하지 않는다.
“너무해요. 미리 알려줬으면 같이 기다렸을 텐데.”
“후후. 바빠 보이는 것 같아서 말이다.”
“흥. 거짓말. 그나저나 두 분이 어디 가시는 중이셨나요?”
“아, 그이가 꽤 굶주린 것 같아서. 식당으로 가려 했단다.”
살갑게 구는 고연주와 친언니처럼 자상히 말하는 게헨나.
…당최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머릿속의 혼란이 가시지를 않는다.
물론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게헨나 나름대로 클랜원들과 관계를 정립했을 것이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예상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났다. 찬밥 신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리 좋은 처지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눈에 보이는 모습은, 흡사 친한 자매처럼 보이지 않는가. 누군가 적극적으로 적응을 이끌고 도와줬다면 모를까. 기껏해야 사나흘이라는 시간으로는 보통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관계다.
“실컷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꼬르륵 소리를 내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정말, 이이도 못 말린다니까요. 그럼 저도 같이 가요. 부축해드릴게요.”
“되었다. 노약자 취급은 그만두라 하지 않았느냐.”
“노약자가 아니라 임, 산, 부.”
이윽고 두 여인은 나를 남겨둔 채 사이 좋게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고연주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와 시선을 맞추더니 한쪽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그 순간, 그 눈웃음은.
“…….”
불안과 두려움투성이였던 내 가슴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
식당에 도착해서도 놀라움은 연속 행진을 이어갔다.
내가 어버버하며 클랜원들의 인사를 받는 사이, 두 여인은 아예 다른 테이블에 자리 잡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고연주를 시작으로 임한나, 정하연, 박다솜, 심지어 원혜수까지 차례대로 테이블에 모여 앉는다. 시끄러울 만큼 떠들썩하지는 않았지만,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게 오히려 보기 좋다.
“이야~! 오늘도 왔네?”
그러한 찰나, 주방에서 유쾌한 외침이 식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노노 누님이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밝은 얼굴로 국자를 흔들고 있었다.
“각오하라고! 오늘은 기필코 맛있다는 말을 들을 테니까?”
“흐음. 자신감 하나는 인정해주지. 기대하겠다.”
게헨나는 의자에 지그시 몸을 묻으며 여유롭게 대꾸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가벼운 환호와 웃음이 흘러나왔다.
…진짜로 궁금하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그전에 이렇게 밝은 분위기가 얼마 만이더라?
무언가 기쁘면서 심란한 마음에 나는 연초 한 대를 꺼내 물었다. 그러나 불을 채 붙이기도 전에 누군가 부드러이 낚아챘다. 망연히 시선을 올리니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상남 형님이 보였다.
“이런, 클랜 로드. 임산부도 있는데요. 자제해주시죠.”
“아…. 예. 그러죠.”
“사나흘을 꼬박 굶으셨으니까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순한 음식으로 올리겠습니다.”
“부, 부탁 드리겠습니다.”
상남 형님은 빙긋 웃으며 자리를 떠났고, 이어서 또 한 명의 사내가 불쑥 모습을 보였다. 훤칠한 인상의 청년은 바로 조승우였다.
“사용자 조승우?”
“클랜 로드. 생환을 축하 드립니다.”
조승우는 꾸벅 머리를 숙이고는 씩 웃어 보였다.
잠시 후,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받고 나서 나는 조승우를 테이블로 인도했다. 좋아. 이로써 소외감 탈출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에이, 아닙니다. 이제 익숙한데요. 뭘.”
조승우는 농담조로 말하며 엄살을 부렸지만, 왜인지 절반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제가 없는 동안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나요?”
사실 특별한 일이야 있겠느냐는 뜻으로 던져봤는데, 뜻밖에도 조승우의 반응이 이상했다. 슬쩍 눈을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한다. 또 무슨 사건이라도 터진 건가?
“뭔데요?”
한 번 더 재촉하자 비로소 조승우가 입을 열었다.
“실은…. 산하 클랜과 관련해서 타 도시와 간접적으로 충돌이 생겼습니다.”
오호라. 충돌이라. 이건 정말 생각도 못 했는데. 오늘따라 예상치 못한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 같다.
“어디입니까?”
“동 도시 대표인 이스탄텔 로우 클랜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들은 순간 마냥 흥미롭다 여길 수만은 없음을 깨달았다.
저절로 침음이 흘러나오는 동시, 갑작스럽게 식당이 조용해졌다. 사방에서 수십 쌍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이 정도로 모두 알고 있다는 소리는, 설령 간접적인 충돌이라도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리라.
“이스탄텔 로우라….”
손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회의를 소집할 필요가 있겠군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러나 조승우는 난데없이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음? 왜요?”
“바로 일어나셔서 몸도 안 좋으실 텐데요. 제가 괜한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완전히 회복하신 이후에….”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나는 싱거운 미소를 날리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지금 제 몸 상태는 어느 때보다 좋으니까요. 꼭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에요.”
“아…. 하하.”
“그 충돌 건 외에도 여러 일이 있겠죠?”
“그…. 렇습니다.”
“그럼 원정 관련해서도 정리해야 하니 회의를 소집하죠. 그나저나 점심은 드셨습니까?”
“아, 아니요. 아직입니다.”
뜬금없는 물음이었는지 조승우는 말을 더듬었다.
“그럼 같이 드시죠. 회의 전 어느 정도 상황은 들어야 하니까요.”
“정말로 괜찮으신지 걱정됩니다. 사실 그것 말고도 한두 개가 아니라서요.”
이제야 이실직고를 하는군. 이 사람도 참 큰일이야.
나는 빙긋 웃었다.
“일단 상황부터 들어야 제가 해결책을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조승우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고 느꼈다면 내 착각일까.
“…알겠습니다!”
착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허리까지 숙이며 외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