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812
00811 복수를 다짐한 밤. =========================================================================
그렇게 말한 정하연은 돌연히 정령이 칭얼거리자 “그래그래~.” 달래며 등을 토닥거렸다. 그 모습을 나도 모르게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오묘한 기분이다. 무언가 기껍다고 느끼면서도 볼 낯이 없는? 아니. 표현이 잘못됐다. 기쁘면서도 미안하다. 그러나 편안하다. 나는 그제야 내가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 응? 싫어? 다시 높이 들어달라고?”
정하연이 도로 정령을 번쩍 들어 올리자 가려져 있던 앞모습이 활짝 개방됐다. 새삼 육체 요소요소가 새로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은 얼굴. 백설(白雪)을 연상케 하는 흰 뺨에 살며시 스민 홍조가 몹시 곱다. 총명하게 빛나는 바다색 눈동자는 은은히 어른거리는 수증기 덕분인지 신비로운 기운을 뿌리고 있다.
또 탐스럽게 익은 붉은 입술은 어떠한가.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걸린 미소는, 일견 장난스러워 보이면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아, 흡사 대갓집 규수 같은 고아한 자태를 자아낸다.
이뿐일까. 혀로 핥아 침을 잔뜩 묻히고 싶어지는 청초한 목덜미. 난만하게 떨어지는 우아한 어깨선. 이윽고 수면에 절반쯤 잠긴, 먹음직스럽게 부푼 젖가슴까지 내려간 찰나, 나는 비로소 분신이 힘찬 기지개를 켰음을 인지했다.
탕의 열기와는 별개로 더운 기운이 치솟는다. 전신의 혈액이 신체의 한 부분으로 몰리는 것 같다. 식도가 바짝 타는 듯한 느낌. 살짝 숨을 토하자 한숨이 탄식처럼 흘러나왔다.
느닷없이 왜 이러는 걸까. 일전에 사라가 남긴 얼룩이 간간이 신경 쓰이기는 했는데. 설마 그게 기폭제가 된 건가?
모르겠다. 뺨, 입술, 쇄골, 가슴…. 그냥 어디 한 군데라도 좋다. 당장 한 입 베어 물지 않는다면 뻥 터져나갈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잇따라 고이는 침을 삼키며 살금살금 수면을 가로질렀다.
“그래? 이렇게 들어주면 기분 좋은 거야? 그렇구나.”
정하연이 가까워질수록 상상은 점차 망상으로 돌변했다. 정하연의 저속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저 고상한 얼굴이 야하게 변하고, 정숙한 몸을 상스럽다 여길 만큼 허덕거리게 하고, 입은 천박한 교성을 지르다가 종래에는 나를 껴안고 엉엉 울부짖게 하고 싶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괜스레 기대하게 된다.
“후후. 수현. 얘 좀 봐요. 너무 귀엽지 않아요?”
“사랑스러워요.”
“그렇죠? 들었니? 네가 사랑스럽대.”
“아니요.”
“…네?”
“걔 말고. 하연이요.”
첨벙!
그 순간 정령이 갑작스럽게 떨어져 물에 부딪혔다. 정하연은 두 손을 들어 올린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리고 3초 후 눈동자만 움직여 나를 보더니 한 번 더 놀라는 빛이 번졌다. 어느새 정하연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하연.”
침착히 몸을 일으키자 정하연이 헉 기함했다. 꼿꼿이 발기한 남근을 봤는지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어, 엄마!”
차마 말을 잇지 못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그 모습은 외려 활활 불타는 짚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었다. 나는 정하연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양팔을 덥석 잡았다. 부드러이 잡아당기자 미미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수, 수, 수, 수현! 여기는….”
“상관없잖아요. 아무도 없는데.”
“하, 하지만….”
“하연. 제발….”
“아…. 안 돼!”
“……!”
탁, 정하연이 세차게 나를 밀쳤다. 그리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저항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하, 하연?”
“저, 저 오늘은…!”
뭘 말하고 싶은지 입을 달싹였으나 결국에는 입을 짓씹는다. 너무나 미안해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던 정하연은, 곧 정령을 끌어안고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잠시 후, 찰박찰박 물 젖은 바닥을 밟는 소리가 들리자 간신히 이성이 돌아왔다.
“하연! 미안….”
탕.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문 닫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
아마 실수한 게 있지 않을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조금은 망연한 기분에 휩싸일 즈음, 돌연 닫혔던 문이 도로 조심스레 열렸다. 떠난 줄로만 알았던 정하연이 살그머니 고개를 보였다. 낯을 잔뜩 붉힌 채 눈은 정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다.
한참을 고뇌하던 정하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 수현…. 그게…. 수현이 싫다는 게 아니라요….”
“…….”
“제가 요새 너무 수련에만 신경 쓰느라…. 지금 얼굴이나 몸이나 다 엉망이고….”
“……?”
“별로 예쁘지가 않아서…. 그, 그러니까….”
“…….”
“제가 최소한의 준비는 끝내고…!”
“……?”
띄엄띄엄 말을 잇던 정하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도망쳐버렸다. 기척은 빠른 속도로 후다닥 멀어졌다. 나는 머리를 갸웃하고 말았다.
최소한의 준비는 끝내고…?
*
“후유유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웬 한숨 소리가 나를 반겼다. 흘끗 왼쪽을 쳐다보니 구석진 곳 탁자에 힘없이 앉아 있는 여인이 보였다.
비비앙이 깨작거리며 음식을 먹고 있다. 입맛이 없는데 억지로 먹는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은 차치하고서라도 돌연 걱정이 솟구쳤다.
“세상에. 비비앙이….”
“우와. 저녁 드시러 온 거예요?”
문득 낭랑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제갈 해솔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다. 비비앙과는 반대로 얼굴에 살맛 난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의자에 앉아 마주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를 부른다.
“유부유부유부유부~.”
“남이라고만 해보시죠.”
“…초밥!”
“…….”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마치는 제갈 해솔. 참 한심하다. 애도 아닌데 저렇게 놀고 싶을까? 아니면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은 건가. 겉보기에는 신비로움의 극치인데 가끔 하는 짓거리는 영락없는 어린이다.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한데 쟤는 또 왜 저러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응? 아~. 비비앙 씨요? 저도 아까 물어봤는데 마력 문제인 것 같아요.”
“마력?”
“네네. 소환 진은 어느 정도 해결한 것 같은데 마력이 부족하다고 한숨을 계속 내쉬네요. 사실 바보 같은 걱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힘내라고 조언 좀 해주고 왔어요.”
“오. 어떤 조언을…?”
“마력이 부족하면 마력을 올리면 되잖아? 이렇게요.”
…비비앙이 죽상인 이유가 있었구나. 왜. 아주 그냥 ‘내 마력은 102 포인트인데~.’ 자랑이라도 하지그래.
그나저나 비비앙의 고민은 예삿일은 아닌 것 같다. 상위 군단을 부를수록 소환에 필요한 마력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특히 1, 2, 3 군단은 마력 증강(增強) 현상이 굉장히 심하다고 들었다. 아니면 게헨나 말대로, 수나의 영향으로 마수가 한층 강력해질 거라 하니 소환에 필요한 기초 마력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고.
“비비앙의 마력 능력치가 어느 정도 되려나….”
웬만하면 도와주고 싶다. 비비앙이 더 강한 마수 군단을 소환할 수 있다면 그만큼 든든한 일도 없을 테니까.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마력을 올리려나. 해봤자 영약이나 장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때였다. 한창 생각에 잠겨 있을 즈음, 식당 문이 벌컥 열렸다. 곱게 차려입은 하녀 한 명이 나를 보며 잰걸음으로 달려온다. 그리고는 뜻밖의 말을 전했다. 형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이른 저녁이기는 하지만, 왜 이 시간에 찾아왔는지 궁금했으나 어쨌든 4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무실에는 형이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잖아?”
형이 나를 보자마자 건넨 첫마디는 뜻 모를 말이었다.
“괜찮아 보인다니?”
책상 의자에 앉으며 반문하자 형이 이상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또 네가 이별에 힘들어하고 있을 줄….”
“그만, 그만!”
신경질적으로 손을 젓자 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젠장.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정작 장본인은 가슴에 잘 묻고 살아가는 중인데. 왜 주변에서 못 물어봐서 안달인지.
나는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뭔 일인데.”
“아니. 그냥 안부나 물으러 왔지.”
“보다시피 잘 살고 있으니까….”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봐?”
흠. 가끔 생각하는 건데 형은 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하기야 원체 날카롭기도 하지만.
“고민까지는 아니고. 마력 영약을 구해볼까 해서.”
“마력 영약이라….”
그 순간 형의 입에 미소가 스쳤다면 착각일까. 그러나 곧 생각에 잠긴 체하더니 느릿하게 머리를 젓는다.
“일반적으로 쉽게 구할 수 없는 물품이기는 하지. 아니면 구할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우선 밤의 거리에 가보려고.”
“밤의 거리? 아, 경매장?”
“그렇지.”
“글쎄. 정말 드물게 매물이 올라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힘들지 않겠어? 그리고 설령 올라온다손 쳐도 경쟁도 해야 하잖아. 아주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텐데.”
“으음.”
회의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애초 ‘능력치’와 관련된 영약은 거의 매물에 뜨지 않는다. 그나마 장비는 간간이 올라오기는 하지만 대다수가 귀속된 상태라서 별 쓸모도 없고.
“내가 너라면 차라리 탐험으로 노려볼 것 같은데?”
물론 그 방법도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형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책상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품에서 기록 한 장을 꺼내놓았다.
“이거 한 번 봐봐.”
뭔가 하고 봤더니 내용이 고어로 적혀 있었다. 비밀 도서관 내 기록이었다.
“이걸 왜 나한테 줘?”
“수현이 너. 요새 바깥세상에는 아예 관심도 없나 보네.”
응. 지금은 우리 클랜 앞가림하기도 힘든 상황이거든.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여하튼 형은 약간 놀리듯이 말하고는 한 번 더 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약간 두툼한 기록 더미였다.
“이건 우리 클랜원이 작성한 보고서야. 조금 두껍기는 하다만 한 번 시간 날 때 읽어봐.”
“이걸 내가 왜….”
“일단 읽어봐. 읽어보면 알게 될 거야. 얘기는 그 후에….”
“……?”
불현듯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부자연스럽다고 해야 하나. 시종일관 미소 짓고 있는 것도 거슬린다. 형이 나를 잘 아는 만큼 나도 형을 알고 있다. 저렇게 실실 웃고 있다는 건 속으로 꾸미는 게 있다는 소리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실눈을 뜨고 형을 노려봤다. 그러나 내 시선을 태연히 받아넘기며 외려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솔직히 좀 얄밉다.
뭐, 좋다. 뭘 꾸미는지는 모르겠지만 응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형의 속내를 낱낱이 파헤쳐주도록 하지.
“어?”
그때 빙글빙글 웃던 형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수현아. 너 그거 뭐야?”
“그거?”
“오른손에 반지. 처음 보는 반지인 것 같은데.”
“아….”
매, 매의 눈이로군. 설마 이걸 발견한 줄은 몰랐어.
“하하. 그냥….”
“그냥?”
“상대의 최소한 준비를 대비한 카운터 공격이라고 할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어색이 웃으며 오른손을 내렸다. 이번에는 형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러나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 그렇잖아. 아무리 형이라도 차마 밤을 대비한 ‘정(精)의 반지’라고는 말 못해.
*
머셔너리 캐슬 2층. 마법사 사무실에는 김한별이 당황한 얼굴로 정하연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건의 시작은 정하연이 돌아온 점심쯤일까. 갑자기 빨개진 얼굴로 자리에 앉더니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물론 업무를 보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정작 문제는 바로 업무를 대하는 태도였다. 호랑이에게 쫓기는 것도 아닌데 여느 때보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업무를 처리해버리는 것이다.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하고. 어찌나 손을 빠르게 놀리는지 아수라(阿修羅)가 강림한 거라 해도 김한별은 믿을 자신이 있었다.
이뿐인가.
“언니. 이번에 머셔너리 아카데미로 들어가는 예비 사용자들….”
“응. 거기 놔둬.”
이제는 숫제 쳐다보지도 않고 말한다.
‘바쁜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
조심스레 기록을 놓은 김한별이 연신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돌릴 즈음.
“아. 한별아.”
불현듯 정하연이 김한별을 붙잡았다.
“네. 언니.”
“혹시 옷 좀…. 아, 얘 거는 가슴이 좀 끼겠네.”
“…네?”
“아니. 혹시 보석 가루 좀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최대한 야한 빛깔, 아니 빨간빛으로.”
바로 말을 돌리기는 했지만, 김한별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정하연이 자신의 가슴을 슬쩍 보더니 아쉽다는 표정을 지은걸.
“에…. 루비 가루 정도야 얼마든지요.”
“고마워. 그럼 내 책상에다 놔줘?”
그렇게 말한 정하연은 기록을 탁탁 치며 가지런히 하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언니….”
망연히 방문을 쳐다보던 김한별은 언뜻 눈을 내리뜨며 가슴 부분을 살폈다. 불룩하지 않고 밋밋한 옷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이윽고 침착히 자리에 앉은 김한별은 책상에 조용히 고개를 묻었다. 잠시 후, 어깨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김한별을 울렸음에도 정하연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폭주라는 말이 옳으려나.
“연주 씨! 저 옷 하나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옷이요? 하지만 제 옷이래 봤자….”
고연주의 방에도,
“한나야. 너 향유(香油) 가지고 있지? 그거 조금만 빌려 쓰면 안 되니?”
“응? 향유요?”
임한나의 방에도,
“다은아. 네 속옷을 구경하고 싶어.”
“…언니?”
“속옷 좀 보여줘. 승부할 수 있는 걸로.”
“……언니?”
남다은의 방에도.
세 여인의 방을 고루고루 거쳐 옷과 향유는 물론, 기어코 승부 속옷까지 약탈(?)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날 밤.
“이상해.”
고연주는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하연이 자신에게 옷을 빌려 갔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 모범생이? 그런 옷을 입는다고?”
보통 옷이라면 그냥 잊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하연이 빌려 간 옷은 안이 훤히 비치는 캐미솔(Camisole)이었다. 평소의 정하연이라면 입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았을 터.
“아무래도…. 배신자의 냄새가 나는데.”
결국 고연주는 침대를 박차 몸을 일으켰다. 신속에 가까운 속도로 숙소를 벗어나 순식간에 4층으로 올랐다. 그리고 정적이 흐르는 고요한 복도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복도는 조용했지만 은근한 마력이 느껴졌다. 사일런스 필드(Silence Field) 마법이 집무실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이게 뜻하는 바는 명백하다.
“호…. 호호….”
어둠 속 잿빛 눈동자가 번쩍 안광을 뿌렸다.
“호호호호!”
사일런스 필드. 그런다고 고연주가 못 들어갈쏘냐.
고연주의 다음 행선지는 정원이었다. 김수현의 집무실에 테라스가 있다는 걸 기억해낸 것이다.
그러나.
“…….”
정원에서 4층을 올려다본 순간 고연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철썩…! 철썩…!
아스라이 들려오는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
“어엉…. 어어어엉….”
서글퍼 우는 게 아닌, 쾌감을 이기지 못해 흐느끼는 음란한 소리.
테라스에는 이미 두 남녀가 한창 정사(情事)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대담하게도 야외 노출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캐미솔은 이미 절반 이상이 찢겨 있다. 정하연은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가슴과 양팔은 겨우 난간에 걸치고, 엉덩이를 비스듬하게 돌린 채 개가 오줌 싸는 자세처럼 오른 다리를 하늘 높이 들었다. 정확히는 허벅지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억지로 잡혀 올려져 있었다.
김수현이 힘차게 허리를 돌릴 때마다 난간 아래를 향하는 가슴이 덜렁덜렁 흔들린다.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젖가슴을 타고 젖꼭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몹시 색정적이다.
“어헝…? 어허어엉…? 어, 어, 어, 으아아아아아아앙!”
절정이 왔는지 정하연은 갑작스레 괴성을 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미 성교가 시작된 지 꽤 시간이 흐른 모양이다. 도대체 얼마나 정액을 마신 걸까? 군살 없던 배는 동글게 부풀었고, 굵은 남근에 찢어질 듯 틀어 막힌 음부에서는 허연 액이 역류하다 못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중이다.
“아악…. 아하아악….”
초점 잃은 눈으로 밤하늘을 쳐다보던 정하연의 고개는, 이내 고장 난 인형처럼 아래로 꺾였다. 허나 그런 와중에도 하부에 힘을 주고는 스스로 엉덩이를 흔들고 있다. 마치 더 박아달라 애원하는 듯한 모습이 평소 정숙하던 태도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수컷에 정복당한 암컷만이 남아 있을 뿐.
“아아아앙!”
이윽고 남근이 힘차게 쑤셔 박히자 쾌감에 겨운 교성이 밤바람을 타고 멀리 퍼졌다.
그리고.
“하연 씨가….”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고연주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벼르고 벼르던 야외 노출 플레이를 선점당했으니 기운 빠질 법도 한데, 외려 두 눈은 시퍼런 불길을 이글거리고 있다.
“호호…. 재밌네…. 그래도 설마 설마 했는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정말 재밌어….”
그렇게 나직이 혼잣말을 중얼거린 고연주는 곧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훗날의 복수를 다짐하며.
이로써 ‘Someday Fivesome’의 여인 동맹은 오늘 밤 완전하게 깨졌다.
그러나 고연주는 알고 있을까.
‘S.F’의 첫 배신자는 정하연이 아닌 남다은이라는 사실을.
============================ 작품 후기 ============================
로유진 : 여기, 베드 신 입니다.
독자 A : 음…. 베드 신은 오랜만이군. 어디 한 번 볼까.
로유진 : 오늘 베드 신은….
독자 A : 아아. 그래그래. 음….
독자 A : 하, 말도 안 나오는 군.
독자 A :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오늘 베드 신엔 아주 큰 문제가 있어.
로유진 : (흠칫.)
독자 A : 바로 내가 이걸 이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던 점이 그러하네.
로유진 : 감사합니다! 리더(Reader)!
독자 A : 일찍이 느끼기는 했지만 신 고자의 명성은 여전하군.
로유진 : 죄송합니다. 리더.
독자 A : 아니. 내 말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고자가 될 뻔했다는 소리였어.
로유진 : (잠깐 갸웃한다.)
로유진 : 감사합니다. 리더.
독자 A : 물론 나 말고 너.
로유진 : 리, 리더. 죄송하지만. 제 베드 신이 마음에 드셨다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독자 A : 잘 모르겠다고?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독자 A : 당장 조아라를 떠나! 앞으로 여기서 연재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로유진 : (ㅜ.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리더.
독자 A : 왜냐면….
독자 A : 넌 당장 세계 최고의 소설 사이트에서 베드 신을 연재할 실력이거든.
로유진 : (헤벌쭉) 감사합니다! 리더!
독자 A : 단, 그 사이트가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로유진 : ……. (시무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