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837
00836 The Town At Night. =========================================================================
건물 내부는 확실히 특이했다. 아니, 건물이 아니라 위장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맞았다. 안에는 로비나 라운지 등 넓은 공간은커녕, 사방을 시커먼 천으로 가려놨다. 보이는 거라고는 직선으로 트인 어두컴컴한 통로뿐이었다.
문지기의 안내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길이 서서히 아래로 기울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즈음, 문득 눈앞에 접수대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어깨를 훤히 노출한, 살짝 야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오른손을 가슴에 대며 허리를 숙이고는 부드러이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기다리고 있었다고….
“곧 경매가 시작될 예정이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그러시죠.”
“우선, 오늘 경매는 블라인드 형식으로 진행되고요. 올라오는 경매 물품 리스트는 총 열 개입니다.”
“예.”
“그럼 자리를 드려야 하는데…. 저희는 귀빈석과 일반석으로 구분해서 운영하거든요. 아, 자릿값을 새로 내셔야 하는 건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나는 미리 꺼내둔 보석 하나를 튕겼다. 맵시 있는 손놀림으로 잡아챈 여인은 이모저모 살펴보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우와, 예쁜 묘안석(猫眼石)이네요. 일반석으로 받기에는 과하고, 귀빈석으로 계산하면 딱 맞아떨어지겠어요.”
“귀빈석으로.”
“감사합니다! 그럼 이 층 왼쪽에서 제일 끝, 자리로 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왼쪽 제일 끝…. 알겠습니다.”
미세한 차이였으나 ‘끝’이라고 말할 때 툭 끊어 말했다. 이걸 못 알아들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이윽고 접수대가 반으로 갈라지더니 여인이 옆으로 살그머니 비켜섰다. 그 뒤에는 직경 이 미터 가량의 네모난 구멍이 통로 바닥에 뚫려 있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오호, 지하에서 경매장을 운영하는 건가.
“참석에 감사드리며, 부디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의례적인 인사를 들으며 차분히 접수대 안으로 들어섰다. 이내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 문득 고요한 음성이 귓가에 흘렀다.
“…잊지 말아 주세요. 왼쪽에서 제일 끝자리입니다. 뭐, 보시면 아실 거예요. 후후.”
알아, 알아들었다고.
머리를 끄덕거리며 계단을 내리밟았다.
물론, 귀빈석으로 들어가는 건 나 혼자였다.
“응? 저, 안 들어가시나요?”
“저는 일반석으로 주실래요?”
“…네?”
“일반석으로 달라고요. 최대한 구석진 곳으로요. 아! 그리고 방금 저랑 그이랑 같이 묶어서 계산하신 것 같은데, 그 묘안석 약 육백 금화는 하거든요. 딱 맞아떨어진다고 하셨으니 귀빈석 자릿값은 개당 삼백 금화라는 소리고. 그럼 남은 삼백 금화 중 일반석 자릿값을 빼고 남은 건 도로 주셔야겠네?”
“소, 손님?”
“미안해요. 그냥 웬만하면 팁으로 주려고 했는데, 내 남자한테 살살 꼬리 치는 꼬락서니 보니까 속이 좀 상해서. 같은 여자니까, 내 기분 이해하죠?”
나는 속으로 웃었다.
*
지하 경매장은 극장과 흡사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아니, 현대의 영화 상영관이라고 해야 하나.
일 층에는 붉은 커튼으로 가려진 타원형의 무대와, 약 오십 미터 떨어진 지점에 백여 개는 돼 보이는 일반석이 십 열로 가지런히 배치돼 있다. 객석은 거의 절반 가까이 채워져 있었다.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들은 대로 왼쪽에서 가장 끝 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귀빈석과 일반석의 차이는 크지 않다. 우선 층이 나뉘어 있으며, 훤히 개방된 객석과는 다르게 좌우, 후방으로 칸막이가 처져 있다.
그 외에도 요청하면 여러 편의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크게 보면 이 정도가 전부였다. 비행기로 생각해보면 퍼스트와 이코노미 클래스의 차이랄까.
칸막이 안에는 예상대로 여러 편의 시설이 비치돼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호출석이나, 입찰할 때 필요한 통신 수정도 보였다. 침대 소파는 약간 높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아래가 훤히 보이겠지.
그러나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소파에 앉기 전, 나는 몸을 푸는 척하며 곳곳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나 천장, 바닥, 구석진 곳 등등 여러 곳을 살폈지만, 딱히 이상한 건 발견하지 못했다. 하기야 이 장소에 참가했다는 건 나름 한 가락 하는 놈일 테니 허투루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을 터.
‘화정.’
– 응?
‘혹시 이 주변으로 이질감 좀 느껴지지 않아?’
– 이질감? 무슨 이질감?
‘예를 들어 미세한 마력의 흐름이라거나.’
– 그거야 아래에 엄청나게….
‘아래 말고.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을 기준으로 사방 이 미터 안에서.’
– 음~. 너를 제외하면 여섯 개 정도 느껴지는데? 인간의 마력이라 보기에는 어렵고…. 그건 갑자기 왜 물어?
왜 묻기는. 오늘의 성패는 ‘얼마나 의심하지 않게 하느냐.’ 에 달려 있거든. 내가 이곳저곳 살피는 모습을 보이면 여러모로 좋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니.
속으로 중얼거리자 화정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말 좀 똑바로 하라고 잔소리했다.
아무튼, 여섯 개라.
‘생각보다 많군.’
그때였다. 천연히 통신용 수정을 집은 찰나, 불현듯 장내의 불빛이 꺼졌다. 갑작스레 시야가 캄캄해졌다.
그러나 어두워진 것도 잠시. 곧 사르르, 사르르 커튼이 빠르게 걷히는 소리가 들리며 천장의 등이 무대를 집중적으로 비췄다. 이윽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갑자기 시끄러운 소음이 귀를 긁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잠시 후, 무언가 구르는 소리가 뚝 멎음과 함께 아까 접수대에서 봤던 여인이 무대 오른쪽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얼굴이 딱딱히 굳어 있었으나, 곧 살며시 풀고는 예쁘게 미소 짓는다. 왼쪽 귀에는 작은 통신 수정를 헤드폰처럼 걸었고, 오른손에는 새하얀 천으로 덮어둔 수동 카트 같은 것을 끌고 나왔다.
이제 시작인가.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우선은 오늘 이 장소를 찾아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나는 안력을 한껏 높이며 침대 소파에 털썩 누웠다. 그리고 금화를 튕겼다가 받기를 반복하며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보자, 오늘 총 열 개가 나온다 그랬나. 자금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킥.”
뭐, 굳이 다 쓸 필요는 없겠지.
그럼, 어디 한 번 시작해볼까?
나는 입에 살짝 침을 적셨다.
*
“…인사가 길었네요.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이제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외침과 동시에 수동 카트에 덮인 흰색 천이 활짝 젖혀졌다. 삽시간에 수십 쌍의 눈초리가 꽂혔으나 여인은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 시선들이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여하튼 비로소 첫선을 보인 첫 물품은 십오 센티미터쯤 돼 보이는, 중앙에 굵직한 보석이 박힌 십자 모양의 아름다운 기념품이었다. 꽤 오래전에 만들어진 듯 전체적으로 투색(渝色)한 빛깔을 띠고 있었지만, 장인이 정성스레 세공했는지 외려 고풍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어라, 이건 예쁜 십자가네요?”
여인이 토끼 눈을 뜨며 과장해서 놀란 척을 했다.
“흠~. 겉보기에는 예쁘지만, 그래도 실속이 중요하겠죠? 효능은…. 아, 말할 뻔했네. …사실은! 이건 일급비밀인데요. 저도 경매 물품의 자세한 효능은 모른답니다?”
희롱하듯이 말한 여인은 한쪽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흥을 돋우려고 해도 반응은 아주, 매우 싸늘하다. 간혹 ‘흠. 여기 진행자는, 혹시 미친년만 뽑는 건가?’나 ‘왜요. 나름 귀여운데요.’ 라는 말 등이 오고 갔으나, 경매에 참가한 사용자 대다수는 조금도 관심 없다는 양 오직 물품만 주시한다.
물론 이렇게 눈이 빠지라 집중하는 이유는 있다.
원래는 입찰자 전원이 동시에 가격을 공개하고,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물품을 낙찰받는 형식을 블라인드 경매라 일컫는다.
그러나 밤의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블라인드 경매는 총 네 가지 원칙에 따라 진행된다.
1. 가격은 공개하나, 동시 공개가 아닌, 기존의 경매 방식을 따라간다.
2. 어느 물품이든 시작 가(價)를 설정하지 않는다.
3. 물품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4. 단, 경매가 끝나기 전까지 구즈 어프레이즐(관련 마법 포함)은 공개하지 않고, 사용할 수도 없다.
이렇기는 하나, 그래도 복불복(福不福)으로 볼 수는 없다. 왜냐면 블라인드 경매에는 어느 정도 성능이 보장된 것들을 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안전장치라고 해야 하나.
말인즉 운만 좋으면 좋은 물건을 비교적 싼 값에 살 수 있다. 반대로 경쟁이 과열될 시에는 수십 배나 비싼 가격을 치르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에는 이러나저러나 믿을 건 사용자 개인의 눈썰미뿐이었다.
그때였다. 객석을 바라보던 여인이 통신 수정에 가만히 손을 얹더니 돌연 빙긋 웃었다.
“네~. 오백 금화로 시작합니다.”
“아, 바로 일천 금화로 올랐네요? 오백 금화 님! 열 받지 않아요? 이대로 질 거예요?”
“헐~. 말하기가 무섭게 일천오백 금화 나왔습니다. 근데 방금 어느 언니예요? 목소리 질투 날 정도로 좋으시네.”
“오, 삼천 금화? 정말요? 정말이죠? 사랑해요!”
삼천 금화. 분명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경매의 고객층이 호기심에 참가한 개인이 아닌, 최소 중견 클랜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금액은 서서히 올라가 어느새 육천 금화마저 넘겼다. 가격이 높아질수록 지하 경매장이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참가한 인원 대부분이 안력을 최대한으로 높여 물품을 분석한다.
물론 그렇다고 전원이 경매에 집중하는 건 아니었다. 와중에 예닐곱 명 정도는 경매가 아닌 다른 곳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언뜻 보면 경매를 보는 척하고는 있어도, 눈동자는 아래를 흘깃거리고 있다.
정확히는, 품속에 은은한 빛을 뿌리는 수정을 숨기고 몰래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러는 동안 첫 번째 물품은 어느새 육천이백 금화까지 올라가 낙찰이 이루어졌다.
“육천이백 금화! 오늘 마수걸이 장난 아닌데요?”
“…네? 뭐라고요?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요? 방금 누구야!”
“농담~. 반말 죄송합니다.”
“자, 그럼 이 기세를 몰아 바로 두 번째 물품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블라인드 경매 초반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두 번째로 나온 보랏빛 물약은 사천오백 금화에 낙찰됐지만, 세 번째 물품인 검붉은 빛을 번쩍이는 화살 일백 개는 무려 일만 이천 금화에 낙찰되는 기염(氣焰)을 토했다.
오늘 장(場)이 좋다며 호들갑을 떨던 여인은, 겉 드레스를 훌렁 벗어젖히는 서비스를 보인 후(여전히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듯 달려가 네 번째 수동 카트를 끌고 나왔다.
“언니 오빠들~.”
애교를 듬뿍 섞어 말한 여인은,
“얏!”
앙증맞은 기합과 함께 힘차게 천을 젖혔다.
“이번에는…. 어머?”
그리고 바로 말을 잇는가 싶더니 갑자기 탄성을 지르며 눈을 깜빡였다. 멍하니 입을 벌린 여인의 두 눈동자에 강한 이채가 스쳤다.
“어…………. 이건?”
느릿하게 손을 뻗던 여인은 순간 흠칫 행동을 멈췄다. 참가자의 특별 요청이 없는 이상, 물품에 멋대로 손을 대는 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그때, 객석 곳곳에서 미세한 움찔거림이 움트기 시작했다.
무대와 아래를 번갈아 보기 바쁘던 몇몇 사용자가, 돌연 아래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주 살짝 들춘 품속에서는 통신 수정구가 은은한 빛을 뿜고 있다. 그 안으로 보이는 장면에는, 이제껏 가만히 누워만 있던 사내가 느긋하게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쥔 수정구를 입가로 가져간다.
그 순간이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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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owin / 인어 먹는 거 보고 싶었는데.
아…. 그 내용은 적으려다가 안 적었어요. 경매장 바로 전 거리에서 인어를 산 채로…. 음. 아무튼, 그러한 내용을 적으려 했는데, 구상해놓고 보니 도를 넘는 잔인한 묘사가 나올 것 같아서요. 그래도 별로 몇 줄 언급돼지도 않은 내용 기억해주시니 감사하고,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셨다니 조금 신기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