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843
00842 The First Step Toward Return, Eight. =========================================================================
처음에는 킥킥거리는 등의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김유현은 겉으로 보면 절대 실수를 용납지 않을 매우 차갑고 이지적인 인상의 미남이다. 그런 사내가 소위 삑사리를 낸 상황이 자못 웃기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눈을 조금 치뜬 채 먼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웅성웅성.
이윽고 웃음이 서서히 사그라질 즈음, 돌연 곳곳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후방이 소란스럽던 것이, 점차 앞쪽으로 술렁술렁 전염되어 앞줄에 있던 공찬호나 한소영도 고개를 돌렸다.
곧 빽빽이 모인 인파가 반으로 갈라지며 한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김수현을 확인한 김유현의 낯빛이 확연히 밝아졌다.
“수현아!”
반가움에 소리 지르자, 무수한 시선이 우르르 꽂혔다. 실수를 인지한 김유현은 바로 말을 정정했다.
“아, 조금 늦었군요.”
“죄송합니다. 소환의 방에 좀 다녀오느라.”
꾸벅 머리 숙인 김수현은 얼른 단상으로 올라와 김유현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두 형제는 서로 한 번 시선을 맞췄다. 긴말은 나누지 않았다.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잠시 후, 김유현이 머리를 주억이는 걸 기점으로 공식 발표가 재개되었다.
“그럼 마저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질문하신 분?”
김유현이 비치된 기록을 집어 들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예, 예.”
질문한 사내가 수긍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떨떠름한 음성이었다. 정확히는 김유현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무심히 주변을 돌아보는 김수현을 보고 있었다. 이 광장에 모인 군중만 족히 일만은 넘을 터인데, 부담은커녕 외려 주변을 압도하는 기운마저 느껴졌다.
“제가 이걸 공개하는 이유는….”
김유현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이 기록의 소유 권한은, 제가 아닌 머셔너리 로드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저는 대리인에 불과하며, 이걸 발견하고 공개하자고 발의한 장본인은 바로 머셔너리 로드입니다.”
그 순간 김유현을 쳐다보던 눈동자들이 모조리 왼쪽으로 이동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수현이 흘끗 옆을 흘겼으나 형이라는 작자는 천연덕스레 미소만 짓고 있다. 결국에는 짧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제가 방금 와서 상황을 잘 모릅니다. 왜 비밀 도서관의 기록을 공개하는지 궁금하다는 겁니까?”
그냥 단순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질문한 사내는 순간 ‘괜히 물었다.’ 고 후회했다. 실상은 ‘군주여, 호령하여라.’ 의 영향이었지만, 어쨌든 겨우 긍정할 수 있었다.
“에, 그러니까 나쁜 뜻이 아니라요. 해밀 로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기록들의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렇지요.”
“그럼 이러나저러나 개인이 발견한 이상, 그 성과는 찾아낸 사용자에게 귀속된다고 봐야 합니다. 탁 까놓고 말해서 배는 좀 아프겠지만, 이건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불문율이죠. …한데, 그 권리를 포기하시면서까지 이렇게 공개하고, 공동으로 나누겠다는 진의가 궁금합니다. 사실 불안한 마음도 없잖아 있고요.”
“아, 그건 간단합니다.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요.”
장황한 설명에 반해, 답변은 말 그대로 매우 간단했다. 사내의 낯빛에 당혹감이 번졌다.
“예?”
“조금 더 상세히 말씀드리면, 제가 독식하는걸 바라지 않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세력…. 이라고요?”
“천사입니다.”
천사라는 말이 나온 순간, 군중의 낯빛에 의아함이 스쳤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제껏 철저한 도우미 입장을 지키던 천사들이 직접 간섭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렇게 차차 술렁거림이 커지는 동안, 누군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한소영이었다.
“설마 천사가 억지로 제한했다는 말씀인가요?”
“아니요. 강제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요?”
“음…. 그냥 천사는 제안을 했고 저는 받아들였다, 이 정도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김수현은 ‘초감각’에 걸리지 않도록 완곡히 말했다. 그러자 한소영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질문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안이라고요? 어떤 제안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니요. 그건 자세히 밝힐 수 없습니다.”
“잠시만요. 천사가 그렇게 말했다는 건, 그 기록들이 정말 성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건가요?”
“아마 그렇겠지요?”
왜 이런 자리를 만들었는지, 김수현은 아직 정확한 의도는 알지 못한다. 그냥 가브리엘과의 서약을 이행하는 과정 정도로만 알고 있다.
말인즉, 이렇게 엄청난 군중이 모인 자리서 말하는 한 마디가 얼마만큼의 무게를 지녔는지. 그리고 자신의 말 한 마디를 일반 사용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잠시만요. 어쨌든 머셔너리 로드가 첫 발견자라는 말씀 아닙니까.”
“맞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성과를 아무 조건 없이 무료로 개방하시겠다는 겁니까? 정말로요?”
“그건 제가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조용히 지켜보던 김유현이 스리슬쩍 나섰다. 기회를 노리다가 원하던 질문이 나오자 바로 나온 것이다.
“뭐, 여러분을 위해서라느니,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느니…. 이런 낯부끄러운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저와 머셔너리 로드의 진정한 의도도 아니거니와.”
“우리는, 사용자입니다.”
우리는 사람이기 이전 사용자다. 사용자 아카데미에서 가장 처음으로 교육받는 말이거니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말이었다.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만, 저는 분명 아무 조건 없이 무료로 공개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을 바꾸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는 건 저 또한 이득을 얻으려는 행동이지, 선의에서 우러난 행동은 아닙니다.”
“물론 저도 처음에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욕심이 안 날 리가 없죠. 이 정도 기록이라면….”
“그러나 머셔너리 로드의 설득에 따라, 더 커다란 성공을 위해 한 발짝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김유현은 잠시 숨을 골랐다. 아직 말이 끝난 건 아니었다.
“왜냐면….”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몇 초간 뜸을 들이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신 대륙으로 갈 수 있는 통로를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이었다.
“……!”
“……!”
신 대륙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광장은 단숨에 어수선해졌다. 군중 사이로 순식간에 소란이 흘러 하나의 커다란 웅성거림을 만들었다. 워낙 많은 사용자의 말이 섞여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득달같이 입을 여는 사용자들을 보며 김유현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조용히 좀…! 현재 저도 아는 게 많이 없거니와, 아직 추측에 불과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설령 정보를 알려드린다고 해도, 공략이라도 하시렵니까?”
큰소리로 외치자 장내가 점차 조용해졌다. 따지고 보면 김유현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당장 강철 산맥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고 정예 일만오천 명으로도 간신히 넘지 않았는가. 대형 클랜 몇 곳이 연합한다고 해서 공략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그렇게 간신히 잠잠해지기는 했으나 광장은 이미 한껏 달아올랐다. 여기저기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바람을 가득 넣은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바늘을 톡 갖다 대기만 해도 폭발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분위기. 이 또한 김유현이 의도한 분위기였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저희는 여러분에게 투자할 생각입니다.”
“투자자의 입장으로써 이 기록들을 무상으로 나누겠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이 기록을 바탕으로 탐험하고, 성과를 얻으십시오. 그리고 훗날 신 대륙에 관한 정보가 완전히 밝혀졌을 때, 정규 원정에서 강해진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주십시오. 이게 바로 저와 머셔너리 로드가 원하는 것입니다.”
쥐 죽은 듯 조용해진 장내를 돌아보며 김유현이 입을 열었다.
“물론, 여러분 중에는 아직 의구심이 남은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믿기 싫으면 하지 마라, 유치하게 이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단, 얼마 전 머셔너리 클랜에서 사멸 무저갱이라는 유적을 공략한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에 관한 기록도 바로 이 기록 안에서 나온 거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어디선가 “정말입니까?” 라는 말이 나왔다. 김유현은 직접 물어보라는 듯이 옆을 돌아봤고, 김수현은 눈을 감은 채 머리를 끄덕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 김유현은 몇몇 사용자를 호명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효을을 시작으로 공찬호, 김덕필, 선율, 성현민 등등 이름 있는 사용자가 열 명 남짓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그들 또한 비밀 도서관의 기록을 바탕으로 성과를 얻었다고 증언했다. 오늘,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김유현이 미리 안배해놓은 것이다.
이렇게 열 개가 넘는 기록 모두 성과를 얻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제 더는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러자 때가 무르익었다고 여긴 걸까. 또 한 번 소란이 끓으려는 기미가 보이자 문득 김유현이 손을 들었다. 신호를 받은 두 명의 해밀 클랜원이 약 사 미터 높이의 낡은 서재 하나를 들고 와 단상 앞에 내려놓았다. 물 샐 틈 없이 빽빽하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총 스무 칸으로 나뉜 서재에는 가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기록이 꽂혀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유현은 단상 앞으로 걸어가 서재를 잡았다.
“어느 기록에서 어느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서재를 살짝 흔들자 우수수 떨어진 기록들이 바닥에 툭 부딪쳐 흐트러졌다. 꿰뚫을 듯한 눈초리들이 단박에 아래로 향한다.
“하지만 금은보화는 물론, 장비도, 영약도, 클래스도…. 이렇게나 많은데 몇 개 정도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하물며 머셔너리 로드도 얼마 전 원정에서 마력 영약을 얻었다는데.”
순간 사용자들의 눈에 불이 켜졌다.
조건도 없고, 돈을 낼 필요도 없다.
여러 클랜에서 보증도 했다.
그냥 원하면 가서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성과를 얻어 강해지고, 훗날 신 대륙 원정에서 활약해달란다.
이보다 좋은 조건이 있을까.
“사용자도, 캐러밴도, 클랜도, 연합도 좋습니다. 약속드리건대 누구도 차별을 두지 않겠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스친 찰나, 단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한 명 한 명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이끌리는 대로, 목을 쭉 빼어 서재를 응시한다. 군중은 이미 대부분 제정신이 아니었다.
“강해지고 싶다는 열정만 있다면.”
그렇게 말한 김유현은 살짝 웃었다. 그리고 마력을 드높여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에 있는 모든 기록과 성과는,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될 겁니다.”
마력이 충만한 음성이 장내에 흐른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터져 장내가 떠르르 울렸다. 사용자들은 주먹을 번쩍 들어 올리며 광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청명한 하늘이 흔들려 보일 정도였다.
“수현아.”
그러는 와중, 김유현이 작은 음성으로 이름을 불렀다. 김수현은 흘끗 앞을 바라보고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함성은 사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껑충 뛰어올라 하늘마저 들어 올렸다. 이어서 환호 속에 박수가 섞이기 시작했다. 흡사 영웅을 환영하는 주민처럼 여기저기서 박수를 보냈다. 심지어 한소영도, 그리고 분위기에 휩쓸린 공찬호도 어정쩡한 자세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갈채 속에서, 김수현은 담담한 얼굴로 손을 들어 흔들었다.
이리하여.
김수현이 사용자가 된 지 십사 년 차하고 어느 날.
마침내 최후의 선택으로 가는 첫 번째 발걸음이 내디뎌졌다.
============================ 작품 후기 ============================
(코멘트를 읽다가.)
라셸티 / 작가님 질문이요 수현이가 2회차 플레이인 현 시점에서 만약 죽어서 유현이가 제로코드로 과거를 돌려서 다시 시작하면 수현이의 기억은 1회차 플레이한 상태의 기억으로 돌아갈까요?
로유‘진’ : 음, 이건 말이죠….
라셸티 / 왜 또 끊으세요…ㅠ 근데 후기의 내용은 무슨뜻인가요 ?ㅅ? 어차피 인간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이데아를 모두 갖고 있죠. 로유미가 로유진이고 로유진이 로유미이니 그게 그거죠. 로유진+로유미=로유진미
로유‘진’ :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