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851
00850 Meanwhile, Same Time : Seven =========================================================================
뜨거운 물로 씻고 나온 엘도라는 마른 천을 집어 몸을 닦았다. 가볍게 머리를 털자 풍성하게 흘러내린 굴곡진 금발이 눈부신 반짝임을 분사한다. 이윽고 흠뻑 얼룩진 천을 침대에 걸어놓은 엘도라는 맑은 빛이 내리쬐는 창가로 다가갔다. 따스한 햇볕은 방금 닦아낸 머리카락에 고스란히 안착했고, 이내 넘치듯이 흘러 흰 살결에 스몄다.
나신을 다습게 덥혀주는 햇볕이 기분 좋은지 두 눈이 살며시 감기고, 이어서 오른손이 서서히 움켜졌다.
‘이번에는 꼭….’
잠시 후, 엘도라는 실눈을 뜬 채 살짝 턱을 젖혀 허공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오직 홀로만이 볼 수 있는 정보가 출력되고 있었다.
1. 이름(Name) : Eldora Cornelius(6년 차)
2. 클래스(Class) : 금빛의 기사(Secret, The Golden Knight, Master)
3. 소속 국가(Nation) : 라그나로크(Ragnarok)
4. 소속 단체(Clan) : 오딘(Odin)(Clan Rank : AA)
5. 진명 • 국적 : 엘도라도의 주인(Owner Of The El Dorado) • 영국(England)
6. 성별(Sex) : 여성(20)
7. 신장 • 체중 : 164.2cm • 52.2kg
8. 성향 : 질서 • 선(Lawful • Good)
1. 김수현
[근력 99(+2)] [내구 95(+2)] [민첩 101] [체력 101(+2)] [마력 96] [행운 90(+2)]
(잔여 능력치는 0포인트입니다.)
Total : 582 Point
2. 엘도라 코르넬리우스
[근력 100(+6)] [내구 94(+2)] [민첩 90(+2)] [체력 92] [마력 95(+4)] [행운 100]
(잔여 능력치는 0포인트입니다.)
Total : 571 Point
외부 영향에 기인한 상승 폭을 제외한 엘도라 본연의 사용자 정보는, 엄밀히 말하면 으뜸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손색이 있다.(물론, 어디까지나 북 대륙을 기준으로 잡는다.)
하지만 여러 좋은 장비를 가졌고, 영약도 심심찮게 복용했으며, 시크릿 클래스까지 가진 것을 고려하면 분명 탑 클래스로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그러나 여느 사용자가 그렇듯이, 엘도라 또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단순히 느낌으로 가늠하는 게 아닌, 실제로 체감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기를 원한다. 그럴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엘도라가 목숨 걸고 칼집을 찾아다니는 이유였다.
‘이번에는 기필코…. 아니, 최소한 단서라도 잡을 수 있다면.’
엘도라는 결 좋은 머리카락을 질끈 묶으며 이를 물었다. 칼집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라도 하는지 무언가 주체할 수가 없는 것처럼 행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신속히 옷을 입고 장갑을 갖추고는, 깨끗한 천으로 동여맨 대검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
“그럼,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시게.”
막 설명을 끝낸 멜리너스가 지긋한 눈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홀로 서 있는 멜리너스를 제외하면, 주변에는 열두 명의 사용자가 상앗빛 탁자에 앉아 있다.
탁자는 상하 구별이 없는 둥근 모양의 원탁으로써, 총 열세 개의 의자에 자리마다 검의 문양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칼끝이 모이는 중앙으로 지름 십오 센티미터 정도의 홈이 동그랗게 패여 있었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잔에 꽂힌 횃불이 성화(聖火)처럼 불타오르고 있다.
“신이 있는 곳이라. 왜 엘핀 로드가 찾아왔는지 궁금했는데, 꽤 재밌는 정보를 들고 왔네요?”
의자에 등을 기댄 나탈리는 목에 걸린 뿔 나팔을 만지작거리며 해맑게 웃었다.
“정확히는 신들이 최후의 전투를 벌였던 장소네. 신이 있는 장소가 아니라.”
“봉인했다면서요? 어쨌든 그게 그거 아니에요?”
멜리너스가 말을 정정해주자 나탈리는 갸웃하고는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맞아.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
“맞아. 혹시 잘못 건드려서 신이 깨어나면 어떡해?”
그러자 나탈리에 동의하는 두 앳된 음성이 동시에 겹쳐서 들렸다.
나이는 각각 십 대 중후반쯤 되었을까? 방금 목소리를 낸 두 여인은 특이하게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김새가 거의 비슷했다. 각자 줄로 묶어 올린 머리가 반대 방향인 걸 빼면, 일란성 쌍둥이 자매라고 봐도 믿을 정도였다. 어쩌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
“으음,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요.”
그때 한 사용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경을 낀 사내는 순하면서도 유약한 인상이었으나, 총명한 눈동자가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성물로 봉인 의식을 치렀다면, 반대의 경우, 즉 성물을 가져감으로써 봉인이 해제되는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하니까요.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좋은 기회라고?”
이번에는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반문했다. 맞은편에는 머리를 빡빡 민 거한이 울퉁불퉁한 근육으로 덮인 팔로 팔짱 낀 채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커먼 피부인데 양 소매가 없는 흰 사제 로브를 걸치고 있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복장이다.
“별 뜻은 아닙니다. 만일 정말로 봉인이 해제된다면, 신을 잡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니까요.”
“…너무 낙관적으로 말하는데. 혹시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당연히 위험하겠지요.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 대륙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신을 상대로 이겨낸 사례가 있거든요. 우리도 못할 건 없잖아요?”
“오, 그건 조금 흥미로운데. 계속해봐, 이안.”
거한이 반짝 흥미를 보이자, 이안이라 불린 청년은 안경을 치키며 침을 꼴깍 삼켰다.
“에, 혹시 북 대륙에 있는 강철 산맥을 아십니까?”
“강철 산맥…? 아니.”
“우리가 오크 성을 넘어 라그나로크를 발견했듯이 북 대륙도 비슷합니다. 강철 산맥을 공략해 아틀란타라는 신 대륙을 발견했지요.”
“아, 그런 의미로군. 이해했다.”
“예. 아무튼, 우리가 전진 기지를 거치며 최종적으로 오크 성을 점령했다면, 북 대륙은 강철 산맥을 총 네 지역으로 구분해 통과했다고 합니다. 그중, 세 번째 지역에서 신이라는 괴물이 출현했습니다.”
“신이라는 괴물?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으음. 그러니까, 그곳에서는 거인들의 제왕이라고 하더군요. 거신 전쟁에서 저주를 받아 괴물로 격하됐으나, 원래는 신의 반열에 오른….”
“거신 전쟁?”
의문이 끝없이 이어지자 이안은 입을 닫고 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워낙 기반 지식이 부족하니,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는 낯빛이었다. 사내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는지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멋쩍게 미소 지었다. 그때였다.
“관둬.”
잠시 조용해진 원탁 사이로 차가운 음성이 끼어들었다.
“너처럼 타 대륙 일까지 신경 쓰는 사람 따위, 여기 아무도 없으니까. 혼자서만 알고 있으라고.”
이어지는 오연한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기분이 불쾌해지는 아주 신비한 능력이 있었다.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몇몇 사용자가 살짝 인상을 찌푸린 게 그 방증이다.
실제로 음성의 주인공은 의자에 한껏 몸을 묻은 채 다리를 꼬거나 머리 젖혀 천장을 올려다보는 등, 썩 보기 좋지 않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안이 멍하니 눈만 깜빡이자 아까 물어본 검은 피부의 거한이 얼른 입을 열었다.
“아키로프. 말이 조금 심한데. 그리고 물어본 건 나라고.”
“하.”
그 순간 짧은 코웃음이 들렸다. 이윽고 붉은 머리카락이 서서히 기울어지더니 비로소 아키로프라 불린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언뜻 보면 귀티가 서린 게 꽤 잘생긴 미남자였지만, 불쑥 치켜진 눈썹이나 약간 찢어진 눈매를 보면 날카로운 인상이 강하다. 좋은 말로는 도도하고, 보이는 그대로 말하면 거만해 보인다.
“나 참, 별걸 다 궁금해하는군.”
“뭐라고?”
“그렇잖아? 노란 원숭이들이 성공했다는데, 우리가 실패할 리가 있겠어? 응?”
“…그 말은, 나도 모욕하는 거야.”
거한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확실히 누구를 대상으로 삼았든, 방금 말은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아키로프의 행동은 진정 가관을 달렸다. 웬 개가 짖느냐는 듯 한쪽 눈만 슬쩍 뜨더니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기까지.
그나마 따가운 시선은 느꼈는지, 곧 “후.” 숨을 불어 털어내고는 어깨를 으쓱 들먹였다.
“아니 왜 그래. 양키 대륙에 털린 놈들인데,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는 거야? 꼭 우리가 뒤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추켜세운 적 없고, 이안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네 언행을 문제 삼는 것뿐이다. 아키로프.”
“아, 그래? 그럼 나도 너한테 말한 게 아니거든. 확대해서 해석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는데. 에드워드.”
“저, 저….”
점차 언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안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도움을 구하는 눈초리로 원탁을 둘러봤다.
그러한 찰나.
“이안의 말은 조금 믿기 어렵군요.”
문득 고요한 미성이 둘 사이로 흘렀다.
이안의 요청에 화답한 이는 인간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초록빛 나뭇잎으로 감싼 가녀린 신체나, 가냘픈 몸에서 홀로 불룩 솟아 탁자에 얹힌 풍만한 가슴도 뭇 시선을 끌지만, 틈새로 뻗어 나온 나긋나긋한 팔다리는 무언가 선연하면서도 오묘한 느낌이다. 잔잔한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푸른빛 눈동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하고 시원한 기분이 스친다.
확실히 인간과는 묘하게 다른 구석이 있는 느낌. 무엇보다, 두 귀가 인간처럼 둥글지 않고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에, 에르윈…!”
화답 받은 게 자못 기뻤는지 이안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입을 열었다.
“무엇이 믿기 어렵다는 겁니까?”
“신은…. 말 그대로 신이에요. 요정은 물론, 인간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죠.”
“그 말인즉,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예요.”
에르윈의 차분한 음성에 영향을 받았는지 시끄러운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키로프와 에드워드는 말다툼을 멈추고 에르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이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완전한 신이 아닌 경우, 가령 반신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아니면 신을 살해할만한 수단을 가졌을 수도 있고요.”
에르윈의 말이 끝나자 원탁에 다시 조용해졌다. 대부분이 곰곰이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는다. 요정이라는 종족은 말을 허투루 하지 않는 만큼, 한 마디 한 마디가 가볍게 듣고 넘길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그냥 단순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구나고 깨닫는 것이다.
“자자, 이만하지. 아키로프와 에드워드도 그만하고. 그리고 어차피 가봐야 아는 걸세. 아직 하나 확실하게 밝혀진 것도 없는데, 여기서 왈가왈부해봤자 탁상공론에 불과해.”
멜리너스는 마침 좋은 때라 여겼는지 손을 휘휘 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키로프와 에드워드는 서로 다시 쳐다봤으나 이내 눈을 돌릴 뿐, 아까처럼 언성이 높아지지는 않았다. 특히 아키로프는 쓸데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지만, 많은 이의 존경을 받는 선지자의 말까지 무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잠시 후, 멜리너스는 에르윈을 향해 몰래 눈인사를 건넨 다음 앞쪽의 방문을 응시했다.
공교롭게도, 문 너머로는 어느새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기척이 들린 순간, 원탁에 둘러앉아 있던 열두 명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군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출발할 채비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차피 멜리너스의 설명으로 기본적인 정보는 들었고, 그 이상은 직접 가봐야 아는 일이다. 물론 엘도라가 호출한 이상 기본적인 소집 과정은 거치겠지만, 어디까지나 의례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이 원탁에서 엘도라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앞에서 이끄는 것이다. 정보를 모으거나 앞서 상황 정리를 해놓는 등, 오늘처럼 엘도라의 뒤를 받치는 일은 언제나 멜리너스의 몫이었다. 이것은 오딘 클랜이 창설됐을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으로, 그 누구도 멜리너스의 역할을 도를 넘은 간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엘도라와 멜리너스가 서로 얼마나 신뢰하는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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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도라의 근력을 101에서 100으로 수정했습니다.(08시 1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