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86
00086 一瀉千里 =========================================================================
아마 입구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미 폐허의 연구소에 진입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지금 우리들이 서 있는 장소가 숲 안인지, 아니면 연구소를 앞두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숲 안을 밀어내고 연구소를 설립한게 아닌 있는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건물을 건축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폐허의 연구소는 어떻게 보면 자연 요새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전방으로 굳게 닫힌 철문이 보인다. 일행들은 누구도 말할것없이 홀린 얼굴들로 그 철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눈에 봐도 육중해 보이는 철문을 손으로 밀고 들어가자 문에 슬어있던 녹이 우수수 떨어졌다. 더불어 끼익거리는 불쾌한 문소리가 일어났다. 대충 사람 한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만 열어두고 나는 한걸음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이어 나를 따라 들어온 일행들은 눈 앞에 보인 광경에 다들 숨을 멈추고 말았다.
“라이트 마법이…유지 되고 있어?”
“완벽하지는 않아요. 간헐적으로 깜빡이는걸 보니 거의 수명이 다한거나 다름없어요. 그보다 수현씨.”
정하연의 부연 설명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마치 병원 복도를 연상 시키는 하얗고 폭 넓은 복도. 그리고 아직도 희미한 불을 밝히는 라이트 스톤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듯 전반적으로 건물 모든 부분이 심하게 낡아 있었다. 주변을 맴도는 스산한 한기에 애들은 소름이 끼치는듯 나와의 거리를 더욱 줄였다.
그때였다.
“흑…흑….”
문득 들린 미약한 하나의 목소리.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들린 소리였지만 분명 누군가가 낸 목소리임은 분명했다. 일행들은 조용했고, 복도는 고요했다. 나만 들은건 아닌듯 모두의 얼굴을 딱딱히 굳어 있었다.
“오빠. 혹시 저번처럼….”
유정의 불안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라믹은 아니다. 전방으로 감지를 뿌리자 분명 사람의 모양새를 한 인영이 기감에 걸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미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한동안 고민하던 나는 이내 전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속 여기 서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까이 가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내 뒤에서 옷깃을 꾹 붙잡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지만 나는 선두에 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흑…흑…어요?”
복도는 끝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긴 통로 하나와 그 통로를 감싸고 있는 낡고 녹슨 벽. 앞으로 가면 갈수록 미약했던 목소리는 점점 더 명확히 들리고 있었다.
“흑…흑…오셨어요?”
흑. 오셨어요. 어느정도 거리를 줄이자 나는 비로소 조금 그 단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흐느끼는 목소리, 그리고 오셨어요라는 말. 그러나 그 말에 담긴 어조는 절대로 환영하는 말이 아닌 명백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
조금 더. 조금 더.
내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행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이미 다들 자신들의 무장을 꺼내들고 앞을 경계하는걸 보니 어지간히 겁먹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건 심리적인데서 오는 공포감 이었다. 눈 앞 자신의 목숨을 위협 받는 물리적인 두려움이 아닌 사람의 정신을 자극하는 심리적 공포. 다들 지구에 있을때 본 공포 영화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니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드는 것이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1회차에 지옥의 나락까지 떨어진 경험이 있어 왠만한 귀신들이나 그로테스크한 괴물들은 그냥 애교로 보일 정도였다. 그때 지옥은 정말….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소름이 쭈볏 돋았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본 애들의 불안함은 더욱 증가하고 있었다. 나름 오해가 있는듯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착실히 목소리가 들리는 진원지와의 거리를 줄이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들은 드디어 목소리를 내는 형체를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아직 거리는 좀 남았지만 간헐적으로 깜빡이는 라이트의 빛 앞에 조신히 꿇어 앉아있는 하나의 인영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뒤에서 나를 꽉 껴안는 하나의 손길.
“솔아?”
“가지…마세요….”
“안솔. 진정해.”
뒤에서 이상함을 느낀 안현이 얼른 나서 안솔을 다독였지만, 솔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칭얼거림이 아니었다. 그대로 놔두면 발작이라도 할 기세였다. 나는 서둘러 솔의 머리위로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대로 마력을 일으켰다.
“아….”
내부로 마력을 침투시키자 딱딱하게 얼어붙은 솔의 마력들이 느껴졌다. 따뜻한 마력으로 하나씩 보듬어주고 달랜다. 이내 조금씩 반응하는걸 보며 나는 끊임없이 안솔을 진정시켰다.
그때서야 조금 안심이 됬는지 창백했던 솔의 볼에 발그레한 혈색이 조금씩 비쳤다. 하지만 아직 공포심은 남은듯 솔은 나를 안은 팔을 풀지 않고 있었다. 잠시동안 몸 안을 도는 내 마력을 음미하던 그녀는 이윽고 더듬거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엄청난 악의…그러니까…저런 맹목적인….”
솔의 말을 들은 애들은 전부 인상을 찌푸렸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그녀의 말들. 솔 또한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인지 자꾸 입을 달싹였지만 표현할 방도를 찾지 못한것 같았다. 다만 정하연만큼은 예외였다.
“저 또한 똑같아요. 마법사들이나 사제는 원래 영혼이나 정신의 흐름에 민감한 편이죠. 지금 눈 앞에 어렴풋이 보이는 인영한테서는 굉장한 원망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솔직히 저도 몸서리쳐질 정도에요.”
정하연의 설명이 이어지자 솔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상용 또한 마찬가지였다. 안현은 멀뚱한 얼굴 이었지만 꺼림칙한 기분은 느꼈는지 알게 모르게 주저하는 발걸음들 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가벼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봤자 홀 플레인 안의 괴물입니다. 결국 전진할 수 밖에 없어요. 모두 겁먹지 마세요. 일단 좀 더 접근해보죠.”
“오라버니이….”
“오, 오빠.”
유정과 솔은 애원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러나 내 단호한 얼굴을 읽었는지 이윽고 체념하고 무기를 꺼내들었다. 내 몸을 안은 팔이 떨어진 후 우리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인영과 거리가 줄어들수록 처음 들렸던 목소리와 인영의 모습이 더욱 명확하게 보였다.
그 인영은 겉으로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얗지만 낡고 빛이 바랜 가운. 그리고 산발이 된 기다란 머리를 한 인영은 뒤돌아 꿇어 앉아 있었다. 즉 우리는 그 인영의 뒤통수를 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그 인영과 근접했을즈음 주변을 울리던 흐느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동시에 싸늘한 정적이 우리들과 인영의 사이에 내려 앉았다.
일행은 숨소리를 죽인채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선 후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이 연구소와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요.”
“…….”
인영의 대답은 없었다. 나는 슬며시 검에 손을 얹은 후 일행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때 막 조용하던 인영의 목소리가 주변의 공기를 타고 내 귀로 들어왔다.
“어떻게…오셨어요?”
막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 들린 하나의 거슬리는 목소리. 우리들은 행동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뒤에서 누군가 침을 꿀꺽 삼킨다. 나는 태연한 얼굴로 그 말에 대답했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누군가요?”
“어떻게…오셨어요?”
“또다시 동문서답을 할 경우 우리들은 당신을 명백한 적으로 간주하고 그에 해당하는 행동을 할 생각입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당신은 이 연구소와 어떤 연관이 있는 사람입니까.”
내 선전포고에 인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은 너무도 을씨년스럽고 불편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빠득!” 소리와 함께 인영의 목이 꺾이는게 보였다.
“어떻게.”
“빠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린가? 인영의 목이 절반쯤 꺾였다.
“오셨어요?”
“우드드득!” 소리를 마지막으로 인영의 목은 완전히 뒤틀리고 말았다. 몸은 그대로 전방을 향해 꿇어 앉아 있었지만, 그 상태 그대로 목만 180도 회전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서야 우리들은 그 인영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퀭한 눈과 안쪽으로 푹 들어간 코. 이가 다 빠져 헐렁해진 입. 말 그대로 귀신이라 부르기에 부족함 없는 몰골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적의가 뭉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그 광경에 솔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뒤에서 유정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기척이 느껴졌다. 또한 일행들의 숨소리는 모두 거칠어진 상태였다. 다들 어지간히도 놀란것 같았다. 그런 우리들의 반응을 즐기듯 천천히 고개를 까닥이던 인영은 이내 퀭한 눈이 호선을 그림과 동시에 한번 더 입을 벌렸다.
“히히히! 이곳에는 어떻게 오셨어요? 히히히! 히히히히!”
“수현씨!”
발광하듯 웃는 인영을 보며 일행의 몇몇 인원은 패닉 상태가 되고 말았다. 심리적인 공포를 극복하지 못한것이다. 정하연의 다급한 외침이 들리는 순간, 간간히 복도를 비치던 라이트 스톤의 발광 현상이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캄캄한 암흑. 그리고 형광등이 깜빡이듯 중간중간 복도를 비추는 라이트 스톤들. 점멸하는 복도의 불빛에 맞춰 인영의 움직임도 시작 되었다. 라이트 스톤이 한번씩 깜빡일 때마다 몸을 일으키고,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이리저리 휘저으며 달려온다. 마치 사진을 한장씩 따로따로. 슬라이드 쇼를 보는 기분 이었다.
이윽고 내 앞으로 크게 벌린 입을 들이미는걸 보며 나는 그대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내뻗은 오른손에 무언가 날카로운게 걸리고, 그게 사람의 이빨이 아닌 동물의 이빨과 비슷하다는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급한만큼 나는 그대로 손에 걸린 이빨을 잡고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껙! 께에에에에!”
“라이트(Light)!”
손 끝에 무언가 뿌득 뜯어지는 느낌이 전달되고 그와 동시에 정하연의 라이트 마법이 발현 되었다. 훤히 밝아진 시야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애들 모두 무기를 들고 나에게 달려들기 일보직전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놈들. 설마 배신인가.”
너무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우스갯 소리를 던지가 그때서야 반응이 날아왔다.
“어, 어? 아니에요. 분명 형한테 그 귀신이….”
막 주변으로 고개를 돌리던 안현은 이윽고 내 손에 시선을 간 후 충격 받은 얼굴이 되었다. 나는 한번 픽 웃은 후 그걸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데구르 굴러간 하나의 턱주가리는 이내 바닥에 쓰러져 자신의 입을 부여잡고 있는 인영에 닿아 멈췄다.
나를 멍한 눈길로 보는 일행을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거린 후 그자리 그대로 쭈그려 앉았다. 기세 좋게 달려든 인영은 어느새 고통에 몸부림치며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게 고작 몬스터 주제에 뭘 그렇게 분위기를 잡고 등장해. 어차피 이렇게 될 거면서. 감히 우리 귀한 금동이은동이들을 놀라게 한 죄로 좀 손을 과하게 썻지만, 조금도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검붉은 핏물로 더럽혀진 손을 놈의 가운에 슥슥 닦은 후 놈을 자세히 살필 기회가 있었다. 조금 징그럽게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지옥놈들보다는 훨씬 나았다.
“시에에….”
바람이 한껏 빠진, 구슬픈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건 오직 이놈에 대한 정보 단 하나뿐 이었으니까. 나는 그대로 놈의 기다란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힘없이 딸려 들어오는 괴물 귀신의 얼굴을 보며 나는 연한 미소를 머금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 입니다.
아. 오늘 새벽 급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지는 바람에 아는 지인한테 업로드를 부탁했죠. 일단 소설만 올려주고, 후기는 나중에 업데이트 하겠다고 써달라고 했는데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오늘 새벽동안 밖에 있다가 오늘 아침 9시에 들어왔습니다. 도저히 제정신이 아니라 쓰러지듯 잠들고 말았습니다. 허겁지겁 글을 쓰기는 했는데 지금도 조금 멍한 기분이네요. 일단 86회를 올린 후 간단한 샤워라도 해야 할것 같습니다. 하하하.
『 리리플 』
1. MT곰 : 1등 축하 드립니다. 아. 좋게 보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연베에도, 노블에도 재미있는 작품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하하하.
2. 사람인생 : 언제나 본인의 희생(?)으로 저를 유쾌하게 만들어주시는 사람인생님. 하하하. 너무 1등에 목메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동안 사람인생님이 보여준 1등에 대한 열정은 충분히 전설이라 불릴만큼 대단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은퇴하시고 후진 양성에…응?
3. zjekfksqlc : 이런. 86회 확인 후 바로 가서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정 매의 눈을 가지신 독자 분이시군요. 감사합니다. 🙂
4. 니트로서 : 안솔 “이제 홀 플레인의 던전은 모두 제겁니다.” 솔과 수현이 힘을 합하면 앞으로 더욱 던전을 찾는데 수월하겠죠? 하하하.
5. 라무데 : 나름 노린 내용 이었습니다. 이로서 비비앙에게 빼앗긴 솔의 팬이 다시 돌아올지도…?
6. 타락한비둘기 : 헐. 아닙니다. 건전한…흠. 확실히 20대로 보기는 어렵나요? 하하하.
7. 휘을 : 질문 감사합니다. 너무 급한일이 생겨서요. 네. 100에서 101로 올리는데 1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101 이상으로 올릴수도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입니다. 그런 사용자가 있을수가 없지요. 수현이만 제외하고서요. 🙂
8. 아미슈 : 지금 후기 작성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9. 로드워시 : 실은 요즘 아청아청한것들이 너무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흑흑.
10. 이터시온 : 흐흐. 저 또한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연참의 원동력이 됩니다.(이건 진리입니다.)
코멘트는 항상 전부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다.
리리플에 없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정 궁금하신 부분은 쪽지로 주시면 답변 드릴게요!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