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870
00869 Battle Of The East Continent, Four. =========================================================================
한편, 북 대륙 소환의 방에는….
“응? 조항 일시 해제 허락 요청이 들어왔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제단에 누워 있던 가브리엘이 아닌 밤중에 웬 홍두깨냐는 투로 반문했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천사도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네. 레미엘 님이 직접 요청하셨다고 하는데….”
“레미엘이라면 남 대륙 총괄하는 애잖아. 아니 잠깐만. 직접? 레미엘이 직접 요청했다고?”
“네. 확실합니다.”
“와, 별일이네. 서 대륙이라면 또 몰라. 남 대륙은 대체로 말 잘 듣는다며? 뭐, 자부심에 절어 있다는 게 문제지만.”
어쨌든 천사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가브리엘은 혀를 차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승인 요청을 허락할까요?”
“절대로 안 되지. 레미엘 걔, 은근히 인간을 깔보는 성향이 있거든. 뭐, 우리엘 정도는 아니지만.”
가브리엘은 키득거리자, 천사가 쓰게 미소 짓는다.
“그래도 레미엘 님이 이러실 정도면…. 한 번 검토라도 해보시는 게.”
“흠. 남 대륙에 뭔 일이라도 있는 거야?”
“듣기로는 전 천사를 호출하고, 천상으로 수호자를 호출했다고 합니다.”
“천상? 그리고 수호자라면…. 아, 엘도라인가.”
“아마 아직 진행 중일 겁니다.”
“그럼 틀어봐. 일단 보고 얘기하자.”
순식간에 대화가 끝나고, 천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능숙하게 손을 놀렸다.
그러나.
“어, 어?”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는 등, 아무리 기다려도 연결에 성공했다는 말이 들려오지 않는다.
“뭐해? 연결하라니까.”
기다리다 지친 가브리엘이 살짝 짜증 섞인 얼굴로 다가가자,
“가, 가브리엘 님.”
천사가 한껏 당황해 말을 더듬는다.
“여,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뭐? 설마, 간섭인가?”
“아니요. 간섭이나 방해가 아니라, 아예 연결이 닿지가 않습니다.”
“뭐라고?”
잠시 후.
천사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으로 황급히 보고를 올렸고,
“…….”
가브리엘의 낯에 싸늘한 빛이 서렸다.
*
“그럼 큰일 아닌가?”
무심한 음성이 흘렀다. 오른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고대 마법 도시였나…. 아무튼, 마르가리타의 최후는 상당히 끔찍했던 걸로 아는데.”
눈을 돌리자, 허준영이 나를 흘끗거리고 있다.
“마지아? 그게 왜?”
“방금 저 요정이 그러지 않았나. 날개 이식은 본(本)의 힘과 지식만이 아닌, 실제로 겪은 경험까지 포함한다고.”
“……?”
“그럼 마지아에서 겪었던 일도….”
허준영은 조심스레 말을 흐렸지만, 순간 아차 싶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고,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흥. 괜찮네? 그런 생각도 할 줄 알고 말이야.”
그때 낭랑한 말소리가 허준영의 주장을 받아쳤다.
“뭐, 우선 칭찬해주겠어. 하지만 네 걱정은 기우에 불과해.”
다리를 꼰 채 자못 느긋하게 말하는 여인은 바로 비비앙이었다. 뭐 하나 아는 게 나왔는지 손으로 턱을 괴며 건방을 떨더니, 허준영이 장검으로 손을 가져가자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한다. 그리고 나는 살그머니 니뮤에를 흘겼다. 왜냐면….
“수, 수백 년에 걸친 조교로 마르가리타의 정신이 붕괴한 건 맞아. 하지만 그 경험이 날개에 포함돼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 왜냐면, 아 칼은 또 왜 뽑는데! 마볼로의 일기에 적혀 있었다고! 마르가르타 포획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날개를 찢은….”
우당탕탕!
비비앙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탁상이 세차게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라고요?”
이어서 크게 분노한 니뮤에가 벌컥 소리 지른 순간, 스르릉 칼이 뽑혀 나오는 소리와 동시, 보랏빛 코트가 눈앞에서 펄럭였다. 이윽고 코트 자락이 서서히 가라앉자, 살벌한 광경이 시야에 잡혔다. 장검은 니뮤에의 목젖에 닿아 서슬 퍼런빛을 뿜고 있었다.
“까불지 말고, 앉지 그래.”
허준영이 강압적으로 말하자, 니뮤에가 입을 질끈 씹는다.
“아니, 저는!”
“앉아.”
결국, 니뮤에는 얌전히 앉았지만, 곧 애타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한숨을 내쉬며 손을 젓자, 허준영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검을 거둔다. 노려보는 눈초리는 여전했지만.
“왜 이렇게 예민해.”
“마음에 안 드니까.”
아주 들으라는 듯이 말하는군.
“말하는 꼬락서니가, 꼭 마르를 데려가겠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느냐 물어보려는 찰나, 순간적으로 입을 닫았다. 이건 조금 예민한 사안 아닌가.
비단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지 주변 분위기도 냉랭해졌다. 맹목적인 적의까지는 아니었지만, 결코 호의적인 반응도 아니었다. 오직 마르만이 깜짝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
확실히 민감한 문제이나, 어쨌든 강제로 소환당한 처지일 테니 약간 미안한 감도 있다.
“자리를 옮기는 게 낫겠네요. 서로 긴히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조금 전에는 실례했습니다.”
니뮤에는 조금 슬픈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결국에는 마르와 비비앙을 대동한 채 다시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고대 마법 도시 마지아부터 시작해, 마르가리타의 날개가 강제로 이식됐을 때의 상황까지 전부 이야기했다.
단 하나도 숨기지 않고, 최대한 자세히 말하려 노력했다. 만약 정말 마르의 상태가 위험하다면, 눈앞의 요정만이 해결 방법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아했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말하는 내내 니뮤에는 상당히 다양하고, 또 격렬하게 반응했다. 마르가리타 발견 당시 상황에는 분노를, 마볼로를 처리했다고 하니 감사를, 갓 태어난 마르를 봤을 때 느낀 거룩함을 표현하자 감동을, 그리고 날개 이식 상황 설명에서는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기나긴 이야기를 마쳤을 즈음, 중천에 떴던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기적으로…. 그렇게 된 거군요.”
“혹시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습니까?”
니뮤에는 고개를 가로젓다가 갑자기 끄덕였다.
“아니요. 그 기적이라는 힘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해요. 하지만 김수현 님과 비비앙 님의 말씀에서 진실함을 느꼈으니 거짓말은 아니겠죠.”
음. 목소리가 나긋나긋하니 참 듣기 좋군. …이 아니라, 그래서?
“하지만 그래도 마르 님이 위험하다는 상황은 변하지 않아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똑같은 의견이다. 하지만 마르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무조건 믿을 수만도 없다.
“왜죠. 그 사건 이후 마르는 완전히 회복했고, 정상으로 생활했습니다.”
“겉보기에만 그럴 뿐, 적어도 현 상태를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절대로.”
절대로. 거의 확신에 가까운 또렷한 목소리를 듣자, 불안감이 한층 커져만 간다.
“아주 먼 옛날 일이기는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날개를 이식한 예가 있기는 있어요. 그리고 총 두 번, 그것도 혈연관계에 한해 일시적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죠.”
“그럼 마르도.”
“물론 마르 님도 혈연관계로 이어져 있는 건 맞아요. 덕분에 그날 목숨을 건지셨을 가능성도 있겠죠. 하지만 딱 그뿐이에요.”
“잠깐만. 일시적인 성공이라는 말은, 차후 부작용이 생겼다는 거야?”
그때 옆에 있던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질문을 던졌다.
“…네.”
“허, 성공했는데도 부작용이 생겼다고…. 정확히 어떤 현상인지 말해줄 수 있어?”
비비앙이 눈을 반짝였으나 니뮤에는 말하기 싫다는 듯 살며시 눈을 감았다. 아마 마르 앞에서 할 이야기가 아닌 듯싶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비비앙도 더는 조르지….
“아 속 시원하게 하나하나 상세하게 좀 말해봐. 나도 아까 다 말해줬잖아? 궁금하다고!”
“나가라 인마.”
실룩거리는 엉덩이를 발로 뻥 차서 내쫓은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문밖으로 비비앙이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그런 사례가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다고 해서, 현 상황에 완전히 대입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마르는…. 특별한 아이인데요.”
그러자 난처하게 웃음 짓던 니뮤에가 돌연 얼굴을 굳혔다.
“네.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
“모르고 계시니까요.”
“…예?”
“마르 님은 현재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고 계세요. 아니. 요정 여왕으로서의 자각이 거의 없으시죠. 이게 제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고, 가장 확실한 근거예요.”
“아빠….”
자꾸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마르가 내 옷자락을 꾹 움켜쥔다. 그런 마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니뮤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더 자세히 설명하라는 의미였다.
“생각해보세요. 그날 기적이라는 힘으로 모든 것이 회복됐다면, 이후 마르가리타 님의 날개에 힘과 지식 또한 정상으로 흡수됐지 않았을까요?”
“그건….”
“그럼 지금쯤 어느 정도 힘을 사용법을 익히시거나, 최소한 일말의 지식이라도 갖고 계셔야 정상이잖아요.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
그 순간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니뮤에는 말을 흐렸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잠시, 연초 한 대만 피겠습니다.”
니뮤에는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심란해서 그런지 손은 이미 연초를 꺼내고 있었다. 점화석으로 불을 붙이며 가만히 상념에 잠겼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어쨌든 마르가리타도 전대 여왕이었던 만큼 날개에 축적된 본은 실로 어마어마했을 터. 그런데 어째서 마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걸까? 그 사건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
아니. 본의 흡수는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접때 제 3의 눈으로 읽었을 때 그렇게 확인한 기억이 있다.
“후우….”
…그럼 흡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으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결국에는 니뮤에의 말이 맞았다는 소리다. 마르는 정상으로 돌아온 게 아니었다. 잠시 목숨을 건졌을 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하지만, 방법은 있어요.”
자괴감이 고개 들려는 찰나,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니뮤에는 언뜻 비장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방법이 있다고요?”
“네. 사실상 마르 님의 문제를 해결해줄 유일한 방법…. 이라고 생각해요.”
니뮤에는 문득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아까 한 번 봤던 가시로 만들어진 관이었다. 여전히 볼품없는 모양새였지만,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그 순간이었다.
『가시나무 관(Thorns Crown)』
허공에 출력되는 이름을 확인한 순간,
– 오직 여왕의 자질을 지닌 요정만이 두 번의 각성을 거치는데, 두 번째 각성에는 신물이 필요….
– 그러나 각성을 거쳐 힘을 다스릴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는 정의 가능한 존재로 탈바꿈할….
일 회차 때 읽었던 기록과, 예전 제 3의 눈으로 확인한 정보가 동시에 뇌리를 스쳤다.
“아.”
눈이 절로 크게 떠졌다.
“설마.”
“그래요. 말인즉 본이 문제라면 그 본을 다스리면 돼요. 새로운 각성을 통해 무질서하게 흩어진 본을 통제하는 거죠.”
“그럼 그 관이 바로….”
“가시나무 관. 오직 여왕의, 여왕에 의한, 여왕만을 위한 신물이자 왕관. 이 가시나무 관으로 오직 여왕에게만 허락된 이 차 각성을 이룰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한 니뮤에는,
“그러네요. 제가 왜 계속 같은 꿈을 꿨는지….”
이윽고 차분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야, 이제야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양손으로 가시나무 관을 고이 받쳐 들고,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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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몸살이라네요.
하루 쉬었는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처방전 받았습니다.
주사와 약의 힘인지 오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저녁이 되니까 조금씩 으슬으슬함이 몰려옵니다.
아마 몸의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가 봅니다.
어쨌든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
PS. 3차 로리 전쟁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