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908
00907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Three. =========================================================================
– 아무튼, 한 번 붙어봐. 염화는 아직 생각하지 말고. 아니, 그 능력 발동하면 죽는다는 거 알고는 있는 거야?
화정이 핀잔 조로 말했으나 반신반의하는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여태껏 내가 화정 급의 상대와 붙어본 건 딱 한 번에 불과하다. 검술 전문가 시절이기는 했으나 게헨나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나마 염화를 발동해서 비슷한 수준까지는 올라갔지만 결국에는 패배했다. 심지어 아랫급으로 볼 수 있는 악신도 못 당해내지 않았는가.
그러할진대 화정과 동급으로 평가되는 타나토스를 과연 맞상대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때보다 강해졌다고 하지만 염화를 발동하지 않고서?
“후유유유~. 구경도 슬슬 질리네.”
그때 약간 흥분한 듯한 타나토스의 음성이 흘렀다.
“그럼~. 네가 먼저 올래? 내가 먼저 갈까? 아니면, 우리 같이?”
속닥이듯 말하더니 혀로 윗입술을 살짝 핥으며 가랑이를 벌린다. 이제 보니 광(狂)뿐만 아니라 변태 속성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 조심해.
그러나 화정의 경고와 동시에 치솟은 강대한 마력은 가히 경시할 수 없을 만큼 위력적이다. 포악하고 흉흉한 기운이 물씬 흐르는 게 누가 죽음의 신 아니랄까 봐 불길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타나토스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저 맑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주시할 뿐. 뭘 기대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실력부터 볼까?
가볍게 발을 구르니 사위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삽시간에 생성된 열화 검들은 화르르르 불길을 남기며 타나토스를 향해 쏘아졌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단아한 미소를 짓고 있던 타나토스가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다.
“씨발.”
거추장스러웠던지 로브를 휙 찢어 던지자 거의 나신에 가까운 순백의 신체가 드러났다.
“좆 같은 능력이네.”
게헨나는 열화 검을 보고 짜증 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타나토스는 좆 같단다. 표현은 이쪽이 더 적나라하다.
어쨌든 타나토스는 나는 듯 물러나며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가, 이대로 지나치게 하려는 듯 훌쩍 뛰어올랐다. 아담한 체구치고는 탄력적인 도약이었으나 나는 곧장 손을 놀렸다. 그러자 스쳤던 열화 검들이 급격한 곡선을 그리며 돌아와 상대의 등을 습격한다.
“개새끼.”
타나토스의 여유가 사라졌다. 황급히 허리 돌려 잘빠진 오른 다리를 몸과 일자가 될 정도로 수직으로 치킨다. 그 상태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미끄러지듯이 하강한다. 흡사 발레리나처럼 그림 같은 몸놀림을 보이더니 내려오는 그대로 오른발로 힘껏 땅을 내리쳤다.
“야~호!”
쾅!
귀를 때리는 폭음과 함께 대지가 쩍 금이 갔다. 부서진 땅의 파편들이 부채꼴 형으로 와르르 일어나고, 열화 검들이 그 영향권으로 들어간 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나는 흙 연기와 불길이 섞이는 틈을 타 즉시 땅을 박찼고, 아까 등을 보였던 곳으로 힘차게 검을 찔렀다.
그러나 일 초도 지나지 않아 칼끝으로 덜컥 걸리는 감각이 전해졌다. 한 박자 늦게 불어온 바람에 자욱하던 연기가 흩어진다. 그리고 몸을 반쯤 돌린 채 한 손으로 검을 쥐고 있는 타나토스가 드러났다. 싱글싱글 눈웃음을 치며 말한다.
“어머나. 뒤치기가 취향이었니?”
“좀 닥치고 싸울 수 없나?”
“싫은데? 듣기 싫으면 네가 귀를 막던가?”
“명색이 신이라는…!”
나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타나토스가 돌연 검을 부러뜨릴 듯이 틀어쥐며 왼쪽으로 돌려차기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공격이면서도 공기가 쫙 찢기는 게 느껴질 만큼 파괴적인 기세라, 순간적으로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엑스칼리버로 마주 후려쳤다.
꿍!
충돌한 순간, 종아리와 부딪쳤다고 믿을 수 없는 소리가 터졌다. 힘과 힘이 일으키는 반발력에 몸이 자동으로 주르륵 밀려난다.
곧장 균형을 잡고 눈을 드니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타나토스의 신체는 밀려나면서도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나보다 대여섯 걸음이나 더 물러나더니 겨우 자세를 잡는다.
이상하다. 분명 내가 방어하는 입장이었는데.
물론 고작 이것 가지고 이겼다고 보기는 어렵고,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방금 공방에서는 내가 우세했다. 이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문득 아까 화정이 계속 이상하다고 되뇌던 게 뇌리를 스쳤다.
– 일단 여러 방향으로 상대해봐. 절대 무리해서 들어가지 말고.
내 생각을 읽었는지 화정의 음성이 조용히 울렸다.
– 그리고 할 수 있으면 상황을 만들어서 도발도 한 번 해봐.
그 말에 나는 살며시 물러서며 두 검을 상단으로 세웠다. 왜인지 정수리가 간질간질하지만 일단 화정의 말에 따르는 게 낫겠다. 마침 타나토스도 무릎 굽혀 자세를 낮추더니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하!”
짧은 기합과 함께 힘껏 땅을 박차 폭발적으로 쇄도해온다. 나는 칼자루를 바스러지듯이 쥐며 마력을 불어넣었다.
절대 무리해서 들어가지 말되, 상황을 만들어서 도발하라.
한 번 더 곱씹은 찰나, 바람처럼 날아온 타나토스가 오른팔을 뒤로 한껏 젖혔다가 일직선으로 뻗는다. 나는 코앞까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이형환위를 발동했다.
“!”
타나토스는 깜짝 놀란 얼굴로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후방을 점거하자마자 허리를 쭉 굽히더니, 내가 나타난 방향으로 힘차게 뒷발을 차올린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한 번 더 마력을 회전시켰다.
파아아앙!
깔끔하게 차올린 발이 허공을 후려치자 어마어마한 돌풍이 일어나 공기를 뒤흔든다. 가히 무시무시한 위력.
타나토스는 독수리 슛을 차기 직전의 자세로 싱긋 미소 짓는다.
“순간 이동이니? 꽤 재밌기는 했는데…?”
그러나 뒤를 돌아보고 안색이 변한다. 왜냐면 발에 뚫린 내 잔상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멍하니 고개 젖히는 걸 보며 정수리로 무검을 내리그었고, 엑스칼리버는 마력을 잔뜩 먹여 칼등으로 옆구리를 힘껏 후려갈겼다. 그제야 타나토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이 망할 새끼가!”
콰앙!
전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깔끔한 클린 히트를 넣었다. 퍽 튕겨진 타나토스는 시커먼 액체를 흩뿌리며 훨훨 날아, 땅을 거세게 나뒹굴었다.
예전 게헨나를 상대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신을 상대로 이형환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도 보자마자 코웃음을 치더니 똑같이 따라 하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통상적으로 하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발동할 때부터 바로 연달아 사용할 준비를 했고, 타나토스는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 말인즉 카운터라고 할까.
단지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타나토스는 발동 후 알아차렸다. 게헨나는 발동하기 전부터 알아차렸었고.
“…….”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호흡을 추슬렀다.
타나토스는 아직 땅에 엎드려 쓰러져 있다. 흡사 개구리처럼 뻗어 미동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몰라 돌멩이를 걷어차 맞춰봤으나 반응은 전무. 뭘 꾸미고 있는지 몰라 함부로 다가가기도 힘들다.
“후.”
그때 숨을 크게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타나토스는 두 손으로 땅을 짚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세히 보니 정수리가 아니라 희멀건 한 어깨서 시커먼 액체가 줄줄 흘러내리는 중이다. 죽음의 신은 핏물도 검은색인가. 신기하다.
“이야, 진짜 센데?”
뜻밖에도 타나토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인정해. 우리는 김수현은 이길 수 없다…. 뭐, 확실히 그렇게 말할만하네.”
“그러고 보니 치우천 새끼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 생각하니까 열 받잖아.”
무어라 혼잣말을 중얼중얼하는 소리가 들리는 와중, 불현듯 화정의 말이 떠올랐다.
“궁금한 게 있는데.”
최대한 담담한 체하며 말을 걸자, 타나토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갸우뚱.
“응? 뭔데?”
“너 방금 전력으로 싸운 건가?”
“……?”
“전력으로 싸운 거냐고.”
“무슨 뜻이야?”
“에, 생각보다 약한 것 같아서.”
그러자 타나토스가 푸 실소를 머금는다.
“킥! 그, 그러니? 아하하하!”
같잖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결국에는 까르르 웃는다.
“생각보다 약해? 꺄하하하, 꺄하하하!”
괜스레 뻘쭘한 기분이 엄습한다. 하기야 얼마나 가소로울까. 원래대로라면 까마득한,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존재가 아닌가.
그때 화정의 음성이 머릿속을 울렸고, 나는 들은 그대로 입을 열었다.
“그런가…. 글쎄. 아무리 봐도 게헨나보다는 약한 것 같은데.”
그리고 천연덕스레 입맛을 다시자, 돌연 웃음이 뚝 멎는다.
“어디서 도발을…. 뭐?”
한순간 중구난방이던 기세가 착 가라앉는다. 두 눈도 갑작스레 실쭉해졌다. 아까와는 다르게 완전히 침잠한, 흡사 블랙홀을 연상케 하는 눈동자로 나를 뚫어지라 노려본다.
“그년, 아니 지옥의 겁화와 싸워봤다고?”
“응. 그렇지.”
머리를 끄덕이니 살쾡이 같은 눈은 내 전신을 관찰하듯 구석구석이 훑는다. 돌연 목이 바짝 타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네가?”
의심스럽다는 어조. 게헨나의 수호 요새를 꺼낼까 생각했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보아하니 타나토스는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것 같다. 그 수를 모르는 이상 괜히 카드는 숨기는 편이 좋겠다.
“그렇다니까. 그때 정말로 죽을 뻔했다고.”
왜인지 진실의 수정 수백 개와 마주한 기분이나 딱히 꿀릴 이유는 없다. 왜냐면 정말로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게헨나는 정말로 강하다. 처음 마주쳤을 때는 무조건 도망치겠다는 생각밖에 못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나를 상대했을 때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한데, 타나토스는 다르다. 게헨나 때처럼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꽤 강한 건 부인할 수 없으나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수준이다.
탁 까놓고 말해서, 악신과 싸웠을 때보다도 긴장감이 덜하다.
아, 그러고 보니 악신이 타나토스의 수하라고 했던가? 그럼 이것도 말하는 게 좋으려나.
“그런데 너는…. 예전에 악신이라는 놈도 상대해본 적이 있는데, 딱 그 정도? 아니. 좀 떨어지려나?”
절대 도발하려는 게 아닌,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봤다는 투로 말을 잇는다.
“뭐, 모르겠다. 하기야 게헨나는 이천 명에 가까운 인간을 제물로 삼았었는데, 너는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겠고. 그랬다면 차이가 날 수밖에 없겠네.”
어느새 타나토스는 고개를 푹 숙인 상태였다. 땅을 바라보고 있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계속 하자고?”
말을 마친 후 어깨를 으쓱이며 두 검을 들어 올린 찰나,
“야.”
갑자기 타나토스가 퍼뜩 턱을 치켰다.
그 순간이었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너….”
갑작스러운 진동과 함께 스산한 음성이 흐르고,
– 아!
화정이 약한 탄성을 터뜨렸다.
– 김수현,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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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넘어서 업데이트하면 괜스레 가슴이 불안해집니다.
일요일 아침부터 비 내리고 천둥도 치니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는….
그리고 6월 15일(월요일)은 쉴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침에도 업데이트가 되지 않으면 하루 휴재한다고 생각해주세요.
죄송해요. 몸이 너무 피곤해서….
안경을 바꾼 이후로 눈이 자주 건조해지네요. @_@
6월 16일(화요일)에는 정상 분량 + 자정에 올릴 수 있도록 해볼게요.
부디 너른 양해 부탁 드립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