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909
00908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Three. =========================================================================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타나토스가 터뜨린 웃음이 허공을 진동시키며 멀리, 먼 곳까지 울려 퍼졌다.
끄저저적, 끄저저적!
동시에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 전신을 엄습한다. 타나토스가 개방한 기운은 전보다 갑절은 자극적이면서도 어마어마한 압력으로 나를 짓눌러왔다. 그 섬뜩하고 맹목적인 살기에 나도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졌다. 진정하려고 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자꾸만 몸이 떨린다.
이게, 이게 바로 죽음의 신이라는 타나토스의 참모습인가?
– 하찮은 인간이…. 감히 내 역린(逆鱗)을 건드리느냐?
고요하지만 무시무시한 음성이 허공을 웅혼이 울렸다. 처음에는 화정이 말한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타나토스는 목소리조차도 마력을 담아 압박을 선사한다. 어느 순간 흰자위는 사라지고, 검은자위로만 채색된 두 눈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나를 노려본다.
젠장, 괜히 도발한 건가?
– 그래. 그렇게 죽고 싶다고 애걸하는데 내 어찌 지나칠까? 네게는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죽음을 선사해주겠다.
휘리리릭!
한순간 타나토스의 사지로 시커먼 기체가 흘러나왔다.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연기는 곧 두 팔목과 두 발목으로 칭칭 감겨들었다. 이어서 꿈틀꿈틀 굽이치며 회전하는 게 흡사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를 보는 듯하다.
그때였다.
찰나의 순간, 허리는 비스듬히 숙인 채 머리카락이 나부낄 정도로 빛살처럼 쇄도해온다. 침을 삼키며 무게 중심을 뒤로 옮겼다. 득달같이 쇄도해오는 모습이 흡사 검은 해일이 몰려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막지 말고 피해!
그때 화정이 음성이 짜르르 울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날렸다.
그러나.
“!”
눈앞까지 짓쳐 들었다고 생각한 순간, 타나토스가 사라졌다. 보이는 거라고는 내 정수리를 쪼갤 듯이 내려치는 하얀 발꿈치뿐이었다. 황급히 턱을 젖히자 칼날 같은 바람이 콧등을 쓸었다.
간신히 머리가 박살 나는 일은 피했으나, 흉갑을 때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꽝!
“커헉!”
가슴이 폭발하는 충격을 느꼈다.
그게 전부였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몸은 이미 훨훨 날았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중이었다. 기억의 필름 중간이 뚝 끊어졌다고 해야 하나.
– 정신 차려!
정신은 차렸는데, 문제는 타나토스가 나 이상의 속도로 따라붙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껏 싸웠던 게 봐준 거라고 생각될 만큼 엄청난 속도다.
나는 할 수 있는 선에서 균형을 추스르며 검 빛을 발동했다. 빅토리아의 영광이 청명한 검음을 토해내자, 수십의 검광이 순간적으로 상대의 주변으로 번쩍였다.
그러나 타나토스의 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빛무리를 흘끗 흘기더니 귀찮다는 듯이 손을 떨치자, 검 빛은 거짓말처럼 한꺼번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놀랄 틈도 없었다. 왜냐면 타나토스가 한 번 더 허공을 차며 뚫고 나와 번개 같은 찌르기를 넣었으니까.
– 절대로 막을 생각하지 마! 무조건, 무조건 피해!
“큭!”
왜 아까부터 계속 피하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를 악물며 있는 대로 몸을 회전시켰다.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이어서 숨 한 번 내쉬기도 전 기괴하게 꺾이며 들어오는 발차기를 맞이해야 했다. 그 공격마저도 천운으로 흘려낸 순간, 타나토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깨로 몸을 부딪쳐왔다.
퍽!
숨이 턱 막혔다. 단순한 공격이지만 그만큼 강렬하다. 어떻게 호흡 먼저 가다듬어야 하는데 시야가 온통 어지럽다.
그렇게 생각한 찰나, 돌연 볼을 아릿하게 하는 따가운 바람이 느껴졌다. 살이 따끔따끔하다. 무언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신속히 칼리고 아브락사스를 날렸다.
– 킥.
가볍게 코웃음 치는 소리.
몸이 중심을 잃고 무너지는 바람에 저절로 눈이 들렸다. 그리고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수직으로 치솟는 칼리고 아브락사스, 그리고 맞은편에서 하강하며 손을 뻗는 타나토스였다.
다음 순간,
콰지지직!
칼등이 종이처럼 와짝 꾸겨지더니 쨍하는 소음을 내며 터졌다. 하염없이 흩날리는 철의 파편을 보니 갑자기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칼이 부서진 건 차치하고서라도, 도발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순식간에 상황이 반전됐다.
아니. 원래 이게 정상이기는 하나, 막상 이렇게 되니 허탈한 기분을 숨길 수가 없다.
더 무서운 건 아직 타나토스의 공격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차 한 순간 타나토스는 바로 앞까지 내려와 있었다.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겨 올라간 기괴한 미소. 이번 공격으로 끝내주겠다는 듯 양손을 모아 잡고 홀연히 하늘로 치킨다. 급한 대로 이형환위로 벗어나려고 했으나 타나토스는 이미 힘껏 내려치고 있었다.
빠르다.
막을 수 없다.
이번에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이었다.
웅웅웅웅!
갑자기 회로의 마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꽝!
귀가 멍해지는 폭음과 함께 상당한 진동이 전신을 휩쌌다. 안 그래도 흐트러졌던 균형은 생각지도 못한 충격파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치지지지지지지직!
등이 땅을 쭉 긁으며 미끄러지듯이 밀려났다. 지면을 구르고 황급히 눈을 쳐들자 시야로 붉은 장막이 흐르고 있다가 곧 사라졌다. 그리고 타나토스는 공격을 멈춘 채 뜻밖이라는 얼굴로 나를 응시한다.
나는 그제야 턱 끝까지 차올랐던 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그런가. 게헨나의 수호 요새가 발동된 건가. 좀 전까지만 해도 마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고작 일이 초 사용했다고 속이 허하다.
목숨은 건져서 다행이지만 진작 발동했으면 좋았을 텐데.
– 어쩔 수 없지. 타나토스의 공격을 읽지 못했으니까.
‘읽지 못했다고?’
– 그래. 단순히 속도로만 치면 네 최대 속력의 두 배 이상으로 들어오는데 어떻게 막아? 계속 켜둔다면 모를까.
‘…….’
그렇기는 하다. 그리고 화정의 말대로 계속 켜뒀다면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마력이 떨어졌을 테니까.
그나저나 돌겠군. 내 최대 속력의 두 배 이상이라고? 그럼 민첩 능력치가 얼마나 된다는 소리야?
– 겁화의 힘이 깃든.
“방어막?”
칼을 땅에 박고 몸을 일으키니 타나토스가 이죽거리듯 말한다.
– 진짜.
“만난 적이 있나 보네?”
– 거짓말이.
“아니었잖아?”
어, 뭐지?
타나토스의 목소리가 이상하다. 힘을 개방한 후 웅혼하던 음성이 갑자기 육성으로 변했다가 다시 돌아간다. 흡사 마이크가 꺼졌다가 켜지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 잘 들어.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그냥 무조건 버티고 피하는 것만 집중해. 알아들어?
‘잘하고 있다고?’
뭐가 잘하고 있다는 거냐. 괜히 도발했다고 후회하고 있었는데.
‘야. 이제 어쩌라는 거야? 화났잖아.’
– 이 바보가! 상대 모습도 안 보여?
화정의 고함에 무심코 타나토스를 바라본 순간, 문득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왜냐면 아까 연기가 감겼던 팔다리가 어느새 반투명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무언가 알 수 없는 액체를 뚝뚝 떨구는 것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타, 타나토스 님!”
불현듯 루시퍼의 당황한 외침이 날아왔으나,
– 닥치지.
“못해!”
타나토스는 날카롭게 받아쳤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땅을 박찼다.
나는 잔뜩 긴장하면서도 사지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 온다. 준비해.
적어도 하나는 알겠다.
타나토스는 승부를 서두르고 있다.
*
타나토스가 쏜살처럼 들어가는 것과 함께 두 명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난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타나토스의 주먹과 발을 뻗칠 때마다 어마어마한 돌풍이 일어나고, 김수현 역시 두 검을 폭풍처럼 휘두르며 대응한다.
그렇게 검은색과 붉은색 엇갈리는 동시, 허공으로 수십 개의 잔상이 우수수 수놓아진다. 보통 사람은 물론, 정예 사용자라도 따라가지 못할 무시무시한 속도전이다.
잠시 후, 또 한 번 거센 폭음이 울렸다. 충돌 지점에서 터져 나온 열풍은 사방으로 휘몰아쳐 성벽까지 닿을 지경이었다.
멍하니 보고 있던 마르는 약간 금이 가 있던 벽돌이 덜컥 떨어지는 걸 보고 눈을 치떴다.
–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구나!”
그때 타나토스의 외침이 전장을 쩌렁쩌렁하게 흔들었다. 마르가 볼 수 있었던 건 최대한 뒤쪽으로 물러나는 김수현, 아니. 이미 안쪽까지 파고들어 김수현의 복부를 걷어차는 타나토스였다.
김수현은 온통 얼굴을 찡그리며 검을 교차시켰으나, 결국에는 힘에서 밀려 또 한 번 미끄러지듯이 허공을 날았고, 땅으로 처박힌다.
그 틈을 이용해 타나토스는 공중으로 훌쩍 도약했다. 그리고 두 손을 활짝 펼쳤다가, 김수현이 떨어진 지점으로 힘차게 휘둘렀다. 그러자 둥글게 감겨 있던 시커먼 기체가 직선으로 쭉 늘어나더니, 땅을 무자비하게 폭격한다.
꽈앙!
대 폭발. 김수현이 떨어진 지점은 물론, 근방의 십 미터 지면이 크게 떠들렸다. 지면은 달걀 껍데기처럼 쩍쩍 갈라져 부서지고, 흙먼지는 대 전자 지뢰를 연달아 터뜨린 것처럼 하늘 높이 치솟는다.
“안 돼!”
마르는 어른어른 흩날리는 잔해를 보며 다급히 소리쳤다. 최악의 경우는 상정하기 싫었으나 계속 설마 하는 생각이 엄습한다.
“아빠!”
결국, 참지 못한 마르가 몸을 돌린다. 그러면서 모종의 불안한 기분을 느꼈지만 깊게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자신의 감보다는 아빠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으니.
그리하여 성벽 아래로 발 빠르게 뛰어 내려가려는 순간,
“아?”
턱, 어깨가 붙잡혔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한 여인이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한없이 가라앉은 눈으로.
“아, 안솔 언니?”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더듬거리자, 안솔이 묵직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가지 마.”
“네?”
“너는 아직 눈에 띄면 안 되니까.”
“…뭐라고요?”
마르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타나토스를 상대할 수 있다고 장담은 못 해도, 김수현을 돕는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전장은 상대의 연극이야. 그런데, 이 무대에 네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어.”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왜 나가지 말라는 건데요?”
“너를 모르고 있으니까. 알면 분명히 대응할 거야.”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상황이 급한 걸 알고 있는 마르가 벌컥 화를 냈다. 그리고 어떻게든 손을 쳐내고 지나치려는 찰나,
“가면 죽을 거야.”
싸늘한 음성이 귀를 찌른다.
“네가 무대에 올라 눈에 띄는 순간, 네가 사랑하는 아빠는 죽을걸. 아마, 거의.”
들을 가치가 없는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마르는 자신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솔의 말은 함부로 무시하기가 힘들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었다.
어찌 보면 얄궂은 일이었다. 아마 화정이 봤으면 꽤 흥미로워하지 않았을까.
모든 언행에 이유가 있다는 요정 여왕과, 105포인트라는 전무후무한 행운으로 미래를 예지하는 안솔.
“언니….”
마르는 서글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안솔을 바라봤다. 그러나 어깨서 느껴지는 악력은 안솔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마치 너는 절대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듯이.
“저, 잠시만요.”
침묵이 흐르는 동안, 느닷없이 은발의 여인이 조심스레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마르를 호위하고 있던 니뮤에였다.
“여왕님이 안 된다면 제가 나가는 건 어떨까요?”
“니뮤에!”
뜻밖의 제안에 마르의 낯이 이상하게 이지러졌다. 하지만 안솔은 조용히 눈을 감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습을 보이는 정도라면.”
그때.
– 뭐 하는.
“거야!”
타나토스의 상반된 음성이 세 여인의 귀를 왕왕 울렸다.
얼른 아래를 내려다보자, 자욱하던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그리고 타나토스는 여전히 공중에 떠오른 채 이를 갈고 있었다.
– 시간 끌 생각하지 말고!
“빨리 안 튀어나와?”
펑!
그러자 그에 호응하듯, 한 형체가 흐릿한 흙 연기를 헤쳐 뚫고 하늘로 솟구쳤다.
용의 날개를 꺼내 든 김수현이었다.
============================ 작품 후기 ============================
확실히 하루 쉬니까 힐링이 되는 기분입니다.
한데 자정 연재는 어렵네요. -_-;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앞당겨서 집필을 시작했는데 자정보다 한 시간 늦다니…. OTL
죄송합니다. 저를 매우 치세요.(?)
아, 어느 독자분이 질문하셨는데, 중간 세계에서 타나토스와 악신이 붙으면, 당연히 타나토스가 압도적으로 이깁니다.
예전에 게헨나가 악신을 마구 때리는(?) 장면 보셨지요?
타나토스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단지 타나토스가 현재 이러고 있는 건…. 읍읍!
아무튼, 갓솔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