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912
00911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Three. =========================================================================
타나토스의 몸에서 연기가 흘러나간 후, 시간이 멈춘 듯한 전장에 미세한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 전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보고 있을 즈음, 루시퍼가 누군가를 향해 눈짓했다.
“멜리너스.”
조용한 음성이었으나 늙은 현자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윽고 멜리너스가 어딘가로 은밀하게 이동하고, 여섯의 대 악마는 순간적으로 공중을 선회해 타나토스의 곁으로 모였다.
안솔을 부축하고 있던 김수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암만 강하더라도 저 정도의 전력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무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악마의 의도를 알아챈 김수현의 아군도 발 빠르게 사방을 에워쌌지만.
그러나 루시퍼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둘러 손을 놀리고 있었다. 여인처럼 고운 손이 타나토스의 전신을 쓸 듯이 훑는다. 타나토스는 예의 울분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딱히 거부하는 기색은 아니었고, 이내 온몸이 희미한 빛을 발하며 모종의 기운에 휩싸였다.
이윽고 루시퍼가 결연히 몸을 돌렸을 때, 김수현은 눈을 의심했다. 어느 순간 타나토스가 여섯으로 나뉘어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원인을 인지하기도 전에 루시퍼가 무어라 길게 소리쳤다. 왕왕 메아리치는 소리가 채 멎기도 전, 대 악마들은 여섯으로 나뉜 타나토스를 하나씩 들고 박쥐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제야 루시퍼의 의도를 알아챈 김수현이 얼른 제 3의 눈을 활성화했다.
“뭐?”
그러나 곧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여섯의 형상 중 다섯이 가짜고 하나가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것도 정보가 읽히지 않는다. 말인즉 여섯 전부 진짜라는 소리였다.
다음 순간, 루시퍼, 바알, 아스모데우스, 벨제부브, 아스타로트, 리리스. 이 여섯의 대 악마는 한꺼번에 공중으로 솟구쳤고, 각각 다른 방향으로 쏜살처럼 날아가기 시작했다. 설마 도주할 거라고 생각도 못 하고 있던 김수현의 눈이 확 떠졌다.
“모두 잡아아아!”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음성이 천지를 떠르르 울렸다. 거의 동시에 김수현은 물론, 전원이 한 방향씩 추격을 시도한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전장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성을 기준으로 가장자리에서 한창 저항하고 있던 남 대륙 사용자들이 어수선해졌다. 자신들의 위를 빠른 속도로 퍼져 날아가는 대 악마들을 봤기 때문이다. 성으로 향하는 게 아닌, 반대 방향으로.
갑작스러운 후퇴 상황에 사용자들은 한동안 머뭇거렸다. 그러나 기실 전황이 나쁘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북 대륙은 갑자기 한층 기세 올려 해일처럼 몰아쳐 오니, 결국에는 순식간에 등을 돌려 썰물 때와 같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북 대륙은 그 이상의 속도로 밀물처럼 밀고 들어가고 있었다. 지휘권을 인계받은 선율이 발 빠르게 추격하라는 지시를 전파한 것이다. 본능적으로 승리를 직감한 건지, 북 대륙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아 적을 악착같이 뒤쫓는다.
물론 가만히 있는 사용자도 없는 건 아니었다.
본디 전쟁이라 함은 서로 총력을 기울여 맞부딪치는 대 회전보다는, 쫓고 쫓기는 상황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한데, 김유현은 이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음에도 땅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악마 추격 조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하, 도망이라.”
단지 전신으로 노란 전류를 튀기고 있을 뿐.
“누구 마음대로?”
쿠르르릉, 쿠르르릉!
안 그래도 흐릿하던 하늘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러나 김유현은 권능을 바로 발동하지 않고 기다렸다. 아까 아스타로트를 상대하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설령 뇌신의 힘이라도 여러 개로 분할하면 큰 타격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방에 죽일 수 있다면 좋겠으나 애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또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현 상황에서는 발목을 잡는 걸로도 족하다. 그렇다면 해답은 하나였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온 세상을 흔들었다. 동시에 굉장히 두꺼운 기둥이, 아니 기둥처럼 보이는 거대한 뇌전 한 줄기가 샛노란 빛으로 물든 먹구름 사이로 존재를 드러냈다. 흡사 용이 목을 빼듯 비죽이 솟아나오며 땅을 드리운다.
잠시 후, 먼빛을 응시하던 김유현의 두 눈동자가 투명한 황금빛을 터뜨렸다. 쪼롱이와 시야를 동화했을 때의 특징이었다. 이어서 두 팔을 들어 하늘로 올렸다가, 무언가 포착한 듯 힘차게 양손을 내리쳤다.
하늘이 한 차례 출렁거렸다. 그 순간 가까이 있던 사용자들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수백 수천 발이 합쳐진 거대한 뇌전의 기둥이 갈지자(之)를 그리며 강하해 엄청난 속력으로 비행하는 바알의 앞으로 떨어지는걸. 상대의 속도까지 계산한 매우 정확한 공격이었다.
실제로 벼락이 떨어지기까지 일 초도 걸리지 않은 터라, 바알은 아차 할 새도 없이 노란 기둥에 뛰어들듯이 삼켜지고 말았다.
꽈앙!
“아아아악!”
긴 비명은 낙하지점을 순식간에 메우는 굉음에 묻혔다. 땅은 푹 파이다 못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전류 섞인 흙더미가 하늘로 폭발한다. 바알은 잠시 기둥 속으로 사라지더니, 다시 모습을 보였을 때는 공중에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
이윽고 땅으로 통통 튕기는 와중에도 날개를 추스르는 게 살아는 있는 듯 보였으나, 이미 비행은 완전히 멈춘 상태였다. 그리고 그곳으로 한 무리의 기사단이 나는 듯 달려가 단숨에 에워싸는 데 성공했다. 제 3군단이었다.
바알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베히모스는 이미 코앞에서 검을 겨누고 있었다.
“훗훗훗훗! 이야, 그때 우리 일 군단장님께 한 번 목숨을 잃으신 분 아닙니까? 정말로,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결국에는 추격을 허용한 바알의 표독한 낯에 암담한 기색이 그늘지었다.
같은 시각.
추격에 잡힌 건 바알뿐만이 아니었다. 벨제부브 또한 허공에 붙잡힌 채 포위당한 상황이었다. 아스모데우스를 복제한 하승우와 약 마흔 명이 넘는 은빛 갑옷을 걸친 발키리에게 원을 그리듯 둘러싸였다. 한소영이 마법 숙녀 모드를 거두고 여왕의 군대를 소환했다.
“크으으으!”
분에 겨운 신음을 흘린 벨제부브는 재차 날갯짓했다. 사실 대 악마 정도의 수준이면 전투 처녀쯤이야 쉽게 상대할 수 있다. 진짜가 아닌 가짜 악마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러나 그건 상대가 붙어줄 때 이야기다.
벨제부브가 앞으로 날아가자, 발키리들은 사방팔방 뿔뿔이 흩어지더니 창을 겨누고 빛살을 줄기줄기 발사했다. 난무하는 은색 광선이 모조리 날개를 노리고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어찌어찌 벗어날라치면 하승우가 틈을 노리고 몸을 부딪쳐오니 자연스레 비행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모기처럼 끊임없이 괴롭혀오는 탓에 벨제부브는 이를 갈았다. 생각 같아서는 계획이고 뭐고 전부 떼고 한 판 붙고 싶었지만, 그거야말로 상대가 원하는 바였다. 애초 각오하고 왔으니 최대한 상황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왜냐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벨제부브는 과연 알고 있으려나. 자신의 숨통을 끊을 지원군이 이미 지척까지 도착했다는 걸.
한편, 루시퍼는 두 악마 군주와 같이 공중을 직선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타락 천사가 선택한 방향은 정면. 최고 속도를 내는 만큼 전장은 거의 벗어났지만, 주변은 여전히 불빛이 쉴 새 없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뒤를 쳐다볼 생각도 못 한 채 있는 힘을 다해 허공을 통과한다.
“야, 엄청나게 죽어라 쫓아오는데?”
문득 품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루시퍼는 흘끗 시선을 내렸다. 아이처럼 안긴 타나토스가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로 키득거리고 있다. 아까 땅을 치고 분노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하기야 이상하기는 하다. 타나토스가 노렸던 회심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후, 대 악마들은 너무나 빠르고 신속하게 대처했다. 흡사 그 상황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별로 아쉬워하시는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터라 루시퍼는 목청껏 소리쳤다.
“뭐, 아쉽기는 해. 아까는 연기가 아니라 정~말 화났었거든. 그래도 사탄은 이 상황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성공하면 좋았겠지만, 실패 가능성이 더 컸으니까요!”
“나 참. 아무튼, 진짜 이해할 수 없는 놈들이라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 대계의 예언이라는 게 뭐길래…. 뒤!”
“!”
그때 타나토스가 악을 썼다. 깜짝 놀란 루시퍼가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무언가 날카로운 기운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 뒤로 일련의 무리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무언지 알 수 있었다.
잠깐 눈살을 찌푸렸지만, 루시퍼는 얼른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계속 비행하며 소리쳤다.
“악마 군주는 추격대를 막아라!”
그러자 좌우로 있던 두 존재가 순식간에 몸을 돌려 떨어진다. 마족도 아니고 악마 군주를 시간 벌기로 쓰다니. 평소였다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추격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따라왔거니와, 이후의 일을 생각해서라도 악마 군주보다는 대 악마가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호위대를 남긴 만큼 루시퍼는 후퇴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왜냐면 추격대 또한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문득 루시퍼 사위의 공기가 덜덜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 사내가 큰소리로 험악이 고함 지르는 것과 함께 맑은 불꽃들이 전방위로 펑펑 뿜어졌다. 뜨거운 바람이 몰아쳤다. 귀가 먹을 정도의 격렬한 폭음의 축제가 열리고, 루시퍼는 등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직격당한 건 없었으나 폭발의 여파에 휩쓸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놓치지 않는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악에 받친 목소리가 루시퍼의 귀를 때렸다. 그 순간 흘끗 뒤를 돌아본 루시퍼는 총 두 가지 이유로 기함했다. 먼빛으로 두 악마 군주와 한 무리와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는데, 그 사이를 뚫고 익숙한 사내가 똑같이 공중을 날며 쫓아오는 중이었다.
용의 날개를 쫙 펼친 김수현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한 채 바짝 뒤따라오고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악귀와도 같으며 전신으로 뿜는 위협적인 기세는 수천 개의 바늘로 살을 찌르는 듯하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아니 기필코 죽여버리겠다는 적의가 물씬 풍겨오고 있었다. 루시퍼는 안도하며 쓰게 웃었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도주했다면 진짜 일 날 뻔했군.’
그 찰나의 순간, 루시퍼의 얼굴빛에 갈등의 빛이 역력해졌다. 두 악마 군주가 다른 추격대를 막는 동안 홀로 김수현을 상대해 떨구겠느냐고 고민한 것이다.
하지만 곧 포기하고 말았다. 그 강력한 타나토스도 이기지 못했는데 자기라고 이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위험도 크다. 무엇보다 현재는 무사 도주가 최우선 순위였다.
‘이 순간만, 지금 이 순간만 어떻게든 넘길 수 있다면!’
도주에 집중하기로 한 찰나, 또 한 번 주변이 염화에 휩싸였다. 루시퍼는 곧장 직선 비행을 포기하고 요리조리 선회하기 시작했다.
펑, 펑, 펑, 펑!
허공이 쾅쾅 떨어 울리며 진동한다. 점점이 수놓는 불꽃 사이로 루시퍼는 곡예에 가까운 S자 곡선을 그리며 폭발을 회피한다. 중간에 한 번 자세가 흐트러질 뻔했으나, 용케 뚫고 나와 도로 직선으로 날아간다.
“젠장, 나와라! 해류마(海驑馬)!”
이후, 갑자기 김수현의 기척이 사라졌다. 그러나 루시퍼는 안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선가 당장에라도 나타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대 악마도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상 당연히 공포도 느낀다. 제발 자신을 추격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하필 김수현이 쫓아왔으니 입맛이 쓸 법도 하다.
결국, 참지 못한 루시퍼가 흘깃 눈을 돌렸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끈질기게 쫓아오던 김수현이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쐑!
바로 그때, 아래서 날아온 칼 한 자루가 왼쪽 날개를 아슬아슬하게 훑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본 루시퍼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땅으로 내려간 김수현은 처음 보는 말을 타고 루시퍼를 쫓아오고 있었다. 몸은 백옥처럼 희나 갈기는 흑진주처럼 검은 아름다운 말이었다.
문제는, 그 말이 달리는 속도가 그야말로 엄청나다는 것이다. 흡사 빙판에 미끄러지듯이 대지를 박차며 나는 듯 돌진하고 있다. 게다가 달리면 달릴수록 속력은 한없이 높아져 가고 있었다.
고작 말이 날개 달린 존재보다 빠르다?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아차 한 순간 루시퍼와 비슷한 선까지 다가가더니, 끝내 앞지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순간 루시퍼는 김수현의 눈이 번뜩이는 걸 봤다. 이윽고 수십 개의 열화 검이 순식간에 생성돼, 붉은 카펫을 펼치듯 수직으로 화르르르 솟구쳤다. 이어지는 불길은 그대로 불의 바다로 변해 루시퍼의 앞을 가로막는다.
“으아아아!”
루시퍼는 악 소리 지르며 황급히 몸을 날렸다. 천만다행으로 열화 검의 장막에 닿기 직전 가까스로 방향을 틀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눈앞으로 꽝 불꽃이 터지더니 아슬아슬하게 유지해온 균형이 와르르 무너졌다. 타나토스가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아, 이건 끝났네.”
그와 동시에 루시퍼가 춤을 추듯 공중에서 너울너울 회전한다.
그런 루시퍼의 뇌리로,
‘그래. 상대는 확실히 강하다.’
‘무력도 강하고, 세력도 갖췄고, 운도 따라주고, 무엇보다 우리를 잘 알고 있지.’
‘게다가 대계도 우리의 패배를 예언하고 있고.’
‘그런데 루시퍼. 혹시 예언의 정확한 내용을 알고 있나?’
문득 사탄과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 명의 왕과 네 명의 여왕이 출현했다. 우리의 다변화 패배 일 차 조건이 만족했다.’
‘해석하기 나름이기는 하지만, 주목해야 할 건 다변화라는 말이 붙었다는 거지.’
‘여기서 다변화라 함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쾌해져. 우리보다 강한 적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시야가 점차 넘어간다. 서서히 들어오는 하늘이 루시퍼의 눈에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간단해. 지면 된다. 한 발 앞서서 패배 조건을 만족하는 거야.’
‘그럼 아까 예언에서 패배를 빼고 말해보겠나?’
‘한 명의 왕과 네 명의 여왕이 출현한다. 우리의 다변화 일 차 조건 만족한다.’
‘패배를 미끼 삼아 기회를 유도한다.’
순간 서서히 낙하하는 루시퍼의 정면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불쑥 솟았다. 어느새 품에서 떠난 타나토스는 목이 잡아 뜯기고 있었다.
‘응? 그러다 전멸이라도 해버리면? 하, 그럼 어쩔 수 없지. 애초 모험이야. 중요한 건 적을 기만하느냐 못하느냐. 거기에 달려 있다.’
‘인정해. 우리는 김수현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북 대륙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 패배를 견딜 수만 있다면…. 아니, 견딜 수 있는 패배라면.’
‘기회는, 단 한 번 반드시 온다.’
그렇게 타나토스의 조각을 처리한 후, 김수현이 싸늘한 눈으로 아래를 노려본다.
최후의 순간,
‘응?’
‘가능성이 있겠냐고?’
‘지옥 계획 때 우리 악마들은 처음으로 협력이라는 걸 했지.’
‘나는 거기서 가능성을 봤다.’
몹시 느릿하게 흐르던 상념이 뚝 끊겼다.
“사탄….”
이윽고 보이지 않는 검이 맑은 불꽃을 분출하며 내리꽂히는 동시에 루시퍼는 짧게 읊조렸다.
“부탁합니다.”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목덜미에 닿은 뜨거운 기운을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신 용량을 빵빵하게 넣어왔으니 부디 용서를….(굽신굽신)
아, 그리고 어제 코멘트를 읽었는데요. 안솔은 김수현의 공격을 막은 게 아닙니다. 김수현은 찰나의 순간 힘을 뺐고, 타나토스 대신 안솔의 팔이 뜯기고 잘라진 것이지요. 첫 번째 코멘트를 보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 서술을 조금 변화했습니다. 🙂
아으, 드디어 에피소드 3이 끝났네요. 제일 고비가 7~5, 그리고 3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어찌어찌 마무리는 지은 듯싶습니다.
내일부터는 에피소드 2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독자 분들 모두 활기찬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