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937
00936 A Poisoned Chalice, Two. =========================================================================
꽝!
부지불식간에 거대한 굉음이 고막을 찔렀다.
다 끝났다고 여겼던 에르윈은 멍하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뒤늦게 덮쳐오는 돌풍에 앞머리가 펄럭 나부꼈다. 복숭앗빛 뺨에 시커멓고 진득한 액체가 철썩 달라붙는다.
“…아?”
에르윈은 그제야 간신히 상황을 인지했다.
서슬 퍼런 기운을 뿜는 창끝이 콧등에 닿을 듯 말 듯 멈춰서 있다. 그리고 눈앞으로 악마 군주 하나가 갈가리 찢겨 흩날리고 있었다. 가슴을 꿰뚫은 칠흑색 창은 부르르 떨리는 중이다.
사탄 휘하의 악마 군주가 본능적으로 주군의 위험을 감지, 순간적으로 기습해오는 김수현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격도 무시무시한 속도도 놀라웠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일이 하나 있었으니.
단 일격, 즉 한 번의 찌르기에 명을 달리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특히 악마 군주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는 마족은 방금 눈앞에서 보고도 믿지 못할 지경이었다.
잠시 후, 일직선으로 뻗어졌던 창이 다시 뒤로 당겨지며 김수현의 무릎이 굽혀졌다.
“……!”
이윽고 두 눈동자가 예리한 빛을 분사함과 함께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렸다.
기함한 적들이 몰려드는 것과 김수현이 쇄도하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서로 맞닥뜨리는 순간, 무시무시한 기운을 동반한 무검이 횡으로 휘둘러졌다. 맑은 불꽃이 흔들거리며 일어나 화염 방사기처럼 전방을 무자비하게 덮치자, 수십의 마족이 삽시간에 염화에 휩싸여 재로 변해 쓰러졌다.
하지만 잠깐 생긴 공백은 새로운 마족들로 삽시간에 채워졌다. 안 그래도 겹겹이 에워싸인 상태였는데, 우르르 몰려가는 적들의 숫자는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귀찮다!”
김수현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일갈하며 수라마창으로 휘저어버리자, 창날에 걸리는 족족 머리통이 뻥뻥 터지며 핏물과 뇌수가 튀어 올랐다.
그러나 쓰러지기가 무섭게 또 다른 마족들이 우르르 몰려와 다시금 김수현을 에워쌌다. 전후좌우는 물론, 심지어 중급 이상 마족들은 하늘마저 점거했다. 말 그대로 계속해서 철벽처럼 둘러싸는 것이다.
기실 이 정도의 무력을 직면하면 오금이 저려 주춤거릴 법도 하다. 그러나 마족들은 이게 자신의 사명이라는 듯 죽음을 각오한 불나방처럼 쉬지 않고 달려들었다. 피조물의 특성상, 상대에 대한 공포보다는 조물주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마족들의 목숨을 가리지 않은 돌격으로 뒤로 물러난 에르윈은 가까스로 놀란 가슴을 추슬렀다. 어느 정도 거리를 떨어트렸으나, 상대는 흡사 목전에서 칼을 내두르는 듯 어마어마하게 날뛰고 있었다. 아까 직전에서 멈췄던 창 때문인지 아직도 코가 아릿했다.
하지만 어쨌든 이것으로 하나는 확실해졌다.
지원군을 보내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김수현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포기하고 협상하거나, 아니면 최후로 발악하거나. 그리고 김수현은 후자를 선택했다. 제로 코드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터.
이게 뜻하는 바는 하나.
‘넘겼구나.’
그렇게 결론을 내린 에르윈은 바로 손을 들었다. 그러자 화살을 겨누고 있던 남 대륙 사용자나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요정 등등, 에워싸고 있던 전 병력이 뒷걸음질 치며 자세를 잡는다. 제로 코드가 없다는 걸 확인한 이상 더 이상 망설일 건 없었다.
이윽고 에르윈의 손이 내려간 순간, 가장 먼저 들린 건 시위를 튕기는 소리였다. 무려 수백을 헤아리는 화살이 마족으로 이루어진 철창을 향해 쏘아졌다. 아직 마족이 꽁꽁 에워싸고 있음에도 에르윈의 지시는 거리낌이 없었다. 말인즉 일종의 자폭 공격인 셈이다.
그뿐일까. 황급히 방어막을 치는 일부를 제외하면 마법사들도 차례차례 마법을 발사했으며, 정령들도 각양각색의 기운을 개방했다. 게다가 혼신을 다한 엘도라의 검기는 물론, 대 악마와 타나토스의 기운까지.
이 모든 공격이 한꺼번에 날아가, 김수현이 있는 곳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 얽히고설켰다.
번쩍!
최후는 폭발.
꽈아아앙, 꽈아아앙!
김수현과 마족들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찰나의 순간, 일대에 있던 이들의 시야가 새하얘지고 귀도 먹먹해졌으며, 하늘은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아니, 감각이 마비됐다고 해야 하나. 살이 녹아내리는 뜨거운 열기마저도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큭!”
에르윈의 입에서도 신음이 터졌다. 최대한 멀찍이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폭격의 영향이 온몸을 뒤흔들리만치 무시 못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스리슬쩍 눈을 뜨자,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이 하늘 높이 치솟는 중이었다.
폭심에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며 커다란 분화구가 뚫려 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어떤 기척도 잡히지 않았다. 보이는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끝났나.’
후련한 기분도 잠시, 에르윈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최종 목적이 제로 코드인 이상 서둘러 워프 게이트로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사방으로 웅성거림이 가득히 차오른다.
또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본 에르윈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던가.
차츰차츰 걷혀가는 연기 사이로, 춤추듯 너울거리는 그림자 하나가 서서히 드러난다.
웅웅웅웅!
그러나 굉음에 묻혔던 무검은 주변 허공을 일그러뜨리게 할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에르윈의 호흡이 살짝 멎었다.
“절멸자의 검?”
혼돈 왕의 권능 중 하나이며 모든 것을 없애버린다는 절멸. 저 능력을 방어에 사용했다는 건 미처 예상 못한 일이었다.
이어서 허공에 꽂혀 있던 빅토리아의 영광은 허연 김을 피우며 아래로 추락하고, 동시에 손목에 감겨 있던 브레이슬릿이 툭툭 쪼개져 땅으로 떨어진다.
갑옷 안 소망의 셔츠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빛을 발하며, 마법을 가득 흡수한 붉은 망토는 찢기다 못해 넝마로 변해 한들거리는 중이다.
거기다 이형환위까지 사용했는지 검은 형상은 폭심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그래. 김수현은 살아남았다.
비록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전신을 적시고, 온몸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후들거리고 있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살아남은 것이다.
이윽고 두 발이 미끄러지듯이 떨어져 땅에 디뎌졌다. 돌연 코와 입에서 선혈이 뿜어졌지만, 핏물로 범벅된 얼굴을 닦을 생각조차 않고 힘껏 숨을 들이켠다. 김수현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놀라…. 하! 어떻게 견뎌낸 거지?”
어느새 사탄은 에르윈의 말투가 아니라 원래의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그 정도로 동요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
그러나 김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 있는 것조차 힘겹다는 듯 숨만 고르더니 또 한 번 피를 왈칵 뱉어낼 뿐.
진정으로 어이없는 기분이었으나 에르윈은 차분히 손을 들었다. 설마 오륙천이나 되는 서 대륙 병력이 고작 이백에 불과한 무리를 놓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어떤 변수가 끼어들지 모르니까. 만에 하나 제로 코드를 놓치는 일이 생긴다면 이제껏 해온 일이 모조리 헛수고가 돼버릴 것이다.
그때였다.
“너희는….”
문득, 김수현이 입을 열었다.
“정말로….”
목소리는 흡사 한탄과도 같이 작았지만, 극도로 분노한 듯 감히 흘려 들을 수 없는 힘이 깔려 있었다.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털끝이 올올이 곤두서는 느낌이었으니.
모종의 이상함을 느낀 걸까. 에르윈은 무언가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내렸다.
그러나, 아까와 같은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설마 살아남으리라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기에 전원 멍하니 응시하고 있을 뿐.
“나를.”
바로 그 순간,
“끝까지 방해하는구나.”
김수현이 격분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치켜들었다.
부릅뜬 두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불꽃을 내뿜었다. 동시에 강둑을 부수고 범람하는 홍수처럼, 툭 터져 나온 살기가 사방을 거칠게 집어삼켜 가기 시작한다.
반사적으로 아차 했을 때는,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화르르르!
김수현이 전신이 삽시간에 폭발적인 불꽃으로 뒤덮인다.
1. 이름(Name) : 김수현(5년 차)
2. 클래스(Class) : 검의 군주(Arousal Secret, Sovereign Of Sword, Master)
3. 소속국가(Nation) : 자유 용병(Free)
4. 소속단체(Clan) : Mercenary(Clan Rank : S Zero)
5. 진명 • 국적 : 1. 정상(頂上) 2. 검의 주인 3. 마성(魔性)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29)
7. 신장 • 체중 : 181.5cm • 75.5kg
8. 성향 : 중용 • 혼돈(Moderation • Chaos)
1. 화정을 심장에 품었습니다.(현재 3차 각성이 진행된 상태입니다.)
2. 고대 무녀의 각인을 심장에 새겼습니다.(마력 회로가 크게 안정되며 효율이 상승합니다.)
3. 체내에 한 치의 노폐물을 찾을 수 없습니다.(마력이 흐르는 속도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4. ‘군주여, 호령하여라.’의 영향으로 상시 S Zero 랭크의 카리스마 효과가 발생합니다.
5. 용족화를 사용한 상태입니다.(물리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 크게 상승하며 비행이 가능해집니다.)
6. 미확인 능력 ‘염화(炎火)’를 발동했습니다.
마침내 최후의 보루인 염화를 발동한 것이다.
여태껏 김수현이 염화를 사용한 건 단 두 번. 지속 시간도 길지 않으며 목숨을 담보로 하는 최강이자 최악의 능력.
단,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수현도 홀 플레인 최강인 게헨나와 호각으로 싸울 수 있다. 설령 오 분 한정이라 할지라도.
가장 먼저 반응한 건 타나토스였다.
“뭐, 뭐, 뭐, 뭐야…?”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그러나 전신을 짓누르다 못해 쥐어짜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압력이 엄습했다. 심지어 타나토스조차도 함부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힘.
설령 여기 있는 모든 존재의 힘 따위를 합친다고 해도, 감히 댈 수 없을 만큼 강대하고 어마어마한 기운이었다.
그때,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갑자기 몸이 잔뜩 무거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이윽고 고개 젖혀 위를 올려다본 타나토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하늘에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굉장한 양의 마력이 둥글게 뭉치는 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표면이 깡그리 불길로 덮여가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저건! 네, 네가 어떻게!”
타나토스는 자기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발이 엇갈려 넘어졌다. 얼굴빛은 창백하다 못해 파리하고, 한껏 치떠진 두 눈은 완연한 두려움에 질려 있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수천 년 전 있었던 신들의 전쟁에서 자신을 참패시킨 그녀의 능력인데.
다음 순간,
“도망쳐어어어어어!”
죽음의 신임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찬 타나토스의 고함이 일대를 왕왕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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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2도…. 겨우 다음화로 끝…. ㅇ<-<
드디어 에피소드 1로 넘어가네요.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