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957
00956 If You Change, One. =========================================================================
제 삼 군단을 일격에 돌려보낸 후.
“응?”
흡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몸을 돌린 타나토스는 순간 의아한 빛을 비췄다. 마수들을 뒤따라오던 적들의 분위기가 예상보다 침착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대단한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조금은 놀랐으리라 여겼다. 게다가 동료가 허망하게 죽었으니 하다못해 분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게 인지상정.
물론 중간중간 일그러진 얼굴이 안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이내 입을 짓씹으며 극도로 절제한다. 마치 진군이 가로막힌다는 것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흠…. 뭐 믿고 있는 거라도 있는 건가?”
그렇다면 그것 나름대로 즐겁겠지만, 어쨌든 타나토스는 약간 맥 빠진 낯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단신으로 수천을 맞이하고도 뜸지근하던 눈동자에 돌연히 이채가 스쳤다. 천천히 둘러보는 도중 익숙한 얼굴이 걸렸기 때문이다.
“잠깐만, 너!”
타나토스의 손끝이 누군가를 향한다.
“…살아 있었네?”
검지가 가리키는 곳에는 약간 불안한 얼굴을 한 안솔이 서 있었다. 자신이 정확히 지목당하자 목울대가 꼴깍 움직이더니 목에 걸린 ‘목걸이’를 꼭 움켜쥐며 주춤주춤 물러난다. 그에 반해 타나토스의 입꼬리는 씩 올라갔다. 다음 타깃이 정해졌다.
“자~. 그럼….”
물론 타나토스는 안솔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탄이 그토록 경계하던 인간이다. 또한, 실제로 저 여인이 영웅들의 영혼을 소환한 순간부터 전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서 확실하게 죽여놓는 게 뒷맛이 깔끔할 터.
그렇게 생각한 타나토스가 다시 한 번 오른팔을 뒤로 크게 당긴 순간이었다.
“오라! 아라냐! 제 삼십이 군단을 지배하는 죽음의 거미줄이여!”
“오라! 임프리손! 제 사십구 군단을 지배하는 강철의 구속자여!”
불현듯 똑같은 목소리가 연달아 들려오는 동시에.
“뭐, 뭐야?”
후방에서 짓쳐 든 거미줄과 강철 사슬 수십 줄기가 타나토스의 몸을 칭칭 감는다.
“…설마!”
타나토스의 두 눈이 화들짝 치켜지더니 황급히 뒤를 돌아본다.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실은 베히모스의 으름장(?)이 은근하게 신경 쓰이던 중이었다. 한데 갑작스레 마수 군단이 소환되니 설마 하는 생각이 든 탓이다.
그 찰나의 순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타나토스가 뒤를 돌아보는 틈을 타, 총 네 가지 일이 순차적으로 발생했다.
김유현이 재빠르게 신호를 보내자,
‘안솔’이 순식간에 뒤로 빠졌고,
어느 사내가 빠른 속도로 조용히 ‘주문’을 외웠으며,
최후방에서 홀로 대기하고 있던 작은 ‘괴조’ 한 마리가 스리슬쩍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일련의 과정은 그야말로 창졸간에 일어나, 타나토스는 미처 보지 못했다. 몹시 안타깝게도.
“후유. 아 뭐야. 진짜 게헨나라도 나온 줄 알았잖아.”
이윽고 양손에 두 지팡이를 든 사내를 확인한 타나토스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정확히는 그 뒤에 소환된 마수 군단을 보고 안심한 것이지만.
하기야 아무리 두 군단을 소환했을지라도 최상위 군단인 제 삼 군단도 ‘그냥 좀 귀찮다.’ 고 말한 타나토스다. 그러니 까마득한 아래의 하위 군단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얘~. 놀랐잖아. 먼저 죽고 싶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다시 여유를 찾은 타나토스가 사내를 보며 상냥히 말을 걸었다. 그러자 사내는 어수룩하게 머리를 긁적이더니 한결 침착히 입을 열었다.
“아…. 시, 심기가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당신을 최대한 빠르게 끌어낼 필요가 있어서요.”
“날? 끌어내서 어쩌려고?”
“시, 시간을 끌어야지요.”
“시간? 킥.”
고개를 갸우뚱하던 타나토스는 시간을 끌겠다는 말을 듣더니 픽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가볍게 몸을 비틀자 몸에 중구난방으로 감겨 있던 거미줄과 사슬이 뚝 소리를 내며 한꺼번에 끊어졌다. 타나토스는 사내의 오묘한 표정을 즐기며 한 손을 옆구리에 척 얹었다.
“축하해! 한 일 분은 끌었네?”
그러나 왜인지 사내는 잔잔한 미소로 화답했다.
“뭐….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하, 하하.”
“…뭐라고?”
그때였다.
“신상요오오옹! 내 것 내놔아아!”
갑자기 낭랑한 외침이 전장을 왕왕 울린다.
그 순간 사내, 아니.
“임프리손!”
신상용은 기다렸다는 듯이 왼팔을 쭉 뻗어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힘껏 던졌다.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사슬이 질서의 오르도를 잡아챈 후,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쏜살처럼 날아갔다.
잠시 후.
“좋아! 다 죽었어! 오라! 베히모스! 제 삼 군단의 지배자, 적을 정토하는 최후의 왕이여!”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어두운 운무가 삽시간에 주위에 깔린다.
그리고.
– 요호호호!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누구냐고 묻는다면 내 이름은 베히모스!
연기를 헤치며 발 빠르게 달려오는 죽음의 기사들을 본 타나토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분명히 좀 전 직접 소환사를 죽여 강제로 송환시켰는데, 얼마나 지났다고 나보라는 듯이 등장했다.
간단하다. 해답은 바로 사용자 상점의 활용에 있었다. 이유정은 예전에 미리 허락을 맡고 김수현의 GP를 대리인의 자격으로 사용한 전력이 있다.
그래서 그때와 똑같은 방법을 사용해, 이효을은 사망 소식을 접하자마자 대리 사용 허가를 받은 GP로 소원을 구매해 비비앙을 부활시켰다. 그리고 소생한 비비앙은 곧장 근원이 활성화한 워프 게이트로 달려가 전장으로 복귀, 또 한 번 제 삼 군단을 소환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GP를 내놓은 사용자의 수가 무려 이만 명이 넘는다는 것. 말인즉 GP가 마르기 전까지 북 대륙 연합은 무한한 부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너…?”
– 이것 참.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다시 기어 올라왔네요?
단숨에 인근까지 도착한 베히모스가 장검을 휙휙 흔들며 조롱하듯 말했다. 이로써 상황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찡그린 눈으로 바라보던 타나토스는 금세, 억지로나마 표정을 가라앉혔다. 자존심상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으니까.
– 이야~. 정말 아쉽네요. 안 그래도 막 고자질을 끝내고 반응을 구경하던 중이었거든요.
“반응…?”
– 오! 듣고 싶으십니까?
“…지껄여봐.”
그러자 베히모스는 두 손을 꽉 말아 쥐었다. 그러더니 마치 무언가를 쾅쾅 내리치듯, 양 주먹을 미친 듯이 위아래로 흔들면서 외쳤다.
– 이이이익! 이이이이이이이익!
그러자 억지로 가라앉혔던 타나토스의 얼굴이 다시금 황망해졌다.
– …이러셨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분노하셨다고요. 타나토스 님 이제 정말 큰일 나셨습니다.
“뭐, 뭐?”
– 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이제 말도 곧 잘하시고 뛰어다니기도 잘하시는데요. 이익거리는 건 그냥 버릇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싫은 척하시거나 진짜로 분노하셨을 때만….
“잠깐만. 게헨나가 그랬다고? 진짜로?”
타나토스가 말을 끊자 베히모스는 예? 라고 멍청하게 반문했다. 게헨나가 아니라 수나의 반응을 말해준 것인데,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허나 지옥의 왕, 즉 수나가 탄생한 걸 알 리가 없는 타나토스인 터라, 베히모스가 자기를 놀리고 있다고 여겨도 달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 갑자기 뭔 헛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후우우우…. 아니, 됐어. 도대체 어떻게 도로 튀어나왔는지 모르지만, 또 죽이면 그만이지 뭐. 이번에는 아주 영혼까지 철저하게 소멸시켜줄 테니까.”
– 호오. 아까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요?
“아하하하! 야, 게헨나만 휘하 군단이 있는 건 아니거든?”
까르르 웃어 젖힌 타나토스가 돌연 양팔을 활짝 펼치며 고개 젖혀 긴 포효를 내질렀다.
“────! ────!”
알아듣지 못할 음성이 이어지는 찰나,
두두두두, 두두두두!
주변으로 갑작스레 굉음을 동반한 지진이 일기 시작한다.
능력의 정체는, 다름 아닌 타나토스의 권능 중 하나인 사령(邪靈) 소환. 흡사 마수 군단을 소환할 때처럼 검은 구름 같은 것이 뭉게뭉게 솟아나더니, 북 대륙과 마수 군단을 삽시간에 광범위하게 에워싸버렸다.
그리고 곧, 운무 안 곳곳에서 어두운 불꽃이 홀연히 피어오르며 차곡차곡 형체를 갖춰간다. 아직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니었으나, 사위로 흐르는 흉흉한 기운은 결코 얕볼만한 수준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윽고 타나토스는 북 대륙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소환사가 보이지 않는 이상 제 삼 군단은 사령들에게 맡겨도 충분하다. 그보다 아까 발견한 안솔이라는 인간을 한 시라도 빨리 처리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로 정확한 판단이기는 했지만….
글쎄. 타나토스는 과연 알고 있을까?
아까 신상용을 돌아봤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북 대륙은 이미 모종의 준비를 신속에 가까운 속도로 마쳤다는 사실을.
아마 에르윈, 아니 사탄이 있었다면 중간에 한 번쯤 조용하기 짝이 없는 상대의 동태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단상으로 길을 뚫기는커녕, 사령 소환으로 사방이 포위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다.
하지만 적 전력 전부가 달려들어도 상대할 자신이 있는 타나토스로서는 굳이 의심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중이었다. 즉 절대적인 자신감에서 발로한 일종의 여지라고나 할까.
한편, 북 대륙은 어느새 방진을 구성한 상태였다. 마치 전원 홀드 주문에 걸리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몹시 긴장한 얼굴로 조용히 타나토스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조금도 개의치 않고 걸어가던 타나토스는, 그 중심에 서 있는 안솔을 확인한 타나토스는 흡족하게 웃으며 휙 휘파람을 불었다.
“오? 아직 있었어? 가상하네. 도망이라도 치지 그랬어.”
“…….”
“아무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
생글생글한 얼굴로 느물거리면서 느릿느릿 팔을 뻗어 안솔이 있는 지점을 겨냥한다. 이어서 잠깐 손을 요리조리 돌리는 것이 꼭 장난이라도 치는 듯하다.
그렇게 끝끝내 여유를 부리다가, 마침내 어둠의 기운을 끌어올리는 찰나였다.
툭!
데구루루….
무언가 각진 물체 같은 것이 갑작스레 머리를 툭 때리며 떨어졌다.
“아야?”
막 기운을 방출하려던 타나토스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찰나, 한만 하던 두 눈매가 순간적으로 가늘어졌다. 하늘로부터 네모난 상자처럼 보이는 것 수십 개가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이건 또.”
마침 눈앞을 스치며 낙하하는 상자를 잽싸게 잡아채더니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타나토스 주변에 떨어진 상자 수십 개가 동시에 희멀건 한 빛을 발하는 것과,
“……!”
지팡이를 내민 안솔이 입을 달싹거린 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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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 과금을 하는 이유.txt
과금 전사 안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