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963
00962 If You Change, One. =========================================================================
허공에서 요지부동이던 엑스칼리버가 순간 예전과 같은 순백의 빛을 뿜는다.
“어, 어어…!”
그와 동시에 엘도라의 상반신이 갑자기 엄청난 기세로 기울기 시작했다. 양손에 거머쥔 엑스칼리버가 내 쪽으로 쭉 뻗어 나온다. 척 봐도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만큼 강렬한 흐름이 느껴졌다. 어떻게든 끌어당기려는지 무진 애를 쓰는 듯했지만, 결국 칼의 힘을 이기지 못했는지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아…!”
잠시 후, 엘도라의 얼굴이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심히 일그러졌다. 왜냐면 자기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칼이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한 후 내 손으로 얌전히 안착했으니까.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이상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됐을 터.
『황금의 시대 때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상징하는 절대 선이요, 암흑의 시대 때는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찬란한 빛이었다…. 전설의 성검 엑스칼리버는 사용자 엘도라 코르넬리우스의 타락을 확인, 자신을 사용할 자격을 상실했다고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내키지는 않지만, 사용자 김수현의 힘을 빌려 악에 물든 전 주인을 처단하고자 합니다.』
그런가. 너도 역시 알고 있었던 건가.
웅웅웅웅…!
나는 서글픈 검음을 흘리는 엑스칼리버의 칼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이윽고 묵직하다 느낄 정도의 무게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엑스칼리버가 사용자 김수현을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간단하지만 무거운 메시지가 떠오른다.
『사용자 김수현의 호칭 ‘정상(頂上)’과 ‘검(劍)의 군주’의 연동이 시작됩니다.』
『상세 효능에 걸려 있던 제한 조건이 전부 강제로 개방됩니다. 현재 조건을 불만족한 상태더라도 사용자 김수현이 획득한 자격으로 엑스칼리버 본연의 힘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 김수현의 근력 능력치가 6포인트 상승합니다.』
『사용자 김수현의 체력 능력치가 4포인트 상승합니다.』
『사용자 김수현의 민첩 능력치가 2포인트 상승합니다.』
『사용자 김수현의 고유, 특수, 잠재 능력의 랭크가 2등급씩 상승합니다.』
『이제부터 사용자 김수현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자동으로 강대한 마력을 동반한 일격이 가능해집니다.』
『사용자 김수현의 마력 흐름이 2.5배 상승합니다.』
여섯 개의 메시지가 차례대로 시야를 점령하는 순간.
“…….”
현실은 조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1. 이름(Name) : 김수현(5년 차)
2. 클래스(Class) : 검의 군주(Arousal Secret, Sovereign Of Sword, Master)
3. 소속국가(Nation) : 자유 용병(Free)
4. 소속단체(Clan) : Mercenary(Clan Rank : S Zero)
5. 진명 • 국적 : 1. 정상(頂上) 2. 검의 군주(君主) 3. 마성(魔性) • 대한민국
6. 성별(Sex) : 남성(29)
7. 신장 • 체중 : 181.5cm • 75.5kg
8. 성향 : 중용 • 혼돈(Moderation • Chaos)
1. 화정을 심장에 품었습니다.
2. 고대 무녀의 각인을 심장에 새겼습니다.(마력 회로가 크게 안정되며 효율이 상승합니다.)
3. 체내에 한 치의 노폐물을 찾을 수 없습니다.(마력이 흐르는 속도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엑스칼리버(+2.5배), 치우천왕 갑옷(+2.5배)의 영향으로 최대 7배까지 출력이 가능합니다.)
4. ‘군주여, 호령하여라.’ 의 영향으로 상시 S Zero 급의 ‘카리스마(Charisma)’ 효과가 발생합니다.
1. 제 3의 눈(Rank : EX)
1. 심검(心劍)(Rank : S Zero)
1. 백병지왕(百兵之王)(Rank : S Zero)
2. 쓰러질 수 없는(Rank : EX)
3. 심안(정)(Rank : EX)
4. 검신(劍神)의 가호(Rank : EX)
5. 염화(炎化)(Rank : – )
(잔여 능력 포인트는 0포인트입니다.)
1. 변경 전 : [근력 105(+8)] [내구 95(+2)] [민첩 101] [체력 101(+2)] [마력 96] [행운 90(+2)](Total : 588 Point)
2. 변경 후 : [근력 111(+14)] [내구 95(+2)] [민첩 103(+2)] [체력 105(+6)] [마력 96] [행운 90(+2)](Total : 600 Point)
갑작스럽게 진화한 사용자 정보에 놀라는 것도 잠시.
상승한 정보를 채 받아들이기도 전.
두근!
문득 심장이 뛰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힘차게 고동치기 시작한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상하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까닭 없이 몸이 고양되는 듯하다. 그동안 꽁꽁 억눌려 있던 잠력(潛力)이 조금씩 고개를 느낌. 이대로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켜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뻥하고 터질 것만 같다.
“하아…!”
자연스레 거칠어지는 숨을 추스르며 연신 방망이질하는 가슴에 손을 얹는다. 왜 이러지, 왜 이럴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엘이 그랬다. 내 체력이 일백이 포인트를 넘어가는 순간 화정이 설정을 풀고 본연의 힘을 되찾는다고. 그 힘은 무려 이 홀 플레인이라는 세상을 편집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라고.
생각해보면 화정의 일 차 각성은 체력을 구십 포인트 찍었을 때 이루어졌다. 이 차 각성은 일백 포인트, 삼 차 각성은 일백일 포인트 때 각각 이뤘다. 그리고 현재 내 체력은 무려 일백오 포인트. 나와 화정이 그토록 갈망하던 일백이 포인트보다 무려 삼 포인트나 높다.
화르르르르르르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불현듯 온몸에 어른거리던 불길이 홀연 소리 없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이어서 심력이 정수리로부터 뽑히는 듯한 기분이 순간적으로 엄습해 다리가 풀릴 뻔했다. 마치 영혼이 쑥 빠져나가는 것 같은 자못 생소하기 그지없는 감각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화정을 얻은 이후 항상 묵직하던 심장이 갑작스레 가벼워졌다.
그렇게 마력을 천천히 순환시켜 몸의 균형을 가다듬는 가운데.
“…흥.”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목덜미가 한층 뜨거워졌다.
그와 동시에 엘도라가 땅에 털썩 주저앉는다. 멍하니 날…. 정확히는 내 위를 올려다보는 걸 보니 이상함을 느낀 건 나만이 아닌 듯하다.
아니. 사실상 전장의 대부분이 하나같이 경악한 채로 내가 있는 방향의 허공을 바라보는 중이다.
…이상하다. 다들 왜 이러는 걸까? 내 위에 뭐가 있길래? 그러고 보니 방금 가까이서 새침한 콧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수나가 했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어른스러웠어.
그때였다.
“하찮은 것들 같으니라고…. 그나저나 타나토스는 어디 있지?”
고아하면서도 한껏 무게가 실린 음성이 귓전을 살그머니 울렸다.
그 어조가 화정의 말투임을 깨닫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왜냐면 평소처럼 머릿속을 울리는 게 아니라 확실히 귀로 들렸기 때문이다. 공명(共鳴)음과 입에서 직접 나오는 소리라는 점만 제외하면 화정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실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화정이 육성을 냈다고?
궁금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턱을 젖혀 눈을 들려 했으나,
“앗!”
차마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올려다보기는커녕, 도리어 순간 기함하고 말았다. 갑자기 머리에 황급히 닿는 정체 모를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양 관자놀이를 감싸는 감촉은 흡사 여인의 손처럼 매우 부드럽고 아주 따뜻했다.
“아, 안 돼. 보지 마.”
그때 앞선 목소리와는 달리 한껏 부끄러워하는 음성이 귓가를 스쳤다. 그러면서 내 머리를 강제로 앞만 보게 고정했다. 위를 올려다보는 걸 결단코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화정?”
“으, 응? 화정이라니? 나, 난 화정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뭐라고?”
“보지 말라고 했잖아!”
도로 눈을 올리려는 찰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양 옆머리에 가해지는 힘이 한층 강해졌다. 이제는 왜인지 굉장히 당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래서야 꼼짝도 할 수 없잖아.
“후유…. 누, 누가 그렇게 갑자기 보래?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뭐?”
“또 보고 실망하면 어떡해….”
“아니. 너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시,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부, 부끄러워 죽겠으니까 얼른 네 할 일이나 하라는 말이야!”
“자, 잠깐.”
이건 뭔 말이지? 여기 있는 전원이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난 보면 안 된다고?
그럴 수는 없다. 내 짐작이 맞는다면 한순간 상승한 체력으로 화정이 이 세상에 직접 강림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화정의 고운 자태를 볼 수 있다는 소리다. 무조건 보고야 말겠다.
“크윽…!”
그리하여 억지로라도 보려고 했으나,
“이익…! 보지 마아…!”
그럴수록 화정의 손길이 가하는 압박은 필사적으로(?) 강해졌다. 도저히 내가 이길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에는 힘에 눌려 강제로 머리를 떨구자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엘도라가 자연스레 눈에 밟혔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더니 나와 언뜻 눈을 마주치자 움찔 몸을 떨었다. 시꺼멓게 죽은 두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거미줄처럼 번진다.
기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위를 봐야 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화정이 이처럼 극렬하게 거부하고 있으니.
뭐 좋다. 어쨌든 사용자 정보도 진화했겠다. 일단 들은 대로 할 일을 끝내는 게 낫겠다. 최대한 빠르게 이 전쟁을 끝낸다. 화정의 모습은 그 다음에 보면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엘도라가 벌벌 떨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한다.
“싫어….”
한 걸음 내디디자 팔다리를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며 떨어지려 애를 쓴다. 고개를 흔드는 속도도 덩달아 빨라졌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했잖아!”
또 히스테리를 부리는 건가. 동 대륙 전투 때 워낙 충격을 받아서인지 이제는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다.
생각해보면 나름 불쌍한 구석도 있다. 원래대로라면 남 대륙에서 칼집도 찾고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을 텐데. 한데 아직도 진실을 모르고 있고, 내내 이용당하기만 했으며, 끝내 엑스칼리버한테서 버림받기까지 했다.
“엑스칼리버? 엑스칼리버! 왜 거기 있는 거야? 네 주인은 나잖아! 그런데 왜애애애!”
하지만 일 회차는 일 회차고 이 회차는 이 회차다. 애초 엘도라는 한 번 사망했으며 타나토스의 조각으로 부활한 사용자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그녀에게 남은 미래는 하나밖에 없다.
이윽고 바로 앞까지 다가가자, 공포에 떨리는 눈동자가 순식간에 그렁그렁해졌다.
“시, 싫어! 나, 난! 난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어디까지나…!”
잘못한 게 없다고.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나는 횡설수설하는 엘도라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잘못했다기보다는….”
“저리…!”
“잘못된 거겠지.”
“……!”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엘도라는 돌연히 말을 멈췄다. 이어서 할 말을 잃은 듯 서서히 입을 벌린다.
“김수현.”
그때 화정이 내 귀로 무어라 은밀하게 속삭였고,
“…음.”
나는 끄덕거리며 엑스칼리버를 수직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있는 힘껏 내리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