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990
00989 후일담(홀 플레인) – 1 =========================================================================
달은 하늘에 고요히 떠올라 휘황찬란한 월광을 분무하고, 밤하늘에는 어둑한 구름이 유유히 흐르는 소리 없는 밤이었다.
애틀랜타는 구, 신 북 대륙을 통틀어 가장 활동력이 넘치는 도시지만, 밤이 오자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은 적막함이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밤이 점점 깊어지는 가운데, 잠깐, 바람이 정원을 스치는 소리가 흘렀다.
간이 탁자에 앉은 게헨나는 창 너머의 어둑한 정원을 멍하니, 그리고 하염없이 응시했다.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암암리에 무거운 기류가 흐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 아이가 그립구나.”
문득 게헨나는 하얀 김을 올리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독백처럼 말했지만, 혼잣말은 아니었다.
맞은편 탁자에서 똑같이 찻잔을 들고 있는 화정이 흘끗 쳐다본 게 그 방증이었다.
게헨나가 말을 이었다.
“그림자를 다루는 아이 말이다. 건방진 면은 있지만 차 타는 솜씨 하나는 괜찮지 않았나?”
“썩 나쁘지 않았지…. 그런데.”
화정은 가볍게 수긍하는가 싶더니 품위 있게 찻잔을 기울이며 싱겁게 입술을 터뜨렸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지 그래?”
“응?”
“나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보고 싶구나. 라고.”
“…읔.”
그랬다.
김수현이 지구로 돌아간 지 오늘로 나흘째였다.
물론 범인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두 존재지만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김수현은 잘 지내고 있을까, 몸은 좀 괜찮을까, 치료가 실패해 행여 잘못된 게 아닐까, 그리고 언제쯤 돌아올까 등등.
사랑하는 연인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고 하루 이십사 시간 꼬박 그리는 상황은 게헨나에게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왜. 기다리기 힘들면 또 지옥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속셈이냐?”
“응. 네가 모시는 그분이 꽤 지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흥하며 고개 돌린 게헨나였지만 핀잔 조의 음성에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화정이 말하는 그분이 누군지 익히 짐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틀린 말도 아니었다.
수나는 오늘 하루만 해도 ‘이이이익! 감히 날 버리고 돌아가?’ 라거나 ‘돌아오면 전해! 다시는 내 얼굴 볼 생각 꿈에도 하지 말라고!’ 라는 말을 수십 번도 더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하루의 끝에 꼭 ‘이, 일단 오늘까지는 기다려보고…!’ 라는 말을 덧붙이는 걸로 봐서 수나의 본심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터.
“솔직하지 못한 게 수나의 유일한 단점이지. …뭐, 나도 그렇지만.”
마지못해 인정한 게헨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구를 바라봤다.
“그래. 보고 싶다. 그가 없는 현재가, 이 순간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 글쎄, 지금 당장에라도 저 입구로 들어오지 않을까?”
바닥을 보이는 찻잔을 내려놓고 한 손으로 느릿하게 턱을 괴며 미소 짓는다.
“…흥.”
화정은 재미없다는 듯 고개 돌렸지만, 두 눈은 게헨나가 보는 곳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하기야 화정이라고 어찌 게헨나가 느끼는 심정과 다를 수 있으랴.
김수현과 한 몸으로 살아온 시간만 무려 오 년인데….
그때였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무어라 말하려던 화정이 입을 닫았다.
동시에 공교롭게도 문을 힘껏 차는 소리에 두 여신의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헐레벌떡 달려오는 비비앙이 등장하자 김새는 소리가 흘렀다.
“거, 거기서 뭣들하고 있는 거야!?”
이윽고 탁자 앞까지 도착한 비비앙이 숨도 가다듬지 않고 크게 소리 질렀다.
실로 밑도 끝도 없는 말.
그러나 비비앙은 반문이 나오기도 전 빠르게 창밖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창 너머의 하늘을 가리켰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린 둘의 눈으로 정원을 달리는 신상용의 뒷모습이 잡혔다.
그리고 어둑한 정원 위로, 좀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어둡던 하늘이 어느새 진한 보랏빛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전광은 심지어 번쩍번쩍 빛나며 지상으로 우수수 추락하는 중이었다.
그 순간 게헨나와 화정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불과 나흘 전에 봤었던 광경.
말인즉.
저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
목적지에 선두로 도착한 사용자는 다름 아닌 신상용이었다.
별을 관측하는 도중 하늘의 이상 징후를 발견, 바로 소식을 전파하고 가장 먼저 달렸기 때문이다.
“클랜 로드…!”
짙은 땅거미가 드리운 신전을 앞에 두고 달리기를 멈춘 신상용은 숨을 고르며 머리를 들었다.
오는 동안 그새 상황이 종료된 걸까.
세기말처럼 보랏빛 일색이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빛깔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렇다는 것은 이제 막 전이가 완료됐다는 뜻일 터.
기실 이제 갓 나흘이 지난 만큼 그리움에 사무쳐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상용의 심장은 시시각각 긴장으로 조여지고 있었다.
세게 방망이질하는 가슴에 손을 얹은 사내는 눈을 크게 뜨며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긴 계단 위 스리슬쩍 드리워지는 하나의 그림자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IQ는 딱….”
거기다 흥얼흥얼 하는 콧노래까지.
잠시 후, 손을 요리조리 돌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여인도 멍하니 서 있는 신상용을 본 걸까.
형상은 잠깐 멈춰 사내를 바라보는 듯하더니 곧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은근한 달빛 아래, 늘씬한 다리맵시를 앞세워 걸어 내려온 여인은 이윽고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오? 아는 얼굴인데? 아! 혹시 특징 없는 평범한 남자 C 씨예요?”
“사, 사용자 제갈 해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과 또 특징 없는 평범한 남자 A, B는 누구인지 차치하고서라도, 신상용은 버릇처럼 말을 더듬었다.
그사이 신상용의 바로 앞에 선 제갈 해솔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응~. 뭐, 우리 서로 친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반가워요. 거의 오 년만인가? 그러고 보니 여기 시간은 얼마나 지났어요? 주변이 그대로인 걸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버버버.
재회하자마자 시작되는 속사포 질문에 신상용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지사.
할 말을 잃은 듯 의미 없이 눈알만 굴리는 가운데 문득 갈 곳을 몰라 허둥거리는 시선이 제갈 해솔의 복부에 꽂혔다.
“어머, 싫다. 어디를 보는 거예요? 감히 숙녀의 몸을….”
그 시선을 느꼈는지 제갈 해솔은 배를 감싸며 몸을 틀었다.
아마 평소의 신상용이었다면 바로 사과하며 머리 숙였을 터.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살이 쪘다면 응당 다른 곳도 살이 올라야 정상인데, 유독 배만 둥그스름하게 부풀어 팽창했다.
꼭 임신이라도 한 듯….
“아, 이제 육 개월이에요.”
아니, 진짜로?
“이, 임신하신 겁니까?”
깜짝 놀란 신상용이 화들짝 시선을 들었을 때 제갈 해솔은 돌연 고개를 푹 숙인 상태였다.
이내 분하다는 듯 왼손을 꽉 말아 쥐더니 몹시 애처로운 눈으로 말을 잇는다.
“…그래요.”
“사, 사용자 제갈 해솔?”
“맞아요. 그 남자의 아이예요.”
“예?”
“미안해요. 계속 저항했는데…. 끝까지 거역할 수 없었어요. 흑!”
“예?”
아예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영화 속 비련의 여주인공을 연기하는 제갈 해솔.
“왜, 왜 와주지 않은 거예요! 도대체 왜!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는데!”
“…….”
“…는 구라고요. 그냥 뭐, 한 방 수태(受胎)라고 해야 하나? 그 사람 퇴원 기념으로 여행을 갔었는데…. 설마 한 번에 임신할 줄 누가 알았나요. 젠장, 그때 허락하는 게 아니었어.”
“…….”
분해하는 제갈 해솔의 말은 굉장히 빨랐다.
이 중 신상용이 알아듣고 이해한 말은 퇴원 기념으로 여행을 갔다는 것뿐이었다.
“아무튼, 들은 대로 재미없는 남자네요. 다음부터는 신선한 반응 좀 보여보라고요. 그럼 이름 정도는 기억해줄 테니.”
“저 그럼 클랜 로드는…. 어, 어?”
그러나 간신히 머릿속을 정리했을 때 제갈 해솔은 이미 옆을 지나쳐 휘적휘적 걸어가는 중이었다.
정작 묻고 싶은 것은 묻지도 못하고 눈만 깜빡거리던 신상용은 이어지는 기척에 정신을 차렸다.
“어? 오빠?”
“어어어어! 저거 상용이 오빠잖아? 오빠? 오빠!”
익숙한 두 목소리.
다시 눈을 돌리니 아니나 다를까.
만면에 화색이 가득한 김한별과 이유정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숫제 풀쩍 뛴 이유정은 사뿐 내려앉더니 신상용의 손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꺅! 오랜만! 오빠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오, 오….”
“잘 지냈어? 아, 여기 시간은 별로 안 흘렀으려나?”
“네, 네댓새 정도?”
“헤~. 겨우? 그럼 오빠는 별로 우리 보고 싶지도 않았겠네?”
“언니! 갑자기 뛰어내리면 어떡해요. 애초 임산부라는 자각은 있는 거예요?”
뒤늦게 따라 내려온 김한별이 날카롭게 소리 지르자, 겨우 침착을 찾아가던 신상용의 시선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사내는 또 한 번 기함했다.
왜냐면 김한별과 이유정의 앞 배 역시 제갈 해솔의 복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동글게 부푼 곡선의 형태는 김한별의 말대로 임산부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나 참. 네가 오빠한테 일러바치지만 않으면…. 응?”
투덜거리던 이유정은 눈치 빠른 김한별이 팔꿈치로 쿡 찌르자 말을 멈췄다.
신상용을 흘깃거리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볼을 긁적거렸다.
“아, 아하하하…. 그러고 보니 설명을 안 했네.”
“…….”
신상용은 말이 없다.
“그, 그러니까…. 이, 이제 육 개월이다? 에헴!”
“네. 맞아요. 저도 육 개월 됐죠.”
“들어봐.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오빠 병원 퇴원한 기념으로 다 같이 여행을 갔다가….”
“언니. 그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어요.”
김한별은 황급히 말을 잘랐다.
사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신상용이 두 번째 충격에 빠져 있는 동안, 두 여인은 ‘수현 부인? 그럼 이만 갈까요? 약간 피곤하네요.’ 와 ‘그래요. 임산부는 뭐니뭐니해도 안정이 제일이죠. 수현 부인.’ 이라며 호호 웃더니 신속히 도망쳤다.
그 뒤의 상황도 비슷했다.
한소영은 사방을 돌아보며 계단을 내려오더니 그대로 무시하고 지나쳤다.
남다은은 잠깐 걸음을 멈췄다가, 잔뜩 얼어붙은 신상용을 확인하고 간단히 고개를 숙였다.
우물쭈물하던 차소림은 “여, 여행 갔다가….” 라고 중얼거리더니 살그머니 얼굴을 붉히며 빠르게 뛰었다.
물론 세 여인 또한 임산부의 모습이었고, 신상용은 조용히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나흘.
겨우 나흘이다.
사실 딱히 감동적인 재회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다.
나흘 전 ‘기필코 김수현을 지켜 같이 돌아오겠다.’ 는 결연한 결의와 함께 떠난 여장부들이지 않은가.
그러할진대.
“…혹시 꿈인가.”
고작 나흘 만에(물론 현대에서는 오 년이 지났지만.) 임산부가 돼 줄줄이 소시지처럼 내려오는 상황은 신상용이 바랐던 재회와 상당한, 아니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이제는 김수현의 상태보다 자꾸만 반복해서 들리는 여행이라는 단어가 더 신경 쓰일 정도였으니.
신상용은 볼을 세게 꼬집었다.
“이야, 어째 여기는 변하지도 않는구먼?”
“당연하잖아. 시간 흐름이 다른걸.”
그때였다.
이제까지와 다른 톤이 굵은 음성에 신상용의 눈이 번쩍 떠졌다.
흰색과 보라색 유니폼.
각각 한 손에 든 커다란 여행용 가방.
그리고 얼굴에 선글라스를 쓴 채 실컷 까불거리는 둘을 확인하는 순간 신상용은 까닭 모를 격한 반가움을 느꼈다.
안현과 진수현이었다.
우선 둘의 배(?)를 관찰한 신상용은 있는 힘껏 손을 들었다.
“얘, 얘들아!”
안현과 진수현도 마찬가지였다.
신상용을 보자마자 괴성을 지르더니 우르르 달려와 얼싸안고 해후를 나눴다.
비로소 맞이한 정상적인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며 신상용은 드디어 묻고 싶던 것을 물을 수 있었다.
“크, 클랜 로드는?”
하지만 그 순간 안현과 진수현은 동시에 몸을 멈칫거렸다.
신상용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어, 어디 계셔?”
“아직 소환의 방에 계실 거예요. 꼭 만날 존재가 있다고 하셔서…. 으음.”
신전을 가리키는 안현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했다.
왜인지 진수현도 덩달아 심각한 낯빛이었고.
“왜, 왜 그래? 혹시 무슨 문제가….”
“…걱정돼서요.”
“뭐, 뭐라고? 설마!”
“아니요. 수현이 형이 아니라 상용이 형이 걱정된다고요.”
내가 걱정된다고?
신상용이 머리를 갸웃했다.
진수현은 팔짱을 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에이, 그래도 설마. 상용 형님은 괜찮지 않을까?”
“얕보지 마. 너도나도 익숙해지는 데 이 년이나 걸렸잖아. 그리고 백한결 사건을 몰라서 그래?”
“그렇기는 한데.”
“그렇다고 못 만나게 할 수도 없고…. 쩝.”
뜻 모를 말이 오고 가는 가운데 안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쓰고 있던 시커먼 선글라스를 벗더니 신상용에게 건넸다.
“형. 이거 써요. 어서. 그리고 이제부터 제 말 잘 들으셔야 합니다. 형의 엉덩이를 지키고 싶다면 말이죠.”
“어, 엉덩이? 하하. 이 녀석들. 만나자마자 농담….”
신상용은 농담인 줄 알고 웃어넘기려 했지만 안현과 진수현은 정색했다.
“일단 목소리 듣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얼굴은 최대한 보지 마세요. 무엇보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게 중요해요.”
“맞아. 특히 수현 형님이 웃을 때 조심하세요. 그때는 그냥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시는 게 좋을걸요.”
안현의 반강제로 선글라스를 씌우는 동안 진수현도 한 마디 거들었다.
두 명 모두 매우 진지한 목소리였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두 달 동안 소식 없이 잠수를 탔다가 오늘 돌아온 로유진입니다.
…….
죄송합니다.
정말 많은 독자 분들께서 여러 이유로 걱정해주셨는데,
큰 잘못을 저지른 처지니만큼 유구무언이지만,
우선 간단한 상황 설명이라도 드리는 게 도리인 것 같아 조심스레 후기를 적습니다.
9월 18일 현대편 외전을 끝내고 이상하게 몸이 푹 퍼졌습니다.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새벽에 고열이 올랐었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병원에 갔던 걸로 기억해요.
즉 아팠던 건 사실이나, 감기 몸살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한 사흘? 나흘? 주사 맞고 꼬박꼬박 약도 먹으니 금세 회복했고, 일 주일이 지났을 때는 깨끗이 털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리면, 놀았습니다.
근 3년 가까이 마감에 쫓기며 살다가, 완결을 내고 외전 진행이라는 편한 상황을 맞이하니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몸도 막 나았는데 이번 주말까지만 쉬자,
약속도 있는데 내일부터 쓸까?,
에이 완결도 찍었는데,
딱 오늘까지만 등등.
그렇게 하루하루 미루다 보니 어느새 적잖은 시간이 흐른 상황이었습니다.
아차 하니 두 달이 훌쩍….
아마 그때부터 약간 두려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키보드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근 한 달 동안 노는데 몸이 길들여져 버린 거죠.
나중 가서는 두려움이 죄책감으로 바뀌면서 거의 반쯤 포기한 상태로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모종의 사건이나 사고를 당해서 잠수를 탄 게 아니라, 자기 관리에 실패해 연재를 중지했습니다.
하다못해 공지라도 올렸어야 했는데, 제가 못한 것도 아니고, 안 했습니다.
이 점은 정말로 제가 잘못했고, 죄송하게 생각하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실망시킨 독자 분들과 조아라 분들에게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진심으로 사죄 드립니다.
앞으로 길지는 않겠지만 남은 외전을 연재하면서, 또 이후 차기 작품을 연재하게 되면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로유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