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995
00994 Omnibus – Seraph. =========================================================================
1. Welcome To 시월드.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사용자 김수현이 열여섯 명의 아내를 공평하게 사랑했다는 점은 분명히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만 평화로웠을 뿐, 암중에서 발생하는 ‘과연 누가 정실인가.’ 에 관한 치열한 전쟁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검후, 용병 여왕, 신창이 구성원으로 있는 W.E.F(We Even Fivesome)의 수장, 제갈 해솔의 ‘삼처사첩(三妻四妾)이라는 말도 있듯이, 영웅의 본처는 세 명까지 허용할 수 있다.’ 는 주장은 하나였던 정실의 자리를 세 개로 늘렸다는 점에서 굉장히 건설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본인이 속한 W.E.F와 그림자 여왕이 이끄는 S.F(Someday Fivesome), 그리고 여신 동맹.
이 세 단체가 각각 한 자리씩 나눠 먹는 천하 삼분지계의 묘리까지 엿볼 수 있는 계책이었다.
그러나 거의 성공할 뻔했던 이 계책은 현시점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왜냐면 단독으로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비비앙, 세라프, 안솔, 한소영.
사용자 제갈 해솔은 아마 이 네 여인을 너무 간과했던 건 아닐까.
결국에는 전쟁조차 원점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천사 세라프가 머셔너리 클랜에 참가한 이후 시작된 이 기나긴 전쟁의 승자는 과연 누굴까.
사관은 논한다.
아직 정실 전쟁에 종지부가 찍히지 않은 만큼 함부로 논하기 어려우나, 기실 세 자리 중 하나는 이미 확정됐다고 감히 생각한다….』
– 애틀랜타 머셔너리 캐슬 중앙 도서관 『군신(軍神)의 전설』 中
*
새삼스러운 사실이지만, 김수현을 제외한 머셔너리 클랜의 남성 사용자들은 참 영향력이 약하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라고 해야 하나.
신의 방패 백한결, 천궁 선유운, 키메라 연금술사 신상용, 신성 투사 신재룡, 붉은 송곳니 우정민, 주문 저격수 진수현, 복제술사 하승우, 침묵의 집행자 허준영 등등.
이렇게 면면이 봤을 때 화려함의 극치인 진용임은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단순히 클래스만 따져도 여성 쪽이 몇 수는 위라는 것이다.
이렇게 성별을 나누고 입김이 세다 약하다 따지는 게 사실 웃기기는 하나, 그래도 어쩌랴.
엄연한 사실인걸.
“흐흐흐흥~.”
맑은 아침,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일층 복도를 걷는 사내는 바로 안현이었다.
천성이 밝은 성격이기도 하고, 잠도 푹 잤는지 화색이 만면하다.
거기다 맛있는 아침 식사를 먹으러 가는 길이어서인지 걸음도 경쾌하기 그지없다.
“모두 안녕하신가! 오늘도 힘세고 좋은 아침!”
곧 식당에 도착하더니 힘찬 아침 인사를 건네며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누구냐고 묻는다면 내 이르으으으음…?”
그러나 기운차게 한 걸음 걸치는 찰나, 다리가 자동으로 멈추고 말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웃는 얼굴 그대로.
식당은 아직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스무 명에 가까운 사용자가 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중이었다.
우선 왼쪽 테이블을 점거한 고연주, 김한별, 임한나, 정하연.
반대로 오른쪽 테이블을 점령한 남다은, 이유정, 제갈 해솔, 차소림.
구석 테이블에 옹기종기 몰려(?) 쥐 죽은 듯 침묵하는 사내들.
심지어 건너편 벽에는 김수현이 사용했던 엑스칼리버까지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있는 두 명이 바로 중앙 테이블에 앉은 김유현과 세라프였다.
뭘 하는지 한쪽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쑥덕거리는 근원, 비비앙, 백한결 이 세 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확실히 정상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식당 내 흐르는 무거운 공기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엑스칼리버가 내뿜는 가시 같은 기운이 숨을 옥죄는 듯했으니까.
불현듯 저 중에 스파이가 있다는 기분을 느꼈지만 어쨌든 현재 안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아.’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몹시 차가웠다.
그때였다.
“허허…. 이거 이거, 안현 군 아닙니까? 들어가지 않고 뭐 하고 있습니까?”
언제 왔는지 신재룡이 허허 웃으며 안현의 등을 살짝 치며 옆을 지나쳤다.
공교롭게도 서로 비슷한 시간에 식당에 도착한 것이다.
“허허허허.”
그렇게 안현이 붙잡기도 전 식당으로 성큼 들어간 신재룡은,
“허…? 허허허허허허허허.”
역시 노련했다.
두 걸음을 채 옮기기 전 몸을 빙그르르 돌리더니 그대로 식당 밖으로 U턴하는 데 성공했다.
물 흐르듯 매우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동시에 식당에 갇혀 있던 사내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사용자 신재룡. 오랜만입니다.”
“아! 자네가 그 기공창술사 안현인가?”
우정민, 선유운, 허준영, 하승우 등이 갑자기 친한 척을 하며 빠져나갔다.
한 가락 한다는 시커먼 사내들이 우르르 도망치는 광경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그리하여 제삼자가 전부 빠지고, 식당에는 여덟 여인과 한 사내, 마지막으로 한 천사만이 남게 됐다.
“흠.”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에는 젓가락을 깨작거리던 김유현이 약한 헛기침을 했다.
신호를 확인한 고연주가 슬쩍 곁눈질하니 임한나가 서둘러 통신 구슬을 확인했고, 이내 Ok 사인을 보냈다.
시작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확실해? 그이 뭐 하고 있는데?”
신중한 고연주가 한 번 더 확인하자, 임한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수현이 지금 수나한테 푹 빠져서…. 꺄? 기어코 쪽쪽이를 물렸네? 어머, 귀여워라.”
“한나야?”
“아, 죄송해요. 아무튼,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계속 보고 있어. 만에 하나 이 상황 들켰다가는….”
고연주가 계속 시간을 끌었으나 그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 확인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는 소리다.
김수현은 평소 아내를 끔찍이 위하지만 딱 두 문제만큼은 일절 양보를 하지 않는다.
하나는 자식.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불화 조장이었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세라프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왜 오비이락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차라리 수현한테 직접 불평하면 모를까.
자기 모르게 세라프를 핍박한 사실이 밝혀지면 불호령이 떨어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성격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안현을 단칼에 내쳤던 전력도 있는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많이 변했다고 하나 원래 성격이 어디 간 건 아니었으니까.
세라프도 바보는 아니었다.
왜 자신이 이 자리에 불려 왔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단순히 여인 한 명이 추가(?)되는 거였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터.
중요한 건, 세라프가 천사라는 점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용자 김유현.”
그래서 세라프는 먼저 인사했다.
정중하게 허리까지 숙이면서.
“크흠, 크흐흐흠!”
생각지도 못한 기습을 당한 김유현이 불편한 빛을 드러내며 큰기침을 연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낯빛을 회복하더니 김유현의 한쪽 눈썹이 살그머니 치켜세워졌다.
“뭐…. 반갑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따로 보자고 했는데, 혹시 실례였다면 먼저 사과하겠습니다.”
오는 말이 고왔던 만큼 가는 말 또한 정중했지만, 어조는 결코 곱다고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김유현이 아직 세라프를 보지 않는다는 게 그 방증일 터.
세라프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고 의연히 상대를 마주했다.
“얘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수현이가 어제 신나서 말하더군요.”
시종일관 책을 응시하는 김유현의 두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그 눈빛은 어지간한 천사도 긴장하게 할 만큼 진지하고 날카로웠다.
하기야 애초 방심할 상대가 아니었다.
사용자 김유현이 누군가.
‘말’에 관해서 김수현이 유일하게 한 수 접고 들어가고, 대 천사의 수장인 가브리엘을 농락한 사내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고, 그냥 단도직입으로 말하죠. 저는 여전히 천사가 싫습니다.”
김유현이 곧바로 말을 잇는다.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우리가 사용자인 이상 천사에 관한 앙금은 쉽게 안 풀릴 겁니다. 어쩌면 영원히 갈 수도 있고요.”
이해합니다고 말하려던 세라프는 겨우 말을 삼켰다.
김유현은 거의 김수현만큼이나 진실을 알고 있는 사용자다.
이제껏 실컷 이용당하던 상대가 어설프게 꺼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명약관화였다.
결국에는 침묵을 지켰다.
“음…. 물론 여러 일을 겪은 만큼 모든 천사를 동일 선상에 놓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이 좀 다르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
“좋습니다. 세라프라는 천사가 정말로 수현을 걱정했고 진심으로 위했다고 칩시다. 예, 당신의 계획 덕분에 수현이가 많이 좋아진 것도 맞습니다. 뭐 잘해주신 거예요. 적어도 이것만큼은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니까요.”
“…….”
“외람한 말씀이지만…. 당신이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면 전 세라프라는 천사를 좋게 기억했을 겁니다.”
“…….”
상당히 잔인한 말이었으나 어찌 보면 이게 바로 뇌제의 무서운 점이기도 했다.
오 년 동안 현대를 거치고 왔음에도, 김유현은 여전히 사용자였다.
“불안하죠. 정말로 불안해요. 수현이 곁에 천사가 붙어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합니다.”
“사용자 김유현.”
“그래서 어제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묻고 싶었습니다.”
“?”
탁, 작은 소음과 함께 마침내 책이 접혔다.
잠시 후, 김유현의 두 눈이 비로소 세라프를 직시했다.
“천사 세라프는.”
두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고,
“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죠?”
낮은 음성은 차가운 비수가 돼 날아왔다.
식당의 모든 소음이 차단되고, 좌우로 여덟 쌍의 시선이 뚫을 듯 찔러온다.
그 중심에 있는 천사는 천천히 심호흡했다.
바야흐로, 세라프의 통과의례가 시작됐다.
============================ 작품 후기 ============================
좀 달달하면서 가벼운 분위기로 가고 싶었는데, 왜 자꾸 무겁게 적히는 걸까요…. ^^;
앞으로 외전은 완성하는 대로 바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독자 분들 편안한 밤 보내세요.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