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ine God with EX-rank Talent (Deus ex Machina) RAW novel - Chapter (34)
EX급 재능으로 기계신(Deus ex machina)-34화(34/150)
34화 엑스 마키나 (3)
황금 꼬리 세이렌이 뿌에엥 하고 사라진 후, 현수호는 황당함에 우두커니 있어야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흔들며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이곳은 세이렌들의 영역이다.
한쪽 포위망이 와해하였으니 곧 다른 세이렌들이 몰려올 터.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며 이대로 후퇴할지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 그만두면 안 되겠지?’
[세이렌의 반응 분석 결과, 마스터의 예감이 옳을 확률이 대폭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상황인 건 변하지 않았습니다.]‘위험한 상황을 피하려고만 하면, 헌터 일은 하지 말아야지.’
적어도 세이렌이 전혀 말도 통하지 않은 괴물이 아니란 건 확인했다.
물론 과도하게 흥분한 상태라서 다짜고짜 공격했지만, 그래도 방법은 있겠지.
저들을 다치게 하지 않고 물러서게 한 것으로 뜻은 전해졌을 거다.
‘부디 그러길 빌지.’
현수호는 적의가 없음을 알리려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어디서 그렇게 많이 숨어 있었는지, 바다 곳곳에서 세이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꼬리를 꿈틀거리며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세이렌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삼지창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다행히 바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역시나 모두 여성형이다.
‘남자 세이렌은 없나?’
남성이 없는데 어떻게 종족이 유지되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지금은 저들의 번식을 걱정할 때는 아니지만.
어느새 주변을 포위한 세이렌들.
솔직히 포위망을 뚫고 도망칠 자신은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두 손을 들었다.
그들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움직임이다.
‘날 앞으로 인도하는 건가?’
천천히 움직여 현수호를 세이렌의 섬 쪽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최소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 전달된 것 같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포위망이 구축된 순간 일제히 공격했겠지.
[아니면 식당으로 끌고 가 잡아먹으려 하던지요.]‘무서운 소리하지 마.’
평소였으면 농담으로 치부하겠지만, 실제 목숨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그럴 수 없었다.
다행인 건, 아까처럼 당장 공격하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황금 꼬리는 안 보인다는 점 정도일까?
……라고 생각한 순간 번뜩이는 황금 꼬리가 보였다.
아까 맞은 게 분했는지, 두 볼 가득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입술까지 뾰족 튀어나왔다.
주변엔 다른 세이렌들이 그런 그녀를 달래느라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느껴졌다.
마치 철없는 공녀를 다독이는 메이드 같은 모습.
현수호를 쳐다보던 황금 꼬리는 점점 얼굴이 찡그러졌다.
그 모습이 위협적으로 보이기보다는, 놀아 주지 않아 삼촌에게 삐진 조카 같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황금 꼬리는 삼지창을 앞으로 쭉 내밀며 소리쳤다.
“너!”
다시 공격 명령을 내리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다행히 황금 꼬리는 내민 손을 부들부들 떨기만 하고 한참을 노려보기만 했다.
옆에 있던 다른 세이렌이 슬쩍 눈치를 줬을 때야, 황금 꼬리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날 따라와! 언니에게 데려다주겠다.”
선심 썼다는 듯한 어투였지만, 현수호 입장에서 아리송할 뿐이었다.
다짜고짜 따라오라니.
[어찌하시겠습니까?]‘별수 있나? 따라가야지.’
이미 황금 꼬리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뒤돌아 헤엄치기 시작했다.
현수호는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다른 세이렌들은 허튼수작 부리면 바로 공격하겠다는 태세였지만, 앞길을 방해하진 않았다.
‘저 황금 꼬리가 인어 공주인 건가? 아니면 꼬리색으로 차별받는 더러운 세상, 뭐 이런 건가?’
여러 가지 상상력을 발휘하며 앞으로 갈 때, 황금 꼬리가 향한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세이렌들이 거주한다는 거대한 섬.
섬 깊은 곳엔 거대한 수중 동굴이 있었는데, 황금 꼬리는 그 안으로 쏙 들어간 거다.
‘이런 곳에 세이렌들의 보금자리가 있었나?’
[위성 카메라로 확인했을 때도, 섬 위에 있는 세이렌들의 숫자는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저들의 주거지인 모양이군요.]현수호 입장에선 곤란한 일이다.
만약에 일이 틀어져서 도망을 치려면 탁 트인 곳이 훨씬 더 유리하다.
통로가 한 곳밖에 없는 단단한 동굴을 파고 도주하려면 한 세월 걸릴 게 뻔하니.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한 번 크게 심호흡한 후, 황금 꼬리가 들어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어?”
동굴 안으로 들어온 현수호는 무심코 손발을 휘저었는데, 아까만 해도 느껴졌던 물의 저항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이 동굴 안은 바닷물이 하나도 없으니까.
뒤를 돌아보니 동굴 입구엔 얇은 막 같은 게 생겨서, 바닷물이 동굴 안에 침범하는 걸 막고 있었다.
어리둥절하게 서 있자, 바닷속보다 훨씬 더 뚜렷한 황금 꼬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야?! 빨리 따라와!”
그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다시 깜짝 놀랐다.
바다와 어울리는 산호빛 머리카락, 올망졸망한 이목구비. 거대한 조개로도 다 가려지지 않은 풍만한 가슴. 그리고 늘씬한 팔과 다리도…….
“잠깐! 다리?”
놀랍게도 찬란하게 빛나던 황금 꼬리가 사라지고, 대신 인간의 것과 똑같은 다리가 나타나 있었다.
해초 같은 것으로 둘둘 감아 만든,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 늘씬한 허벅지가 훤히 보였다.
현수호가 놀라자,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다리를 만드는 것 정도는 간단한 일이지.”
하긴 세이렌은 웬만한 헌터들도 능가하는 마법도 구사한다고 들었다.
다리를 만드는 신체 변형 정도는 쉽게 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뒤돌아 가던 황금 꼬리가 갑자기 휘청하며 넘어질 뻔했다.
“아고!”
아직 다리로 걷는 게 익숙하지 않은 모양.
겨우 넘어지지 않았지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다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리고 군고구마처럼 얼굴이 화악 하며 붉게 달아올랐다.
“시, 시끄러워! 그냥 실수한 거야!”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시끄러! 닥쳐!”
아직 인간의 언어는 서툰 모양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욕부터 빨리 배운 느낌이랄까?
‘누가 가르쳤는지 몰라도 애한테 이상한 것만 가르쳤네.’
황금 꼬리의 코미디 아닌 코미디에 긴장이 살짝 풀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마른침은 연신 삼키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을 붙일 수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언니에게 간다고 했잖아!”
“언니? 언니라면 골든 테일을 말하는 건가?”
세이렌들의 여왕, 골든 테일.
무려 8레벨의 해양 몬스터라서, 국가에서도 포기한 재앙급 몬스터.
소문만 들었을 땐, 팔다리가 여섯 개씩 달리고 머리에 무시무시한 뿔이 있을 것만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의외로 마주한 세이렌들은 뭐랄까…… 피난 구역에 몰린 난민 같다고나 할까?
성난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고 있었지만, 공격이 아닌 방어용이었다.
“골든 테일? 우리 언니는 에어린이야.”
“에어린?”
그야말로 인어 공주 동화 속에 나오는 듯한 이름이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하나.
분명 세이렌의 언어는 우리와 다르지 않던가?
골든 테일이야 인간이 붙인 별명이라 쳐도, 어떻게 이름이 이다지도 친숙한 건가?
이유를 묻자,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해하며 말했다.
“모, 몰라도 돼!”
이거…… 뭔가 찌르면 나올 수 있겠는데?
여기까지 생각한 현수호는 일부러 발걸음은 천천히 하며 계속 물었다.
“그러면 네 이름은 뭐지?”
“나? 그건 왜 묻지?”
다시 경각심을 키우는 그녀.
이젠 귀엽게만 느껴졌다.
“그냥. 왠지 예쁜 이름이 있을 거 같아서.”
현수호의 입에서 나온 건 저급 플러팅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반응이 있었다.
황금 꼬리는 갑자기 얼굴을 씰룩이며, 그러니까 기분 좋은 표정을 억지로 숨기며 말했다.
“다, 당연하지! 내게도 아주 멋진 이름이 있어! 난 코럴이야.”
코럴(Coral).
그러니까 산호라는 뜻.
자연스럽게 물에 젖었음에도 몸에 달라붙지 않고 여전히 탱글거리는 그녀의 산호빛 머리카락으로 시선이 갔다.
이걸로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이름을 붙인 이는 분명 인간이었다.
빛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고 이름 지은 거겠지.
“그런데 저건 뭐지?”
동굴 구석구석엔 빛나는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철판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세이렌의 비늘이었다.
그걸 본 코럴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 변신 마법이 서툰 아이들이 있거든. 그들이 흘린 거야.”
무슨 털갈이 하는 것도 아니고, 세이렌이 비늘을 흘린 모양.
현수호는 진심으로 아깝다는 어투로 말했다.
“저 비싼 게 무슨 폐지처럼 돌아다니네.”
몬스터 소재는 비싸다.
대부분은 헌터들의 장비로 쓰이지만, 간혹 장식용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호랑이 몬스터의 가죽 같은 게 대표적인 경우.
세이렌의 비늘도 소재로도 쓰일 수 있겠지만, 장식품으로 팔아도 값이 꽤 나갈 것으로 보였다.
그런 물건이 이렇게 길바닥의 돌덩이처럼 떨어져 있는 거다.
바다 깊은 곳에 떨어진 비늘들이 더 있겠지.
그녀에게 듣고 싶은 건 아직 많았고, 시간만 있으면 많은 걸 캐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수중 동굴은 그리 깊지 않았다.
동굴 끝에 다다르자, 그곳엔 코럴과 비슷한 모습의 세이렌.
타오를 듯이 휘날리는 붉은 머리카락에, 맑고 투명한 눈동자, 뚜렷하면서도 조화로운 이목구비, 마지막으로 찬란히 빛나는 황금 꼬리까지.
머리 색만 빼면, 코럴의 성숙한 버전처럼 보였다.
그것보다 더 다른 차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위압감이었다.
찌릿! 찌릿!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 몸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사걸의 지배 스킬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던 나다.
그런데 마침내 마주한 골드 테일 앞에 서니, 세포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권철중 지부장의 말이 옳았다.
골든 테일은 본 드래곤 따위와는 견줄 수 없는 강자다.
같은 8레벨이라고 해도 이렇게 차이가 컸다.
보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려면, 같은 레벨의 헌터가 최소 5~6명 필요하다.
그것도 잘 조합된 파티로.
그러니 전투력만 따지면 9레벨 헌터 이상일 테지.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은 현수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수호라고 합니다.”
라이트 브링거와 같은 이명 따위는 여기서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
모습은 이래도 상대는 강력한 몬스터, 그것도 네임드 몬스터다.
본명까지 밝힌 건, 최대한 진솔하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호수처럼 빠질 듯한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느낀 건 의외의 감정이었다.
‘안타까움?’
꼭 독심술이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어떤 초능력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수심이 그득해 보이는 애처로운 눈빛은, 그녀가 골든 테일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감싸주고 싶은 충동마저 일어날 정도였으니까.
골든 테일, 아니 에어린.
칭호야 어쨌든 간에, 그녀는 천천히 입을 뗐다.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나 능숙한 한국어다.
발음과 어투도 코럴보다 훨씬 더 정확했다.
“하지만 이제 저희는 인간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돌아가 주세요.”
여기까지 데려와 놓고는 축객령이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코럴의 안타까운 눈빛을 읽었다.
언니인 에어린을 걱정하면서도, 도와달라는 듯한 눈빛.
그녀들에게 무슨 깊은 사연이 있음을 직감했다.
“저는 여러분들을 도와주러 왔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세한 내막을 알아야만 합니다.”
일단 다짜고짜 죽이려 들지 않을 거란 건 알았다.
그러니 조금 강경하고 뻔뻔하게 나갈 생각이었다.
에어린은 그 말에 화를 내지 않고, 상념에 빠진 듯이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코럴이 대신 말해 주었다.
“다 그 남자 때문이야! 그자가 약속을 어기고 우릴 배신했다고!”
“그 남자? 그게 누군데?”
“난파선에서 죽어가는 걸 언니가 살려 줬단 말이야. 그런데 은혜도 모르고…….”
그녀의 말은 이랬다.
원산항에 거의 다 와서 좌초된 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가 있었다.
배의 잔해를 잡고 간신히 살았어도, 체온이 낮아져서 곧 죽었을 상황.
다행히 지나가던 에어린이 그를 구출해서 치료까지 해 줬단다.
“한국어를 가르친 게 그 남자였나?”
코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가 뭘 배신했다는 거지?”
“그자가 우리와 사람들이 사이좋게 지내게 만들어 준다고 했었어.”
“사이 좋게?”
에어린에게 치료받은 남자는, 소문과는 다르게 골든 테일이 착하고 지적인 생명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사실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서로 사이좋게 지낼 방도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단다.
당연히 그냥 말만으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거다. 그저 술 취하거나 정신 나간 사람의 말로 취급하겠지.
골든 테일의 악명은 원산시에선 악귀 이상이었으니까.
그래서 증표가 필요했다.
“증표로 뭘 줬지?”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에어린이 천천히 입을 뗐다.
“제 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