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ine God with EX-rank Talent (Deus ex Machina) RAW novel - Chapter (82)
EX급 재능으로 기계신(Deus ex machina)-82화(82/150)
82화 죄인들 (3)
박사의 말에 홀로그램 속 사람들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누군가 나서서 물었다.
-그건 무슨 뜻이지? 대계가 어긋나다니?
“말 그대로다. 일을 진행할수록 조금씩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설마…… 그 일본 신녀의 예언을 말하는 건가? 한국의 EX급 헌터가 문제가 될 거라고 했다고?
그러자 누군가가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
-그래봤자 하급 신녀의 말이다. 귀담아들을 필요 없다고.
다른 누군가는 반론했다.
-그 하급 신녀는 세계의 몇 없는 미래 예지자다. 그런 말을 무시하겠다고?
-어이어이~ 진심이야? 고작 실버 나이트 정도의 애송이가 그분에게 해가 될 거란 소리를 믿어? 애초에 우리와 손을 잡았지만, 딴 꿍꿍이가 있는 일본이야. 너무 믿어선 곤란해.
그는 정확히 박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 탑 랭커인 슈텐도지가 없는 건, 박사도 내 생각과 일치한다는 뜻이겠지. 안 그래?
“…….”
박사는 답하지 않았지만, 그게 긍정이라는 건 다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거 봐! 그러니 문제가 생겨도, 기사단의 계획이 아닌 일본의 계획에 생기겠지. 그러니 실버 나이트 같은 건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그러자 누군가가 그의 말에 딴지를 걸었다.
-나중을 위해 아꼈던 다크 피닉스 계획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어.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거 왜 이래~ 그건 굴라 같은 머저리에게 일을 맡겨서잖아. 불사신이랍시고 개념 없이 행동하는 멍청이.
-그야, 피닉스를 타락시키기 위해선 압호스의 힘이 필요하니까.
말이 길어지자 다시 박사가 개입했다.
“적어도 그것으로 락슈미의 가호가 실버 나이트를 보호하고 있단 건 확실해졌다. 그렇진 않고서야 아무리 굴라라고 해서 계획이 틀어질 리가 없겠지. 그러니 락슈미가 죽을 때까지는 더 이상 실버 나이트를 건들지 않기로 합의한 거고.”
그 말에 시장통처럼 시끄럽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락슈미의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서도 껄끄러웠기 때문.
누군가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
-고작 그런 할망구 하나 때문에 기사단 전체가 움직이지 못하는 꼴이란. 웃기는군.
-고작 그런 할망구가 아니다. 상대는 락슈미라고.
-네네~ 그러시겠지.
아직 레우스 기사단이, 일본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건 단순히 ‘행동강령’ 권능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각 세력들을 억제하고 있었던 것.
여기에 모인 이들 개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나라 하나를 멸망시킬 정도로 강력한 실력자들이다.
그런 이들이 고작 한 명의 존재 때문에 꼼짝도 못 한다는 게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제길!
사람들이 조금 진정하자, 다시 박사가 입을 열었다.
“오늘 회의를 연 건, 한국의 일 때문이 아니다. 최근 들어 비정상적으로 기사단의 일이 틀어지는 횟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계획이 틀어진다고? 어디에서?
“말 그대로 여러 곳에서. 최근엔 남미에서의 사업도 변수가 생겼다. 그건 실버 나이트와 비교될 수 없는 문제지.”
-남미라면…… 마약왕과 관련된 건가?
“그렇다.”
-아직 탑 랭커는 안 건드리기로 한 거 아닌가?
마약왕, 엘 차포(El Chapo).
랭킹 5위의 탑 랭커.
그의 이름이 나오자, 레우스 기사단의 간부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마약왕은 배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냄새를 맡은 듯하다.”
-쳇! 약쟁이 놈 주제에 아직 그럴 여력이 남아 있는 건가?
“지금 상태가 어떻다고 해도, 10레벨은 10레벨이다. 남미에서 일을 벌인 이들은 그걸 망각한 모양이지.”
그러자 영상 속의 사람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한 인물을 쳐다봤다.
-남미라면 분명 네가 맡은 구역이 아닌가?
-……그, 그렇다.
입맛이 쓰다는 듯이 인상 쓰는 한 남자.
그는 변명하듯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분명 마약왕이 냄새를 맡았지만, 문제없이 처리할 거야. 이 정도 변수는 처리할 수 있어.
-흥! 잘도 그러시겠지.
-그러길 빌지. 그 정도 사업을 막아 먹으면 내 검이 용서치 않을 테니까.
그 후로도 박사는 주도하여 최근 기사단의 문제를 말했다.
지금은 대부분 작은 변수에 불과하지만, 어느 한쪽이 와르르 무너지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단 걸 강조했다.
“더 질문 없으면 오늘은 여기서 회의를 끝내지.”
박사의 말에, 하나둘씩 홀로그램을 끄기 시작했다.
팟! 팟!
그렇게 대부분 꺼지고 남은 화면은 하나.
희미하게 흔들리는 홀로그램에서도 기이한 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기 충분했다.
“……무슨 하고 싶은 말이 남은 건가, 삐에로(Pierrot)?”
-우후후후!
의미심장하게 웃는 삐에로에게, 박사는 조금은 피곤하다는 듯이 안경을 잠시 벗어 얼굴을 쓰다듬었다.
꺼끌꺼끌한 손이 지나가자, 박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시 안경을 멀끔히 착용한 박사가 입을 열었다.
“네가 한 일은 알고 있다. 지시를 어겼음에도 그다지 큰일은 아니라 생각해서 그냥 넘어간 거다.”
-우후후! 과연. 우리 박사님은 마음도 넓군요.
“하지만!”
박사는 전에 없이 큰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했다.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기묘한 사건 사고에, 조금이라도 네가 개입했다면 문제가 되겠지. 그건 그분에 대한 불충을 뜻할 테니까.”
불충.
데스 스타를 섬기는 레우스 기사단에서 가장 심각한 죄명이었다.
그것을 어긴 자의 최후는 박사조차 입에 담기 거북할 정도로 끔찍했다.
하지만 여전히 삐에로는 웃음기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
-제 믿음은 언제나 확고하답니다. 그러니까 절.대.자.님을 향한 마음이요.
그 말에 가시가 있단 걸 알았지만, 박사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 말 틀리지 않길 빌지.”
-우후후후!
팟!
삐에로의 영상이 꺼지자, 어둠과 적막함이 다시 박사를 삼켰다.
* * *
나추삼이 다시 깨어난 건 그로부터 3일 후였다.
만 하루에 가까운 시간을 주화입마에 걸리고 무리하기 힘을 끌어올렸다.
만약 힐링 팩터의 도움이 없었으면 다시는 영영 못 일어났을 터.
다시 눈을 뜬 나추삼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걱정스러운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딸이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흐음!”
아직 몸은 깨질 듯이 아프고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이었지만, 정신은 개운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선명했다.
아주 오랜만에 딸의 얼굴을 보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를 이토록 자세히 본 게 얼마 만이던가?
누구를 만나도, 어디를 봐도, 설령 눈을 감아도 항상 보이는 건 타화자재천의 모습밖에 없었으니.
“길었군.”
“……네?”
“역부족이었는가?”
아무리 늙고 쇠약해졌다고 해도, 추혼창 정도 되는 실력자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화입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심마가 든 것이다.
그 심마의 정체는 다름 아닌 희망.
신공을 수련하면서 이제는 정말 10레벨에 오르고 타화자재천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것이다.
그게 문제였다.
“A급의 한계였던 것을…….”
타화자재천은 EX급의 헌터.
그 빛나는 재능을 갈고닦아서 이미 10년도 더 전에 10레벨에 올랐다.
15년 전 싸움에선 단 한 끗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패배한 나추삼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승리했던 타화자재천 역시 온전하지는 못했다.
타화자재천 역시 사람들에게 기대여 겨우 병원에 실려 갔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날 싸움에서 뭔가를 깨달은 것인지, 타화자재천은 돈오돈수 하여 10레벨로 각성하고 말았다.
그때 벌어진 차이는 계속 벌어질 뿐, 좁혀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재능이라…….”
단 하루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레벨 9의 초인조차도 버거운 강행군,
오르고 오르다 보며 끝내 닿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애초에 A급인 자신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추삼은 아주 오랜만에 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미안하구나.”
“아, 아니에요, 아버지. 뭐가 미안해요.”
“너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직업 등급.
헌터의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계급 체계라고 할 수 있었다.
쓸모없는 직업이거나, 낮은 등급을 지닌 이들은 처음부터 걸러졌다.
처음 딸아이가 B등급 판정을 받고 우울해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래서 보여 주고 싶었다.
증명하고 싶었다.
재능의 한계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아비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집착이 되어, 결국 자신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15년의 세월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계의 신공인 수호검법으로도 결국 10레벨의 문은 열리지 않았으니.
“미몽이었다.”
마침내 나추삼은 몸과 마음 모두에서 검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15년 만에 집착을 벗어던진 것.
마음이 편안해지자 활력이 솟았지만, 역시 10레벨에 오르는 것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현수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음…… 죄송한데, 조금만 더 노력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애써 편안해지던 나추삼의 이마가 다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은휘광조차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봤고, 아버지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던 나연실은 놀라 소리쳤다,
“제, 제자님? 그게 무슨…….”
“죄송해요. 하지만 어르신께서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나추삼은 여전히 기력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실패했네.”
“지금까지는 그렇죠. 하지만 그게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거란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별나다, 이상하다, 괴상하다, 독특하다는 말을 늘 듣고 자란 나추삼이다.
그런 그에게도 이처럼 무례한 말을 하는 이는 생전 처음이었다.
이제 겨우 집착에서 벗어나 편안해지려는 순간이 아니었는가?
하지만 마주친 현수호의 눈을 통해서, 그가 잔혹하거나 무지하거나, 소시오패스적인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게 궁금증을 불렀다.
“이유가 있는가?”
“사실 저도…… 어르신과 같거든요.”
“같아?”
백 마디 말보다는 직접 보여 주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
“노바.”
[바로 실행하겠습니다.]노바의 말이 끝나자, 현수호의 몸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이내 주변 공간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정말 물질이 변화한 게 아니라, 홀로그램으로 주변에 영상을 덧씌운 것.
순식간에 일행을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알 수 없는 행성들과 태양보다 몇 배는 더 밝게 빛나는 별들이 주변을 떠다녔다.
화면은 빠르게 이동하여, 유난히 밝고 푸르게 빛나는 행성으로 다가갔다.
마치 우주선을 타고 이동하는 듯한 광경.
대기권을 뚫고 내려간 행성은, 놀랍게도 지구와 비슷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발전된 문명을 지닌 곳이었다.
지나다니는 자들은 인간과 비슷한 외형이었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이오스 행성이라 합니다. 이자들은 이오스인이고요.”
영상인 걸 아는 일행들도 놀랄 정도로 현실적인 모습이다.
4D 체험관처럼 영상은 물론이고, 소리와 냄새까지 났다.
이제까지 기운 없이 누워만 있던 나추삼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놀라운 일.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지금부터였다.
“어르신께 제 목표를 보여 드리죠.”
말이 끝난 순간 변고가 생겼다.
평화로워 보이던 이오스 행성의 하늘 위로 거대한 무언가가 등장한 것.
“저건…….”
처음엔 밤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하늘을 덮을 정도로 거대한 어두운 별이 가까이 다가온 것.
행성과 충돌할 것처럼 빠르게 다가오던 그것은, 어느 순간 정지한 듯이 멈췄다.
[까아아아악!!]이오스인들의 비명은 지구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항거할 수 없는 공포에 이오스인들은 패닉에 빠져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포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어두운 별에 강력한 인력이 발생하더니, 이오스 행성의 모든 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
위이이이잉!!!
별을 잡아먹는 블랙홀의 모습이 이러할까?
이오스인들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순식간에 암흑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먼지처럼, 모든 것이 잘게 분해되어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이오스 행성의 동물과 식물, 산과 들, 강과 바다…… 종국에는 행성의 핵까지.
모든 게 사라졌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지구 문명보다 몇 단계는 더 발전했던 이오스 행성의 최후는 이처럼 허무했다.
[……이것이 이오스 행성에 남은 마지막 기록입니다.]담담히 말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노바의 음성은 물기가 묻은 거 같았다.
“…….”
“…….”
충격적인 장면에 모두가 말을 잃었을 땐, 현수호가 담담히 말했다.
“데스 스타라고 하죠.”
그 말에 먼저 반응한 건 의외로 은휘광이었다.
“데, 데스 스타라고? 이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나연실의 표정도 은휘광과 다르지 않았다.
단지 문서로만 접했던 데스 스타의 모습.
그 실상은 무얼 상상하던 그 이상이었으니.
나추삼도 얼이 나간 듯이 물었다.
“이게 무언가?”
“역시 어르신은 전달받지 못한 모양이군요.”
나연실도 알았던 사실인데, 아직 나추삼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상태를 걱정하여 말하지 않은 모양이겠지.
현수호는 일단 데스 스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나추삼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10년 후라고?”
“이제 9년하고 조금 남았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지구 멸망이라는 단어가 나추삼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영상 속 힘의 반의반만이라도 지구는 손쉽게 바스러질 테니까.
“락슈미 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자신이 천 명이 있어도 이길 수 없다고.”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고 있었지만, 나추삼 예상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현수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쉽게도 많은 이들이 데스 스타와 싸우는 걸 포기했습니다. 게다가 놈에게 빌붙어 살아남으려는 자들도 있고요.”
“……저것과 싸운다고? 락슈미 천 명의 힘을?”
“그래서 말했잖아요. 저도 어르신과 같다고요.”
나추삼이 타화자재천을 뛰어넘는 것과 현수호가 데스 스타를 뛰어넘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어려울까.
모두가 후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나추삼은 살짝 얼이 나간 듯이 말했다.
“어리석은 일이야.”
“알고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네.”
“그건 해봐야 아는 거고요.”
무슨 말로도 현수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단 걸 깨달은 나추삼은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내게 바라는 게 뭔가?”
설령 나추삼이 10레벨이 된다고 해도, 데스 스타와의 싸움에선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이 대화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의외로 현수호의 뜻은 단순했다.
“그냥요. 왠지 어르신께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저도 힘이 날 거 같거든요.”
행성의 멸망까지 보여줬으면서, 정작 이유는 어린아이의 투정 같은 말이었다.
은휘광과 나연실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현수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추삼만은 그런 현수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건가?”
모두가 바보짓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일이다.
가장 힘든 건 역시 자신과의 싸움이었지만, 그다음으로 힘든 게 남들의 무시와 비난이었다.
망망대해를 홀로 나아가는 고독한 항해.
만약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을 이해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그런 거군. 자네는 선생이 필요한 거군.”
스승과는 다르다.
모범이 되며 존경하고 따를 만한 사람.
“부끄러운 일이군.”
세계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현수호에 비하면, 자신의 목표는 얼마나 하찮은가?
범우주적인 계획에 피하면, 자신의 일은 포기하고 말 것도 없이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그러자 아집을 놓았을 때보다 더 선명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그것으로 충분한 건가?”
“충분합니다.”
“그럼 그러도록 하지.”
너무나 간단한 말에, 나연실은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나추삼이 예전처럼 소리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연실!”
“네, 넷?!”
“따라와라. 오랜만에 실력을 보겠다.”
그렇게 말한 나추삼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본 나연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15년 전 나추삼이 자신을 교육할 때의 모습.
그제야 나연실은 아버지가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추혼창이 마침내 깨어난 순간이었다.
* * *
마루문은 그 어느 때보다 활개가 넘쳤다.
다시 돌아온 나추삼은 본인의 수양만이 아닌, 문도들의 지도에도 다시 참여했기 때문이다.
비록 15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9레벨의 헌터다.
그 소식은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 퍼져나갔다.
한국의 하이 랭커, 정확히는 하이 랭커급 강자가 4명으로 늘어난 순간이기도 했다.
그걸 주도한 현수호는 다시 원산으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나추삼에게 지도받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았지만, 원산에서 일이 터졌다.
“일이 터졌다고요?”
현수호의 말에 여전히 반쯤 벌거벗고 있는 남자, 원산시 지부장인 권철중이 심각하게 말했다.
“자네 덕분에 항구가 활발해진 건 좋은 일이네. 하지만 반작용도 생겼어.”
도시를 위협하던 세이렌들이, 함께 어울려 놀기도 머메이드가 되었다.
어찌 보면 눈 가리고 아웅이었지만, 그 효과는 엄청났다.
실제로 머메이드들이 항구 주변의 몬스터들을 쫓아내기도 했고.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거죠?”
“무역이 많아지는 만큼 밀무역도 늘었어.”
“무슨 밀매요? 설마…… 사람입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권철중은 책상 서랍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 현수호에게 보여 주었다.
그건 비닐에 싸인 작은 알약이었다.
“마약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