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ine God with EX-rank Talent (Deus ex Machina) RAW novel - Chapter (92)
EX급 재능으로 기계신(Deus ex machina)-92화(92/150)
92화 헤일로 (10)
랭킹 5위의 탑 랭커.
EX급 연금술사.
마약왕, 알 차포.
남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단순히 영향력 정도가 아니라, 남미에선 그의 말이 곧 법이며 신앙이었다.
비결은 역시 마약이었다.
남미 지역에서 재배되고 유통되는 모든 마약은 마약왕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남미 지역의 모든 돈은 마약왕에게 흘러 들어갔다가 나온다고 해도 무방하다.
원한다면 모든 부귀와 영광, 여자까지 독점할 수 있었지만, 의외로 마약왕은 무엇 하나 탐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었다.
꺼림직한 별호와는 달리, 남미 사람들에게 존경까지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왕’이라는 이명이 붙은 것.
하지만 그의 본질은 헌터다.
그것도 10레벨의 탑 랭커.
‘한때는 정말 무시무시했다지.’
마약의 소유권을 두고 하루가 멀다며 전투가 벌어졌던 남미 지역이었다.
힘없는 사람들은 갱들의 싸움에 휩쓸려 갈려져 나갔다. 그걸 막아야 할 공무원들은 부패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사람 목숨보다 코카인 한 줌이 훨씬 더 중요한 세상.
그 지옥도를 마침내 종식한 이가 바로 마약왕이었다.
당시 마약왕에게 죽은 갱과 헌터들만 수백만 명에 이를 거라고 추산되고 있었다.
‘그 마약왕이…… 여기 나타났단 말이지.’
그러자 핑크 거인은 배를 잡고 낄낄 웃으면서 답했다.
“눈썰미가 아주 좋아, 소년. 이런 우아한 춤 동작은 오직 나만이 출 수 있지.”
그런 말과 동시에 엉덩이를 덩실덩실거리며 기묘한 춤을 추는 핑크 거인, 아니 마약왕이다.
“춤 때문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거대한 젤리 덩어리가 출렁거리는 모습에, 현수호는 현기증이 나 쓰러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차마 그만두라고 소리칠 수 없었다.
자고로 미친놈은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었다.
현수호는 최대한 차분히 물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겁니까?”
당천기의 말대로라면 헤일로의 원재료인 핑크 가루는, 어떤 식물이나 동물에서 추출한 게 아니었다.
마약 자체가 마약왕의 권능.
당천기는 그 재료를 활용하는 게 마약왕에게 전혀 걸리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수호는 당시 당천기의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는 걸 보았다.
그 역시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무리하게 일을 벌인 거다.
도박에 성공만 하면 모든 걸 얻을 수 있으니까.
모든 도박꾼의 말로처럼 그 역시 패가망신한 것이고.
지금 당천기에게는 의미 없는 질문이었지만, 현수호는 알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러자 마약왕은 장난스럽게 팔을 벌리며 답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전부지. 으헤헤헤! 이 재미있는 장면을 놓칠 수 없잖아?”
“그러면 당가가 당신의 원재료를 빼돌리고 있었다는 건요?”
“물론! 당연히 알고 있었지.”
“알면서도 그냥 두었다는 말입니까?”
그 말에 마약왕은 당연한 걸 굳이 왜 물어보냐는 듯이 두 팔을 쩍 벌리며 답했다.
“그래야 더 재미있을 테니까.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특히 저쪽에 있는 소녀의 연기는 압권이더군. 나조차도 깜빡 속았어.”
마약왕이 손으로 가리키자, 지켜보고 있던 타티아가 움찔 놀라는 게 보였다.
혹시 그녀에게 뭔가 저지를까 걱정되었는지, 바예쯔와 알렉산더가 급히 앞으로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약왕은 핑크 거인의 상체를 쭈욱 늘려 타티아의 바로 앞까지 자기 얼굴을 가져다 댔다.
“내 약을 이처럼 완벽하게 가공하는 연금술사는 소녀가 처음이군. 헤일로라고 했나? 아주 멋진 이름이야. 나중에 참고해야겠어. 그런데 꼬마 아가씨는 레벨이 몇이지?”
“6, 6이요.”
“오호호! 대단해. 놀라운 잠재력이야.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처럼 좋은 약품을 만들 수도 있겠어.”
조금만 더 강해지면 단순히 마약왕의 원재료를 가지고 헤일로를 만드는 게 아닌, 타티아만의 약을 만들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마약왕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자, 타티아는 눈알을 또록또록 굴렸다.
어쩌면 이대로 스카우트(?) 당해서, 남미까지 끌려갈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약왕은 타티아에게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현수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히히히! 당가 따위는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어. 내 약을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이 어디 한두 곳이어야 말이지.”
“……상관없다고요? 마약의 원재료를 빼돌렸는데도요?”
“요후! 그런 건, 진짜 약을 만들다가 생긴 부스러기 정도야. 어디에다 버릴 수도 없는 것들을 알아서 처리해 준다는데…… 나야 오히려 고맙지.”
마약왕의 약은 어떤 의미에서는 핵폐기물보다 훨씬 더 위험한 물질이다.
그걸 땅에 묻거나 바다에 버리면 무슨 부작용이 일어날 줄 모른다.
어쩌면 당천기가 강해진 것처럼 약을 복용한 슈퍼 몬스터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그 의미를 깨달은 순간, 마약왕이 손가락으로 현수호를 똑바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처음부터 관심을 가진 건 소년, 자네였지!”
“……저요?”
무려 마약왕의 관심이다.
그 어떤 미녀의 눈빛보다도 부담스러운 일.
현수호는 잠시 호흡을 멈춘 후에,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건…… 왜죠?”
“왜냐니! 당연한 말이잖아! 권능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으니까. 하핫! 기뻐하게, 소년. 처음으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권능에 멀쩡했다고?
이상한 말이었다.
현수호는 지금까지 마약왕을 만나 본 적도 없었기 때문.
그러다가 문득 품에 있던 마약이 떠올랐다.
“설마…….”
권철중 지부장에게서 샘플로 받은 헤일로.
처음 그걸 받았을 때 손으로 살짝 잡기까지 했었지.
지금까지 봉지에 잘 봉인한 채로 가지고 다녔지만, 마약왕의 말은 달랐다.
“눈치채고 있잖아? 그건 약이 아니라 내 권능 덩어리라는 걸. 손에 닿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
마약왕의 권능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10레벨에 오른 중급 신력의 힘.
마약왕만큼 원하는 방향을 확실하게 잡은 이도 없을 테니.
“물론 헤일로는 내가 완성한 물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힘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마약왕은 마치 값비싼 장난감을 보는 아이처럼 현수호를 바라봤다.
사람 형상이었어도 부담스러울 텐데, 무려 핑크 거인의 모습이었으니 압박감은 배로 늘어났다.
그 사실은 아는지 모르는지 마약왕은 현수호를 계속 압박했다.
“아주 흥미로운 실험체, 아니 소년이여!”
영화 속에 나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모습이 이러할까?
그제야 현수호는 마약왕이 누구인지 떠올랐다.
10레벨의 헌터.
헌터 이전에 연금술사.
본래 전투 직종이 아닌, 전투 지원 직종에 더 가깝다.
타티아처럼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보다는 만든 여러 약물로 아군을 돕는 직업.
다른 모든 연구직이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연금술사는 실험이 필수적이다.
연금술사가 대성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금전과 다양한 재료, 그리로 성실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것만큼이나 연금술사에게 중요한 요건은 바로 호기심.
현수호는 마약왕의 호기심을 자극해 버렸다.
이것이 당가의 수작에도 꿈쩍하지 않던 마약왕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진짜 이유였다.
“우히히! 부탁이야, 소년. 자네에 대해 더 알려 주게.”
그 순간, 사람 형상으로 뭉쳐 있던 핑크 거인의 몸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부서진 핑크 거인은 작은 입자로 쪼개지며 방대한 안개구름으로 변했다.
위기를 느낀 현수호가 급히 피신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꼼짝없이 갇혔다.
어디를 봐도 주변엔 핑크색 안개밖에는 보이지 않은 상황이다.
마치 안개의 결계에 갇힌 듯한 모습.
그 너머로 마약왕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은 바로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쾌락이지. 즐거움을 즐기는 행동. 모든 생명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이기도 하고.]부스러진 안개가 현수호의 몸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마약 따위가 아니다.
지금 현수호라면 마약이 아니라 청산가리를 목에 쑤셔 넣어도 멀쩡할 것이다.
안개 자체가 모두 마약왕의 권능.
상대의 감정을 쥐고 마구 흔드는 정신적인 공격에 가까웠다.
숨을 막는다고, 방어막을 전개한다고 막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그 순간 현수호는 주체할 수 없는 현기증을 느꼈다.
악간 어지러울 뿐, 메스꺼운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지금까지 느껴 본 적 없을 정도의 행복감이 솟구치는 듯했다.
[나는 모두에게 진정으로 지속적인 즐거움을 주는 현자이다. 육체적인 방종의 소산을 뜻하는 게 아니야. 육체의 통제에서 벗어난 영혼의 쾌락. 이곳이 보이느냐?]그 순간 주변의 안개가 몽글몽글하게 변하면서, 아름다운 구름의 형상으로 변했다.
신비로운 숲이 되었다.
평안한 집이 되었다.
따스한 빛이 되었다.
단순히 숨을 쉬는 것으로도,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이 전신을 뒤덮었다.
얼굴에 절로 쾌활한 미소가 지어지고,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어떠한가? 이곳이야말로, 이것이야말로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최고선이다. 마침내 내가 이룩해 낸 천국이지.]이제는 마약왕의 목소리도 천상의 음률처럼 느껴진다.
현수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영원히 무감각해지지 않는 행복이다.
언제 느껴도, 아무리 많이, 아무리 오래 노출되어도 지금 느끼는 이 고양감은 조금도 줄거나 무뎌지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도 피가 마를 날 없었던 남미가 평온해진 이유?
그건 단순히 마약왕의 강력한 힘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행복.
이것만 느낄 수 있다면, 굳이 남의 것을 빼앗거나 훔칠 필요가 없었다.
더 가지려 할 필요도 없다.
더 바랄 게 없었다.
행복의 궁극이 바로 이 안에 있었으니까.
[인간의 사명은 즐겁게 사는 것뿐. 모든 법과 도덕, 자연의 법칙마저도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어야 한다.]이것이 마약왕이 추구하는 가치.
거기에 중급 신력이 합쳐지자, 이런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여기가 바로 마약왕의 천국이었다.
[어떠한가, 소년. 너도 자격이 있어. 내 왕국에 와서 같이 행복하게 누릴 수 있어.]허허실실거리는 마약왕이지만, 아무에게나 이런 제안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아주 후한 제안이다.
현수호가 자신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여기서 현수호가 살짝 고개만 끄덕이면 조금도 부족할 것 없는 영원한 행복감을 느끼며 지낼 수 있었다.
현수호의 입이 살짝 벌리며 눈동자는 몽롱하게 변했다.
마약왕의 정신 공격에 완전히 지배당한 것 같은 모습.
[마스터! 정신 차리세요! 마스…….]아까부터 노바가 열심히 현수호를 부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닿지 않았다.
오직 쾌락만이 선인 이 세상에선, 노바의 목소리도 잡음에 불과했으니.
현수호의 귀엔 마약왕의 목소리만 들렸다.
[소년. 자네는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네. 내가 천국으로 인도해 주지.]마치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움직이는 현수호의 손이 올라갔다.
천천히 움직이던 현수호의 손이 마약왕의 손을 붙들려는 순간…….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면 데스 스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이곳은 천국.
그렇다면 그 어떤 위협과 위해에서도 안전해야 한다.
실제로 이 공간은 단순히 환상이 아니었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 만들어 놓은 일종의 고유 결계, 창조된 세계.
만약 적들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결코 이곳 안에 있는 이를 해치기는커녕 찾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상급 신력을 지닌 데스 스타의 위협에서도 안전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처음으로 마약왕이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 천국이다. 설사 세상이 파멸한다고 해도, 영혼의 행복은 영원히 이어질 수 있지.”
말로는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겠다.
영혼의 행복?
그건 육체의 행복과는 다른 건가?
영원히 이어진다는 건 시간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건가?
어쨌든 즐거운 일인 건 변하지 않았다.
이 안에 있다면 설사 데스 스타와 마주한다고 해도, 웃으며 죽을 수 있을 터.
그걸 떠올린 현수호는 똑바로 눈을 뜨며 말했다.
“그건 결국…… 도망치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