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ine God with EX-rank Talent (Deus ex Machina) RAW novel - Chapter (93)
EX급 재능으로 기계신(Deus ex machina)-93화(93/150)
93화 헤일로 (11)
마약왕의 천국은 단순한 환상 이상의 감정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것은 약효가 아닌 중급 권능.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다른 약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다.
직접 경험해 본 현수호는 그 차이점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건 절대로 중독되거나 해가 되는 작용이 아니다.
효과를 경험한 이들은, 이 느낌을 그리워할지언정 갈구하지는 않는다.
부작용이 하나도 없이 삶의 질을 상향시키는 완벽한 감정의 지속.
하지만 그런 마약왕의 권능도, 마약과 같은 단점이 존재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결국 허상일 뿐이야.”
무엇하나 스스로 얻어내거나 달성해 낸 감정이 아니다.
오직 권능에 통해 빌려 온 감정.
그 어떤 성취감도 느낄 수 없고, 보람도 없다.
현수호의 말에 마약왕은 의문이라는 듯이 물었다.
[그게 어떻다는 거지? 진실과 허상의 구분이 중요한 건가? 애초에 둘이 다르긴 한 건가?]육체적인 활동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영혼의 충만함이다.
설사 지상에 있는 온갖 쾌락을 동시에 경험한다고 해도, 이 천국만큼의 즐거움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수호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다르지. 진상과 허상이 같을 수 없지.”
핑크 거인이 그럴 리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곳에선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아. 모든 게 충족되어 있으니까. 부족함이 전혀 없는 삶이 놀랍지 않은가?]“부족함이 뭐가 나빠? 그건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원동력이야.”
[삶은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다. 가족과 친구, 연인조차 필연적으로 갈등과 불화를 낳을 수밖에 없지.]“고통과 괴로움의 극복 없이 얻어낸 성과에 무슨 의미가 남지?”
[이곳은 완벽한 세상이다. 더 첨가하지도, 더 덜어 낼 필요도 없는 천국.]“완벽함이란 결국 허상에 불과해.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결핍이 생기기 마련이야.”
[원하는 대로만 하고, 하고 싶은 것만 누릴 수 있어.]“인간이 어떻게 자기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있어? 때로는 싫은 것도 참고 해야지.”
현수호는 여전히 마약왕의 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EX급의 재능.
그것도 정신력이 가장 특화되어 있음에도 마약왕의 권능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하지만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다.
여전히 몽롱한 상태에서도 현수호가 막힘없이 답하자, 마약왕이 조금은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궁극적인 쾌락을 즐기며 사는 게 왜 싫다는 거지?]이번에도 대답은 바로 나왔다.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지.”
안주.
현수호가 생각한 마약왕이 만든 천국의 가장 큰 문제였다.
“반성하지 않는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고민하지 않는다.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현수호의 눈동자에 뭉친 안개가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이번엔 반대로 현수호가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왜 싸우려 하지 않는 거지?”
지원직인 연금술사였지만, 마약왕이 가진 전투력은 막강했다.
데스 스타에게 이길 순 없어도, 한 방 먹이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터.
하지만 마약왕이 선택한 것은 단지 외면하는 것이었다.
“여기가 천국이라고? 천만에! 이곳은 그냥 안락사를 조용히 기다리기 위한 죽음의 침대야.”
권능에 취한 채 공포와 고통을 잊는다.
데스 스타가 지구를 쳐부수는 그 순간에도 권능에 세뇌된 사람들은 웃으면 즐길 거다.
그것이 마약왕이 택한 길이었다.
[그게 뭐가 나쁘다는 거지? 항거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어. 꼭 데스 스타만 그럴까? 이 세상엔 전쟁과 질병, 노화가 계속 사람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고.]데스 스타는 종말이다.
하지만 데스 스타만이 종말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 모든 태어난 생명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끝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우주가 송두리째 부서지는 것과 단순히 심장 마비로 죽는 게 개인에게 뭐가 다르겠는가?
[내가 만든 천국, 이 조이풀(Joy-full)은 그 고통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란 말이다.]그 말과 동시에 마약왕이 두 손을 벌리자, 주변에 있던 분홍색 안개가 폭풍우처럼 몰아치며 현수호의 전신을 덮었다.
쿠쿠쿠쿠!!
설득 다음엔 실력 행사다.
강제적으로 현수호를 쾌락에 굴복시키려는 것.
[소년도 곧 고마워하게 될 거다. 모든 괴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해방감을 느낄 테니.]마약왕의 발명품이자, 권능인 조이풀(Joy-full).
타인의 감정을 멋대로 행복하게 만드는 권능이었다.
이 힘에 지배되면 다시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될 터.
그 힘이 전신을 감싸려는 순간, 현수호도 반격을 가했다.
“노바!”
[대기하고 있었습니다.]이곳은 마약왕의 권역.
레벨 6인 현재 현수호의 힘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마약왕에게 타격을 주진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물리적인 타격이 아닌, 정신적인 공격을 준비했다.
현수호의 의지가 전달되자, 노바는 즉시 능력을 발동했다.
지이이잉!!
마치 영사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현수호의 앞에 누군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재현되었다.
다섯 살 정도 되었을까?
까무잡잡한 피부의 어린 여자아이가 들판을 해맑게 뛰노는 모습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단순히 홀로그램일 뿐 저 여자아이가 현실에, 그것도 마약왕의 권역에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자아이가 등장한 후, 토네이도처럼 무섭게 용솟음치던 힘이 잠잠하게 멎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마약왕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폭소하면서 등장했던 마약왕이다.
현수호가 질문에 모두 반박했을 때도 말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모든 게 즐거운 놀이인 듯했다.
당가의 명백한 배신에도 유유자적했던 마약왕이다.
현수호의 사소한(?) 반항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처음으로 마약왕의 목소리에 괴로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결국 매서운 목소리로 현수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소년…… 무슨 짓을 하는 거냐?]쿠르릉! 쿠르릉!
천국 같았던 핑크빛 세계가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몽글몽글한 구름이 날카롭게 갈라지며 깨진 유리처럼 변했고, 태양은 용광로의 쇳물처럼 녹아내리며 검은 그을음을 연신 뿜어냈다.
이젠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라 부르는 게 더 알맞은 듯한 모습이다.
마약왕의 분노와 변해버린 세상에서 현수호는 태평하게 물었다.
“왜 그러지? 이곳에선 모든 고통이 사라진 게 아니었나? 모든 괴로운 기억은 지워진 게 아니었어?”
현수호는 더더욱 영상을 키우고 선명하게 재생했다.
그러자 마약왕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치워라! 내게서 그걸 치워!]“보이지 않는다고, 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지! 외면한다고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고. 네 딸 조이스처럼!”
[우우우우!!]마약왕은 마치 늑대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영상 속의 인물은 마약왕의 딸, 조이스다.
이미 10년도 전의 모습.
왜 현수호가 굳이 10년 전 영상을 보여 줬느냐면, 10년 전 갱들의 항쟁에 휘말려 끔찍하게 죽었기 때문이었다.
노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이스 양의 사망 당시의 모습도 준비했습니다. 영상을 틀까요?]‘아니야, 이젠 충분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이미 충분했다.
더 이상 몰아붙이는 건 자신을 잃은 부모에겐 차마 하지 못할 짓이었다.
“이곳 또한 결국 당신의 도피처에 불과해. 말해 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있었나?”
[그만! 더 이상 묻지 마!]핑크 거인이 두 팔을 들어 귀를 막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진실을 막을 수 없었다.
현수호는 주변을 떠도는 핑크 안개를 가리켰다.
“재미있지? 이처럼 선명한 분홍색이라니. 이건 절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물건이 아니야.”
염료를 뿌렸던 화학물을 사용했던, 인위적인 색이란 소리다.
그렇다면 도대체 마약왕이 굳이 이런 색을 사용한 이유가 뭐였을까?
단순한 약이 아니라, 그의 권능 자체였는데.
“조이스가 아주 좋아하던 색이었지?”
[어허헝!!!]마침내 마약왕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헌터가 레벨 8에 올라 최하급 신력을 얻으면 간신히 권능을 얻게 된다.
하지만 권능은 주문 제작하는 것처럼 바라는 대로 짜 맞추는 게 아니다.
신력이란, 태초 이전에 존재했던 에너지.
우주의 끝만큼이나 인간에겐 아득하고 불가해한 존재.
그러니 헌터는 단지 방향만 설정할 수 있을 뿐, 명확한 목적지를 헤아릴 수는 없다.
마약왕 역시 그랬다.
아무런 근심과 걱정이 없고, 괴로움이나 미움이 없는 이상향을 그리며 신력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런 마약왕조차도 결국 그리움을 완전히 떨쳐 내지는 못한 모양.
조이스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가방.
죽는 순간까지도 손에 꼭 쥐고 있었던 핑크색 가방이 여전히 마약왕의 뇌리 깊은 곳에선 잊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당신조차 떨쳐 내지 못했어. 그런데 그 모든 걸 떠나는 천국이라고? 절대로 성립할 수 없는 곳이지.”
결국 환상이다.
진상이 아닌 거짓.
한없이 가까울 수 있을지언정, 현실을 대신할 순 없었다.
“그러니 난 이곳에 머물지 않을 거다.”
그 말이 결정타였을까?
주변에서 회오리치던 핑크색 안개가 서서히 잦아지면서 옅어지기 시작했다.
태양이 떠오른 후 점차 소멸하는 물안개처럼.
마약왕의 권능 영력인 조이풀은 완벽하게 파훼되었다.
슈슈슈슈!!!
정신을 차려 보니 타티아와 변신술사 두 부자가 보였다.
주변엔 온통 척박한 대지.
제대로 농사도 지을 수 없어서 러시아에서도 버려지다시피 한 곳이다.
하지만 그런 땅을 타티아는 온몸을 다해서 지켜 내고 있었다.
“같은 연금술사이지만 당신보다는 낫군.”
현수호의 말에, 아까보다 밀도가 훨씬 옅어진 핑크 거인이 몸을 들썩거렸다.
[크흐흐흐! 그렇군. 그래서 영향을 받지 않았던 건가?]처음 마약왕이 현수호에게 관심을 가졌던 건, 헤일로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아서였다.
그때만 해도 단순히 특이체질이거나, 특별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현수호가 특별한 능력을 지닌 건 맞았다.
하지만 헤일로에 견딜 수 있었던 건,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는 영혼이라. 그래서 내 힘이 소용이 없었군.]현재 마약왕의 몸은 이곳이 아닌 남미 어딘가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능을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만 물어보지, 소년.]“얼마든지.”
[데스 스타와 싸우려는 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함인가?]마약왕은 데스 스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데스 스타가 내뿜는 악의와 파괴적인 권능은, 수백 년 광년이나 떨어진 이곳에서도 똑똑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니까.
그렇기에 잊기로 했다.
올려다보지 않으려 했다.
아예 존재하지 않다고 여기기로 했다.
그런 마약왕과 달리, 현수호는 데스 스타를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현수호가 입을 열었다.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렇다면?]“그냥…….”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얼굴을 확 찌푸린 현수호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졸라게 재수 없잖아. 그 재수 없는 머저리 하나 때문에 모두가 벌벌 떨어야 한다는 게. 그러니 그 또라이 놈을 자근자근 짓밟는 거로 갚아 줘야지.”
[……?!]현수호의 말에 잠시 멍하니 있던 마약왕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듯이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우하하하! 우헤헤헤!! 걸작이군! 걸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