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ine God with EX-rank Talent (Deus ex Machina) RAW novel - Chapter (94)
EX급 재능으로 기계신(Deus ex machina)-94화(94/150)
94화 헤일로 (12)
한참이나 울던 마약왕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듯한 동작도 했다.
아마 저 핑크 거인이랑 마약왕의 실제 몸이 동기화되어 있는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이어지던 웃음이 조금씩 잦아진 후, 마약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분노와 두려움마저도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거구나. 하지만…….]마약왕은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내 생각이 틀렸다고는 건 아니다. 항거할 수 없는 공포와 멸망이 다가왔을 때, 최소한 그 고통을 덜 수 있는 피난처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소년의 말대로 안락사라고 해도 말이야.]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마약왕이 무조건 틀렸다고 비난할 순 없었다.
종말이 카운트 다운하기 시작하면 전 세계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그 상황이라면 최소한 마약왕에게 의탁한 이들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지.
[소년. 세상엔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 많이 있지. 나를 비롯한 다른 탑 랭커들이 괜히 대항하는 걸 포기한 게 아니야.]“그래서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죽을 자리부터 만들어 놓는다고?”
마약왕은 다시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우리의 견해는 좁혀지지 않는 듯하군. 뭐 애초에 그걸 위한 만남은 아니었지…….]마약왕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가만히 갖다 대며 심장 박동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끼는 고통이었어.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었지.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일까? 이제는 괴로움보다는 아련한 그리움이 더 크군.]부모를 잃은 사람은 고아라 부르며,
남편을 잃은 사람은 미망인,
아내를 잃은 사람은 홀아비라 부른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부르는 단어는 없다.
그 어떤 말로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마약왕이 가짜 천국을 만들어 모든 괴로움을 잊으려던 이유 역시, 데스 스타가 아니라 딸의 죽음에서 도망치기 위함이었을 터.
무려 10레벨의 권능을 사용한 노력.
하지만 그런 마약왕조차도 흔적마저 모두 털어 내는 덴 결국 실패하고야 말았다.
[어쨌든 자네들 덕분에 내 천국이 완벽하지 않단 걸 알 수 있었어. 그 감사를 표하지.]그렇게 말한 마약왕이 손가락이 딱 하고 튕기자, 역시 핑크색의 작은 무언가가 폴폴거리며 타티아에게 날아갔다.
놀란 타티아가 손바닥을 내밀자, 그것은 말 잘 듣는 나비처럼 얌전히 그곳에 안착했다.
타티아가 커진 눈으로 물음을 표하자, 마약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최근에 고안한 약이네. 소녀가 나와 같은 연금술사라면 도움이 되겠지.]다른 것도 아니고 마약왕의 신약이라는 소리.
EX급의 연금술사의 작품이라면, 마약 말고도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 무궁무진하게 많을 터.
어쩌면 블라디보스토크를 부흥시키는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거다.
그걸 알아차린 타티아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꼭 쥐었다.
[다음은 소년 차례로군. 그런데 뭐가 있을까?]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심하는 마약왕이다.
물론 현수호는 마약왕에게 꼭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이러한 일을 펼친 건 아니다.
그래도 보상을 준다는 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아까까지 패드립한 상대지만요.]큼!! 패드립까지는 아니지.
솔직히 먼저 공격한 것도 저쪽이었고.
어쨌든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마약왕이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그게 좋겠군.]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역시 분홍색의 작은 알갱이가 벌처럼 윙윙거리며 날아왔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현수호의 눈앞에 멈춰 선 물체.
이게 뭔지 눈알만 굴리고 있는데, 다시 마약왕이 입을 열었다.
[아~ 해 보게, 소년.]그 말에 반사적으로 살짝 입을 벌린 순간,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알갱이가 현수호의 입 안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놀란 현수호가 본능적으로 그걸 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꿀꺽!
이미 입 안 깊숙이 들어간 물질.
현수호가 황당한 눈빛을 했지만, 마약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몸에 좋은 약이네, 소년. 적어도 200살까지 감기조차 걸리지 않게 하는 물건이지. 10년밖에 남지 않은 세상엔 어울리지 않지는 말이야. 크하하하!]몸에 좋은 영약이라도 되는 건가?
이게 정말 마약왕이 만든 비약이라면, 예전에 무림 세상에서 얻은 공청석유만큼이나 귀한 물건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배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어억!”
용암을 삼키면 이런 느낌일까?
먹었던 약이 활화산처럼 폭발하여 내장부터 불태우는 듯한 느낌.
고통에 익숙한 현수호도 바닥에 데굴데굴 구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현수호가 괴로워하며 땅을 기고 있는 그때, 꼴이 고소하다는 듯한 마약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이 좋아하는 고통과 괴로움이네. 마음껏 즐기게나. 크하하하!]그 말을 끝으로 핑크 기류는 완전히 사라졌다.
* * *
현수호가 고통에서 벗어난 건 그로부터 약 1시간 후였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식은땀을 뻘뻘 흘려서 온몸이 푹 젖어 있었다.
“빌어먹을. 아직도 아리네.”
고통과는 별개로, 몸에 좋은 약이라는 마약왕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장은 물론이고 기혈과 혈관에 쌓였던 노폐물들이 싹 쓸려 나간 느낌이었다.
건강해진 건 당연한 일이었고, 마나의 순환이 훨씬 더 원활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마스터의 전체적인 스탯이 약 25% 이상 늘어났습니다.]“25%라고? 그냥 일시적인 버프 효과 아니야?”
[아닙니다. 영구적인 효과입니다.]아무리 EX 등급의 연금술사라고 해도, 올 스탯을 25%나 올리는 영약이 넘쳐흐를 리 없었다.
호주머니에 쌈짓돈을 꺼내 준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비장의 발명품을 전한 거겠지.
“……뭔가 미안하네.”
죽은 아이의 기억을 억지로 떠올리게 했는데, 이런 귀중한 선물을 받을 줄은 몰랐다.
몸을 추스르고 있지, 한 시간 동안이나 현수호의 상태를 지켜보던 이들이 다가왔다.
“이제 좀 괜찮은 거야?”
“타티아, 아니 게네랄이라고 불러야 하나?”
처음 봤을 때 그 덤벙거리는 여자아이의 모습은 오간 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바예쯔와 알렉산더 호위무사처럼 타티아를 든든히 지키는 모습.
귀중한 막내딸을 지키는 큰 오빠와 아버지 같은 느낌이랄까?
그들의 사정이 어떤지 참으로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겠지.
“나는 라이트 브링거다.”
현수호는 일단 자기의 정체부터 정식으로 소개했다.
그러자 그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라이트…… 뭐라고?”
한국에선 이제 꽤 먹히는 별호인데, 이들은 처음 듣는 모양이다.
하긴 정식 랭커도 아닌 사람의 별호까지 이들이 알고 있을 리가 없겠지.
현수호는 괜히 민망해서 헛기침만 했다.
“큼큼! 별호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쨌든 자신의 별호와 여기에 온 이유 등을 충분히 설명해 주었다.
“헌터 협회의 의뢰 때문이구나.”
“헤일로의 마약이 한국 전역에 퍼지는 중이라고 했다. 처음에 이곳에 올 때만 해도 공장을 찾아내서 폭파하려 했지.”
그 말에 타티아가 움찔했다.
현수호는 뭔가 집히는 게 있어서 추궁하듯이 물었다.
“있구나. 공장.”
“……헤헤! 공장이라기보다는 재가공 시설이지.”
하긴 들어온 원재료를 한 번 더 가공하여 만들어진 게 헤일로라고 했다.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거대한 공장은 아니어도, 작게 처리하는 시설은 있는 것이다.
“설마 또 마약을 만들 생각은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게다가 이젠 원재료로 얻지 못해. 지금 있는 재료들만 모두 소진하면…….”
“마약은 안 된다고. 모두 버려!”
현수호가 윽박지르자, 타티아가 다시 움찔했지만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이제 곧 겨울이야. 그거 안 팔면 주민들이 굶주릴 거라고.”
이 척박한 도시에 유일한 장점이 항구가 있다는 거다.
러시아와 중국의 내륙에서 들어온 온갖 불법적인 물품이 들어왔다가 다른 곳으로 팔려 나간다.
그 사업이 없다면, 당장 굶어 죽지는 않더라도 가난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과 가까운 이곳에서 계속 마약 같은 물건이 계속 유통되게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할 게 있어.”
“제안이라고?”
“우리 길드에 들어와.”
현수호가 고통스럽게 바닥을 뒹굴거리고 있을 때, 노바가 세운 계획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도시 자체를 엑스 마키나 길드에 편입시키는 것.
“길드에…… 들어가라고?”
“그래. 이 병력들 보이지?”
현수호가 주변에 무장한 채로 서 있는 삐뽀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답했다.
“삐리릿! 뽀!”
“그래, 그래. 네 덕분에 살았어.”
“삐리릿! 뽀!”
그들을 둘러보던 타티아는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들…… 인간이 아니지?”
비행기 형태로 들이박을 때부터 궁금했던 내용이었다.
그 말에 현수호가 손가락을 튕기자…….
딱!
삐뽀들이 전부 둥그런 공 형태로 변했다.
(‘. • ᵕ •. `)
[삐리릿! 뽀!]농구공처럼 바닥에 통통 튀는 삐뽀들의 모습.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현수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보다시피, 내 소환물이야.”
“이, 이게 전부 소환수라고? 도대체 어떤 직업이길래…….”
단순히 소환사라고 해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전투력이다.
하지만 당천기를 압도하던 모습을 봤기에, 소환만이 전부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들의 궁금증 때문에 직업을 말해 줄 순 없었다.
대신 본론을 꺼냈다.
“병력은 물론이고, 장비도 지원해 줄 거야. 이 도시가 진정으로 자립하려면 헌터의 육성이 필수적이니까.”
한 평의 농사도 허락되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불법적인 운송을 제외하면 할 수 있는 건 결국 하나밖에 없었다.
몬스터 헌팅.
현수호는 이 근처의 사냥터를 주기적으로 소탕하여 필요한 돈을 벌 생각이었다.
“내 병력와 장비, 그리고 네 연금술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마약왕이 준 선물을 연구하면 더더욱 괜찮겠지.”
그 말에 타티아는 마약왕에서 받은 물질을 슬쩍 쳐다봤다.
아직 저걸로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잠재력은 엄청난 것이다.
그 말에 타티아는 눈을 반짝였다.
“자립…… 말이지.”
“그래. 더는 외부인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도시가 힘을 갖춰야지.”
타티아는 고민했지만, 그 시간을 길지 않았다.
그녀 역시 현수호의 제안이 얼마나 큰 기회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
남은 건 현수호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냐, 였는데 타티아는 자신의 감을 믿기로 했다.
“좋아. 일단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어. 일단은 도시로 돌아가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을래? 몬스터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이곳보다는 도시가 편할 거 아니야.”
“물론이지.”
타티아의 긍적적인 답에 현수호는 미소를 지었다.
이 제안은 비단 블라디보스토크에만 유리한 건 아니다.
물론 초반에 투자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겠지만, 이쪽에서도 얻는 게 있었다.
새로운 거점와 항구, 그리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타티아였다.
SS급 연금술사.
그것도 마약왕에게서 귀중한 연금물질을 받은.
피닉스를 얻은 조미나 역시 최근에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타티아 역시 생각대로만 된다면 머지않아 중요한 전력이 될 거다.
‘데스 스타 이전에 헤쳐 나가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으니까.’
지금의 세상은 락슈미라는 거인에게서 지켜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고작 1년 남짓 남은 상황.
락슈미 사후엔 어떤 혼란이 벌어질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현수호는 그 후를 기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종합하여 판단하면 타티아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얻은 건 좋은 기회였다.
도시로 가는 일행 모두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 * *
현수호와 타티아 일행이 도시로 사라지고 몇 분 후.
현수호와 당천기, 또 현수호와 마약왕이 싸웠던 곳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당가를 상징하는 녹색 무복을 입은 이들.
그들은 전투 현장을 면밀하게 살피며 이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유추했다.
“역시 마약왕이 개입하였는가?”
“예상대로 마약왕의 약을 사용하는 건 자중해야겠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들의 눈엔, 반토막이 된 당천기의 시신이 있었다.
당가를 배신하고 반역을 일으키려던 자.
그 시신을 보는 무인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멍청한 놈. 정녕 우리의 눈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거냐?”
“분수에 맞지 않게 욕심이 큰 놈이었다. 그러니 우리 계획에 이용된 거지.”
당천기는 당가가 자신이 꾸민 일에 대해서 까맣게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헤일로만 잔뜩 얻으면 당가의 뒤통수를 제대로 칠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당가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고, 심지어 당천기를 이용할 계획을 꾸몄다.
약을 함부로 사용하면, 마약왕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기 위해서 당천기를 이용했던 것.
욕심에 아주 살짝 불을 지폈을 뿐인데, 당천기의 욕망은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당가의 무인들은 당천기의 시신도 수습하지 않고 조사를 마무리했다.
이제 보고서만 작성하면 모든 일이 끝나는 상황.
무인 한 명이 지휘관에게 가서 물었다.
“당천기와 싸운 헌터들은 어떻게 할까요? 대대 하나를 동원하면 며칠이면 그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지휘관은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마약왕과 당천기가 날뛰었음에도 다른 이들이 모두 살아간 건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파 보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터.
그때 다시 당천기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쯧!”
당천기를 멍청하다고 욕했지만, 여기 있는 이들 역시 당천기와 다를 바 없었다.
모두 직계가 아닌 방계의 무인들.
그러니까 이 먼 극동 쪽까지 파견된 것이고.
그걸 떠올리자, 가슴 속의 뭔가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우리가 맡은 소임은 마약왕에 대해서다. 나머지는 그냥 놔둬.”
“알겠습니다.”
그렇게 당가의 무인들은 마약왕에 관한 정보만 수집하고 철수했다.
현수호의 흔적은 황량한 대지에 그냥 그렇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