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03
광마전생 (103)
22장
전서구에 묶여 날아온 내용은 도저히 믿기 힘든 내용이었다.
정말로 모용진의 말대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흑천에 문제가 생겨 당분간 움직이지 않을 테니 잠시 지켜보자는 서신이었다.
괜한 분쟁을 일으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뒷장에는 청화의 글씨체로 ‘변(變)’이라고 적혀 있었다.
흑천의 작전이 변했다는 뜻.
그리고 이 소식은 모용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진유혼에게도 전달되었다.
“흑천이 작전을 취소했다고 하네요.”
“뭐,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네?”
모용진의 말에 진유혼이 이를 되묻자 그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니까…… 사천당가가 갑자기 무림맹에서 탈퇴해서 흑천이 작전을 취소했다는 말입니까?”
“더 자세히 말하자면 곤륜이 그 사건의 핵심이지.”
“저희 곤륜 말입니까?”
“그래. 아마 통합무림 놈들이 갑자기 흑천에게 흑도 간의 분쟁을 일으키라고 한 것은 청소의 의미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바로 곤륜이야.”
통합무림이 흑천에게 흑도 청소를 명한 이유.
그것은 마교에게 곤륜을 집어삼킬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곤륜은 정파이고 무림맹의 소속이기에 마교가 곤륜을 친다면 무림맹은 어쩔 수 없이 도와야만 했다.
하지만 그때 흑도들 간의 분쟁으로 세간이 시끄러워진다면?
사람들은 변방에 있는 곤륜보다는 자신들의 생활과 밀접한 흑도들에게 더 시선이 갈 것이고 무림맹 역시 그 핑계로 곤륜을 도와주지 못했다라는 변명을 댈 수 있었다.
그리고 마교로부터 곤륜을 지켜 내지 못했다는 비난 역시 이제 하문이 되어 버린 사천당가에게 몰아 버릴 수 있었다.
예로부터 곤륜을 지원하던 건 사천당가였고 무림맹이 흑도를 진정시키는 동안 사천당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공표를 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비난을 대신 받아야 할 사천당가가 무림맹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해 버렸고, 이는 단순히 비난을 대신 받을 방패막이가 사라진 정도가 아니었다.
사천당가는 통합무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귀중한 것들까지 보관하고 있던 커다란 창고였기에 더 이상 마교나 곤륜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갑자기 흑도와 마교로 인한 혼란이 일어나면 통합무림의 입장에서는 일이 괜히 복잡해지기 때문에 모든 작전을 취소한 것이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그런 뜻이었군요.”
“뭐 그렇지. 예상보다 통합무림이 빠르게 움직이긴 했지만 어떻게 됬어도 마교가 곤륜을 치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들에겐 사천당가의 무림맹 탈퇴가 더큰 일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스승님은 대체 어떻게 당철삼이 넘어올 거라고 확신하셨습니까? 사실 저도 이렇게 깔끔하게 넘어올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거야 뭐…… 옛날부터 욕심이 많은 놈이었으니까.”
모용진은 당철삼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과 매우 비슷한 인간이었으니까.
당철삼은 누구보다 욕심이 많았고 자신을 아끼는 인물이었다.
“난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생물이라고 생각해. 특히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무림인들은 더더욱 그렇지. 입으로는 의와 협을 행한다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절대 베풀지 않아. 혹시라도 그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해질까 걱정하면서 말이지. 이는 핏줄로 맺어진 혈연도 마찬가지고.”
“자신의 무공을 지키는 건…… 무림인으로서 당연한 것 아닙니까?”
“나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한번 죽어 보니 그렇더라. 내가 악착같이 모으던 그것들이 죽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내가 되살아났을 때 생각했어. 혹시 내가 가진 것들을 모두에게 베풀었다면 그런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린아이의 몸으로 되살아난 모용진이 가장 많이 했던 것은 후회였다.
아픈 몸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그는 매일매일 후회했다.
그의 과거에 대한 모든 것들을.
“뭐,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몰라도 이렇게 다시 살아나서 그때 해 보지 못한 것들을 하고 있지만.”
“해 보지 못한 것들이라면…….”
“친구, 동료, 가족. 천기린에겐 없던 것들. 비록 하나뿐인 가족은 지키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넌 걱정하지 마.”
“예?”
“모용진 인생 첫 친구이자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 네 부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줄 테니까.”
똑똑.
그 순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그곳에는 당철삼과 장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스승님.”
준비가 끝났다는 당철삼의 말.
그 말에 모용진이 뒤를 돌아보며 진유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 이제 그만 돌아갈까? 진가은.”
* * *
사천당가의 배웅을 받으며 내가 돌아간 곳은 흑천파가 있는 중경이 아니었다.
백호학관이 있는 섬서 서안.
나는 중경도 들르지 않고 바로 학관으로 복귀했다.
그것도 진가은과 단둘이서.
당연히 제갈영이 서신을 다발로 보냈지만 나는 성아의 말이 모두 맞으며 그녀를 흑천파의 제이장로로 임명했다는 짤막한 답변만 보냈다.
그리고 흑련은 사천당가에 남겨 뒀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와 감시의 목적으로 남겨 두었고 당철삼에게도 이를 숨기지 않았다.
당철삼은 그녀들을 극진하게 대우해 주겠다고 했고 흑련 역시 불만은 없어 보였다.
청해에 남은 홍련과 비사대.
사천에 남은 흑련과 지사대.
그리고 중경에 있는 성아와 사자들.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그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어 미안하긴 했지만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보면 청해와 사천 그리고 중경은 흑천파의 영역이라고 봐도 되는 거겠네?”
“그럴 리가. 청해에 곤륜파만 있고 사천에 당가만 있냐? 아미파도 있고 청성파도 있고 흑도 놈들도 있고 사도련 놈들도 있고…….”
“뭐, 대충 그렇다는 말이지.”
진유혼…… 아니, 진가은은 학관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반말로 바뀌었다.
상황에 따라 처세가 급변하는 건 분명 나쁘지 않은데 솔직히 약간 묘한 느낌이긴 하군.
“왕세진은?”
“양양은 학관에서 자퇴하는 걸로 했어. 굳이 여기 있을 필요도 없어졌으니까.”
“흐음. 수다쟁이가 없어진 건 좋은데 한편으론 너무 조용한 것 같기도 하네.”
둘은 오랜만에 학관을 거닐며 잠시 산책을 하고 있었다.
딱히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었고 관주가 둘을 동시에 호출했기에 자연스러운 산책이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젠 곤륜에 안 가냐면서 따지질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성을 내면서 따지더만.”
“네가 그렇게까지 날 친구로 생각해 주고 있는데 믿어야지. 그리고 난 스승님을 항상 존중할 줄 아는 제자라고.”
“얼씨구. 학관에 도착하자마자 좋다고 반말부터 했으면서.”
“친구잖아.”
“태허도룡뇽검법을 가르쳐 줄까 보다.”
“아이고, 스승님.”
둘이서 장난스러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정원을 지나치는 그때.
갑작스럽게 한 여성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한동안 안 보이셔서…… 걱정했습니다. 혹시라도 또 안 보이게 되실까 봐…… 마음을 전하고자 기다렸습니다.”
아직 어린 여성 관도로 보이는 그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품에서 곱게 접은 종이를 꺼내었고 진가은에게 그걸 내밀었다.
“그럼 전 이만…….”
종이를 건네주고는 빠르게 사라지는 여성.
“오오…… 진가은.”
그것은 바로 연서였다.
한동안 진가은이 보이지 않자 그를 흠모하던 여성이 혹시나 진가은이 이대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을 담아 글을 적은 것이었다.
“괴인삼방으로 불리면서 한동안 조용하더니, 역시 어쩔 수 없는 외모란 건가.”
“큼…….”
진가은은 살짝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해 댔고 나는 그걸 흡족하게 바라봤다.
마치 내 아들이 연서를 받은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역시 내 제자가 좀 수려하긴 하지.
“버리지 말고 거절하더라도 답장은 해 줘.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는 거니까.”
* * *
“흐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턱을 쓰다듬으며 문을 바라보는 백두철.
그가 이렇게 문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호출한 지 한 식경이 넘었는데도 모용진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저번처럼 그런 일이 또…….”
모용진이 습격을 당했던 것을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백두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때,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쿵.
그 소리에 놀란 백두철이 문을 바라보자 그곳엔 왠지 모르게 화가 많이나 보이는 모용진이 서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건가? 자네 안색이 왜 그런가?”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아, 무, 일, 도.”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단단히 화가 난 듯한 그의 목소리에 백두철은 저도 모르게 살짝 움츠러들었다.
“일단 자리에 앉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러고 보니 진가은 관도는 같이 오지 않았나?”
“저기 뒤에 옵니다. 백호학관 희대의 난봉꾼님은.”
갑작스러운 난봉꾼이라는 말에 백두철이 고개를 들어 그의 뒤를 바라보자 뭔가를 잔뜩 들고 오고 있는 진가은이 보였다.
“저게 다 뭔가……?”
양손도 모자라 옷자락을 바구니처럼 만들어 뭔가를 잔뜩 들고 오는 진가은.
놀랍게도 그곳에 담겨 있는 건 어마어마한 양의 연서였다.
“제가 무공으로 백호학관의 이름을 드높이려고 할 때, 저놈은 얼굴로 백호학관 전체 여성 관도들의 마음을 드높였나 봅니다.”
굉장히 불만이 많아 보이는 얼굴로 백두철을 지나친 모용진은 그가 권한 자리에 앉았고 백두철은 스치는 말로 그의 혼잣말을 들었다.
“한 명 정도는 줄 법도 하지 않나? 참 나…….”
백두철의 배려로 엄청난 양의 연서들을 한쪽에 모아 둔 진가은이 모용진의 옆에 앉자 백두철 역시 그들의 앞에 자리했다.
“큼……. 한참 무공에 정진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와 줘서 고맙네. 내가 그대들을 부른 이유는 내가 어떤 부탁이 있다거나 학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라네.”
“그럼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그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와서 말이야. 누군가가 이여립 자네를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
“저를 말씀이십니까? 저는 딱히 연줄이라고 할 것도 없고 아직 이름도 나지 않았으니 그럴 사람이 없을 텐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네. 그분이 왜 자네를 보려고 하시는지…….”
“그래서 누구입니까? 절 보고 싶어 한다는 분이.”
모용진의 질문에 백두철이 진가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가은 관도 자네와 관련이 있는 분이야. 그분의 말씀으로는 자네가 곤륜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설마…….”
“왜 그걸 숨겼는지는 나중에 따로 묻도록 하고, 아무튼 진가은 관도도 누군지 알고 있는 듯하군.”
백두철이 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내었고 그곳에는 커다랗게 ‘곤(崑)’이라는 직인이 찍혀 있었다.
“이여립 자네를 보고 싶다는 분은 전대 무림맹주셨던 곤륜파의 장문인 구영 도장님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