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14
광마전생 (114)
슈악!
허공에 메아리치는 바람 소리.
그 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흑천파의 문파원들은 긴장해야만 했다.
쾅!
바람 소리가 울리고 난 뒤에는 꼭 커다란 굉음과 충격파가 터져 나왔으니까.
이제 모용진과 류성아의 비무는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눈이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무공 수련을 한 제갈영과 청화 역시 간신히 그들의 몸놀림을 따라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비무를 벌이고 있는 둘은 정반대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목문적공(目聞蹟功)’이라는 무공을 사용해 내공으로 안력을 극대화한 류성아와 심안(心眼)의 경지를 얻은 모용진에겐 서로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기만 할 뿐.
보는 것과 반응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모용진은 성아의 단검을 매우 쉽게 막아 냈지만 성아는 간신히 모용진의 검을 막아 내고 있었으니까.
키잉! 채앵! 채앵 채앵…….
한 치의 틈도 없이 울려 퍼지는 철의 비명 소리.
무려 백 합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먼저 물러나며 신음을 흘린 것은 바로 성아였다.
“큭…… 졌습니다.”
패배를 시인하며 무릎을 꿇는 성아.
그녀는 정말로 기력이 다한 듯 단검을 붙잡은 양손을 마구 떨고 있었다.
“그래, 고생했다. 그럼 난 이제 흩어진 놈들을 잡으러 가 봐야겠군. 아직 시험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모용진이 이를 받아들이며 곧바로 연무장에서 모습을 감추자 성아는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성아야!”
“령주님!”
그녀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제갈영과 흑련이 다급히 올라와 그녀를 부축해 주었고 성아는 힘겹게 연무장에서 내려왔다.
“역시…… 인간이란 몸으로 부딪쳐 봐야 깨닫는 어리석은 동물인 것 같아요.”
“뭐?”
갑자기 뜬금없는 성아의 말에 제갈영이 머리라도 다쳤나 싶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자 성아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잠시 쉬고 싶네요, 군사님.”
성아는 오늘 뼈저리게 깨달았다.
무지에서 오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여기서 말하는 무지는 단순히 ‘알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은월령에 들어온 고아들이 사자가 되며 가장 먼저 배우는 것.
그것은 바로 상대에게 이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아닌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지혜’였다.
기본적으로 정보와 암살을 다루던 은월령이었기에 그들에게 ‘모르는’ 상대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무리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그들은 몸을 놀리는 것보다 생각을 먼저 했다.
철저하게 이길 수 방법을 강구한 다음에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오늘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평소에도 모용진의 강함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생각해 왔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모용진을 죽일 계획을 짠 것이 아니다.
그저 은월령의 령주로서 오래된 습관과도 같은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녀가 떠올린 모용진을 이길 수 있는 방안은 모두 물거품이었다.
실제로 검을 맞대어 본 모용진은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방금 전 마지막 백 합 역시 그랬다.
눈으로 보기엔 둘 다 평범한 몸놀림이었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모용진은 정말로 그냥 검을 들어 막고 공격한 것이었고 류성아는 자신이 가진 초식을 모두 활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류성아는 검을 내지르는 내내 두려웠다.
만약 모용진이 초식을 사용한다면 곧바로 머리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으니까.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대가 주는 공포.
그것이 바로 류성아가 생각하는 무지에 의한 공포였다.
‘소매조차 건들지도 못하다니.’
큰 충격을 받은 성아가 제갈영과 한쪽 구석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모용진은 여기저기로 도망간 놈들을 기절시킨 채 데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 식경이 걸리지 않았으니 모용진의 경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휴……. 드디어 다 잡아 왔네.”
말은 매우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모용진은 여전히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괴물…….’
‘괴물이다.’
‘천하제일의 고수가 있다면 바로 저분일 거야.’
그런 모용진을 바라보는 문파원들의 생각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괴물’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리고 있었다.
그 어떤 단어보다도 괴물이라는 단어가 모용진에게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다음.”
모용진의 입에서 나온 다음이라는 단어.
그 단어가 이렇게도 공포스러울 수가 있다는 것을 녹군은 처음 깨달았다.
왜냐하면 앞선 청군과 적군의 대련으로 보아 패배할 게 뻔했고 자신들도 저기 널브러진 청군과 적군처럼 될 것만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건 이미 기정사실인 것 같았다.
어기적거리며 연무장 위로 올라가는 녹군.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당철삼과 흑련.
이 두 사람은 어느새 모용진의 앞에 서 있었다.
‘스승님에게 가르침을 받을 기회.’
‘저번에 처참하게 패배했던 것을 복수할 수 있는 기회!’
둘은 마치 신경전을 벌이듯 나란히 서서 모용진을 바라보았고 그러다 어느새 둘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은월령의 흑련이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흑천파에서 배분이 높으니 저에게 양보를 해 주실 순 없겠습니까?”
“아니요. 은월령과 사천당가는 흑천파의 내조직이긴 하나 서로 별개가 아닙니까. 저는 흑제 님께 복수할 게 있어서 말이죠.”
모용진을 향해 당당하게 ‘복수’라는 단어를 내뱉는 흑련을 보며 당철삼이 조금 당황스러워했지만 그 역시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녹군의 부대원이시니…….”
“아아, 둘 다 그런 걸로 그만 싸워. 어차피 시간 끌기로는 적군을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으니 한 명씩 상대해 줄 생각이거든. 뭐, 원하면 한 번에 달려들어도 좋고.”
하지만 모용진의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이미 한 번 통한 방법이었기에 승리를 위해서는 적군이 했던 방식이 최고라는 걸 이미 깨달아 버린 녹군이었다.
모용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흑련과 당철삼을 제외한 모두가 바깥으로 튀어나갔고 모용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연무장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규칙을 정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그가 고개를 들자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흑련과 당철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둘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뛰어오고 있었고 모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검을 들어 올렸다.
“둘 다 상대해 준다니깐. 그렇게 서로…….”
뻗어 오는 당철삼의 독수(毒手)를 검으로 쳐 내려는 그 순간, 모용진은 흑련이 어느새 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어……?”
스악!
바람 소리와 함께 잘려 나가는 모용진의 옷깃.
만일 모용진이 조금만 늦게 회피했다면 큰 타격을 입었을지도 모르는 일격이었다.
그리고 그 일격을 모용진의 등 뒤에서 날린 것은 바로 흑련이었다.
당철삼과 흑련은 모용진의 눈에 서로 티격태격거리는 걸로 보였지만 사실 이것조차 계략이었던 것이다.
모용진의 방심을 이끌어 내려는 계략.
그리고 그것이 보기 좋게 먹혀 들어간 것이었다.
“이거 한 방 먹었는데?”
흑련의 공격을 피하느라 살짝 앞으로 쏠린 모용진의 얼굴.
그리고 그걸 예상했다는 듯이 당철삼의 독수가 모용진의 턱을 향하고 있었다.
콰직!
연무장 내에 퍼져 나가는 뭔가가 부서져 나가는 소리.
하지만 부서진 것은 모용진의 턱이 아니라 바닥이었다.
디딤발이 무너지며 당철삼의 신형은 비틀거렸고 그 찰나를 틈타 독수를 회피한 모용진은 그의 팔을 붙잡으며 거칠게 회전했다.
쾅!
큰 소리와 함께 자욱이 일어나는 모래 먼지.
그 모래 먼지가 걷혀 나가고 드러난 것은 바닥에 메다꽂힌 당철삼과 흑련이었다.
“생각보다 합격이 나쁘지 않은데?”
모용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황급히 정신을 차린 둘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바닥에 박힌 몸은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크윽, 몸이 왜…….”
“어어. 함부로 막 움직이려고 하지 마. 혈도를 좀 세게 짚었으니까. 그렇게 악쓴다고 몸이 풀려나진 않아.”
모용진의 말에 흑련과 당철삼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찰나에 자신들을 바닥에 꽂아 버린 것도 모자라 점혈까지 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었다.
점혈이란 사람의 신체에 따라 그 부위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엄청 세밀한 손놀림을 요구하는데 모용진은 그 짧은 찰나에 둘의 혈도를 정확하게 짚어 낸 것이었다.
이는 가히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경지에 가까웠다.
“잠시 누워 있어. 내가 모두 잡고 돌아올 때까지 말이야.”
* * *
조종려가 눈을 떴을 땐 이미 흑천파 사형제대전이 막을 내린 뒤였다.
그리고 어느샌가 자신의 손엔 빗자루와 걸레가 쥐어져 있었다.
왜 자신에게 이런 걸 건네주는지 몰라 조종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모용진은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화장실로 밀어 넣었다.
“시작 당번은 너야. 아무리 장로라고 하여도 예외는 없어.”
“스…… 스승님?”
“깨끗하게 치우고 나와. 참고로 분뇨 처리는 광천악이 도와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사형제 대전의 우승자는 단연 적군이었다.
이등은 마지막에 모용진의 옷깃을 잘라 낸 녹군.
그리고 꼴등은 청군이었다.
조종려를 화장실로 밀어 넣은 모용진은 기분 좋게 돌아섰고 그런 그를 기다린 듯한 인물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음? 여긴 어쩐 일이야. 내가 지시한 건 잊었어?”
“부군사라면 이미 녹수각에 가 있어요. 그것보다 오늘부터 바로 하는 거였어요? 그것도 조종려 장로님부터?”
“원래 윗사람이 먼저 좋은 본을 보여야 아랫놈들도 열심히 하지.”
“아무리 그래도 흑천파의 장로인 분을…….”
“아, 그건 됐고. 알아서 갈 건데 여기까지 왜 내려온 거야? 할 말이라도 있나?”
“가면서 이야기하시죠.”
모용진의 물음에 제갈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이번 사형제대전의 저의가 궁금해서요.”
“음? 설마 그걸 네가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저도 아저씨가 문파원들을 단합시키려고 한 의도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꼴등을 한 청군에게도 이등을 한 녹군과 똑같은 보상을 주신 것도 알고 있고요.”
“그럼 다 알고 있는 건데. 뭐가 문제지?”
모용진의 뜬금없는 사형제대전 개최.
이는 단순히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판단을 내린 모용진이 마지막으로 흑천파를 한군데에 모아 모두를 단합시키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단합이란 것은 모두가 으쌰으쌰 잘해 보자는 것이 아니었다.
모용진이 생각한 단합.
그것은 절대적인 자신의 강함을 문파원들에게 각인시켜 다시 한 번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배신할 수 없게 말이다.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 주면서 문파원들에게 충성심과 공포를 동시에 심어 주고자 하는 것이 이번 사형제 대전의 개최 목적이었다.
“그럼 문제가 없었어요? 그 단합에서 사대제자인 가야허가 피떡이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