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16
광마전생 (116)
24장
나는 밀객(謐客)이다.
밀객이 뭐냐고 묻는다면 몰래 온 손님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들어와서 정보를 얻는 게 나의 역할.
밀객이 되기 위해 이십 년을 명교에서 수련했었는데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은 것은 ‘똥퍼’라는 직업이었다.
그것도 산적들이 머무는 산채의 똥퍼.
다른 동기들은 무림맹 소속의 세가나 문파에 들어가 실력자로 대우를 받으며 생활 중이라고 들었는데 나만 하필 똥퍼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 녹림산채에서 구하는 인원이 똥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공 좀 쓴다고 자랑도 해 봤지만 똥퍼가 아니면 필요 없다고 돌아가 달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똥지게를 등에 메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똥퍼…….
이 빌어먹을 직업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놈들이었다.
어떻게 사람의 더러운 분뇨를 매일 치울 수 있지?
그런데 똥퍼도 사람이 하는 일이 맞았다.
놀랍게도 내가 어느덧 이 직업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일하고 돌아오면 밥도 먹지 못하고 매일 토만 했었다.
지워지지 않는 분뇨 냄새에 잠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이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그리고 생각보다 똥퍼라는 직업은 정보를 얻기에 매우 유용했다.
여기 중경녹림의 산채는 산적들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그 경계가 삼엄하여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구역들이 존재했는데 똥퍼는 그곳도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왜냐고?
왜냐하면 그곳에 화장실이 있으니까.
먹고 싸는 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 욕구이기에 화장실은 어디에나 있을 수밖에 없고 화장실이 있으려면 똥퍼도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똥퍼로 그곳을 드나들며 산채의 정보를 얻고 있었다.
특히 일영각이라는 전각의 화장실은 그야말로 정보의 보물 창고 같은 곳이었다.
이곳은 산채의 총관인 부부여가 자주 들르는 곳이었는데 부부여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그 혼잣말은 대게 그날 했던 회의에 관한 것들이었기에 밀객인 나에겐 소중한 정보원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부부여는 옛날부터 속이 좋지 않아 화장실을 자주 들렀기에 한 시진에 꼭 한 번은 이곳에 왔다.
“으어. 역시 화장실은 여기가 제일 좋단 말이지……. 그나저나 각주 놈이 또 사사건건 내 주장을 무시하는군. 우리도 장강처럼 술장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말이지.”
멍청한 놈.
내가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오늘도 정보를 마구 내뱉고 있군.
조금 더 많이 듣고 싶지만 다른 곳의 분뇨도 치워야 했기에 나는 지게를 끌고 다른 건물로 이동했다.
“어이, 개똥이.”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재수 없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이곳 일영각의 문지기였다.
“예. 수문장 나리.”
“으, 냄새가 나니 조금 떨어져서 듣거라.”
개 같은 놈.
내가 정보를 캐내는 밀객만 아니었다면 저놈은 수백 번도 더 죽였을 것이다.
삼류 정도의 무공을 가진 놈이 날 이렇게 하대하다니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지만……!
참아야 한다.
나는 밀객이니까.
“예, 나으리. 죄송합니다.”
“죄송한 건 모르겠고. 개똥아, 이제 넌 이곳에 들르지 않아도 된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업무가 너무 많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산채에서 이곳 일영각을 포함한 몇몇 곳은 다른 똥퍼를 쓰기로 했다.”
다른 똥퍼를 쓴다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이고, 나으리! 제가 몇 년 동안 이곳을 굴렀는데 어찌 쇤네를 내치고 다른 이를 쓴단 말입니까!”
“총관께서 봉급은 그대로 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하셨어. 이제 아랫것들 지내는 곳 주변만 깔끔하게 치우면 되니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일손도 줄고.”
문지기의 말은 사실이었다.
봉급은 그대로인데 일하는 구역이 줄어들게 되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 내겐 봉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고, 그렇게 한 명씩 쓰다가 절 내치실지 어떻게 압니까. 제가 더 열심히 하겠사오니 제발 그대로 일하게 해 주시옵소서.”
“어허. 나에게 그래 봤자 소용이 없다니깐? 총관님의 명일세. 이미 사람도 구했고 자네가 그렇게 일할 인원이 부족하다고 난리를 쳐서 사람을 구해 준 거니 감사하게 생각하게.”
말 그대로 한때 내가 했던 말로 인해 밀객의 일에 차질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난 일영각에서 쫓겨났고 그곳에 드나들 수 있는 명패 역시 뺏기고 말았다.
“크윽…… 이제 어떡하지?”
* * *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고 있지?”
“정보를 얻을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고 있습니다.”
사자의 보고에 제갈영이 손으로 턱을 문지르더니 입을 열었다.
“나흘 정도면 충분하겠지. 최대한 애타게 만든 다음에 새로운 길을 알려 주거라. 놈이 눈치를 챌 수 없게 최대한 자연스러워야 한다.”
“알겠습니다.”
제갈영의 명을 들은 사자가 고개를 숙이며 방을 빠져나가자 옆에서 듣고 있던 모용진이 몸을 비틀어 제갈영을 향했다.
“아직 잘돼 가나 보네.”
“잘 안 되면 큰일이지요. 장강에 있는 밀객 역시 이와 똑같이 관리 중에 있습니다.”
“나라면 놈의 서체를 얻어낸 다음 죽였을 거야.”
“그러면 언젠가 명교에서 복귀 명령이 떨어졌을 때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저희 계획은 최대한 길게 봐야 하니까요.”
“역시 총군사야. 머리가 비상하다니깐.”
모용진의 칭찬에 제갈영은 고개를 젓더니 다시 쌓여 있는 서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주무셔야죠. 내일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셔야 할 텐데.”
내일은 모용진이 다시 학관으로 복귀하는 날이었다.
왜냐하면 사신기제가 열리기까지 이제 열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 마. 잠은 안 자도 상관없으니까. 그보다 조금 천천히 갈까 생각 중이야. 어차피 가 봤자 친구도 없는걸.”
“이 년 가까이 학관 생활을 하면서 친구 하나도 없었어요?”
“나보다 한참 어린 애들인데 친구는 무슨……. 그리고 완전 없던 것도 아니지 진가은과 왕세진이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각각 진유혼과 양양으로 돌아간 상태지만.”
“그 둘 말고는요?”
“음…… 딱히? 오히려 다 적이라고 보면 돼.”
“대체 어떤 생활을 하고 다니신 거예요, 정말.”
“그럼 내가 하하호호 친구나 만들고 다니는 즐거운 학관 생활이라도 하고 다닐 줄 알았어?”
모용진의 말발에 혀를 내두른 제갈영은 입씨름을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내일 학관에 돌아가셔야 돼요. 일정상 차질이 없으려면 말이죠.”
단호한 제갈영의 말에 모용진은 피식 웃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제갈영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갑작스러운 모용진의 접근에 놀란 제갈영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모용진이 갑자기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따악!
“아얏! 갑자기 뭐 하는 짓이에요!”
“그러는 너야말로 보여 줄 게 있어서 가까이 왔는데 얼굴은 왜 붉히고 그래.”
“제, 제가 언제 얼굴을 붉혔다고 그래요!”
당황한 제갈영의 얼굴이 한층 더 빨개지는 그때.
모용진이 품에서 작은 종이 쪼가리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오늘 온 것이다. 읽어 봐라.”
모용진의 말에 서신을 받아 든 제갈영이 그걸 펼치자 곧바로 익숙한 서체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이건…….”
“판단은 네게 맡기마. 네 판단에 따라 그곳에 대한 대응 방법이 달라질 테니까 말이야.”
그 서신은 바로 제갈세가에서 이여립에게 정식적으로 후원을 하고 싶다는 서신이었다.
긴 글 아래에 찍혀 있는 제갈궁의 직인을 보며 제갈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모용진을 향해 그 서신을 돌려주려 했다.
“만일 제가 마음에 쓰이신 거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전 이제 흑천파의 군사니까요.”
“그래도 언젠가는 되찾아야 하는 것 아냐? 네 아비의 제갈세가인데.”
“그건 언젠가 제가 새롭게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지금의 썩어 빠진 제갈세가 따위는 제게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제갈영의 말에 모용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가 내민 서신을 받아 들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움직여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겠지?”
“예. 원하신다면 형태도 남지 않을 정도로 엎어 버려도 괜찮습니다.”
“어허. 어찌 그럴 수가 있겠어. 사람은 미워하되 재물은 미워하지 말란 말이 있거늘. 뼛속까지 빨아먹어 줘야지.”
뼛속까지 빨아먹는다며 서신을 다시 품에 넣는 모용진.
제갈영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류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음? 어디 가려고?”
“내일 출발이시니 푹 쉬셔야죠. 일은 아랫방에 내려가서 마저 처리하겠습니다.”
“난 상관없는데.”
“제가 상관있어요. 그러니까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갈영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빠져나갔고 모용진은 한동안 그녀가 나간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찌 저리도 똑같은지……. 벽운, 자네 딸은 자네를 참 많이 닮았구만.”
오랜만에 옛 친구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 모용진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흑련은 어젯밤 늦게 있었던 임무로 인해 암막을 치고 숙면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리는 느낌이 들었고 화들짝 놀란 그녀는 황급히 잠에서 깨며 품에 안고 있던 검을 뽑아 들려 했다.
“누구냐!”
아무리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흑련은 초일류의 암살자.
자신을 안아 들 정도로 접근했음에도 흑련이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상대가 그 이상의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눈을 뜬 흑련은 깜짝 놀라며 검을 거둬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곳엔 모용진이 자신을 안은 채 서 있었기 때문이다.
“뭐, 무, 머뭐머뭐머머머…….”
갑자기 언어 능력이 상실된 흑련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왜냐하면 모용진이 이렇게 갑자기 자신의 처소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자신을 안고 있다는 사실에 극도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한때는 적으로 느끼며 끔찍할 정도로 모용진을 싫어했던 흑련이었지만 이곳 중경녹림에서 지내면서 그에 대한 인상이 많이 바뀌어 있던 그녀였다.
이제 모용진은 자신이 모셔야 할 주인이자 은월령의 조사였고 게다가 자신이 부모처럼 여기고 있는 령주 류성아의 지아비가 될지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갑자기 자신의 처소에 잠입하여 납치하듯 들어 안고 있으니 혼란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설마…… 령주님이 아닌 날 선택하신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흑련의 뺨은 붉게 물들었다.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용진은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진 실력자에다가 흑천파라는 거대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수장이다.
게다가 얼굴도 잘생기고 몸은 말할 것도 없으니 이제 혼기가 찬 흑련에게 이보다 더 좋은 남편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흑련은 몸이 배배 꼬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붉어진 그때.
모용진이 그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흑묘(黑猫). 오빠랑 같이 산책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