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27
광마전생 (127)
26장
“으음…… 벌써 내 차례인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뜬 모용진의 앞에는 난생처음 보는 놈이 있었다.
잘생겼지만 어딘가 모르게 재수 없는 얼굴.
푸른 무복과 노란색의 옷깃으로 봐선 그는 청룡학관의 관도였다.
“넌 뭐야?”
모용진이 누구냐는 듯 질문을 던지자 남자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발로 모용진의 팔을 꾹 밟았다.
“하…… 감히 이 몸…….”
그의 이름은 장조운.
청룡학관의 청룡군(靑龍君)이자 무당파의 이대제자였다.
그리고 방금 그는 죽을 뻔했다.
모용진이 아니었다면.
장조운의 뒤에는 어느새 흑련이 서 있었고 흑련의 단검은 그의 목 앞에서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 단검을 막아 준 것이 바로 모용진이었다.
“뭣…… 뭐야?!”
장조운은 그제야 깜짝 놀라며 팔을 휘둘렀지만 모용진이 살짝 내민 발에 걸려 꼴사납게 바닥에 넘어졌다.
“난 괜찮아. 그러니까 집어넣어.”
모용진의 말에 흑련은 장조운을 노려보며 혀를 차더니 단검을 품에 넣었고 그 모습에 장조운은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암습을 벌이려 해!?”
하지만 모용진은 장조운이 그러든지 말든지 흑련을 다독이더니 바깥으로 내보냈고 또 한 번 무시당한 장조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품에서 검을 뽑으려 했다.
철컥
하지만 그 검은 어느새 다가온 모용진의 손에 도로 검집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보아하니 청룡학관의 나부랭이인 거 같은데. 사과는 안 해. 네가 먼저 내 팔을 밟았으니 내 정인이 가만히 있겠어?”
“나부랭이? 지금 나에게 나부랭이라고 한 것이냐! 나는 장조운이다! 청룡학…….”
“아아, 네가 장조림인지 장조똥인지 된장인지는 관심 없고. 검은 비무할 때나 뽑아. 실격당하기 싫으면 말이지.”
그때 때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무사 한 명이 고개를 내밀더니 모용진과 장조운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목소리에 장조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애꿎은 검 손잡이만 꽉 쥐더니 이내 손을 놓고 돌아섰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비무장에서 날 만나는 순간 넌 죽은 목숨이니까.”
장조운의 도발에도 모용진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젓더니 다시 그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다시 눈을 감는 모용진.
그의 모습을 보며 대기실의 대다수는 모용진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장조운은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꽤나 이름을 날리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절정의 고수들을 다수 꺾은 전례도 있었고 그 빡세다던 청룡학관에서 당당히 청룡군의 호칭을 얻어 낸 실력자였다.
그에 비해 모용진은 백호학관과 서안에서만 이름을 날리고 있었기에 아예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딱 세 명만이 장조운을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백호학관의 관도들이었다.
‘쟨 이제 뒈졌다.’
‘이렇게 또 한 명이 가는구나…….’
‘아미타불.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정인 사태는 한술 더 떠 염까지 빌어 주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방금 장조운이 선을 심하게 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딱 한 번 모용진에게 선을 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딱 숨만 쉴 수 있을 때까지 맞았고 곧바로 들것에 실려 나갔다.
그 사람의 이름은 장선강.
맞다. 그 장선강이다.
씩씩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던 장조운을 바라보던 그들은 우연찮게 눈이 맞았고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하하. 유독 무당파 애들이 그러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사필귀정 아니겠습니까?”
소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장조운이 자리로 돌아가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에게 신경을 쏟기 시작했고 대기실은 다시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잠시 후 누군가가 또 모용진을 툭 건드렸다.
“일어나세요. 이제 곧 여립 님 차례입니다.”
살짝 날카로워진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흑련이었다.
뭔가 못마땅해하는 듯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난 모용진은 그녀의 뒤로 정인 사태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팔을 뻗어 흑련의 머리에 손을 얹은 모용진은 하지 말라는 듯 쳐 내려는 흑련의 손을 무시한 채 정인 사태 들을 보며 말했다.
“그럼 가 볼까요.”
“예. 그러시죠.”
여동이 앞장서서 걸어가자 모용진은 맨 뒤에서 따라 걸었고 그의 옆에 흑련이 붙었다.
[왜.] [아까 그놈이 계속 노려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내버려 둬. 어차피 무대 위에서 만날 건데 굳이 소란 피워 봤자 좋을 거 없어.] [그렇지만…….]말끝을 흐리는 흑련의 전음.
모용진은 어느 정도 그녀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지금 뒤에서 장조운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흑련의 입장에서 참기 힘든 것이었다.
흑련에게 모용진은 령주인 성아와 대등한 위치의 사람이었고 그에게 이런 살기를 보이는 것은 성아에게 살기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유독 싫어하는 것 같은데 이유라도 있나?] [딱히…… 아까 전에 스쳐 지나갈 때 은근슬쩍 엉덩이에 손을 대서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음, 아니군. 그럼 다행이네. 그런데 이걸 어쩌지. 그 말을 들으니까 나는 도리어 화가 조금 나는걸?]“예?!”
모용진의 전음에 흑련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그 덕에 모두의 시선이 그들을 향해 쏠렸다.
“쉿.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 그리고 이만 빠져야 하지 않아? 너도 사신무에 나갈 건 아니잖아?”
모용진의 말에 흑련은 황급히 입을 막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고 모용진의 대기 줄은 어느새 조금 어두운 복도로 들어섰다.
“백호학관 분들.”
나지막한 목소리로 같은 학관의 관도들을 불러 세운 모용진은 가볍게 웃으며 경고문을 날렸다.
“오늘의 전 조금 많이 거칠 겁니다. 혹여라도 절 만나게 된다면 빠른 기권 부탁드립니다.”
* * *
모용진이 무대 위에 올라섰을 때.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들 중엔 떠도는 소문을 들은 자들도 있었고 회동이 있던 날 모용진을 본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입술을 바짝 말려 가며 가장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백호학관의 관주인 백두철과 부관주인 황보유선이었다.
그들은 여태껏 온갖 화려한 무공이 있어 왔지만 그 어떤 무공도 모용진의 이화신공을 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백호비무제에서 봤던 그 충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불꽃.
그 불꽃만 제대로 보여 준다면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은 모용진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용진이 주인공이 되면 당연히 백호학관의 위세도 더더욱 올라갈 것이었다.
그렇게 큰 기대를 안고 무대를 바라보는 둘.
하지만 모용진의 무대에는 불꽃도 검도 없었다.
놀랍게도 모용진은 아무것도 없이 그냥 무대 위에 오르더니 이렇게 크게 소리치고는 그대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여러분께 딱히 보여 드릴 건 없습니다. 사신무(四神武) 우승 그리고 무호제(武呼第)에서 무영의 별호도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아무런 행동도 없이 말만 내뱉고 들어간 모용진.
하지만 그 특별함과 당당함 때문인지 사신무 첫날의 주인공은 모용진이 되었다.
건방지다는 말도 많았고 사신무를 욕보이는 거라며 욕하는 이도 많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마음속 한편에는 묘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로 모용진의 행보는 특이했으니까.
그러던 중 모용진이 제갈세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받는다는 소문에 대중의 관심도는 더욱더 올라갔다.
물론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애초에 이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모용진에게는 잘 풀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걸로 확실하게 통합무림의 관심은 끌었겠지.”
“그만큼 적도 늘어났겠지요.”
흑련의 말에 모용진은 그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물론 흑련은 거부했지만 모용진의 힘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네가 할 일이 중요하다 이 말이지.”
“정말 그 사람 뒤만 따라다니면 되는 건가요? 듣기로는 그쪽도 저희랑 같은 편이라는 말을 얼핏 들어서…….”
“맞아. 하지만 그 사람만 유일하게 아니거든. 그러니까 이번 사신기제 동안 잘 지켜봐. 누구랑 함께 다니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말은 쉬웠지만 이것은 전혀 쉬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모용진이 말하는 이는 평범함이랑은 거리가 먼 사내였으니까.
“아, 그리고 사신기제가 거의 끝나 갈 때쯤에는 시험을 해 봐도 좋아. 그 사람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떤 무공을 사용하는지 봐 두면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야.”
“시험을…… 너무 위험하진 않을까요?”
“들키지 않으면 돼. 위험한 일은 안 하면 되고. 이렇게 귀여워도 넌 은월령의 지사잖아? 말은 안 해도 항상 의지하고 믿고 있다고.”
“네네넷?!”
모용진의 갑작스러운 말에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라는 흑련.
그녀의 빨개진 얼굴을 보며 모용진은 일부러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가 봐.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흑련은 아직 얼떨떨한 듯 살짝 넋이 나간 표정으로 숙소 밖으로 나갔고 기둥에 한차례 머리를 박은 후 모습을 감췄다.
“참……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소녀인데 말이야.”
낮에 봤던 날카로운 눈빛이랑은 정반대의 눈빛.
장조운을 찌를 때의 흑련의 표정은 그야말로 차가움 그 자체였다.
흑련에게 있어서 그것은 본능과도 같은 반응이었겠지만 모용진은 그 본능 자체가 안쓰러웠다.
세상이 평화롭고 힘에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었다면 흑련 같은 어린 소녀가 검을 잡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물론 이건 그녀를 철저하게 부려 먹는 입장에서 모용진이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올 거라고 모용진은 믿고 있었다.
“하아…….”
침상에 드러누운 모용진은 갑자기 싱숭생숭해진 마음에 옛날을 떠올렸다.
천기린이었던 시절.
그가 무림맹주가 되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굶고 배고픈 아이가 없게 만들고 싶어서.
모용진은 어렸을 때 너무나도 가혹한 환경에 놓여 있었고 버려진 아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용진은 그들을 위해 무림맹주가 되고자 했다.
무림인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가 바로 무림맹주였으니까.
하지만 막상 무림맹주가 되고 나니 무림맹주라는 자리는 이름만 거창할 뿐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가진 돈으로 아이들을 구제하려 노력하긴 했으나 중원은 너무나도 넓었고 굶주린 아이들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모용진은 자신이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생각했고 곧바로 무림맹을 절강으로 옮겼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인신매매를 적극적으로 막아 내기 위해.
모용진은 버려진 대다수의 아이들이 납치되는 곳이 하오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주둔지인 절강으로 무림맹을 이전해 싹 쓸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또 실패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절강에 있는 하오문을 모조리 쓸어버려도 중원 어디에서 또 다른 하오문이 계속해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기린은 한때 이런 생각도 했었다.
본인이 천자(天子), 즉 황제가 되면 이 중원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또 막상 된다고 해도 지금과 별반 다름없을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이처럼 천기린은 굳이 따지자면 선한 인간이었다.
그것도 매우 선한 인간.
하지만 그가 광마라고 불리며 악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에겐 자비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못을 저지른 악인이라도 보통의 선인들은 회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하지만 천기린에게는 그런 게 없었고 융통성도 없었다.
그나마 이번생의 삶은 천기린에 비하면 한참 나은 편이었다.
그 융통성에 관해서는 말이다.
하지만 내일의 모용진에게는 그 융통성과 자비가 동시에 없을 예정이었다.
“감히 우리 고양이의 엉덩이를 만져? 나 모용진, 타고난 동물 애호가. 절대 참을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