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3
광마전생 (13)
팽이종과 팽노일이 연무장에서 내려가고.
연무장에는 나와 전악만이 남았다.
비무는 시작되었지만 전악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나를 상대하면서도 신중히 관찰하는 전악의 눈빛.
상대방과 일대일 대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와…….
이 자식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걸?
“야. 너 전악이라고 했지? 너 오늘부터 내 거 해라.”
내 말에 전악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을 뿐, 이에 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내 빈틈을 발견했는지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도를 휘둘렀다.
팽가의 기본 도법, 패전도(覇電刀).
기본 도법치고는 상당히 빠르고 패기가 넘치는 도법으로 힘보단 속도를 중시하는 도법이다.
그만큼 몸이 가벼운 어린아이가 배우기에 좋고 힘도 많이 들어가지 않는 쾌도(快刀).
너무나도 단순한 검로에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도 회피할 수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그의 검을 정면에서 막았다.
그것도 한 손으로.
타악!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이를 악무는 전악,
그의 눈은 충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도 그럴 만하지,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애가 검을 받아 냈을 뿐인데 손목이 얼얼했을 테니 말이야.
나는 여전히 구양절맥을 앓고 있는 병자 신세지만 내공을 더 이상 모으지 못하고 있을 뿐 신체마저 약한 것은 아니었다.
맨손으로 절벽을 오르는 게 말은 참 쉽지만 실제론 아니니까.
열한 살의 나이에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절벽을 오른다?
보통은 불가능한 일이지.
이런 나라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작 열한 살밖에 되지 않는 아이가 맨손으로 절벽을 오를 일도 없고 그게 구양절맥을 앓아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라면 더더욱 그럴 일은 없다.
그만큼 고되고 힘들었지만 나는 매번 이런 보상의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수련을 좋아했다.
남이 더 좋은 수련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걸 뺏어 버릴 만큼.
힘 싸움이 되질 않는다는 걸 깨달은 전악이 도를 빼내려 했지만 나는 그에 맞춰 이동하며 계속해서 힘겨루기를 유도했다.
“아까 들었지? 내 거 하라는 말. 내일부터 모용학관에 나와. 넌 지금 이 순간부터 내 제자니까. 거부권은 없어.”
“크윽…….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전악은 소릴 지르며 검을 쳐내려 했지만 모용진의 검은 단단한 바위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 차이.
고작 열한 살의 상대에게 힘으로 밀린다는 사실에 전악의 얼굴은 살짝 붉어졌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이번 비무에서 지는 사람이 상대방의 제자로 들어가는 거야. 어때? 좋은 제안이지?”
“으아아아압!”
계속 말을 걸어오는 모용진을 향해 기합을 내지르며 다시 한 번 힘을 불어넣는 전악.
일부러 도의 방향까지 틀며 모용진의 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의 검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일부러 검을 뒤로 빼기까지 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달라붙는 모용진.
그리고 어느 순간 전악은 깨달았다.
자신이 연무장의 끝까지 밀려 나와 있었다는 것을.
왠지 농락당한 것만 같은 수치스러움에 전악은 온몸에 힘을 불어넣으며 악을 썼다.
하지만 그 순간 모용진의 검로가 부드럽게 바뀌었고 이에 전악의 몸이 한쪽으로 쏠리며 무게중심을 잃었다.
“내 첫 번째 제자를 다치게 할 순 없지. 내일 진시(辰時)까지 모용학관으로 와라.”
너무나도 쉽게 장외로 떨어진 전악.
연무장은 당연히 침묵에 휩싸였다.
팽노일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팽이종은 당연한 결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이번 비무는 이 점을 먼저 내는 사람이 승리.
하지만 팽노일의 닦달에도 전악은 연무장에 오르지 않았다.
아니, 오르지 못했다.
그 결과가 뻔히 보이기에 전투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것이었다.
“아, 시시하네, 시시해. 하북최강의 소학관이라고 하더니 이름만 번지르르했나. 학관이 영 별로구만.”
모용진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크게 소리를 지르듯 하북소학관을 깎아내렸지만 그 어떤 아이들도 반박하지 못했다.
방금 연무장에 올랐던 전악은 그들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크윽, 이건 무효요! 너무 비겁한 거 아니오? 아이에게 저런 사술을 가르치다니. 모용학관은 아이에게 사파의 것을 가르치는 것이오?!”
사파를 거들먹거리며 씩씩거리는 팽노일.
그의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온통 모용진을 향해 쏠렸다.
“사파? 제가요?”
“그래! 네가 사용한 무공. 사파의 착검마공(着劍魔功) 아니더냐!”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기에 모용진은 진짜로 놀랬다.
그저 검을 붙이고 있었을 뿐인데 사파의 마공이라니.
분명 들어 본 듯한 마공이긴 한데, 난 열한 살의 아이라고?
“팽노일 관주님. 방금 그 말은 함부로 넘겨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방금 하신 말씀에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물론 이에 팽이종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정파 명문세가의 삼공자.
게다가 나는 그에게 있어 팽무악이었으니 팽노일의 ‘사파’라는 발언은 자신의 선조를 능욕하는 것 그 이상이었을 테지.
연무장으로 오른 팽이종의 눈에는 살기마저 어려 있었고 그런 살기에 팽노일이 살짝 움찔했지만 그도 기세를 내뿜으며 연무장에 올라섰다.
“그렇소! 나는 팽가의 팽노일! 내 가문의 이름을 걸고 말할 수 있다오. 저 아이의 무공은 착검마공(着劍魔功)! 내가 산서 지역에서 수련 중일 때 만났던 괴인의 것이 분명하오!”
선을 넘다 못해 박살 내 버린 팽노일.
정말 말도 안 되는 불확실한 것에 팽가의 이름까지 걸어 버린 그에게 잔뜩 분노한 팽이종은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순간 옅은 전음이 그의 귓가로 들려왔고 이에 고개를 돌려 보니 모용진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저자는 감히 가문의 이름을 팔아 사파를 거론했습니다! 이는 절대 좌시할수 없는 일이며 제 이름을 밝혀서라도 저자에게 혼쭐을 내야 합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멈춰야지. 그렇게 되면 결국 너는 내 이름을 팔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모용진의 말에 팽이종은 움찔거리면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라. 나에게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너는 지켜보고만 있어.]모용진의 말에 팽이종은 어쩔 수 없이 검을 밀어 넣었다.
“크크크. 역시 마공이었군! 어쩐지 저런 어린아이에게 우리 전악이가 질 리가 없는데 말이야. 모용학관은 제자에게 마공을 가르쳤으니 곧 팽가에서…….”
“하아. 진짜, 넌 무슨 아까부터 계속 팽가, 팽가 하냐. 엄마 찾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들려오는 거친 반말에 팽노일은 수염을 파르르 떨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반말을 내뱉은 게 바로 모용종이 아닌 모용진이었으니까.
“너 이 자식 또 어른에게 반말을…….!”
“뭘 새삼스럽게 그래? 난 애초부터 너에게 존칭을 쓴 적이 없는데? 그리고 뭐? 어른? 네가 어른이냐? 고작 열한 살짜리한테 마공을 배웠니 뭐니 하는 날도둑 새끼가.”
“어린놈의 새끼가! 혼쭐이 나고 싶은 것이냐!”
분노한 팽노일이 살기를 내뿜으며 모용진을 위협했으나 모용진은 그 살기에 눈도 껌뻑하지 않았다.
오히려 들고 있던 목검을 팽노일에게 향하더니 그대로 그의 이마를 타격했다.
따악!
연무장 위로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딱밤 소리.
목검으로 때린 딱밤인 만큼 그 소리는 더욱 크고 아름다웠다.
“한번 혼내 보시던가. 예? 팽가 양반, 나랑 한판 뜹시다. 내가 직접 마공인지 아닌지 확인시켜 줄 테니까.”
팽노일의 나이는 올해 서른둘.
모용진과의 나이 차이는 무려 세 배에 가까웠다.
그런 아이에게 반말은 물론 딱밤에 비무 신청까지.
이는 설령 선자라고 불리는 무당의 태허 진인이라도 웃으며 넘길 수 없을 것 같은 도발이었다.
상대를 해 준다는 것 자체가 무림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지금 팽노일은 그저 눈앞의 이 꼬맹이를 실컷 두들겨 패 주고 싶었다.
“좋아. 소 도장이 그렇게 원한다면야. 이 몸이 직접 공경심이라는 것을 알려 주지!”
이에 모용진은 미소 지었고 팽이종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이럴 생각까진 없었던 모용진이었다.
그냥 아이들이랑 비무를 하여 모용학관이 하북소학관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걸로 몇 명의 아이들을 꼬셔서 야금야금 한 명씩 하북소학관에서 빼내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마공으로 몰아세우는 팽노일의 한심한 모습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이 아이의 몸으로 살면서 나도 참 많이 유해졌구나. 한 명씩 차근차근 빼내 올 생각을 하다니. 역시 그런 건 나 천기린에게 맞지 않지.’
씩씩거리며 목도를 거머쥔 팽노일을 보며 모용진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하북소학관은 이제 내 거다!’
* * *
연무장에 흐르는 비장한 공기.
하지만 이를 보는 관람석의 아이들은 그저 신났을 뿐이었다.
원래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으니까.
근데 그게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다?
아, 이건 못 참지.
팽노일.
모용진이 봤을 때 그는 일류에도 들지 못했다.
잘 봐 줘도 이류.
이류를 구분하는 법은 생각보다 쉽다.
삼류와 일류는 서로 삼류와 일류인 게 티가 났지만 이류는 그 중간의 애매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러니 그 중간에서 노는 팽노일은 애매한 이류일 거라는 게 모용진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모용진이 비무를 신청한 것이었다.
이류 정도는 외공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이는 팽이종과 모용혁을 직접 지도하면서 얻게 된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팽노일의 검로는 눈에 훤하게 보였다.
“흐압!”
팽노일은 기합을 내지르며 연신 도를 내려찍었지만 모용진은 가볍게 한 발자국씩만 움직이며 그의 공격을 모두 피해 내고 있었다.
‘팽이종과 똑같은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군. 이런 고강한 무공을 이런 잡것한테 배우게 하다니…… 무공이 아깝다, 아까워.’
혼원벽력도는 힘과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세심한 조절도 필요한 무공.
하지만 팽노일은 오직 힘으로 혼원벽력도를 시전하고 있었다.
아니, 그저 따라 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모용진은 실망한 표정으로 팽이종을 돌아봤으며 팽이종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가렸다.
“하아……. 이류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네. 이 정도 수준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던 거냐?”
좋은 걸 많이 먹어서 그런지 힘과 내공은 넘쳐 나지만 그걸 하나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팽노일.
그는 모용진의 말에 발끈하며 더 크게 도를 휘둘렀다.
“피하는 게 고작인 녀석이 말이 많구나!”
후악!
팽노일의 도격에 쓸려 나가는 연무장 위의 모래 먼지들.
확실히 그는 힘은 셌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시시하네.”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모용진.
그를 찾는다고 팽노일이 고개를 돌린 그 순간 하늘에서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다, 멍청아.”
팽노일이 모용진을 발견했을 땐 이미 모용진의 발이 그의 코앞에 와 있었다.
콰직!
코뼈가 박살 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팽노일은 몸의 중심을 잃었고 모용진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슬쩍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팽노일의 얼굴을 밟고 뛰어오른 모용진은 검의 파지법을 바꿔 양손을 반쯤 겹쳐 검을 쥐었다.
“제오초식, 천지일도(天地日刀).”
팽이종이 보란 듯 초식의 이름을 내뱉은 그는 온몸을 뒤틀 듯 허리를 꼬더니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검을 크게 휘둘렀다.
팽무악에게 천지일도(天地日刀)라는 별호가 붙은 이유.
그가 가장 즐겨 사용하던 절기가 하북소학관의 연무장의 위에서 펼쳐졌다.
단순히 베는 것으로 보이지만 전신의 탄력과 힘을 모조리 이용하여 그 힘을 도신에 모두 싣는 천지일도는 몸의 근육을 탄력적이면서도 세세하게 조절해야 했기에 외공 중에서는 매우 익히기 어려운 것이었다.
신공(神功)에는 신(神)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모용진이 펼친 천지일도에는 내공이 전혀 섞이지 않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그의 검에는 신이 깃들어 있었다.
콰득!
쓰러진 팽노일의 머리 바로 옆에 박힌 모용진의 검.
나무로 된 그의 목검은 놀랍게도 연무장의 바닥을 갈라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자. 이래도 내 검술이 마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