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37
광마전생 (137)
섬광과 함께 맹렬하게 몰아치는 한기.
그 한기를 뚫고 튀어나온 설백의 검은 가히 위력적이었다.
콰작!
간발의 차이로 검기를 피한 모용진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날 이렇게 몰아붙인 것은 소저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연이어 이어지는 동작으로 모용진을 베려던 설백의 검은 놀랍게도 그의 코 앞에서 멈춰 섰다.
모용진이 검이 아닌 맨손으로 그녀의 검을 잡아 막아 낸 것이었다.
샛노란 불꽃을 내뿜는 강기를 손에 휘두른 채 설백의 검을 잡아챈 모용진.
하지만 그 광경에 설백은 압도당하기는커녕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내가 중원에 내려온 보람이 있지!”
그렇게 말한 설백의 검 역시 새하얀 검강으로 뒤덮이더니 잡고 있는 모용진의 손가락을 벗어나려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모용진이 한 손으로 잡은 거라고 하지만 지금 설백의 힘이 그를 앞서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힘에 모용진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왜냐하면 설백은 모용진에게도 오랜만에 마주한 호적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온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인 자와 검을 나누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카앙!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설백의 검을 쳐 낸 모용진은 그대로 두 바퀴 정도 공중제비를 돌며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설백이 다시 모용진을 향해 붙으려 달려들었는데 모용진이 황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소저, 잠깐만 제 말을 들어 주시지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 대결을 멈추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설백은 제자리에 멈춰 서더니 말해 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대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뭐가 말하고 싶은 것이지?”
설백이 모용진의 말을 들어 준 것은 놀랍게도 그녀가 모용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일단 제가 소저를 깔보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실제로 여성을 먼저 패진 않습니다. 물론 상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으나 이건 제가 기본적으로 지켜 왔던 신념이기에 이 자리에서 쉽게 꺾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내가 여자라서 공격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런 거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라는 말에 그럼 무슨 뜻이냐는 듯 설백이 모용진을 쳐다보자 모용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먼저 때리지만 않는다는 것이지 안 팬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제가 소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반격은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방어만 하다가 끝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모용진의 도발 아닌 도발에 백설의 미간이 움찔거리더니 그녀의 몸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널 벨 수 없다는 말이냐?”
“굳이 말하자면 그렇죠? 그래서 제가 소저에게 먼저 허락을 받고자 하는 겁니다. 제가 먼저 공격을 해도 될지.”
“그럼 방금 전의 내 공격들은 공격이 아니었단 뜻이군.”
“이렇다 할 유효타가 없었지 않았습니까? 제가 모두 막아 내었으니.”
모용진의 말에 백설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살기가 몇 배는 더 거세졌고 거리의 분위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좋다. 허가하지. 대신…….”
그 순간 설백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모용진의 앞에서 나타났다.
“내 검에서 자비를 찾으려 하지 마라.”
“감사합니다.”
하지만 모용진 역시 어느새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모처럼의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군요.”
어느새 검을 뒤로 돌린 설백의 검과 모용진의 검이 맞부딪쳤고 큰 충격파와 함께 둘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새하얗게 빛나는 냉기를 두른 검강과 붉게 빛나는 화염을 두른 검강.
다른 성질을 가진 두 개의 검강이 그 크기를 키우더니 둘은 동시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허공에서 울려 퍼지는 폭음.
화경과 화경의 진검 대결.
그것은 이미 인간을 초월한 자들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폭발과도 같은 것이었다.
둘의 대결을 본 구경꾼들 중에 그들의 몸놀림을 눈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일방적인 설백의 공격으로 맞부딪치던 둘은 설백이 한빙면장(寒氷綿掌)을 사용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장법에 모용진의 머리카락의 끝이 얼어붙으며 처음으로 공격을 허용한 것이었다.
그래 봤자 머리카락이었지만 유효타는 유효타였고 이에 설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 대도 안 맞을 것처럼 굴더니 실망이군. 설마 이것도 유효타가 아니라는 변명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역시 소저는 재밌는 분이군요.”
그렇게 말하는 모용진은 어느새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코로 그 향기를 맡고 있었다.
“머리카락 정도야. 원한다면 언제든지.”
자신이 힘겹게 머리카락을 맞췄는데 모용진은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머리를 탐해 버리자 그녀의 동공이 커지며 더 맹렬한 한기를 흩뿌렸다.
슈아악!
엄청난 기세로 휘둘러지는 검강.
이번에 내뻗은 그녀의 검강은 완전 진심이었다.
왜냐하면 방금 모용진이 머리카락을 노리지 않고 그냥 검을 찔러 넣었다면 분명 설백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으니까.
짧은 방심이 불러온 치명적인 실수.
완전히 돌변한 그녀의 두 눈엔 더 이상 빈틈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인정하고 만 것이었다.
모용진의 알 수 없는 저 강함을.
진심으로 내민 설백의 검은 모용진조차 쉽사리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검강으로 방어했지만 무려 삼 장이나 미끌어지듯 밀려나야 했다.
“후우…….”
확실히 백설은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성 대사나 청화 진인과 같은 놈들과 같은 급은 아니었다.
“성아라 붙으면 비등비등하려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단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성아나 화령이 강한 이유는 흡성공(吸成功)을 익혔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설백은 한기를 흩뿌리는 무공의 수준을 봤을 때 순수한 자신의 힘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놀라울 정도로 경험이 많은 듯했다.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저 나이에 저런 강함을 가지고 있는 거지?”
혼잣말로 질문을 던지는 모용진이었지만 사실 그는 그 대답 역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은 자신과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모용진을 향해 날아오는 설백.
그녀는 놀랍게도 허공에서 뭔가를 밟고 방향을 틀더니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채 모용진의 주변을 엄청난 속도로 날며 돌기 시작했다.
마치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허공답보(虛空踏步)와 같았지만 사실 그녀는 한기를 이용해 공기 중의 작은 수분을 얼려 그것을 밟고 이동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모용진 또한 금세 눈치챘고 그는 실로 감탄했다.
이는 모용진이 전혀 해 보지 못한 새로운 발상이었고 크나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용진은 방심하지 않았다.
모용진의 혼을 빼놓듯 허공을 돌던 설백은 사각을 발견하자마자 그곳을 향해 재빠르게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은 모용진의 함정이었다.
모용진의 몸이 회전하는 것을 보며 설백은 아차 싶었지만 어느새 모용진의 손은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있었다.
“재미있었습니다, 소저.”
쾅!
* * *
다음 날.
뒤통수가 엄청나게 아려 오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뜬 설백.
그녀가 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나무로 된 천장과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빙월의 얼굴이었다.
“깨어나셨군요, 공주님!”
눈에 눈물까지 맺힌 빙월이 그녀를 껴안자 설백은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나지막하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졌구나.”
“네.”
솔직 담백한 빙월의 대답에 설백은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다시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의 마지막 목소리.
“재미있었습니다, 소저.”
어제의 패배는 사실상 그녀의 첫 패배와 다름이 없었다.
난생처음 패배를 경험한 그녀는 잠시 천장을 쳐다보더니 빙월을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처음으로 패배했지만 이상하게 분하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머리는 냉철하게 식어 있었다.
“첫 패배…….”
설백은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그러자 마치 아직도 검을 쥐고 있는 듯한 감각과 함께 그 사내의 얼굴이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녀는 그에게서 난생처음 압도적인 강함을 느꼈다.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공성 대사를 마주했을 때도 이런 강함은 느껴 보지 못한 그녀였다.
마치 자신이 무엇을 해도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
그 거대한 벽을 보며 숨이 멎을 듯한 압박감을 느꼈지만 그것은 맨 마지막의, 아주 찰나의 순간에 겪은 일이었다.
“한 번 더 느껴 보고 싶어.”
이상하게도 그녀는 그 벽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자신도 그러한 벽을 가지고 싶었고 그의 몸짓이 무공이 탐이 났다.
“한 번만 더…… 아니, 계속…….”
순간 그녀는 가슴속에 불이 지펴지는 느낌을 받았고 전신의 생기가 마구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설백을 바라보는 빙월도 느끼고 있었다.
매일 차가운 느낌만 내뿜던 설백에게서 이상한 온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빙월아, 어제 그 사람은 그 뒤로 어떻게 했지?”
“죄송합니다. 저희가 막았어야 했는데 차마…….”
“아니, 그건 됐고. 그는 어떻게 됐냐는 말이다.”
설백의 질문에 빙월은 어제 그녀가 쓰러진 후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공주님이 기절하시고 난 후 저희들을 호출해 공주님을 챙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청룡학관의 관주를 데리고 사라졌고 잠시 뒤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그를 찾으러 왔습니다.”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그가 어디로 갔냐는 것이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공주님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정신이 없어 다른 정황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럼 그 사람의 이름은? 아니면 아무런 정보도 알지 못하였느냐?”
“뒤에 찾아온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이여립’이라는 자를 찾긴 했습니다만…….”
“이여립…… 이여립이라.”
모용진의 가명을 듣고 설백은 기뻐하는 듯했고 그 모습에 빙월의 눈이 크게 떠졌다.
“공주님, 설마……?”
“응? 왜 그러느냐?”
얼굴을 붉게 물들인 홍조와 어쩔 줄 몰라 하며 마구 움직이는 손가락.
빙월이 보기에 지금 설백의 모습은 마치 사랑에 빠진 여자와도 같았다.
황급히 설백의 양어깨를 붙잡은 빙월이 그녀의 몸을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공주님! 혹시 어제 그분을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응? 어떻다니…… 뭐가…….?”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막 떨리고, 막……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빙월의 말에 설백이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더니 머릿속에 모용진의 모습을 떠올렸고 자신의 볼과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막 쿵쾅쿵쾅거려요? 얼굴에도 열이 오르고?!”
“음, 그런 것 같은데……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 너답지 않게 흥분해서는…….”
설백의 말에 빙월이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어깨를 잡은 두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공주님! 그게 사랑이에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