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39
광마전생 (139)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익숙한 느낌과 말투 그리고 가벼운 듯 무거운 행동거지까지.
하지만 그 왕원장이 천기린이 아님이 확실하다고 했기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또 다른 답안이 있었다.
바로 천기린의 유지를 이은 제자.
그렇다면 자신이 그를 보며 여태껏 느꼈던 모든 것들이 이해가 갔다.
천기린이라면 학을 떼는 공성 대사였기에 그와 비슷한 이여립의 모습에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천기린의 제자 천기열. 갑자기 사라져 행방을 알 수는 없지만, 만일 그놈이 살아 있었다면 저만한 제자가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군.”
공성 대사는 그동안 이여립에 대해 품었던 의문들이 모조리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화신공과 초월권을 익힌 열화존자의 후계자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솔직히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여립을 만들어 낼 정도로 실력이 있다면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무림인으로선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만일 그 이화신공과 초열권을 가르쳐 준 이가 천기린의 제자 천기열이라면?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천기열은 쫓기는 몸이었으니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며 그 무공들 또한 천기린이라면 충분히 제자에게 남겨 줬을 가능성이 높았다.
천기린은 공성 대사조차 얻어 내지 못한 소림의 비기인 ‘역근경(易筋經)’까지 알고 있었으니까.
이화신공 정도의 무공은 애초에 알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물론 이는 공성 대사의 착각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모용진의 계략이기도 했다.
왕원장으로 인하여 공성 대사는 모용진이 천기린이 아니라고 알고 있을 테니 그가 기린구타권법을 사용한다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생각할 거라 예측했고 이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자신이 모용진의 계략에 그대로 끌려가는 줄도 모르는 채 공성 대사는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천기린의 유지를 이은 아이라…… 크크크.”
천기린을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욕이 튀어나올 것 같았던 공성 대사였지만 그의 유지를 이은 제자를 자신의 손 위에 놓고 굴릴 생각을 하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거 재미있겠는걸?”
웃음을 감추지 못한 공성 대사는 무대 위의 모용진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이제 그의 마음속에서 저울질하던 이여립에 대한 고민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저울은 이미 이여립을 자신에 아래에 두는 것으로 크게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말리는 청화 진인과 태허 진인의 손길에 미처 다 웃지 못하고 웃음을 멈춰야만 했다.
지금 장조운이 처절하게 얻어터지는 중이었는데 그사이 공성 대사가 계속 웃고 있었다라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두 장문인의 만류에 공성 대사는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며 눈을 감더니 불호를 외웠다.
“큼, 제가 잠시 결례를 범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모용진의 주먹질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고 이에 관중의 눈치를 보던 팽노악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대 위에 올라오더니 황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다.
“이여립 대협! 이제 그만…… 컥!”
그러다 모용진의 주먹에 얼굴을 가격당한 팽노악은 그대로 바닥을 굴렀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란 모용진이 그제야 주먹을 멈췄다.
“엇, 괜찮으십니까?”
모용진은 황급히 팽노악에게 달려가 그를 일으켜 세웠고 다행히도 그가 빠르게 호신강기를 펼친 덕분인지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대협. 갑자기 제가 끼어든 것이니까요. 그것보다 장조운 대협은…….”
팽노악이 쓰러져 있을 장조운을 보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놀랍게도 장조운은 선 채로 기절해 있었던 것이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는 기묘하게 균형을 잡고 자리에 서 있었다.
사신무의 결승전은 결국 장조운의 경기 속행 불가로 모용진의 승리로 끝이 났다.
경기가 끝나고 사람들의 이여립에 대한 평가는 반으로 나뉘었다.
한쪽은 ‘정당한 경기였고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여립이 제압하였다’라는 것이었고 다른 쪽은 ‘충분히 빠르고 간결하게 끝낼 수 있는 경기였는데 이여립이 악랄하고 집요하게 장조운을 괴롭혔다’라는 평가였다.
그런데 그저 평가가 반으로 나뉘었을 뿐 앞선 모용진의 폭탄 발언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여립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무림맹으로 수많은 진정서를 보내었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청룡학관’과 ‘청룡관주’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실시하라는 것이었다.
선 채로 기절했던 장조운은 경기가 끝나고 정확하게 한 시진 뒤에 깨어났다.
하지만 정신만 깨어났을 뿐 그의 몸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고 얼굴은 팅팅 부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만일장원에 마련된 임시 약원에 누워 있던 그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다가와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원래라면 전신의 뼈를 죄다 박살 내려 했지만 이걸로 참아 줄 테니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모용진이었다.
꽈드득!
그는 잡고 있던 장조운의 손을 쥐어짜듯 강하게 힘을 주었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장조운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으으읍!”
하지만 여태껏 고통에 계속 비명을 지르던 장조운의 입에는 이미 재갈이 물려 있었고 그로 인해 약원의 누구도 그 소리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이건 감히 흑묘의 엉덩이를 만진 벌이다. 앞으론 남의 것을 만질 때는 오늘을 꼭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야.”
장조운은 또 기절한 듯 축 늘어졌고 모용진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뒤를 은밀하게 뒤쫓고 있는 자가 있었고, 모용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장원을 빠져나간 그는 재빠르게 은월신보를 밟으며 건물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그를 뒤쫓는 이들도 만만치 않았고 어느새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자 모용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멈춰섰다.
“하아, 제가 졌습니다. 그만 나오시죠.”
모용진의 말에 건물 사이사이에서 나오는 세 명의 사람.
그들은 바로 설백과 그녀의 수행원인 빙월, 빙혼이었다.
이미 누가 따라오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모용진은 귀찮다는 듯 목 뒤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오늘 사신무의 결승전을 보셨다면 아셨을 텐데요. 제가 왜 그를 데리고 가려고 했는지. 만일 어제 있었던 일에 사과를 받기 원하신다면 저는 하지 않을 겁니다. 정당한 승부였고 그 결과 제가 이겼을 뿐이니까요.”
“난 그대에게 사과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어제의 일도 이제는 이해하고 있고 그 승부의 결과에 불복하지도 않는다.”
“그럼 뭐 때문에 이리 뒤를 밟으시는 겁니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모용진의 물음에 설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모용진을 향해 검을 빼 들었다.
“나와 다시 승부해 다오. 나는 지금 그대와 검을 나누고 싶다.”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갑자기 설백이 검을 꺼내 들자 주변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지만 설백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모용진은 곤란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더니 설백의 검을 잡아 내렸다.
“소저,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검은 집어넣으시죠. 자칫 잘못하면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백은 모용진의 말보다는 검을 잡은 그의 손에 눈이 가고 있었다.
‘분명 피하려 했는데…….’
모용진이 검을 잡으려던 순간 설백은 살짝 검을 뒤로 빼며 그의 손길을 피하려 했는데 놀랍게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모용진은 검날을 쉽게 잡았다.
그 광경에 정신이 팔린 설백은 멍하니 모용진의 손을 쳐다보고 있었고 설백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은 모용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모용진의 상대해 준다는 말에 설백이 눈을 빛내며 한 발자국 더 다가오자 그는 깜짝 놀라서며 물러서고 말았다.
여태껏 싸늘하던 그 아름다운 얼굴이 해맑은 미소와 함께 다가오자 덜컥 놀라고 만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어제도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와 지금의 미소는 달랐다.
어제의 미소가 살인자에게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오늘의 미소는 천진난만한 소녀의 것이었으니까.
“그럼 지금 바로 할까? 난 언제라도 준비되어 있어.”
사람이 많은 이 거리에서 바로 비무를 할 준비를 하는 설백을 보며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깨달은 모용진이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일단 진정하시죠, 소저. 우선 대화가 먼저입니다. 대화를 먼저 나눈 다음 비무를 하시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고작 검을 나누는 것인데”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소저는 저 위쪽에서 오신 분 같으니 국가적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소저는 이미 저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 듯하나 저는 소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이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음…… 그런가?”
다행히도 설백은 모용진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설백이 고개를 돌려 빙월을 쳐다보자 빙월 역시 눈을 번쩍이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저분들은 왜 저런 눈빛으로 보시는 거지?’
묘하게 호의적으로 느껴지는 빙월의 눈빛과 묘하게 경계하는 듯한 빙혼의 눈길을 동시에 받으며 모용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랑 간단하게 대화라도 나누시겠습니까?”
모용진의 말에 설백은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다시 검집에 밀어 넣었다.
“좋아. 그러지.”
“그럼 여긴 조금 사람도 많고 시끄러우니 가까운 곳에 제가 머무는 숙소가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설백은 앞장서라는 듯 모용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모용진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가슴에 안고 걸음을 옮겼다.
‘아, 왠지 불안한데……. 예감이 좋지 않아.’
* * *
낙양의 동쪽에 위치한 하남석가장 낙양 지부.
그곳은 지금 장주의 방문으로 매일매일이 전쟁통과 다름이 없었다.
왜냐하면 석산우에게는 한 가지 취미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방문하는 지부들을 뒤집어 놓는 것이었다.
철전 쪼가리 하나부터 시작해서 전표까지 모조리 살펴보는 그는 장부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불같이 화를 냈고 모든 걸 뒤엎어 버렸기에 항상 그가 방문하는 지부는 매일을 전전긍긍하며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석가장의 사람들은 석산우를 은연중에 이런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전지광견(錢之狂犬).
말 그대로 돈에 미친 개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석가장의 돈은 투명하게 석산우의 손으로 모여들고 있었고 사실 그 덕분에 이렇게 석가장이 크게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방금 막 사신무를 관람하고 저녁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잠시 쉬러 지부로 돌아온 석산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장부를 쌓아 두곤 꼬투리 잡을 게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이게 쉬는 거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석산우에게는 이것보다 더 좋은 휴식이 없었다.
그렇게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 눈을 크게 뜨고 장부를 보고 있는 석산우의 등 뒤로 큰 소리가 나더니 그가 있던 방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누구냐! 장주가 있는 방에 이렇게 무례하게 찾아온 놈은.”
“죄…… 죄송합니다. 하아, 하아…… 지금 큰일이 생겨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장주님께 달려왔습니다.”
“큰일? 말해 보거라.”
석산우는 만일 시시한 것이라면 죽여 버려야겠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면서도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았었는데, 잠시 후 그 부하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장부를 놓치고 말았다.
“뭐라고……? 다시 말해 보거라…….”
믿기지 않는다는 석산우의 대답에 온몸을 땀으로 적신 그의 부하가 크게 소리쳤다.
“호북 무한의 무한석가장이 알 수 없는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보관하고 있던 물건과 건물들이 모조리 불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