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4
광마전생 (14)
하북소학관은 그렇게 사라졌다.
진짜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관주가 고작 열한 살의 아이에게 패배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이는 소문이 아닌 진실이란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팽가이기에 쉬쉬하며 넘어갔다.
“팽가에서 계고장이 내려왔습니다. 진짜로 철수하네요, 하북소학관. 알아본 바로는 후의 계획도 없다고 합니다.”
“장로들은? 모용세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고 하던데, 가만히 있던가.”
“아마 그쪽은 지금 다른 일로 바빠서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겁니다. 팽노일 그 자식도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할 테고요. 아아, 그때만 상상하면 아직도 전신에 소름이 돋는 느낌입니다. 목검에 신이 깃들다니.”
천지일도를 보여 준 이후 팽이종의 충성도는 남다르게 올라가 있었다.
하긴, 순수 외공으로 ‘신검’의 경지를 보여 줬으니…….
사실 그건 모용진의 예상 밖의 일이었다.
대충 ‘내가 이걸 펼칠 줄 안다!’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는데 그 과정에서 외공 극의의 형태가 나와 버렸으니…….
사실 천기린의 입장에서 신검의 경지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무공에 미쳤던 그는 대부분의 무공의 원리를 깊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어떤 무공이든 조금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깃드는 경지를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의 몸으로 그걸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만큼 몸에 익힌 경험과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은 모용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무리하게 펼친 천지일도로 인해 모용진은 열흘 넘게 병상에 드러누워야 했고 완전히 낫는 데는 한 달 가까이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팽이종은 의심하지 않았다.
몸이 아직 어려서 그 힘을 모두 받아내지 못한다는 변명에 쉽게 납득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놈이 우리 아버지의 눈을 그렇게 만든 놈인 줄 알았으면 볼기짝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엉덩이를 차 버렸어야 했는데.”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오줌을 지렸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 굴욕에다가 사업 철폐로 인해 가문에 끼친 피해도 고스란히 안아야 하니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그래도 조부님의 손주 아닙니까.”
“쳇.”
이럴 땐 자신의 가면이 팽무악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용진이었다.
“난 그런 손주 둔 적 없다. 그리고 너, 내가 수련할 땐 사부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예, 사부님. 죄송합니다!”
팽노일과 비무를 벌인 지 벌써 세 달이 지난 지금.
모용학관은 여태껏 없었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정소촌의 아이들은 물론 옆 마을에서도 소문을 듣고 아이들을 맡기는 부모들이 있을 정도였다.
모용진은 팽이종의 등 위에 앉아 아버지 모용혁의 아래에서 수련받고 있는 생도들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생각보다 후학을 기르는 것도 재미가 있구나.”
“하하. 제가 이래 봬도 한땐 기재라고 불리던…….”
“너 말고, 인마. 저기 애들. 특히 전악이는 참 마음에 든단 말이지.”
“하긴…… 제가 봐도 전악은 싹수가 보이긴 합니다. 영진이와 초열이도 나쁘지 않고요.”
지금 모용학관의 선생님은 세 명이었다.
팽이종은 내공심법과 내기를 다스리는 법을.
모용혁은 무공과 무림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마지막으로 모용진 역시 선생님이었는데, 그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오직…….
‘체력 단련’뿐이었다.
“아버지! 이제 제 시간입니다!”
모용진의 부름에 모용혁이 고개를 들자 황급히 모용혁에게 달라붙는 아이들.
“어허, 이것들 봐라…….”
그 이유는 간단했다.
모용진의 체력 단련이 너무나도 가혹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입장에서 힘든 게 싫은 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모용혁은 애써 애들을 떼어 내고 모용진에게 다가왔다.
“크흠……. 그럼 아비는 잠시 쉬러…….”
“쉬다니요, 아버지. 아버지도 이제 시작이신데요. 어젯밤에 제가 알려 드린 초식은 완벽하게 몸에 익히셨겠죠? 오늘 밤에 제가 직접 검사할 테니 완벽하게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아시죠? 불합격은 마보 여섯 시진인 거.”
마보라는 말에 모용혁의 몸이 경기를 일으키듯 움찔거리더니 모용혁은 알았다며 곧바로 개인 연무장을 향했다.
하북소학관을 박살 낸 이후 모용진은 아버지 모용혁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천기린의 아버지인데 어디 가서 두들겨 맞는 건 원치 않았던 그는 모용혁에게 절악도(絶惡刀)와 열화신공(熱火神功)을 전수 중이었다.
절악도는 천기린이 직접 만든 도법으로 여러 도법에서 괜찮은 걸 따 와 대충 만든 것이었다.
열화신공은 알다시피 천기린이 만들고 사용 중인 내공심법으로 구양절맥의 몸을 가진 모용진도 운기가 가능할 정도로 쉬웠다.
그 원형이 되는 이화신공(離火神功)의 난이도가 최악인 걸 감안했을 때 천기린이 얼마나 천재인지를 알 수 있는 신공이 바로 열화신공이었다.
정박 본인은 잘 모르지만 무림에 이 신공이 알려진다면 혈겁 사태가 벌어질 수 있을 정도.
그런데 그런 내공심법을 모용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모용혁과 모용학관의 생도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걸 굳이 거대 문파에 비교하자면 화산파에서 장문인만 배울 수 있다는 ‘자하신공(紫霞神功)’을 속가제자의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절악도 역시 마찬가지.
지금은 모용혁만 익히고 있었지만 모용혁이 절악도를 가르칠 수준이 된다면 생도들에게도 전수할 생각이었다.
“역시 사부님은 아버지에게도 엄격하시네요. 어쩐지 저희 아버지께서도 조부님 이야기만 나오면 흠칫하시는 게…….”
“팽여운 말이냐? 흐음…… 딱히 엄격했던 기억은 없는데.”
당연히 모용진은 팽여운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애초에 무공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그의 손에 죽은 팽무악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그였다.
그저 들키지 않기 위해 팽이종에게 맞춰 주는 것뿐.
모용진은 팽이종에겐 딱히 열화신공을 전수하지 않았다.
팽이종도 흥미를 보이긴 했지만, 그에겐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가 우선이었고 그가 익히고 있는 혼원벽력신공(混元霹靂神功)도 뛰어난 신공이었으니까.
“그럼 난 제자들이랑 뛰고 올 테니 다녀올 때까지 게을리하지 말아라.”
“예, 사부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팽이종을 뒤로한 채 모용진이 수련 생도들을 향해 다가가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생도들이 미친 듯이 달려와 오와 열을 맞춰 서기 시작했다.
마치 잘 훈련된 병사처럼 움직인 생도들은 모용진을 보며 침을 삼키고 있었다.
‘오늘은…… 제발…….’
‘천지신명이시여, 제 목숨을 굽어살피시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이들이 이렇게 공포에 떠는 이유는 모용진의 체력 단련 시간이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왜 그들이 학관을 그만두지 못하냐면 그것도 모용진 때문이었다.
그들에겐 모용진은 공포 그 자체였고 그의 입에서 나온 ‘도망가면 죽는다’라는 말이 전혀 가볍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 그럼 오늘도 가볍게 등산부터 시작해 볼까?”
* * *
모용진과의 등산.
말이 등산이지 이건 그냥 달리기였다.
체력 단련을 할 수 있는 드넓은 평원까지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하는 지옥의 행군.
물론 속도가 엄청 빠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멈추지 못한다는 것.
열두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도 있었기에 힘들면 지쳐 쓰러질 법도 했지만 그들은 지쳐 쓰러지는 것보단 뒤따라오는 모용진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렇게 모용진을 무서워하며 달린 지 일 년
이 년.
삼 년.
사 년.
사 년이란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그 사 년이라는 시간 만에 아이들은 바뀌어 있었다.
오와 열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달려가는 아이들.
가장 나이가 어렸던 열두 살의 항이조차 열여섯 살이 된 지금.
아이들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가장 앞에서 달려가는 전악은 근육질의 듬직한 사내가 되어 있었고 그 뒤를 바로 뒤따르는 영주라는 여자아이는 한창 물오른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뒤를 따르는 영진과 초열도 듬직한 사내로 자라 누가 봐도 믿음직한 무림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맨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그’만이 오직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사 년이 지나 십오 세가 된 모용진.
하지만 그는 아직도 구양절맥을 치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키는 거의 자라지 않아 오 척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겉으로 보이는 체형 역시 거의 그대로였다.
이젠 모용진이 닦달하지 않아도 알아서 산 위까지 잘 올라가는 아이들을 보며 모용진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녀석들, 이제 잘 뛰는구만.”
뒤를 내려다보자 모용혁과 팽이종이 이끄는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들도 기를 쓰고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 이후로 모용학관은 별 탈 없이 계속 상승세를 타 점점 그 세를 늘려 가고 있었다.
이제 정소촌을 넘어 멀리 떨어진 마을에도 소문이 돌아 아이를 데려올 정도였다.
이렇게 모용학관이 잘된 이유는 바로 모용진이 아닌 전악 때문이었다.
부모를 도와 산삼을 캐던 전악이 우연찮게 도적을 만난 귀인을 구하였는데 그 귀인이 바로 석가장의 막내딸이었다.
석가장은 하북에 위치한 가문 중 하나로 하북의 무(武)가 팽가라면 하북의 금(金)은 석가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유한 가문이었다.
자신의 막내딸을 구했다는 소식에 석가장에서는 전악을 찾아가 감사를 표했고 그를 보자마자 석가장의 호위 무사로 고용하려 했다.
당연히 삼을 캐고 살던 일개 평민인 전악이 이를 거부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전악이 석가장에 당당히 고용되었다는 말과 모용학관이 석가장과의 연줄이 트였다는 말이 나돌았다.
실제로 모용진은 석가장과 안면을 텄고 모용학관은 석가장을 배후로 두고 무시무시하게 성장했다.
모용학관에 입학하기 위한 학관이 새로 생길 정도.
어느새 모용학관은 정소촌의 중심이 되어 세간엔 정소촌은 몰라도 모용학관은 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렇게 겹경사에 힘입어 모용학관을 크게 키우고 돈도 마구 쓸어 모은 모용진이었지만 그는 아직도 구양절맥을 치료하지 못했다.
왜?
영약이 없어서!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씨가 마른 수준.
옛날엔 자주 보이던 하수오(何首烏)조차 이젠 시장에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팽이종에게 대놓고 부탁하기까지 했으나 그 명문세가인 팽가 역시 일반 단환들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 상황.
석가장에게 부탁해 겨우겨우 천년설삼(千年雪蔘)을 구하기도 했으나 이미 십오 년 가까이 쌓인 어마어마한 양기는 그 정도로 치유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스승님.”
절벽을 통해 먼저 올라와 쉬고 있던 모용진의 등 뒤로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 년 전 모용진과 비무를 했고 이제는 제자가 된 전악이었다.
그는 다른 아이들을 따돌린 채 먼저 도착한 것이었다.
“이제 좀 잘 쓰네, 은월신보(隱月迅步). 전엔 뒤에서 전쟁이 나는 줄 알았었는데 말이야.”
전혀 들리지 않았던 전악의 발소리.
제자의 성장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던 모용진이었다.
발걸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는 건 그가 가르친 제자가 이미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소리기도 했으니까.
“다 스승님 덕분입니다.”
“그래서 왜. 네가 애들을 따돌리고 먼저 온 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거 아냐?”
“옙. 내일이 제 생일 되는 날입니다.”
“그래? 벌써 그렇게 됐나…….”
석가장에 고용된 전악이 아직 모용학관에 있었던 이유.
그건 전악이 약관이 되는 생일까지는 학관에 남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악은 아직 부족한 게 많다며 모용진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했고 석가장은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야, 전악.”
“예, 스승님.”
“그 채이랑은 잘돼 가냐?”
채이라는 말에 전악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채이는 바로 전악이 구해 준 석가장 셋째딸이었기 때문이다.
“잘돼 가나 보네. 조심해라. 석산우, 그 인간 보통 아니거든.”
“아닙니다. 제 주제에 무슨……. 아 참, 그러고 보니 어르신이 스승님을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응? 석산우가 날? 걔가 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빙정(氷晶)’이라고 하면…….”
“빙정(氷晶)!”
빙정이라는 말에 모용진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전악은 본능적으로 두 팔을 들고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을 본 모용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너 뭐 하냐?”
“아, 또 때리시는 줄 알고……. 하핫…….”
얼마나 많이 맞았으면 방어 자세가 먼저 튀어나오는 전악이었다.
“너 석가장 가서도 그러면 안 된다? 아무나에게 쫄고 그러면, 엉?”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스승님도 아니고 아무나한테…….”
“하여튼, 내 이름 팔리는 순간 찾아갈 테니까, 어? 내가 찾아가는 순간 넌 뒈지는 거야.”
위협 같지 않은…… 아니, 그냥 위협으로 떠나는 제자를 응원한 모용진은 전악을 돌려보내고 홀로 주먹을 꽉 쥐었다.
‘빙정(氷晶)이라 함은 그 북해빙궁北海氷宮)의 만년빙정(萬年氷晶)! 내가 이 거지 같은 구양절맥에서 벗어날 때가 드디어 찾아왔구나!’
구양절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절벽 아래를 바라보는 모용진.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제자들의 눈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아…… 오늘 또 오지게 처맞겠구나…….’
대체 제자들을 얼마나 때린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