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44
광마전생 (144)
29장
그날 저녁.
모용진은 홀로 숙소를 나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바람 쐬러 나온 것은 아니었고 거리의 분위기를 확인하는 겸 오늘 새로운 인맥을 쌓아 둘 생각이었다.
“여기도 무림인, 저기도 무림인. 온통 무림인 판이구만…….”
거리의 분위기는 수많은 사람들로 활기차 보였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활기차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호제에 참가하기 위해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낙양에 몰려들었고 하필이면 사신무가 끝나자마자 진행되었기에 거리는 온통 무림인들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림인들이 많으면 일반인들은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말이 무림인이지 그들에게는 무기를 들고 있는 무서운 사람일 뿐이니까.
또 무림인은 무림인 나름대로 저들끼리 경계하고 있었기에 사람으로 가득한 거리가 이토록 무거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보자, 어디 재미있는 놈 없으려나…….”
모용진은 딱히 누굴 정해 놓고 인맥을 넓히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발길 가는 대로 최대한 싸가지가 없는 놈들로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객잔을 기웃거리던 모용진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어?”
제갈중화.
그녀가 객잔에서 수많은 이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연인지 제갈중화도 모용진을 발견하고 눈이 맞았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애써 보지 못한 척 고개를 돌렸다.
“음……? 뭐지? 괜히 신경 쓰이네.”
그녀와 함께 앉아 있는 이들은 옷차림으로 봐서는 대충 용봉지회의 사룡삼봉(四龍三鳳)으로 보였다.
사룡삼봉이란 이름이 제법 그럴듯했지만 모용진이 보기엔 그냥 잘사는 애들의 모임 정도였다.
그 잘사는 애들 중에서 용봉지회에서 특출난 뭔가를 보여 준 애들이 바로 사룡삼봉이었으니까.
하지만 모용진이 찾고자 하는 인맥은 저런 애송이들이 아니었다.
통합무림에 깊게 관여되어 있을 법한 정파의 고수.
이왕이면 사파인데 정파의 탈을 쓴 그런 고수를 찾고 있었다.
물론 모용진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운이 좋으면 만나겠거니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렇게 제갈중화가 있는 전각을 지나치려는 그때 갑자기 객잔 안에서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전각 바깥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지금 뭐라고 한 것이냐!”
불구경보다 더 재밌다는 싸움 구경.
‘아, 이건 못 참지.’
곧바로 현란한 뒷걸음으로 되돌아온 모용진의 눈에 두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이 비쳤다.
박살 난 식탁과 엎어진 음식 사이로 마주 보고 있는 두 남성.
놀랍게도 그들은 모용진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창월단의 악비와 낙화단의 황보구일? 같은 무림맹 소속의 놈들이 갑자기 왜?’
창월단(彰月團)과 낙화단(落花團).
둘 다 무림맹 소속의 단체였고 악비와 황보구일은 각각 그 단의 단주들이었다.
이미 무림맹에 관한 정보는 모두 머리에 박혀 있었던 모용진이었기에 무림맹에서 가장 큰 두 개의 단을 모를 리가 없었다.
특히 악비의 경우 저번에 잠시 얼굴을 본 적도 있었다.
물론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흠. 우리 창월단의 단주께선 귀가 좋지 않은 건가? 그리고 기권하라는 것이 이렇게 화를 낼 일은 아니지 않은가?”
“뭐?”
“난 그저 우리 창월단의 단주가 크게 다칠까 봐 걱정이 돼서 그러지. 이제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아드님이 자신의 수준도 모른 채 무호제에 나갔다가 봉변이라도 당한다면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하겠나. 이제 그대가 악가(岳家)의 유일한 희망 아닌가?”
대놓고 도발하는 황보구일의 말에 악비는 창을 꺼내 들었고 그런 그의 모습에 황보구일은 오히려 더 불을 지피듯 마구 손을 내저었다.
“아니아니아니, 싸우자는 의미가 아닐세. 내가 감히 어떻게 우리 악가의 마지막 남은 희망을 짓밟겠는가.”
선을 넘은 농락.
이는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참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었고 악비의 몸에서는 엄청난 살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호오?’
그런데 놀랍게도 악비는 창만 꺼내 들었을 뿐 황보구일을 향해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살기를 흩뿌리던 그는 놀랍게도 창을 거두더니 그대로 고개를 돌려 객잔을 나가고 있었다.
“또 도망치는군. 결국 그렇게 도망만 칠 것을 객잔에 피해는 왜 주고 그러나. 하여간 창월단의 단주가 저러하니 단원들도 그 꼬라지지.”
끝까지 비아냥대는 황보구일.
모용진은 그 둘의 모습을 보며 순간 고민에 빠졌다.
저 싸가지 없는 말투와 재수 없는 표정.
모용진의 생각엔 분명 황보구일이 통합무림의 관계자임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싸가지가 없으니까.
애초에 올곧은 생각을 가진 정파인들이 통합무림에 들어갈 리가 없다고 생각한 모용진이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저 악비라는 인물은 통합무림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였다.
그냥 외적으로 봐서 관계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모용진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흠…… 싸가지로 봐서는 저 황보구일이라는 놈이 제격인데. 씁…… 왜 악비 쪽을 따라가고 싶어지지?”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모용진은 지금 황보구일에게 다가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발길은 악비를 따라가고 있었고 어느새 그를 따라 전각 뒤편에 자리한 호수에 도착해 있었다.
호수라고 해서 그리 아름다운 장소는 아니었다.
그냥 황하강 근처에 있는 수백 개의 작은 호수들 중 하나로 지극히 평범한 호수였으니까.
하지만 오묘하게 뜬 달빛이 오늘따라 그 조그마한 호수를 분위기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호수 앞에 서 있는 악비는 양손에 창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모용진은 그러한 그의 곁에 다가가 섰다.
“악가의 목숨과도 같다던 그 창을 박살 내려 하시는 겁니까?”
모용진의 말에 악비가 놀란 듯 그를 쳐다보자 모용진은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저라면 차라리 그 힘으로 아까 전의 그 녀석을 박살 냈을 겁니다.”
모용진의 말에 악비가 이를 꽉 깨물더니 이내 손에 줬던 힘을 풀었다.
“이여립 대협이시군요.”
“오. 저를 아십니까?”
“제가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사신무에서 그렇게 활약하셨는데. 게다가 그 자리에는 저도 있었습니다. 공성 대사님의 호위로 말이죠.”
“그렇군요. 저는 객잔에서 만난 걸 기억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모용진이 객잔 이야기를 꺼내자 악비가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날을 기억하시는군요.”
“예. 저흰 서로 검도 나눈 상대가 아닙니까.”
“대협은 술병을 들고 계셨지요. 저는 만취 상태셔서 기억하시지 못할 줄 알았는데…….”
악비의 말에 모용진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날 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래 봬도 화경의 고수인데 술 따위에 져서 그런 만행을 벌이겠습니까?”
“그럼 왜 그날…….”
“일부러 그런 겁니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
“예? 어째서 위험한 짓을…….”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었기 때문이죠. 저 같은 출신도 좋지 않은 이가 관심을 받으려면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모용진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지만 악비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본인 역시 그래 왔었기 때문이고 어떻게 보면 그 덕에 지금 창월단의 단주가 된 것일지도 몰랐다.
잠시 둘 사이에는 묘한 침묵이 흘렀고 악비의 눈치를 보던 모용진은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얼굴에 근심이 많으시군요.”
“대협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십니까.”
“혹시 어딘가에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으시다면 제가 들어 드리겠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들어 드릴 수는 있으니까요. 아, 참고로 전 입이 무거운 편이니 소문이 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용진의 말에 악비가 살짝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무림맹의 일원이라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겁니다. 대협만이 모르실 뿐이니 어디 소문을 낸다고 하여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 * *
산동악가(山東岳家).
이름 그대로 산동에 위치한 가문으로서 한때는 하북팽가를 제치고 오대세가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큰 가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옛날이야기였고 지금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오대세가는커녕 무림맹에서 지금 당장 퇴출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산동악가는 쇠퇴해 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이렇다 할 인재가 배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산동악가의 무공이 좋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산동악가의 절기인 악가창법(岳家槍法)은 양가창법(楊家槍法)과 함께 최강의 창술로 중원에 알려져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무공이었다.
게다가 산동악가는 대대로 내려오는 군부의 집안이었기에 그 피를 물려받은 아이들도 기골이 장대하고 보유한 재력도 어마어마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이렇게 대단했던 가문이 무너져 가게 된 것은 바로 사십 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었다.
정사대전이 끝난 후 그 전쟁에 참여한 대부분의 악가의 고수들은 주검이되어 집으로 도착했고 간신히 살아 돌아온 것이 악비의 할아버지인 악중이었다.
하지만 악중은 무공이랑은 상당히 먼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닮아 형편없는 무골을 가진 그는 산동악가였기에 어쩔 수 없이 무공을 익힌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집안의 남자 어른이 그뿐이었기에 그는 악가의 가주가 되었고 그의 뒤를 따라 아들인 ‘악송’이 가주가 되었다.
그 악송 역시 아버지를 닮아 전혀 무골이 아니었는데, 놀랍게도 그의 형제들도 모두 무골이 아니었으며 그 아래의 자제들 역시 대부분 그러했다.
한마디로 무공과 힘을 내세워 그 세를 불려 나갔던 산동악가에서 더 이상 무골이 태어나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뛰어난 무골을 가진 데릴사위를 데려와도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세간엔 이런 소문까지 나돌게 되었다.
‘피의 저주’.
산동악가가 피의 저주에 걸려 더 이상 무골을 배출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그러한 피의 저주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본 자가 태어났으니, 그가 바로 ‘악비’였다.
그도 엄연히 따지면 ‘무골’은 아니었으나 집안의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었고 무공에도 흥미가 많은 아이였다.
이에 가문은 그를 집중적으로 교육시켰고 오늘의 창월단의 악비가 탄생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저는 지금 가문의 유일한 희망인 것입니다.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오늘 창을 휘두르지 못한 것도 모두 그 때문입니다. 혹여라도 제가 휘두른 창이 저희 가문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모르니까요.”
솔직히 악가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모용진이었기에 이러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용진은 뭔가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산동악가가 무너지게 된 것은 정사대전 이후.
그런데 그 정사대전은 실제로 정사대전이 일어난 것이 아닌 천기린을 죽이기 위한 자리였는데, 산동악가의 사람이 그렇게 죽어 나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내 기억에 산동악가의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리에서 산동악가를 본 기억이 없었던 모용진은 잠시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더니 이내 그를 쳐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음? 왜 그러십니까 대협? 갑자기 손은 왜…….”
“속는 셈 치고 한번 잡아 보시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제가 단주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