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50
광마전생 (150)
“거참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아이구나.”
“이렇게라도 봤으니 된 것 아닙니까? 저는 워낙에 바쁜 몸이라.”
“허허. 고얀지고. 웃어른이 보자고 하면 냉큼 달려오는 게 무림의 도리가 아니더냐?”
“그렇다면 전 매일 달리기만 하고 있겠지요. 그리고 원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목이 마르지 않을진대 도장님의 목은 바싹 타들어 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이렇게 직접 그 먼 거리를 행차하신 거겠죠.”
모용진의 말에 해인 도장은 웃으며 검을 비틀었다.
슈아아악!
그의 손에서 펼쳐지는 태허도룡검법의 초식 강천지룡(强天之龍).
마치 검을 내던지듯 대충 휘두른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풍압만으로도 사람을 날려 버릴 검기에 모용진은 한 걸음 크게 물러나며 검을 빼 들었다.
화륵!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해인 도장을 향해 쏟아지는 날카로운 화염의 검기.
두 개의 검기가 중앙에서 부딪치더니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무대 위를 화려하게 장악했다.
“입만 놀릴 줄 아는 놈은 아닌가 보구나.”
“그랬다면 제가 직접 찾아갔겠지요. 목숨을 건 도박은 이제 안 하는 지라.”
말을 하면서도 모용진은 어느새 그 폭발을 뚫고 해인 도장의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해인 도장은 가볍게 검기를 흩뿌리며 그를 막아 내려 했으나 순간 그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뭣……?!”
깜짝 놀라며 해인 도장이 반걸음 물러서는 그때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해인 도장의 소매가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이 정도면 제 실력의 증명은 된 것 같습니다만 저랑 비무를 하러 그 먼 길을 오신 건 아닐 테니 이제 슬슬 이야기를 나눠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끌끌끌……. 내가 세월에 무뎌진 건지 아니면 네가 강한 건지 알 수가 없구나.”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할 시간에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떤지요. 곤륜을 그렇게 쓰러지게 놔둘 생각이십니까?”
모용진의 말에 해인 도장을 고개를 내젓더니 모용진을 향해 몸을 날렸고 둘은 거세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곤륜의 원로와 사신무의 신성이 펼치는 검무를 동시에 볼 수 있다니!”
“미쳤군, 미쳤어. 이건 역사에 남을 시합이 될 거야.”
모용진과 해인 도장은 아무도 보지 않는 평범한 연무장에서 검을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천 명이 넘는 관중이 바라보고 있는 무대.
지금 그들은 무호제의 제일차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수많은 관중들은 그들이 펼치는 화려한 초식과 초식의 교환에 감탄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는 모용진과 해인 도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관중들의 엄청난 함성소리와 날카롭게 퍼져나가는 검의 비명에 대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검을 맞대고 있는 서로에게는 아주 잘 전달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저를 찾아오신 건 도장님입니다. 용무는 보통 찾아온 사람에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난 소문주에게 그대를 만나 보라는 말만 들었다네. 그리고 이렇게 마주했으니 내 목적은 이미 달성한 셈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해인 도장의 말에 모용진이 질문을 던지며 그의 검을 밀쳐 내자 해인 도장은 다시 재빠르게 모용진을 압박하듯 또 다른 초식을 펼쳤다.
카앙!
떨어져 내리는 검과 크게 울려 퍼지는 검명(劍鳴).
놀랍게도 해인 도장의 두 눈은 이 검명을 감상하는 듯이 감겨 있었다.
“사람의 입은 거짓말을 내뱉기도 하지만 이 검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지. 자네는 지금 나를 상대로 따뜻한 배려가 담긴 검을 내밀고 있지 않나. 혹여라도 내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야.”
해인 도장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그가 이 사실을 눈치챌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모용진은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십여 년만 젊었다면 자네가 펼치는 검에 나는 불같이 화를 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 배려가 고맙게 느껴지는군. 이에 더불어 그 검으로 나를 이토록 압박하고 있으니 그대의 실력은 이미 증명이 된 것과 다름이 없는 것 아닌가? 이 노구는 비록 늙었지만 곤륜의 파성룡(破成龍)이라네.”
그의 말에 모용진은 입가를 올리며 웃었다.
이 웃음은 평소 그가 자주 하던 비웃음이 아니었다.
존경에서 우러나온 웃음.
모용진은 해인 도장에게 진정한 원로만이 내보일 수 있는 현기(賢氣)를 느꼈고 이에 감탄한 것이었다.
“해인 도장님의 혜안에 조금 심려되는 것이 있군요.”
“심려? 그게 뭔가?”
“그때가 고비입니다. 아직 곤륜을 위해 하실 일이 많으니 우화등선(羽化登仙)당하지 않게 조심해 주십시오.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도장님의 뺨을 강하게 내려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경험자가 드리는 조언이니 항상 염두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재밌는 말이구나. 이제 약관밖에 되지 않은 자네가 등선에 오를 만큼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냐?”
“방금 말했지 않았습니까? 경험자라고. 그리고 그 정도 되니까 제가 지금 여기에서 해인 도장님과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용진의 말에 틀린 말은 없었다.
다만 해인 도장이 받아들이기가 힘들 뿐.
백여 합이 넘어가는 비무에 분위기는 점점 타올라 가고 장내는 온통 함성으로 뒤덮였다.
“그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다고 생각할 테니 비무는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대화는 역시 차 한잔을 곁들여 나누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허허……. 아쉽지만 노구는 아직 져 줄 생각이 없다네. 오랜만에 이렇게 즐거운 유희를 놓칠 수 없지 않은가?”
“걱정 마십시오. 도장님의 유희는 이제 시작이니까.”
그 순간 모용진의 몸에서 내기가 해일같이 몰아쳤고 그의 독각검에 서려 있던 검기가 검강으로 물들어 갔다.
이제 질세라 해인 도장 역시 강대한 내기를 내뿜으며 검강을 만들어 냈는데 그 순간 해인 도장은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검과 검을 나눈 것도 아니었고 내기끼리 충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허허…….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검감은 미끼였던 건가?”
“해인 도장님을 다치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으신 분인데 다쳐서는 아니 되지요.”
“대체 노구를 얼마나 부려 먹을 생각인 건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바닥에 누워 있는 해인 도장은 웃고 있었다.
그는 내공에 당한 것도 검강에 당한 것도 아니었다.
해인 도장이 쓰러진 것은 그저 모용진이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이다.
화경의 고수인 그가 눈으로 좇아가지 못할 정도로.
모용진이 무엇을 했는지 그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은 바닥에 누워 있었고 모용진이 손으로 자신의 머리와 등을 받쳐 보호해 주고 있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이 장면은 모두가 보고 있었고 그들 중 거의 모든 이들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몰랐지만 모용진이 무림의 원로를 배려하듯 머리와 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 환호를 날렸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로 눈살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상석에 앉아 있는 공성 대사와 그 일행들이었다.
“방금 전의 그 몸놀림 보셨습니까?”
“믿기지가 않습니다. 저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런 괴물이…….”
청화 진인의 물음에 태허 진인은 괴물이라는 표현까지 하며 침음을 삼켰다.
하지만 그 표현은 너무나도 모용진에게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방금 그가 보여 준 엄청난 몸놀림은 누구나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공성 대사 일행은 모용진이 어떻게 움직인 건지 볼 수 있었어도 그들 외의 사람들은 전혀 보지 못했을 거란 뜻이었다.
“맹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태허 진인은 공성 대사가 자신의 말에 동조해 주기를 원했다.
모용진의 무위는 너무나도 위협적이었고 그에게 당한 제자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태허 진인의 물음은 평범하게 받아들이면 그저 생각을 묻는 걸로 보일지도 몰라도 그 이면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제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공성 대사는 그 뜻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기에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걱정 마십시오. 태허 진인께서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무릇 개는 목줄을 쥔 사람에 따라 그 성격이 바뀐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쉬이 목줄을 찰 리가 없지 않습니까.”
대놓고 천둥벌거숭이라 말하는 청화 진인을 보며 공성 대사가 말조심하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자 청화 진인이 고개를 떨궜다.
“두 분은 그저 가만히 보고 계시면 됩니다. 이여립에 관한 것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좋은 목줄을 준비 중이오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성 대사의 말에 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청화 진인과 태허 진인을 공성 대사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장문인이라는 것들이 고작 제자 몇 명에 흔들려 저 모양 저 꼴이라니. 쯧쯧…….’
갑자기 청화 진인과 태허 진인이 이여립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의 행색에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제자들이 당했다는 사실이 더 컸다.
청화 진인에겐 화산신검과 매화검수들.
태허 진인에겐 장조운을 비롯한 장선강, 장선욱 등등.
그리고 그 제자들을 때려눕힌 이여립을 천기린의 후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더 고깝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미 이여립은 통합무림 내에서는 천기린의 후계로 확실하게 낙인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천기린은 통합무림의 최초 공적(共敵)이었기에 그의 후계인 이여립 역시 공적에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
그러니 청화 진인과 태허 진인은 공성 대사의 이러한 대처를 불만스럽게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화 진인과 태허 진인은 공성 대사에게 아무런 반기도 들 수 없는 입장이었다.
공성 대사가 쥐고 있는 무언가가 그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었고 이를 얻으려면 좋든 싫든 그의 옆에 붙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 힘을 얻게 되는 그날이 네놈의 장례식이 될 것이다.’
‘공성 대사, 내 기필코 네놈의 목은 내가 따 주도록 하지.’
‘멍청한 놈들…….’
서로를 바라보는 세 명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들의 속내는 하나같이 새카맸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시꺼먼 속을 가진 이가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었으니, 바로 모용진이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이 정도는 해 줘야 제가 이름이 살죠. 그러니 얌전히 따라 주시면 됩니다.”
“허허. 이걸 영특하다고 해야 할지, 간악하다고 해야 할지.”
모용진의 승리로 끝난 시합.
모용진은 시합이 끝난 후 홀로 내려오지 않았고 그는 쓰러진 해인 도장을 일으켜 세워 부축을 한 채로 무대를 내려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인 도장은 전혀 아픈 곳도 없고 멀쩡하다는 점이었다.
아무 곳도 다친 곳이 없는 그는 자신의 발로 걸어 내려올 수 있음은 물론이요 마음만 먹으면 공중제비를 세 번 돌면서 무대에서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모용진은 한사코 부축해서 내려간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
“뒤에서 들리지 않습니까? 저 함성 속에 섞인 제 이름이. 저 이름이 드높여질수록 곤륜에 좋은 일일 테니 지금은 얌전히 부축받아 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모용진의 협박 아닌 협박에 해인 도장은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우리 소문주가 누구의 등에 업혀 있나 했더니 이런 호랑이의 등에 업혀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