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52
광마전생 (152)
31장
곤륜의 일까지 깔끔하게 처리된 모용진은 이제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악비는 그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면 그만이었고 설백과의 내기는 이기기만 하면 끝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무호제에서 승리하여 무영의 별호를 얻고 공성 대사의 밑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모용진의 두 번째 시합의 상대는 꽤나 이름을 날리는 낭인이었다.
주당낭인(酒黨浪人) 서황고.
그는 낭인이지만 초절정의 고수로 그가 이름을 떨치게 된 이유는 바로 종남파 때문이었다.
그가 섬서를 떠돌 때 종남파의 일대제자들과 객잔에서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다.
그때 종남파의 제자들이 그를 우습게 보고 건드렸으나 된통 당했고 이에 종남파의 장로가 복수하고자 그에게 맞섰지만 또 패배하였다.
당시 제법 큰 사건이었기에 이는 널리 퍼졌었고 서황고는 그날 이후 평범한 낭인에서 고수가 되어 무림에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이다.
“이여립이라고 했지? 내 너의 이름은 익히 들었다. 사신무에서 우승하고 제갈세가의 비호도 얻었다고 하던데. 벌써부터 얼굴에 그리 자만심이 그득해서 어찌 이 험난한 무림을 살아가려 하느냐?”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모용진에게 훈계를 하려는 서황고.
그는 주당낭인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한 손에는 술을 들고 있었다.
“내가 오늘, 이 비정한 무림이라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 검으로 직접 가르쳐 주마!”
하지만 모용진은 그의 말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는 그는 뭐라도 해 보라는 듯이 서황고를 쳐다봤고 서황고는 그런 모용진을 보며 인상을 썼다.
“이 선배가 양보해 줄 테니 먼저 들어와 봐. 응? 들어와, 들어와.”
서황고는 손을 까닥거리며 선수를 양보했지만 그럼에도 모용진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한 서황고가 검을 손에 얹는 그때.
서황고는 한 줄기의 세찬 바람을 느꼈다.
“주당낭인이라는 별호까지 있길래 기대했건만 고작 이 정도 수준인가. 실망이군.”
어느새 모용진은 서황고의 등 뒤에 서 있었고 그의 손에는 작은 술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놀랍게도 그 술병은 서황고의 것이었고 모용진이 고개를 돌린 서황고의 앞에 그 술병을 흔들기 전까지 서황고는 자신이 술병을 빼앗겼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내 술!”
서황고가 술병을 빼앗으려 손을 뻗었을 때 모용진의 주먹은 그의 복부를 가격하고 있었다.
“크헉!”
“확실히 주당낭인은 맞네. 이 상황에서 술을 빼앗으려는 걸 보면.”
그렇게 모용진의 이차 시합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이 났다.
모용진은 좀 더 시간을 끌며 여러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저 관중석의 상석에 앉아 있는 이들이 무대에 오르지 않는 이상 지금 연기하고 있는 이여립의 무공과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이들뿐이었으니까.
경기가 끝나자마자 모용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설백이었다.
하지만 설백은 모용진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가벼운 인사만 하더니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바로 다음 시합인가?’
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설백의 모습에 모용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부르며 달려왔다.
“대협님! 이쪽입니다!”
부리나케 달려오는 이는 바로 제갈적이었다.
그는 매번 시합이 끝날 때마다 이렇게 달려왔고 그 옆에는 항상 제갈중화가 함께 있었다.
모용진에게 제갈중화의 눈도장을 계속해서 찍어 두려고 하는 제갈적의 의도와는 다르게 제갈중화는 항상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이는 모용진도 눈치채고 있었고 혹여나 자신에게 원한이라도 있나 싶어서 흑련에게 알아보라고 시켰는데 놀랍게도 그녀가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그저 모용진이 싫기 때문이었다.
제갈세가라는 큰 가문에서 태어나 항상 명문세가의 사람들과 어울렸던 그녀의 눈엔 모용진이 화경의 고수건 나발이건 그냥 거지새끼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참고로 ‘거지새끼’라는 단어는 제갈중화의 입에서 모용진을 지칭하며 나온 것이었고 당연히 흑련은 이를 모용진에게 모두 보고했다.
“하하. 중화 님께선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감사합니다.”
말은 이렇게 따뜻하게 오가고 있었지만 속내는 완전 달랐다.
‘날 보고 거지새끼라…….’
‘내가 어째서 이딴 놈에게 인사를 하러 여기까지 와야 하는 거야?’
날 보고 거지새끼라고 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라고 모용진이 긍정적이게 받아들일 일은 당연히 없었다.
모용진은 남을 쉽게 헐뜯지 않는 만큼 남이 자신을 헐뜯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고로 이미 제갈중화는 그의 머릿속에서 제거된 인물과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애초부터 받아들일 생각 역시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말이다.
“하하하. 제가 말하긴 좀 그렇지만 참으로 잘 어울리십니다, 대협. 자, 그럼 같이 식사라도 하실까요?”
참으로 눈치도 없는 제갈적의 말이었지만 모용진은 이를 받아들였고 제갈중화 역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곧바로 객잔으로 향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지나던 도중 제갈중화와 눈이 마주친 모용진은 갑자기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지새끼……. 하아, 씁…… 내가 어딜 봐서 거지새끼라는 거지? 열받네?’
갑자기 확 올라오는 분노에 모용진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아 참, 총관님. 소문 들으셨습니까?”
“예? 어떤 소문 말씀이십니까?”
“어느 객잔에서 저를 몰래 흉보는 자들이 있다는 소문입니다.”
“아니, 우리 대협을 누가 감히 욕보인단 말입니까?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는 딱히 밉보인 기억은 없는데 말입니다.”
일부러 제갈중화를 잠시 쳐다본 모용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 갔다.
“제가 듣기론 제 출신이 천하다면서 비웃었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무림에도 출신이 중하다고 하지만은 대협은 이미 출신을 논할 수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제갈세가에 빌붙은 ‘거지새끼’라고. 제가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먹었는지…….”
모용진은 말을 흐리며 슬쩍 제갈중화의 눈치를 살폈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제갈적은 정말로 화가 난 듯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어떤 놈입니까. 어떤 놈이 감히 우리 대협에게 그런 망발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말이 돌진 않겠지요. 대협께서도 한 번쯤은 그에 관해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놀랍게도 가만히 있을 줄 알았던 제갈중화가 먼저 나서서 말하더니 모용진의 앞에서 보란 듯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중화야? 지금 대협께 무슨 말을 하는 게냐! 당장 사과드리지 못할까!”
“아니요. 전 괜찮습니다, 총관님. 다만 조금 실망스럽군요. 이치에 밝고 현명하다던 그 제갈세가가 이런 모습을 보여 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지금 우리 대제갈세가를 욕보이시려는 겁니까, 대협?”
게슴츠레 뜬 제갈중화의 눈이 사납게 일그러지더니 모용진을 노려봤고 이에 제갈적은 당황하며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중화야, 뭐 하는 게냐! 지금 대협께 뭐 하는 짓이냔 말이다!”
갑작스럽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제갈중화의 모습에 제갈적이 황급히 그녀를 붙잡고 뭐라 하려 했지만 오히려 모용진이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저지했다.
“총관님, 이제 더 이상 그러실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예?”
“제갈중화 님도 이미 알고 계셨나 봅니다. 그 객잔에서 거지새끼라며 뒷담화 한 이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모용진의 말에 제갈적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런 그의 귓가에 제갈중화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이제 그만하시죠, 아버지. 애초부터 저는 저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출신도 명확하지 않은 천것에게 저를 시집보내려 하다니요. 우리 제갈세가가 뭐가 모자라서 저런 이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것입니까?”
“너…… 지금 무슨 말을…….”
“그래요. 맞습니다. 대협…… 아니, 거지새끼 님. 제가 객잔에서 당신을 거지새끼라고 헐뜯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쁘시던가요? 사실 아닙니까? 그리고 어디 그런 천한 몸으로 저를 받아들이시려 한 겁니까? 생각이 있으시다면 그 급에 맞게 노셔야지요. 고작 무공 좀 한다고 그걸 이용해서 우리 제갈세가에 몸담으려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제갈중화의 말.
그 말에 제갈적은 충격을 먹은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모용진은 살짝 말문이 막혀 있었다.
왜냐하면 그 역시도 제갈중화가 이 정도로 생각이 없는 여자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모용진의 입장에선 지금의 상황이 전혀 나쁘지 않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장 제갈중화의 입을 막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모용진은 제갈중화와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뒷담화에 대해선 그렇다고 하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생각보다 실망이 더 크군요? 제갈세가의 여식이라는 자가 저리도 생각이 없는 말을 내뱉을 줄이야.”
“뭐? 천한 것이 지금 내게 무어라 했느냐?”
“천한 것은 지금 네년의 입인 것 같은데, 총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지?”
“뭐라고?!”
모용진의 말에 제갈중화가 크게 흥분하며 욕을 내뱉으려고 하는 그때.
짜악!
큰 소리와 함께 제갈중화의 목이 꺾였고 볼에는 커다란 손자국이 나 있었다.
“아버지, 지금…… 제 뺨을…….”
“닥치거라!”
분노가 가득 실린 제갈적의 목소리에 제갈중화는 움찔하며 한 발자국 물러섰고 그녀의 뺨을 때린 제갈적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더니 모용진을 향해 크게 고개를 숙였다.
“제 여식이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대협!”
“용서라. 아쉽게도 저는 천것이라 속이 좁고 치졸하기에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총관님.”
“제가 잘못 가르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니 제발 한 번만 용서를…….”
지금의 일은 평범한 말싸움 같아 보여도 제갈세가에 있어서는 절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제갈세가에 꼭 필요한 인재인 이여립.
심지어 이여립은 더 좋은 제안도 받을 수 있었지만 옛날에 한 번 말이 오간 적이 있다는 이유로 제갈세가를 이유 불문하고 선택해 준 고마운 인물이었다.
그 하나로 제갈세가의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상상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는데 지금 제갈중화의 한마디에 그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판이었다.
“일단, 비록 전 천것이지만 꼴에 자존심은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런 생각도 없는 멍청한 여자와는 혼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자신의 금쪽같은 딸을 욕하는 말이었지만 제갈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지금 제갈중화는 제갈적에게 있어서 금쪽이 아닌 분뇨만도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와 제갈세가의 관계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대, 대협! 제발 그것만큼은……. 제가 앞으로 더 신경 쓰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지 연을 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일은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제갈궁 님을 만나 이 일에 대하여 소상히 논할 테니 총관께서는 저 귀한 대제갈세가의 여식을 데리고 이만 사라져 주시지 않겠습니까?”
모용진의 말에 제갈중화는 니가 뭐냐며 펄펄 뛰며 욕을 날렸지만 제갈적은 그런 그녀의 뺨을 한 번 더 갈기더니 그녀를 끌고 갔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모용진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어느새 그의 입가엔 미소가 맺혀 있었다.
“거기서 먼저 폭발을 할 줄이야. 이거 나쁘지 않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