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53
광마전생 (153)
솔직히 제갈중화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면 오히려 입장이 불리해지는 것은 모용진이었다.
그래서 모용진은 최대한 참으려 했던 것인데 이렇게 제갈중화가 먼저 폭발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덕분에 모용진은 좋은 명분을 챙겼고 이를 제갈궁과의 협상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대협, 저희 가문의 여식이 행했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모용진이 제갈궁을 찾아가자 이미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벌써 전달이 된 듯 제갈궁이 모용진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가주가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가문이 머리를 숙이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이는 모용진이 그들의 관계에서 얼마나 큰 우위를 점했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이미 모두 보고받으신 것 같으니 길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제가 오면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봤지만 이런 굴욕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라…… 아무래도 제갈세가와의 연은 여기까지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협! 제발 한 번만 재고해 주시오! 가문의 우매한 여식이 저지른 멍청한 일이오. 이는 절대 제갈세가의 뜻이 아닙니다!”
“제갈세가의 뜻이 아니라고 해도 가주님은 저를 거지새끼라고 부르는 여자와 혼인시키려고 한 것 아닙니까?”
“그, 그건…….”
제갈궁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이여립이었다고 해도 저런 발언을 듣고 참을 수 없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상대는 혼인을 약속한 이였기에 파투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주님, 가주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관도 시절 우연히 나눴던 이야기 하나만으로 의리를 지켜 제갈세가에 몸을 담으려 한 사람입니다.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른 문파나 세가에서 저를 거두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잘 아실 겁니다.”
“알고 있소, 대협. 그러니 내가…….”
“참고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저는 무공만 뛰어난 멍청이가 아닙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무슨 뜻입니까?”
제갈궁의 되물음에 모용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전 제갈세가가 지금 가세가 기울어 오대세가의 이름에서도 곧 떨어져 내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뿐이면 다행이겠지요. 세가에서 세(世) 자가 빠지고 곧 제갈가장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대협, 아무리 대협이라고 해도 말이 심하지 않소! 우리 제갈세가에 그게 무슨…….”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고작 산적의 습격에 가세가 흔들리고 마교의 세작에게 뚫렸다는 소문으로 무림의 신의를 잃어 가고 있는 제갈세가가 곧 그리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으신 겁니까? 가주님도 아실 텐데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무림에서는 ‘강함’이 진리이고 그 ‘강함’이 이제 더 이상 제갈세가에는 없다는 것을.”
이는 제갈궁에게 있어 엄청나게 모욕적인 언사였지만 그는 모용진에게 그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는 모두 사실이었고 이여립을 들이려는 이유 역시 무너져 가는 가세를 바로 세울 가장 좋은 패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결국 제갈궁의 두 무릎을 꿇리고 말았다.
“대협, 대협이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말하시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뭐든 들어주겠소. 그러니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오.”
“용서라……. 가주님께서 무릎을 꿇을 정도로 제게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까?”
“물론이오. 대협의 말을 부정하지 않겠소. 그것이 모두 사실이니까. 그러니 제발 간곡히 청하오니 우리 제갈세가를 내치지 말아 주시오!”
완벽한 갑과 을이 정해지는 순간 모용진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혼인이라는 덜미에서 벗어나 비교적 쉽게 원하는 것을 얻을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은 제갈궁의 앞에서 잠시 고민하는 척 턱을 쓰다듬던 모용진은 이내 제갈궁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대협……?”
“마음 같아선 당장 내치고 싶지만 한 가문의 가주님께서 이토록 간절히 부탁하시니 한 명의 무림인으로서 차마 거절할 수가 없군요.”
“고, 고맙소! 내 이 은혜를 절대…….”
“단! 앞으로 더 이상 혼담을 나누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리고 이젠 우리 둘의 사이도 바뀌게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처럼 서로를 존대하는 수평적인 관계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제갈세가의 아래가 아닌, 이렇게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계약 관계가 되고 싶다는 것이지요.”
모용진의 말에 제갈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으나 금세 사라졌다.
왜냐하면 지금 모용진이 어떤 요구를 하던 그가 다른 문파로 떠나는 것만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관계를 청산하고 저희와 새로운 거래를 하고 싶다는 뜻입니까?”
“역시 제갈세가의 가주님이시군요. 이렇게 한 번에 알아들으시다니. 맞습니다. 제가 제갈가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조건으로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선택은 가주님의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 *
진가장의 장주 진도석.
팽여운에게 패배한 이후 간신히 죽을 고비에서 살아 돌아온 그는 무림맹에 팽여운이 이상한 짓을 한 게 분명하다며 신고했지만, 돌아온 것은 맹의 축객령이었다.
너무나도 분했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마음을 접고 진가장으로 다시 돌아가려던 그때, 그는 보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허름한 객잔 안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팽여운과 서서희의 모습을.
담소는 누구라도 나눌 수 있었지만 문제는 서서희와 팽여운의 신분이었다.
팽여운은 하북팽가의 가주이자 정파인이었고 서서희는 배교의 교주이자 사파인이었으니까.
한마디로 그들은 절대 만나서도 안 되고 담소를 나눠도 안 되는 인물들이었다.
칼을 뽑아 들었으면 들었지 찻잔을 들고 있을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진도석은 자연스레 그들의 뒤를 밟았다.
젊었을 적 정보관으로도 일했던 적이 있었던 그는 은신과 잠입에도 재주가 있었기에 들키지 않고 그들의 뒤를 밟았다.
거리가 멀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팽여운과 서서희의 분위기가 매우 친밀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고 일부러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작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밀담을 나누는 것은 분명했다.
그들이 객잔을 나와 홍등가 주변을 향할 때만 해도 진도석은 혹시 저들이 정을 통한 사이가 아닌가 싶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었고 이는 하북팽가의 뿌리를 휘청이고도 남을 일이었다.
하지만 진도석이 생각한 것보다 판은 더 크게 굴러가고 있었다.
팽여운과 서서희가 이동한 곳에서 만난 또 다른 인물.
놀랍게도 그는 바로 화산파의 청화 진인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둘이서 여관에 들어갔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진도석은 그 장면을 숨죽여 지켜봤다.
청화 진인과 서서희 그리고 팽여운.
세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가정집과 같은 곳으로 들어갔고 이에 진도석은 잠시 고민했다.
여기까지 본 것만 해도 무림을 들썩이게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일이었다.
솔직히 더 파고들어 보고 싶었지만 그는 진가장을 짊어지고 있는 가주였다.
만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쩌다 뒤를 밟고 있었다는 걸 들키게 된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진가장이었다.
‘이대로 돌아서야 하는가. 아니면 끝까지 파고들어야 하는 것인가…….’
한참을 고민했지만 그는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청화 진인까지 엮여 있는 일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은신술을 발휘하며 그 가정집에 숨어 들어간 진도석은 벽에 찰싹 붙어 귀를 대었고, 그러자 잠시 후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보낸 물건은 잘 받았습니까? 상등품으로만 보냈다고 들었는데 어떠신지요.”
“하하하. 효능이 아주 뛰어나더이다. 태허 진인께서도 매우 흡족해했지요.”
“만족하시는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더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 배교에는 넘처 흐를 정도로 많은 것이 아진(兒珍)이니까요.”
아진이라는 단어에 진도석은 화들짝 놀라 소리를 낼 뻔했다.
왜냐하면 아진은 어린아이들에게서 기운을 빨아들여 만든 금기의 영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아진을 청화 진인은 물론 태허 진인까지 받고 이를 흡족해했다는 말에 진도석의 두 눈은 찢어질 듯이 커졌다.
명문정파인 화산파와 무당파.
게다가 그들은 도가를 따르는 도사들이었다.
그런데 무림의 대표적인 도가인 화산파와 무당파의 장문인이 배교로부터 아진을 선물로 받고 이에 흡족해했다?
이는 무림이 아닌 중원 전체가 흔들릴 만큼 큰 사건이었다.
‘찟어 죽일 놈들! 어떻게 명문정파의 도사라는 놈들이 배교로부터 아진을…….’
당장이라도 이 벽을 부수고 들어가 있는 힘껏 분노하고 싶은 진도석이었지만 그 결말이 개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꾹 눌러 참고 그들의 대화를 계속해서 엿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크게 후회하고 말았다.
그들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것들이 하나같이 충격적인 것들뿐이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귀 기울여 대화를 듣던 진도석은 문득 두려워졌고 이에 벽에서 귀를 떼었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망…… 도망가야 해.’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가 그들의 입에서 오가자 진도석은 문득 자신의 가문이 떠올랐다.
크나큰 두려움에 그는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황급히 담을 뛰어넘었다.
그런데 그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인물의 얼굴이 담 너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넨…… 진가장의 장주 아닌가?”
놀랍게도 담장의 밖에 서 있는 인물은 무림맹의 맹주인 공성 대사였다.
왠지 모를 반가움과 함께 그에게서 묘하게 느껴지는 안정감에 진도석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 뻔했지만 문득 떠오르는 의문에 그의 입은 다시 닫혔다.
‘왜 무림맹주인 공성 대사가 이런 곳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외진 곳에 갑자기 공성 대사가 나타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이 도망치려 넘어간 담장 밖.
밀회가 벌어지고 있는 가정집 바로 옆에서.
짧은 순간이었지만 진도석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깨달았다.
지금 최대한 빠르게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시주. 본 승이 이렇게 물었으면 대답이라도 해야 하지 않은가?”
공성 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진도석은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그건 살아남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은 것이었다.
“쥐새끼 같으니. 처리해야 될 것 같군요.”
공성 대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러 그림자에서 수십 명에 달하는 복면인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일제히 진도석이 사라진 방면을 향해 뛰어갔다.
복면인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공성 대사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팽여운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로 눈빛을 나눈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팽여운이 웃으며 공성 대사에게 다가오더니 그를 안내했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맹주님. 안에서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