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59
광마전생 (159)
32장
이번 모용진과 백설의 시합으로 인생 최고로 큰 충격에 빠진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공성 대사의 손님이자 중원의 친왕인 유역신이었다.
“맹주도 보지 않았느냐? 그 불꽃과 얼음이 콰가각 하면서 맞부딪치고……. 그게 대체 어떻게…….”
“이제 조금 진정하시지요. 친왕 전하.”
“아니, 이게 어디 진정할 것이냐? 고작 두 사람이 맞붙었는데 그런……. 그러고 보니 맹주, 자네도 무림인이지 않은가? 그것도 무림인 중에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아닌가? 그럼 자네도 그 두 사람이 펼쳤던 그런 무공들을 파바박 하고 펼칠 수 있는 것 아닌가?”
“불과 얼음을 만들어 내진 못하지만 가능은 합니다.”
“그렇지?! 그럼 보여 주게!”
“예?”
당장 무공을 보여 달란 말에 공성 대사가 당황스러워하자 역신이 빨리 해 보라는 듯이 손짓했고 이에 공성 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전하.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주변에 큰 소란이 생길지도 모르고 전하께서 힘에 휘말려 다치실지도 모릅니다.”
“아…… 그런가?”
“예.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차피 빠른 시일 내에 제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하실 기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조금만 진정하시지요. 전하.”
다시 한 번 진정하라는 공성 대사의 말에 역신은 자신이 좀 많이 들떴나 싶어 헛기침을 하며 풀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큼……. 그렇긴 하겠군, 그런데 혹시 그 두 사람은 무림인 중에 강함으로 따지면 어느 정도 수준이지?”
“수준이라 하시면…… 둘 다 신의 경지라 일컫는 화경급 고수들입니다. 아무리 무공에 재능이 있다 한들 평생 가도 오르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경지지요.”
“아니, 내가 묻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위에서 아래로, 순번으로 따지면 어느 정도 되냔 말이지.”
순번으로 따진다는 말에 공성 대사는 잠시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검성과 천마, 혈마, 삼위존…… 그리고 천외천의 분들이 계시지만…… 순위를 매기기는 너무나도 애매해.’
무림에 화경의 고수는 생각보다 많았지만 그들이 모두 이여립과 설백보다 강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제 그 두 사람이 보여 준 무위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직접 그들과 싸운다고 해도 딱히 질 것 같지는 않았다.
경험과 연륜 그리고 내공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다.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이상 누가 강하다고 딱 잘라 말하기 힘든 곳이 무림이라는 곳이었기에 순위를 매기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확실히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아마 삼십 위 안에는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십 위? 어제 그 두 사람이 고작 삼십 위밖에 안 된다는 것이냐?”
“소승의 생각은 그러합니다만 무림에서 강함이라는 것은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간의 격차가 크지 않다면 순위를 매기기가 조금 애매합니다.”
“백대고수라는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은 순위가 아니더냐?”
“맞습니다만 십 년도 더 된 기록이라 지금과는 많이 차이가 날 겁니다. 게다가 어제 봤던 그 둘은 무림의 신성 고수와도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오호…… 신성이라…….”
신성이라는 말에 역신이 잠시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더니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눈을 번뜩였다.
“맹주. 그대가 자리를 하나 만들어 줘야겠어.”
“예? 어떤 자리를 말씀이십니까?”
“이여립과 설백이라는 자들. 내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 * *
모용진과 제갈세가와의 재협상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용진이 제시한 것은 금자 삼십 개였다.
말이 삼십 개지 금자 삼십 개는 지금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 금자 하나의 가격은 은자 백 개에 달할 정도로 비쌌는데 그 이유는 바로 황궁 때문이었다.
황제가 새로운 황궁을 건설한다며 중원 내의 모든 금을 가져갔기에 시중에 나도는 금의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오른 것이었다.
이러한 정국에 금은 거의 사치품에 가까워졌고 그 가치는 지금도 계속해서 상승 중이었다.
지금 금자 하나면 전각 하나를 살 수 있었고.
금자 열 개면 호수가 딸린 장원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모용진은 이런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금자를 삼십 개나 요구했고 놀랍게도 제갈세가는 이를 단번에 받아들였다.
제갈궁이 금자 삼십 개보다는 초열신권이 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갈궁의 결단력에 가장 크게 놀란 것은 바로 모용진이었다.
왜냐하면 금자 삼십 개는 모용진이 그냥 아무렇게나 질러 본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안 된다고 하며 조금씩 흥정해 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모용진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원한 거래 이후 제갈궁을 떠나보낸 모용진은 손에 든 계약서를 보며 살짝 얼떨떨해하고 있었다.
“흠……. 좀 더 큰 금액을 불렀어야 했었나? 제갈세가에 이 정도의 부(富)가 쌓여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가세가 기울긴 했어도 오대세가라는 뜻이겠죠.”
“금자 삼십 개를 이렇게 떡하니 내놓는데 가세가 기울기는 무슨…….”
흑련의 말에 모용진이 고개를 내젓더니 계약서를 돌돌 말아 흑련에게 건넸다.
“군사에게 전해. 중요한 것이니 네가 직접 갔다 오고. 그리고 당가에도 다녀와야겠어.”
“사천당가요?”
“응.”
“전하실 것이라도…….”
“아니, 그냥 네가 가면 알 거야. 도착하면 당철삼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면 돼.”
그렇게 흑련까지 보낸 모용진은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다.
낮에 그 난리를 쳤으니 아무리 모용진이라도 조금 피곤한지 바닥에 드러누웠다.
“모두 다 안달이 났겠군. 너무 크게 터뜨린 건 아닌지 몰라. 내일부터 많이 귀찮아지겠는걸…….”
무의식중에 천장의 나뭇결을 따라 눈을 이동하던 모용진은 문득 설백의 북해천일검(北海天日劍)이 떠올랐다.
잠시 머릿속에 떠올렸을 뿐인데 전신이 오싹해지는 느낌.
그 느낌에 모용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재밌었지. 그런 짜릿함은 오랜만이었어.”
무공도 무공이었지만 모용진의 뇌리에 가장 꽂힌 것은 바로 설백의 북해검이었다.
북해의 보물 북해검.
그건 말 그대로 신기(神器)였다.
지금 모용진이 들고 있는 독각검(毒角劍)도 영물인 독각사의 뿔로 직접 만든 것이었지만 보물과는 거리가 먼 그저 튼튼한 검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검은 누가 가지고 있으려나. 분명 버리진 않았을 텐데…….”
천기린의 검. 신검(神劍) 천일(天佚).
그것은 독보전승인 창천신검(猖天神劍)의 후계자에게 내려오는 검으로 북해검과 같은 진정한 보물이었다.
얇은 검신을 가졌음에도 창천신검의 패도적인 위력을 모두 받아 낼 수 있는 유일한 검.
모용진이 독각검을 그리 두껍게 만든 것도 웬만한 검들은 절대 창천신검의 위력을 받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천일은 누가 봐도 보검이었기에 천기린이 사용하였다고 하여 절대 버려질 일은 없었다.
“한번 수소문이라도 해 봐야겠군. 흐음…….”
천일뿐만 아니라 흑천파에도 제대로 된 무구들이 주어진다면 확실히 전력상승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든 모용진이 솜씨 좋은 야장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기 시작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응? 누구십니까?”
“북해빙궁의 공주 설백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밖에서 들려오는 설백의 목소리에 모용진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냐하면 그는 방금 막 설백에게 내기의 소원으로 북해빙궁의 솜씨 좋은 야장을 소개받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진짜 호랑이가 왔군.’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모용진이 문을 열자 그곳엔 설백이 술과 안줏거리가 담긴 상을 들고 서 있었다.
“아직 피로가 다 가시지 않으셨을 텐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희끼리는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남지 않았습니까. 오늘 시합과 내기가 있었으니까요.”
“그럼 그 술상은…….”
“빙월이가 들고 가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만 나누면 심심하지 않겠냐며 그러더군요.”
“아…… 예…….”
놀랍게도 설백이 들고 있는 술상엔 모용진이 차마 거부할 수 없는 안주와 술이 놓여 있었다.
동파육과 육피전 그리고 죽엽청까지.
그렇게 둘은 방 안에서 술상을 두고 서로를 마주 본 채 자리에 앉았다.
왠지 어색한 분위기.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이상했던 모용진이 왜 그런지 잘 생각해 보자 항상 설백을 따라다니던 빙월과 빙혼이 지금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그 수행원들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 겁니까?”
“아…… 그게 오늘 북해빙궁에서 내려온 대주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들은 지금 잠시 그를 호위 중에 있습니다.”
“아니, 어째서 공주님의 호위이신 분들이 대주의 호위를…….”
“그들보다 제가 더 강하니까요.”
설백의 말에 모용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녀에게 덤비는 놈을 없을 테니까.
신분도 신분이지만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는 이제 무림 전체에 널리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호위가 없으시면 불편하실 텐데 말입니다. 아무리 공주님의 무공이 강하다고 하여도 공주님의 외모라면 추파를 던지는 놈은 어디서든 나타날 테니까요.”
“이미 익숙해서 이젠 괜찮습니다. 처음 중원에 내려왔을 때도 그랬으니까요.”
“처음에요?”
설백은 중원에 내려온 첫날 하북팽가의 팽이각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모용진은 이를 경청했다.
그러던 중 설백이 먼저 모용진에게 술을 따라 주었고, 이에 모용진 역시 그녀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둘은 어느새 음식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에서 오늘 있었던 일과 내기에 관한 것은 없었다.
그냥 순수히 살아왔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는 대부분 설백이 이끌어 나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북해빙궁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몰랐던 모용진은 이를 흥미롭게 들었고 이따금씩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까지 던지기까지 하며 화기애애한 술자리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죽엽청 한 병이 싹 비워졌고 이에 모용진은 사람을 불러 술과 안주를 더 가지고 오게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북해빙궁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롭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모르고 있던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였기에 이는 모용진에게 큰 흥밋거리였고 마음속의 모험심을 마구 자극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의 즐거운 술자리는 계속되었고 밤은 점점 깊어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짹짹.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모용진은 눈을 떴다.
“크윽…… 머리야…….”
이토록 머리가 아파 올 정도로 심한 숙취는 모용진의 몸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천기린이었을 때도 아직 술을 잘 모르던 어린 시절에 몇 번 그런 적이 있긴 했었지만 고수의 반열에 들고 나서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두통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모용진은 문뜩 자신의 오른팔이 무척이나 저리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가 올라가 있는 듯한 감각.
모용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곳엔 놀랍게도 설백이 있었다.
모용진의 팔을 베고 누워 있는 설백.
가까이서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그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 순간.
모용진의 머릿속에 어떠한 기억이 갑자기 살아났다.
“비록 낮엔 내가 그대에게 지고 말았지만 밤에는 기필코 이기고 말 거야!”
신음과 색기로 가득한 붉은빛의 기억.
그 기억이 떠오른 모용진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