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61
광마전생 (161)
모용진이 밖으로 빠져나오자 제갈적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향해 뛰어왔다.
“간밤은 평온하셨습니까, 대협.”
“평온…… 그걸 평온했다고 하는 건가……?”
“예? 무슨 문제라도 있으셨습니까?”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반쯤 멍한 표정으로 거리로 나서려는 모용진을 보며 제갈적은 황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지금 그대로 나가시면 온갖 사람들이 다 달라붙을 것입니다! 한동안은 숙소에 계시거나 저희의 호위를 받으시는 것이…….”
제갈적의 말에 모용진이 손을 흔들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는 도깨비를 형상화한 가면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이거면 충분할 겁니다. 혼자 걷고 싶으니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한 모용진은 순식간에 신형을 감췄고 이는 누가 감히 따라가고 싶어도 따라갈 수 없는 경공술이었다.
숙소 주변에서 벗어나자마자 멍하니 거리를 걷는 모용진.
그는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걷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모용진이 열심히 현실을 도피하고 있는 그때 다른 방법으로 현실을 도피하려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진가장의 가주 진도석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추격자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하였으나 그 후 며칠이 지나도 이곳 낙양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낙양성을 빠져나가는 길은 모두 무림맹의 병사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감시하고 있었고 그 어디에도 빈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추격자들 때문에 그는 며칠째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도피도 곧 끝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이제 그만 포기해라, 진도석.”
“크윽!”
낙양성의 동문으로 몰래 빠져나가려 상황을 살펴보던 진도석의 등에서 살기가 느껴졌고 그는 간신히 반응하여 몸을 굴렀으나 이미 그의 등은 살갗이 베여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잠도 안 자고 도망칠 줄이야. 너 때문에 우리까지 한숨도 못 잤다, 이 자식아.”
그렇게 말하며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팽가의 가주이자 그의 악연인 팽여운이었다.
“팽여운…… 이 지독한 자식. 네가 그러고도 명문정파의 가주라고 할 수 있느냐!”
“지독한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이지. 그리고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명문정파와 사파를 가린단 말이냐?”
그렇게 말하며 날아오는 팽여운의 도를 진도석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도를 빼 들어 튕겨 냈지만 그전의 그 느낌이 또 진도석을 찾아왔다.
무호제에서 겪었던 기력이 모두 빨려가는 듯한 느낌.
그리고 이번엔 그때의 시합보다 그 느낌이 더 강렬했다.
“크윽. 대체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이냐…….”
“사술이라니, 이건 엄연한 무공이다. 천마가 내게 준 선물 같은 것이었지.”
천마라는 말에 진도석이 두 눈을 부릅뜨며 도를 꽉 쥐었다.
“마교 따위와 결탁하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식상한 말을 반복할 거라면 여기까지만 하지 그래? 어차피 바보가 아닌 이상 자네도 이제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 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닥쳐라!”
듣기 싫다는 듯 진도석이 거칠게 도를 휘둘렀지만 팽여운은 이를 가볍게 피해내더니 벼락과도 같은 굉음과 함께 한 줄기 섬광이 진도석의 귓가를 때렸다.
콰앙!
그 섬광과 함께 날아간 것은 도를 쥔 진도석의 오른팔이었다.
“끄아아악!”
잘려 나간 어깨를 쥔 채 진도석이 바닥에 쓰러지자 팽여운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쯧쯧. 어차피 이리될 것을 힘 빠지게 도망이나 치고 말이야. 너 때문에 맹주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아나?”
“이런 개 같은 자식들! 하늘이 네놈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늘? 하늘이 왜? 날씨만 좋은데?”
푹!
그 순간 팽여운의 도가 가차 없이 진도석의 허벅지에 박혔고 이에 진도석은 고통스러운 또 한 번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악!”
“그렇게 비명을 질러 봤자 소용없어. 어차피 네놈을 도울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야. 아 참. 맹주님이 널 보내기 전에 전하라고 한 말씀이 있었군.”
그 말과 동시에 뽑혀 나온 팽여운의 도는 곧바로 진도석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진가장은 잘 써먹어 주겠다고.”
그 순간 진도석은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주마등이 그의 머리를 스치며 가족들의 얼굴을 보여 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죽지 않았다.
카앙!
어디선가 날아온 검 한 자루.
진도석의 바로 옆에 꽂힌 그 검이 팽여운의 검을 막아 낸 것이었다.
팽여운이 깜짝 놀라 한걸음 물러났을 땐 어느새 그 검의 주인이 진도석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니, 네가 어떻게 여기에……?”
그렇게 말하는 팽여운의 두 눈에 비친 것은 바로 남궁세가의 가주 검성(劍聖) 남궁혁이었다.
그는 대답 없이 바닥에 박힌 검을 뽑더니 잠시 진도석을 바라보았고 다시 팽여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르신의 뜻이다. 그러니 이만 물러나라, 팽여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남궁혁. 이건 맹주님의 명이다! 지금 맹주님의 명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이냐?!”
“그 맹주께 그대로 전하면 된다. 어르신의 뜻이라고. 그게 싫다면 지금 나를 쓰러뜨린 다음 이자를 죽여라. 그 같잖은 마공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말이야.”
남궁혁의 말에 팽여운은 이를 갈기만 할 뿐 그 어떠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서로 침묵이 오갔고 결국 먼저 물러난 것은 바로 팽여운이었다.
“내 이 사실을 모두 맹주께 고할 것이다, 남궁혁.”
“내가 바라던 바다.”
남궁혁의 말에 팽여운은 혀를 차며 그를 노려보더니 잠시 후 그가 대동한 이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전용.”
“예. 부르셨습니까. 가주님”
남궁혁의 한마디에 그의 바로 뒤에서 나타난 남성.
남궁세가의 무복을 입은 그는 남궁혁의 수행원이었다.
“이자를 분가로 데리고 가서 치료해라. 그에겐 질문을 던져서도 대답해서도 안 될 것이다.”
* * *
“남궁혁이 그렇게 말했다고?”
“예.”
“그 외에 다른 말은?”
“그게 싫다면 자신을 쓰러뜨리라고 도발을 하더군요.”
팽여운은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공성 대사에게 달려가 이를 모두 고했다.
그는 당연히 공성 대사가 크게 분노하며 당장 남궁혁을 잡아들이라며 소리칠 줄 알았는데 공성 대사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그럼 어쩔 수 없군. 자넨 이만 물러가게.”
“예? 맹주님의 뜻을 무시한 남궁혁을 당장 잡아들여야지요! 놈은 통합무림의 뜻을 거부한 것입니다! 설마 검성 따위가 두려우신 겁니까?”
흥분을 감추지 못한 팽여운의 도발에 공성 대사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내가 자네에게 이만 물러가라는 이유는 남궁혁 때문이 아니라 그 어르신 때문이라네.”
“어르신 말입니까? 그게 대체 누구이기에…….”
“앞으로 통합무림에 힘이 될 중요한 인물이지. 아직 자네에게 말해 줄 순 없는 분이라네. 그렇게 알고 진도석에 관한 건 이제 잊는 것이 좋겠군.”
공성 대사의 딱 부러지는 말에 팽여운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고 그가 나가는 것을 본 공성 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머저리 같은 놈. 그거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는…….”
평소 같았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공성 대사였지만 그가 지금 이렇게 나긋나긋하게 타일러 팽여운을 돌려보낸 이유는 바로 옆에 역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흠…….”
“친왕 전하께 몹쓸 모습을 보여 드려 송구합니다.”
“아니, 상관없네. 저놈은 어디의 누구지?”
“하북팽가의 가주입니다. 원래 저 정도로 급한 성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마공을 익힌 뒤에 조금 변한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팽여운은 공성 대사와 역신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방에 갑자기 막무가내로 들어온 것이었다.
“마공이라면 전에 네가 내게 이야기했던 그것을 말하는 건가?”
“예. 모두 전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용상에 오를 때 광인(狂人)을 부렸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진 않은데 말이야.”
“걱정 마십시오. 다소 성미가 급해지고 흥분을 감추지 못할 뿐.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지. 그나저나 그자들은 언제 오는 건가?”
“예?”
언제 오냐는 말에 공성 대사가 눈썹을 치켜올리자 역신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네가 나를 불렀다기에 그 이여립과 설백을 데려온 건 줄 알았는데 아닌가?”
“아아…… 그 둘은 아쉽게도 시합의 여파 때문인지 당분간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여립은 무호제가 끝난 다음 방문한다고 하니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무호제를 끝내면 되는 것 아니냐? 어차피 너도 그놈이 우승할 것 같다고 했으니 그놈에게 줘 버리고 끝내면 되는 것을, 언제까지 나를 기다리게 할 셈이지?”
역신의 말에 공성 대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역신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무호제는 무림인에게 있어서 그렇게 쉽게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둘은 제가 직접 나서서 설득해 볼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전하.”
“쯧……. 그럼 오늘 나를 부른 것은 뭐 때문이지? 고작 팽가인지 뭔지 하는 놈을 보여 주려 한 것은 아닐 거고 말이야.”
역신의 말에 공성 대사는 몸을 조금 일으켜 세우더니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역신에게 내밀었다.
“오늘 아침 황가에서 온 서신입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은밀히 전해야 한다고 하여 송구스럽지만 이렇게 제가 있는 곳으로 역신 전하를 부른 것입니다.”
역신은 그 서신을 받아 읽기 시작했고 공성 대사는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어르신의 뜻이라니…….’
놀랍게도 바닥에 엎드린 그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여립이나 역신 때문이 아닌 팽여운이 전한 남궁혁의 말 때문이었다.
어르신.
남궁혁이 그렇게 말하는 자는 오직 단 한 명뿐이었다.
‘천외천이신 천용현 님이 어째서 진도석 따위를? 설마 내가 모르는 것이라도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 * *
“벌써 유시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시각.
그 시간이 될 때까지 모용진은 가면을 쓴 채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어떠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던 모용진이었지만 설백이 머무는 객잔 앞에 선 지금까지 정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도망가는 게 좋지 않을까?’
문득 이대로 도망치고 이여립이라는 신분을 완전히 없애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모용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기엔 여태까지 이여립에 공들인 게 너무 많았고 이게 모두 수포가 되어 버린다면 앞길이 막막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들과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아예 없다는 것을 이번 무호제를 보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흑천파가 크게 성장했고 고수가 많다고 한들 아직 통합무림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음에도 단순 무림맹이 가진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깨달은 모용진이었다.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땐 몰랐었는데 말이야. 이렇게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느낌이 다르단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설백의 숙소를 흘긋 쳐다본 모용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역시…….”
한참을 망설이던 모용진은 어쩔 수 없이 그 객잔을 향해 한걸음 내디뎠다. 이는 마치 지옥으로 한 걸음 내딛는 느낌이었다.
“정면 돌파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