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68
광마전생 (168)
“하아…… 진짜 멀긴 머네.”
모용진의 명령으로 하남 낙양에서 호북 그리고 중경을 찍고 결국 사천 성도에 도착한 흑련은 곧바로 사천당가로 향했다.
그냥 아무 데나 퍼질러 잠시 쉬고 싶긴 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쉬지 않고 온 김에 사천당가에 도착해서 푹 쉬려던 흑련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사천당가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사천당가에 도착하자마자 보게 된 것은 장원에 집결해 있는 수많은 당가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먼 길을 떠나듯 단단히 준비한 모습이었고 그들의 맨 앞에는 당철삼과 당하율이 서 있었다.
“흑련 님, 때마침 오셨군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흑천파 사형제대전에서 본 것 같은 장로 한 명이 흑련을 안내하더니 당철삼의 앞으로 데려갔고 그녀를 본 당철삼은 반가워하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흑련 님. 스승님께서 누군가를 보낸다고 하시더니 그게 바로 흑련 님이었군요.”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장로님.”
“하하. 괜찮습니다. 은월령과 저희는 같은 흑천파이기는 하나 별개의 세력이니 서로 존중하라는 스승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럼 편하신 대로 하셔도 저는 상관없습니다만…….우선 이게 대체 무슨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스승님께 아무런 말씀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당철삼의 질문에 흑련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철삼이 당하율에게 눈짓을 했다.
그 눈짓에 당하율이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들더니 흑련에게 내밀었다.
“흑제께서 보내신 서신입니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지금 즉시 곤륜으로 출발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즉시라니요?”
흑련은 제발 그러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서신을 받아 들었고 거기에는 곧 곤륜에서 일이 벌어질 테니 그곳으로 향하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한 줄.
「흑련이 사천에 도착하는 즉시 출발할 것.」
그 글귀를 보며 흑련은 현실을 부정하려 했지만 자잘한 물품들을 담은 커다란 배낭을 가지고 온 시녀들이 그것을 그녀의 등에 친절하게 메어 주었다.
“저…… 쉬지도 않고 달려왔는데 세 시진, 아니, 한 시진이라도 쉬고 갈 순 없을까요? 네? 제발…….”
하지만 이에 당철삼은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고 무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지금 즉시 청해의 곤륜산으로 향한다! 그곳에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다들 단단하게 준비하고 일진부터 출발하도록!”
정말로 흑련이 도착하자마자 곤륜을 향해 출발하는 사천당가.
이에 흑련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모용진을 실컷 욕했다.
‘악덕 고용주! 악덕 문파장! 악덕 사기꾼! 고자!’
* * *
“갑자기 왜 말하다 말고 귀를 파? 벌레라도 들어갔어?”
“아니, 그게…… 갑자기 간지러워서. 누가 내 욕이라도 하는 건가?”
설백의 물음에 모용진은 고개를 저으며 귀를 팠지만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 봐.”
모용진은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마치 보고를 하듯 설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어디까지 했었더라? 아, 그래. 무림에는 수백, 수천 명의 주인공이 있어. 그들은 모두 자신이 주인공인 줄 알고 자신의 힘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아주 이기적으로.”
“그래서?”
“그 이기심 때문에 무림은 항상 개판이었지. 겉으로는 의니 협이니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이건 모두 표면적인 것일 뿐이고 무림인은 대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아. 지금 당장 나만 봐도 그렇고.”
모용진은 자신 역시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모용진은 자신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외부자인 내가 보기엔 딱히 그렇지 않은데……. 어찌 됐건 정파는 무림맹이라는 큰 단체의 아래 규율을 지키며 움직이고 있고 북해와의 약속을 맺은 중원인 중엔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들이 없었는걸?”
“겉으로만 그런 거야. 그리고 그 약속은 네가 북해빙궁의 입장에서 본 것이니까 그래. 아무리 무림이 관부랑은 관무불가침을 지킨다고 해도 북해빙궁은 중원이 아닌 외세니까. 조심할 수밖에 없는 거지. 국가적 문제가 발생하면 제아무리 관무불가침이라고 해도 관아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음…… 그런가?”
“그리고 지금 현 무림이 개판이라는 것은 통합무림이라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지. 사파와 정파가 손을 잡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다 알겠는데,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설백의 질문에 모용진은 잠시 턱을 쓰다듬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하아, 나도 사실 모르겠어. 그냥 어제 있었던 일도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이상했으니까. 무슨 꿍꿍이인지 전혀 모르겠어.”
머릴 싸매며 고민하는 모용진의 모습에 설백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아 어깨를 기댔다.
“내가 북해빙궁에서 대장군이 된 지 일여 년쯤 됐을 때였나? 서북쪽의 부족 중 하나가 북해빙궁의 영토를 침입한 적이 있었어.”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설백의 목소리에 그녀를 쳐다본 모용진은 이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설원을 돌격해 오던 그들이 우리 군을 발견하자 갑자기 말 머리를 돌리더니 그 자리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거야.”
“갑자기 설원 위를? 그것도 전쟁 중에?”
“응.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쟁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공격해 오지 않고 계속해서 그 자리를 돌고 있더라고. 나는 그때 왠지 그게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지형상 방어가 유리했기에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어. 그렇게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지.”
“이틀씩이나?”
“이틀 동안 진짜 엄청 고민했다? 대체 저놈들이 뭘 하는 건지, 사술이라도 펼치는 건지 아니면 몰래 우회하여 급습을 하려는 건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삼 일째 아침이 되는 날 결심했어. 내가 직접 그곳으로 진격하기로.”
설백의 말에 흥미가 생긴 듯 모용진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이에 설백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알아?”
“어떻게 됐는데?”
“그냥 밀어 버렸어. 그것도 나 혼자서.”
“응?”
너무나도 허무한 결말에 모용진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 모습에 설백은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그 부족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미신과 같은 거였대. 그렇게 열흘을 버티면 적군이 알아서 도망친다나 뭐라나. 자, 그럼 여기서 내가 우리 남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뭘까?”
“음…… 흐음……. 지레 겁먹지 마라? 아니면 어제의 일이 정말로 우연일지도 모른다는 건가?”
“틀렸어. 정답은 일단 돌진하라는 거야.”
창밖을 가리키며 손짓을 한 설백은 그 손가락 그대로 모용진의 손을 향하더니 손등을 쿡쿡 찔러 댔다.
“어차피 고민해 봤자 나오지 않는 답이라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뭐가 있어? 무림인은 이기적이고 스스로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렇다면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할 시간에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게 더 이득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 할 거나 해라?”
“아잇, 몰라. 그냥 알아서 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네.”
얼굴을 붉히며 짜증 내는 듯한 목소리를 낸 설백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전혀 짜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모용진은 이러한 그녀의 모습이 왠지 귀엽게 느껴졌고 저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뭐 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모용진의 손길에 화들짝 놀란 설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런 그녀의 귀는 무척이나 빨개져 있었다.
“그냥 고마워서.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해진 것 같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이미 서로 전부 다 본 상태이고 심지어 혼인까지 약식으로 마친 둘이었지만 연애는 하지 않았기에 뭐든지 새로운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설백과 모용진은 둘 다 이성에 관심이 없었고 서로 처음으로 호감을 느낀 상대였기에 그 느낌은 더더욱 확연하게 와닿고 있었다.
이런 소소한 일상에서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그런데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설백이 모용진을 바라보며 갑자기 싱긋 웃더니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어디 가게? 볼일이라도 있어?”
“아니. 우리 남편이 이제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다니까, 해도 괜찮지 않나 싶어서.”
설백의 의미심장한 말에 모용진은 순식간에 얼굴을 굳혔고 헛기침을 하며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큼큼……. 그러고 보니 오늘 제갈궁 가주님이랑 약속이 있었던 것 같은데…….”
“원래라면 오늘이 무호제의 결승전이었을 테니 그런 약속이 있을 리가 없겠죠?”
뭔가를 들고 나온 설백의 모습에 모용진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치며 손을 저었다.
“여보…… 누가 그랬는데 가족끼리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 응? 그러니까…….”
“걱정 마. 피곤하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딱 한 시진만 할 거야, 한 시진만.”
설백이 한 시진만 할거라며 손가락 하나를 펼쳤지만 모용진은 이게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부하는 모용진의 앞에 바싹 다가온 설백.
그녀가 모용진에게 내민 것은 바로 엄청난 사용감이 드러나는 상처투성이의 목검이었다.
“저번엔 아쉽게 지고 말았지만 오늘은 기필코 이기고 말 거야. 그렇다고 대충하면 안 되다는 거 알지?”
그 순간 모용진은 옛날 스승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모용진은 아랫동네의 작은 가문의 아씨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들었었고 이에 스승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겁니까?”
그리고 그 질문에 스승은 이렇게 답했었다.
“결혼은 되도록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 잊지 말거라. 이 여자다 싶을 때, 그때가 위기라는 것을.”
그때 모용진은 그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 설백을 앞에 둔 그는 스승의 명언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의 스승은 무공을 전수해 준 인물이기도 했지만 인생을 알려 주기도 한 ‘참’스승이었다는 것을.
“스승님, 이 불초 제자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큼큼…….”
헛기침을 한 모용진의 손에는 어느새 목검이 쥐어져 있었고 다른 손은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설백이 꽉 붙잡고 있었다.
설백의 손에 이끌려 나가는 모용진은 그녀를 향해 처절하게 소리쳤다.
“여보! 한 시진만이야, 딱 한 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