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71
광마전생 (171)
“쳇. 아깝군.”
석가장을 박차고 나온 모용진은 혀를 차며 숙소를 향했다.
모용진이 그리 이리도 아까워하는 이유는 바로 석산우와의 생사결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계획대로라면 생사결을 해선 안 되지만 그래도 솔직히 모용진은 눈앞의 석산우를 두 손으로 난자해 버리고 싶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설백과 빙월이 그를 반겼고 설백이 뭔가가 담기 커다란 나무 상자를 모용진에게 내밀었다.
“음? 이건 뭐야?”
“몰라? 제갈세가의 총관이라는 자가 이걸 전해 달라고 부탁하던데?”
설백의 말에 모용진이 그것을 열어 보자 거기에는 족히 일 장은 넘을 것 같은 거대한 판관필이 들어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은백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판관필.
그 끝에는 ‘유기서필(油耭栖筆)’이라고 분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모용진은 그것을 손에 들자마자 그게 진품이라는 것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무림에서 알려진 보물은 정말로 평범한 물건이 아니다.
정말로 뛰어난 뭔가가 있어야 보물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 모용진은 유기서필을 쥐자마자 그 특별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청명하고 맑은 기운과 물 흐르듯 손에서 흘러 나가는 모용진의 내공은 어느새 유기서필을 감싸고 있었다.
“그거…… 보통 보물이 아닌걸? 내 북해검과 맞먹을 수준인데……?”
“맞아. 유기서필이라고 제갈세가의 보물로 내려오는 판관필이야.”
“그걸 지금 가가한테 줬다고? 어떻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설백의 말에 모용진은 슬쩍 미소 지으며 유기서필을 다시 상자에 집어넣더니 열지 못하게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다 방법이 있지. 그러고 보니 넌 어떻게 됐어? 빙제께선 허락하신대?”
“허락은 무슨……. 죽기 전에 한번 얼굴 보러 와도 상관없으시다더라.”
며칠 전 설백은 빙제에게 남편이 생겼다는 것을 알렸고 당분간 북해에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서신을 보냈는데 오늘이 바로 답장 도착 예정일이었다.
그 서신에는 이왕이면 자식까지 서넛 낳고 오라는 말까지 적혀 있었지만 설백은 굳이 그 내용까진 밝히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대단하신 아버지네……. 남편이 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시는데…….”
“아니, 이미 다 알고 계셔. 빙혼과 빙월이 매일 서신을 보내거든. 말이 내 수행원이지 실은 감시자야, 둘 다.”
“감시자라니요, 공주님! 저희들은 그저 공주님의 안전을 위해서 조용히 지켜보는 것뿐이라고요.”
“그걸 사회에선 감시라고 한다지?”
설백의 말에 빙월은 너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모용진은 둘의 대화에 미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상자를 자신의 침상 머리맡에 놔두었다.
“그러고 보니 빙혼은 어디로 갔어? 바깥에도 안 보이던데.”
“아, 빙혼은 대주에게 갔어. 보고할 게 있다고. 사실 그 둘 부자지간이거든.”
“부자지간? 그 대주라는 분이랑? 그럼 빙월도 그 대주라는 분의 딸이야?”
“아뇨. 전 아니에요. 북해에 빙(氷)이라는 성씨는 매우 흔한 편이거든요.”
“아, 그래?”
“그나저나…… 남편, 석가장의 일은 잘됐어? 쉽지 않을 거라더니 생각보다 표정이 좋네.”
“걱정 마. 다 잘됐으니까.”
모용진의 잘됐다는 말에 설백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용진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
“그런데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뭐가?”
“나는 왜 네가 사천당가랑 석가장이랑 전쟁을 붙이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거든. 사천당가도 흑천파의 구성원이라면서. 그럼 같은 동료가 아니야?”
“내가 언제 사천당가랑 석가장이랑 전쟁을 붙였어? 그냥 사천에 석가장 애들을 보낸 것뿐이지. 석가장 놈들이 상대할 건 사천당가가 아냐.”
모용진의 말에 설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명을 해 달란 표정을 짓자 모용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리 다 알고 있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그렇지만 궁금한걸?”
“걱정 마. 그날 너도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게 될 거니까. 나랑 같이.”
모용진의 말에 설백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지더니 모용진의 팔을 껴안았다.
“빙월, 이제 슬슬 부부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만 자리 좀 피해 주지 않겠어?”
갑작스러운 설백의 말에 정작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빙월이 아닌 모용진이었다.
“여, 여보? 갑자기 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빙월은 설백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이에 모용진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을 땐 이미 그녀가 방을 빠져나간 뒤였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공주님 그리고 대협.”
탁!
닫히는 문과 자동으로 잠기는 걸쇠.
이는 빙월이 한 것이 아니라 설백이 허공섭물(虛空攝物)을 이용해 문을 닫은 것이었다.
“잘못이라니. 그냥 나는 부부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을 뿐인걸?”
자연스럽게 옷고름을 풀어헤치는 설백의 모습을 보며 모용진은 후회했다.
‘조금만 더 늦게 들어올걸!’
* * *
다음 날 아침.
밤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모용진은 새소리에 눈을 뜨며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일 자신이 천야심결(天夜心訣)을 익히지 않았다면 이렇게 정상적으로 아침에 눈을 뜨긴 힘들었을 테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은 모용진은 곁에서 자고 있던 설백의 이불을 제대로 덮어 주었다.
어쩌다 보니 하게 된 혼인.
하지만 이에 모용진은 큰 불만이나 불편을 겪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설백은 그에게 있어서 큰 힘이 되어 주는 존재였다.
물론 조금 피곤한 점도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설백이 좀 더 강해진다면 흑천파에 이만한 증원은 없을 테니까.
끼익.
문을 열자마자 문 앞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빙월이 서 있었고 그 뒤쪽에는 빙혼이 호위를 서고 있었다.
“좋은 밤 보내셨습니까, 대협.”
빙월의 아침 인사에 모용진은 설백이 아직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며 입에 손을 얹었고 이에 빙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모용진과 눈이 마주친 빙혼은 모용진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고 모용진이 이를 받아 주자 곧바로 다시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빙월은 어느 정도 모용진에게 살갑게 굴었으나 빙혼은 딱히 그런 점이 없었다.
거리를 두고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을 묵묵히 하는 빙혼의 이러한 모습은 오히려 모용진에게는 호감을 사고 있었다.
“내 주변에도 빙혼 같은 애들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다들 시끄러운 놈들 밖에 없단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숙소를 빠져나온 모용진이 향한 곳은 바로 석가장이었다.
어젯밤 석산우와 거래를 한 그곳에 그가 다시 간 이유는 석산우와 만나기 위함이 아니었다.
무림맹에서 무호제에 대해 오늘 석가장에서 중대 발표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낙양석가장은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용진은 그리 어렵지 않게 회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길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회장에는 석산우와 팽노악 그리고 이번 무호제에 참가한 인물들이 다수 모여 있었다.
“이여립 대협, 오셨군요!”
“하하.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 조금 피곤한 일이 있어…….”
모용진의 말에 팽노악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석산우는 모용진과 눈빛이 맞자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 이여립 대협도 오셨으니 모두에게 무림맹의 전달 사항을 알리겠습니다.”
그렇게 팽노악이 모두에게 전한 것은 바로 무호제의 무기한 연기였다.
이에 물론 출전자들은 거세게 항의했고 모두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가기 시작하는 그때.
무대 위로 한 명의 스님이 올라왔고 그의 모습에 시끄러웠던 회장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공성 대사.
무림맹주인 그가 직접 무대 위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번 무호제의 연기는 무림맹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팽가나 이러저러한 일들로 연기되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선 그분이 직접 여러분께 설명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공성 대사의 너무나도 공손한 말투와 손짓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고 그곳엔 난생처음 보는 인물이 서 있었다.
몸에 황금을 칭칭 감은 듯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남성.
모용진 역시 알아보지 못한 그는 바로 유역신이었다.
모두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그를 바라보자 공성 대사가 크게 소리쳤다.
“모두들 예를 갖추시오! 이분은 하늘에서 금포를 두르고 내려오신 분. 중원의 아버지이신 황제 폐하의 둘째 황자, 친왕 전하이시오!”
친왕 전하라는 말에 모두가 순식간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유역신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왜냐하면 아무리 관무불가침을 내세우는 무림인이라고 해도 그들은 모두 중원인이었고 황제는 마땅히 섬겨야 할 신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자들도 있긴 하지만 어찌 됐건 눈앞의 인물은 황제의 아들.
아무리 무림에서 인정받고 높은 곳에 있는 그들이라고 해도 감히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이였다.
그리고 이는 모용진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모용진.
하지만 그가 이렇게 엎드려 있는 이유는 그의 눈에 띄어서 좋을 일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여기에 황제의 아들이? 고작 무림인의 축제에 저런 거물이 내려올 리가 없을 텐데…….’
모용진이 마음속으로 의문을 키워 가는 그때 한 발짝 앞으로 나선 역신이 주변을 내려다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거라. 나는 그리 격식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니깐 말이야.”
중후하면서도 기품이 담긴 그 목소리에 하나둘씩 고개를 들어 올리기 시작하자 역신은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무호제가 연기되는 이유는 바로 내가 이 낙양에 중요한 볼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 아버지 황제 폐하께서 내린 명령이며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단이었다. 만일 무호제가 계속해서 치러지다가 황제 폐하의 중요한 일에 방해가 된다면 아무리 관무불가침이라는 무언의 협의가 있다고 해도 관에서는 이를 간과할 수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역신의 말은 짧게 줄이자면 황제가 내린 명이 있으니 아무튼 무호제는 지금 열 수 없고 이를 반대하는 이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뜻이었다.
“사실 나도 이를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번 무호제는 나 또한 여기 공성 대사와 함께 관람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최대한 그대들의 사정을 봐주며 기다렸으나 자꾸 연장되는 무호제의 상황에 불가피하게 내린 처사이니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예, 전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의 입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대답.
이에 모용진은 솔직히 조금 놀라고 있었다.
별 특이한 것도 없는 내공도 전혀 실려 있지 않은 목소리였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아쉬워하며 무호제의 무기한 연기를 받아들이려는 그때.
“아 참, 깜빡한 게 있었군.”
무대에서 내려가던 역신이 갑자기 다시 무대 위로 올라오더니 공성 대사를 한번 바라본 후 누군가를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고정된 그의 시선.
그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모용진이 있는 곳이었다.
“이여립이라고 했던가? 자네 잠깐 나 좀 보지. 그리고 이건 부탁이 아니라 친왕의 명령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