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73
광마전생 (173)
곧장 숙소로 되돌아온 모용진은 자신을 기다린 듯한 제갈궁에게 곧바로 ‘초열신권’을 내주었다.
“감사합니다, 대협. 그런데 표정이 어두우십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 별것 아닙니다. 일련의 사건들로 무호제가 무기한 연기되었다기에 조금 그랬나 봅니다.”
“아니, 무기한 연기라니요? 갑자기 왜…….”
“아, 무림맹에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관아의 일로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예? 그런……. 무슨 일인지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갈궁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석가장을 향해 걸어가려던 순간, 그는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재빠르게 모용진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잠, 잠깐. 대협, 그럼 이제 무호제도 끝났으니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다시 백호학관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미 사신무가 끝나면서 백호학관은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 그러시다면 저희 제갈세가로 가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불편함 없도록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제갈궁의 깍듯한 제안이었지만 모용진은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제 제갈세가에서 얻어야 할 것은 더 이상 없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그 전에 일단 들러야 할 곳이 있습니다.”
“들러야 할 곳이라면…….”
“전에 북해빙궁의 공주님이신 설백 님이 저를 초청하셨기에 잠시 그곳에 들를 예정입니다. 제갈세가는 다시 중원으로 내려오면 꼭 방문하도록 하겠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 그렇군요. 선약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제갈궁은 마음 같아선 억지로라도 이여립을 데리고 내려가고 싶었으나 북해빙궁은 그도 차마 어찌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럼 전 이만, 이따 뵙겠습니다.”
“예. 그러시지요, 대협.”
제갈궁과 인사를 나눈 모용진은 곧바로 숙소로 올라왔고 복도에서 호위를 서고 있는 빙혼과 빙설자를 발견했다.
그들과 눈빛으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모용진은 그들에게 따라 들어오라 했고 방문을 열자마자 검을 휘두르는 설백과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빙월이 눈에 들어왔다.
“방에서 뭐 하는 거야……?”
“나가면 괜히 눈에 띄니까 방에서 몸 좀 풀고 있었어.”
“왜?”
“심심해서?”
심심하다는 말에 모용진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검집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빙혼과 대주께선 대체 무슨 일이야? 밖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닙니다, 공주님. 대협께서 안으로 들라고 하셨습니다.”
대주의 말에 설백의 고개가 모용진을 향해 돌아갔고 모용진은 그런 그녀를 향해 앉으라고 손짓했다.
“무슨 일인데?”
“일단 앉아 봐. 천천히 이야기할 테니까.”
모용진은 설백이 자리에 앉자마자 그들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
그들에게 딱히 숨길 필요가 없었고 그들 역시 향후 어떻게 움직일지 선택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대로 절강으로 향할 생각이야.”
“절강? 그곳에는 왜?”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설백 너와 북해빙궁의 사람들이야.”
모용진의 말에 설백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있던 빙설자가 대신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무림과 관부는 서로 ‘관무불가침’이라는 규율 아래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대협의 말씀이 맞다면 이는 관이 무림에 관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제일 난처해지는 것은 바로 저희입니다.”
“어째서요?”
“저흰 무림의 초청을 받고 내려왔지만 관부의 초청을 받은 것은 아니니까요. 만일 그들과 어떤 식으로도 엮이게 된다면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북해인이라서요?”
“예.”
빙설자의 간단명료한 설명에 설백이 주변을 돌아보더니 모용진을 향해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래서 남편은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해?”
“일단은 북해로 올라가 있는 것이 좋겠지. 괜히 휘말렸다간 여러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래,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그러니까 내 말은…… 응? 그렇게 하자고?”
“응. 지금 당장 떠나면 된다는 거지?”
너무나도 순순히 북해로 가겠다는 설백의 말에 모용진은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설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빙혼과 빙월은 들고 온 짐을 꾸리고 대주. 대주께선 무림맹에 서신을 보내세요. 그들에게도 북해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려야 하니까.”
“예, 공주님.”
설백의 말에 그들은 군말 없이 짐을 싸기 시작했고 빙설자는 곧바로 서신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정리를 하는 설백의 모습에 모용진은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설백은 절대 가지 않으려고 떼를 쓸 것만 같았는데 이리도 쉽게 돌아간다고 하니 오히려 모용진이 조금 섭섭해진 것이었다.
“마차는 이미 빌려 둔 게 있으니 그걸 쓰면 될 것 같아. 가가는 곧바로 떠날 생각이야?”
“응? 어어, 어차피 이여립이라는 신분도 이제 쓸모가 없어졌으니까. 굳이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겠지.”
“그래, 그럼. 알았어.”
그렇게 말한 설백은 순식간에 짐을 싸 든 채 빙월 들과 함께 방을 빠져나갔고 모용진이 정신을 차렸을 땐 마차를 타고 이곳을 떠나고 있었다.
“하하…….”
뭔가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허무한 헤어짐에 모용진은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도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뭔가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하고 서로 풀어 나가는 과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것은 모용진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북해빙궁의 공주니……. 국가 간 문제는 어쩔 수 없다는 건가.”
왠지 모를 씁쓸함을 입으로 삼키며 모용진 역시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모용진을 바라보던 유역신의 표정.
모용진은 그 표정의 의미를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그가 끈질기게 굴 것 또한 예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모용진에게 두 개의 꼬리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일정 간격을 두고 몰래 지켜보는 것으로 봐서는 보통 실력자들이 아니었다.
“낙양을 떠나기 전에 따돌려야겠어. 괜히 귀찮아지면 곤란하니.”
그렇게 말한 모용진은 백색의 무복을 벗어 던지고 원래의 흑색 무복을 꺼내 입었다.
꼬리를 떼어 내기 위해 가면까지 쓴 그는 문으로 나가지 않고 천장을 검으로 갈라 그 위로 몰래 올라갔다.
지붕을 박살 내며 밖으로 나간 모용진은 한숨을 내쉬며 거리를 내려다봤다.
멀리서 느껴지는 한 개의 시선.
몰래 천장을 뚫고 나왔음에도 꼬리 한 개가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보통 놈이 아닌걸?”
순간 제거해야 할까 생각한 모용진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이 정도의 고수라면 괜히 그를 처리하려고 하다가 더 큰 시선을 끌게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군. 억지로 떼어 내는 수밖에.’
순식간에 지붕에서 지붕으로 그리고 거리로 골목으로 들어간 모용진은 은월신보(隱月迅步)의 은보를 극성으로 발휘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은보를 사용한 그의 기척은 완전히 사라졌고 잠시 후 모용진은 자신을 쫓던 이의 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단 것을 깨달았다.
“후우……. 날 이렇게까지 잘 쫓아올 줄이야. 그 역신이라는 놈이 보낸 거면 금의위일 게 분명한데 제법이야.”
모용진이 순순히 감탄하며 조용히 기척을 없애는 그 시각.
모용진을 쫓고 있던 이는 갑자기 사라진 모용진의 기척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내 천리혈영술(千里血永術)에서 벗어나다니…… 대단한데?”
모용진의 뒤를 몰래 쫓던 이는 놀랍게도 금의위가 아닌 혈마였다.
그는 백두철로 변장하고 있을 때 몰래 모용진의 검 손잡이에 자신의 피를 묻혀 두었는데, 이는 단순히 씻는다고 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기운은 단박에 사라졌고 그가 발동한 천리혈영술에도 아무런 반응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모용진은 혈마의 앞에서 귀신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하……. 이 천하의 혈마를 순식간에 따돌리다니…… 이거야 원, 점점 더 재밌어지잖아?”
자신이 따돌린 사람이 혈마임을 전혀 모른 채 곧바로 거리를 벗어난 모용진은 곧바로 낙양을 빠져나가려 했다.
낙양은 거대한 성에 둘러싸인 도시였기에 반드시 성문을 통과해야만 했고 당연히 추적자들도 이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무 일도 없이 성문을 빠져나온 그때.
누군가가 안도하고 있는 모용진의 소매를 잡아 이끌었고 이에 놀란 모용진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백?”
저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내고 만 모용진은 황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다.
커다란 죽립에 검은색 무복을 입고 있는 여성.
옷차림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하얀 머리카락과 어여쁜 얼굴이 그녀가 설백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째서 여기 있는 거야? 북해로 돌아간 것 아니었어?”
“응? 왜? 부인이 지아비를 놔두고 가긴 어딜 가?”
“하지만 분명 아까 전엔 돌아간다고…….”
“그건 당연히 빙월이랑 대주들을 말한 거지. 문제가 된다는데 굳이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어?”
이에 모용진이 뭐라 하려고 했지만 설백이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웃었다.
“됐고, 어찌 됐든 난 지금 여기 있으니까. 절강으로 갈 거지? 하늘에 천당이 있으면 땅에는 항주와 소주가 있다던데…… 절강에 항주가 있는 거 맞지?”
모용진은 그녀의 말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설백은 기쁘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모용진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이었거든! 너무 멀어서 가 볼 엄두도 나지 않았던 곳인데. 걸어갈 거야? 아니면 마차?”
왠지 신나 보이는 그녀를 보며 모용진은 놀러 가는 게 아니라며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미소만 나왔다.
“이런 것도 나쁘진 않겠지.”
* * *
계획이 어그러졌음에도 모용진이 설백과 함께 즐겁게 항주를 향하고 있을 때.
대략 닷새라는 시간이 지나 서신으로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제갈영은 크나큰 혼돈에 빠져 있었다.
“관아가…… 통합무림과 연관이 있다니…….”
“이렇게 되면 흑제 님의 계획도 크게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
흑천파는 제갈영의 소집에 모두 중경으로 모여들었고 곤륜을 도우러 간 사천당가를 제외하곤 임무를 나갔던 이들 역시 모두 돌아와 있었다.
“스승님은? 그래서 스승님은 어떻게 하신다고 하셨지?”
종려의 질문에 제갈영이 고개를 내젓더니 서신을 펼쳐 보였다.
“일단 흑제께선 모든 것을 접고 절강으로 향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동행자가 한 명 있다고 하는데 누구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동행자? 흑련을 말하는 것 아닌가?”
“흑련 님은 지금 사천당가와 함께 곤륜으로 가고 있을 겁니다. 제 생각엔 저나 사천당가의 사람처럼 새로이 흑천파로 끌어들인 인물일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앞으로의 일입니다.”
머리를 쓸어 넘긴 제갈영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애꿎은 탁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만일 통합무림이 관무불가침을 깨고 황궁과 연관이 있는 곳이라면 이는 흑천파에 있어서 크나큰 위기입니다. 저희가 통합무림을 치는 것만으로도 이는 반역 행위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반역 행위가 될지 모른다는 말에 모두가 크게 깜짝 놀라며 제갈영을 쳐다봤다.
“어쩌면…… 여태까지 우리가 해 온 모든 일들과 흑제 님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