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77
광마전생 (177)
스악!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검기.
하지만 모용진은 이를 보고서도 피하지 않았다.
그는 검기를 응시한 채 손을 들어 올리더니 순간 무아(無我)를 펼쳤다.
모든 것이 마치 자신의 것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오직 모용진만 존재하는 세계.
그 세계 속에서 그의 머리는 수십 가지의 최적의 검로를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모용진은 그 검로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공아(空我).”
그의 말과 함께 그가 보는 세상은 순식간에 검게 물들어 갔다.
검은 세상에서 모용진의 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기(氣)뿐이었다.
자연의 기와 인간의 몸에 깃든 내기.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기까지.
공아.
그것은 모용진이 무아를 한차례 발전시킨 새로운 영역의 것이었다.
모용진은 선명하게 빛나는 검기를 바라보며 뻗은 손의 중지와 엄지를 접었고 그 순간 진철포의 검기가 크게 요동치며 일렁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양손가락이 닿는 순간 공간은 일그러지듯 검기를 집어삼켰고 그 검기는 허공에서 사라졌다.
탁!
“무…… 무슨 짓을 한 것이야?!”
놀란 두 눈으로 모용진을 쳐다보는 진철포.
그가 이토록 놀란 것은 모용진의 경지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여립으로 살던 모용진은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낸 적이 없었다.
이는 무공 수련에서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젠 예전처럼 무아를 펼치는 대상 전부를 그 세상으로 끌어들이진 않았다.
한마디로 상대를 끌어들이지 않고도 무아를 발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공아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지금 진철포의 눈에는 그저 자신의 검기가 허공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것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그에겐 크나큰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모용진이 그저 손을 뻗었을 뿐인데 갑자기 자신의 검기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으니까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검기를 사라지게 만든 모용진은 만족하는 듯이 웃으며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 역시 공아를 실전에서 펼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경계를 하게 만들고 말았구만…….”
그의 말대로 잔뜩 흥분했던 진철포는 더 이상 없었다.
그 놀라운 광경이 진철포에게 다시 냉정함을 안겨 줬기 때문이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나? 원래 타인에게 이름을 물을 땐 자신의 이름 먼저 밝히는 게 예의 아닌가?”
“진철포. 난 흑천의 장로 진철포라고 한다.”
모용진의 말에 진철포는 입술을 잘근 씹으면서도 결국 대답했다.
왜냐하면 지금은 상대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아 둬야 했기 때문이다.
방금 전 그가 검기를 사라지게 만든 것 하나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했다.
하지만 모용진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그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치는 한마디였다.
“난 안 가르쳐 줄 건데? 그리고 네 가짜 이름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아.”
그렇게 말한 모용진은 어느새 진철포의 뒤에 서 있었다.
서걱!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에 진철포가 고개를 돌리자 수하 셋의 머리가 동시에 바닥에 떨어지는 광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진철강. 그게 네 본명 아니냐.”
그 말에 진철포의 두 눈은 찢어질 듯이 커졌고 잠시 후 그의 입에서 포효에 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죽여!”
그 외침에 일제히 달려드는 흑천의 병사들.
그들의 몸놀림을 본 모용진은 그들 역시 진철포의 원래 소속이었던 암행부(暗行部)의 무사라는 것을 단숨에 눈치챘다.
“역시 네놈들. 내 생각대로 맹의 암행부가 확실하구나?”
그렇게 말하며 휘둘러진 모용진의 검에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두세 명의 목이 떨어졌고 세 개의 검로를 그린 독각검이 모용진의 등 뒤를 노리는 진철포의 검을 막아 냈을 땐 진철포는 어느새 혼자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진철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대동하고 온 수하들.
그들은 하나같이 고수의 반열에든 인물들이었다.
게다가 전직 암행부의 무사로써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한 그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진철포였다.
“뭘 그리 놀라? 너도 아까 네 대머리에 웃은 수하 놈을 쉽게 베어 버렸으면서 네가 할 수 있는걸 왜 내가 못 할 거라 생각하는 거지?”
뒤로 돌며 진철포의 검을 밀어낸 모용진은 곧바로 그의 머리를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카앙!
튀기는 쇠의 불꽃과 함께 크게 밀려나는 진철포.
모용진의 검을 막아 내긴 했으나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방금 그 평범한 공격 한 번에 생각지도 못한 큰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눈앞의 남자가 최소 화경을 뛰어넘는 고수라는 것을.
“화경의 고수였던 건가. 분명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반박귀진(返璞歸眞) 몰라? 꽤나 유명한 무공인데.”
“그런 허무맹랑한 무공이 있을 리가…….”
본인이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 그 허무맹랑한 무공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기에 진철포는 더 이상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와 검을 맞부딪치는 지금 역시 전혀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기루를 찾은 나에게 이러한 짓을 벌이는 거지? 행색을 보아하니 정파의 사람인 것 같은데 말이야.”
“그것보다는 내가 어떻게 네 본명을 알고 있는 건지 그걸 더 궁금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암행부 삼조 조장, 진철강 석두.”
소속과 이름 그리고 부대 내 호칭까지 모두 알고 있는 모용진의 말에 진철포는 살짝 움찔거렸지만 더 이상의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입을 꽉 다물더니 더 이상 질문도 대답도 하지 않겠다는 듯이 사나운 기세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때 암행부의 조장이었다는 건가. 뭐, 어차피 네놈한테서 알아낼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먼저 가서 기다려라. 네 동료들도 곧 네 뒤를 따라갈 테니까.”
이에 진철포는 이를 꽉 깨문 채 모용진을 향해 검을 내질렀지만 그의 목은 이미 허공을 날고 있었다.
툭.
바닥에 떨어진 진철포의 머리.
그는 그렇게 모용진을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예쁜 화원이 많이 더러워졌군. 빨리 치워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모용진의 시선이 향한 곳은 천기정루의 꼭대기였다.
그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유미옥을 향해 모용진은 손을 흔들어 주었고 이에 알았다는 듯이 유미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흑천이라는 것들, 생각보다 싱거울지도 모르겠는걸?”
* * *
하오문에서 날아든 서신.
그 서신을 받아 든 제갈영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그래서 그 서신을 내용을 읽고 또 읽고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는 그녀였지만 당연히 서신의 내용이 바뀔 리가 없었다.
“지금 제가 이걸 믿어야 할까요, 장로님.”
“믿어야겠지. 스승님이 빈말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은 군사도 잘 알지 않나?”
조종려의 말에 제갈영은 뒷골이 당긴다는 듯 손으로 목 뒤를 부여잡더니 그대로 한참 동안 고뇌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신중하시던 분이 이런 무모한 작전을…….”
“원래 변덕이 죽 끓듯 하신 분이었지. 바다가 보고 싶다더니 산을 가시고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시더니 갑자기 노름을 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던 그런 분이었으니까. 한땐 사도련 중 사일문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시더니 갑자기 그 옆의 화련문이라는 멀쩡한 정파 하나를 박살 낸 적도 있으셨지.”
“그 정도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다 이유는 있었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렇게 변덕이 심하셨던 분이니 이 정도는 놀랄 것도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하북이라고요? 중경에서 하북까지 거리도 엄청난 데다가 이렇게 많은 숫자가 움직인다면…….”
모용진의 서신에 적혀 있는 내용.
그것은 바로 흑천파를 중경에서 하북으로 옮기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단순히 거주지를 바꾸라는 내용일지도 모르지만 흑천파에게는 전혀 단순한 내용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선 흑천파가 하북으로 이전하면 지금의 수금원들은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흑천파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졌기에 이사하는 데 드는 비용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재정에 관한 문제일 뿐,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흑천파 자체의 문제였다.
흑천파는 지금 무림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문파이며 녹림과 장강 아래 숨어 있는 문파였다.
그런데 이런 문파가 하북으로 이전한다는 것은 녹림과 장강이 하북으로 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는 당연히 중원의 이목을 끌 것이 분명했고 그들이 가만히 놔둘 리도 없었다.
설사 녹림과 장강이라는 그늘을 없애고 당당히 흑천파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하북에 자리 잡는다고 해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저는 이번 작전에 대해 흑천파의 총군사로서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건 무모함을 넘어선 만용(蠻勇)이에요. 아무리 흑제께서 내리신 명령이라고 해도 이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제갈영의 말에 조종려는 인정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인정과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하지만 결국 우린 하북으로 이전해야 할 걸세.”
“예? 어째서죠?”
“그것이 스승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니까. 설령 총군사가 이를 거부한다고 하여도 스승님은 반드시 그렇게 되게 만들 거야. 그것이 바로 나의 스승 천기린 님이시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는 이번 작전은 절대 수용할 수 없…….”
제갈영이 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며 고개를 젓는 그때.
누군가가 황급히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가야허입니다. 군사님, 지금 빨리 아래로 내려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왠지 익숙한 상황.
예전에 은월령이 흑천파를 찾았을 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세워 뒀던 계획이 어그러지며 안 그래도 어수선한 상황에 모용진이 또 새로운 세력을 포섭한 건가 싶어 제갈영은 황급히 녹수각을 뛰어 내려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래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람이 아닌 뭔가가 가득 담긴 수레였다.
“가야허 님, 고작 이 수레 하나 때문에 저를 부르신 겁니까?”
“그게…… 고작 수레가 아닙니다. 군사님께서 직접 보셔야 할 듯합니다…….”
“수레가 수레지, 뭐가 감춰져 있기에 그렇게 호들갑을…….”
괜한 호들갑을 떤다며 제갈영이 수레에 씌워져 있는 천을 걷어 내는 순간 밝은 빛이 그녀의 눈을 강타했다.
“와……!”
“허업……!”
그 광경을 함께 바라보던 여러 이들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오는 감탄사.
그들이 그토록 놀란 표정을 짓게 만들고 제갈영의 눈을 부시게 만든 것.
그것은 바로 금이었다.
놀랍게도 천을 걷어 낸 수레에는 금이 한가득 쌓여 있었던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과 어마어마한 양의 금.
그 엄청난 광경은 제갈영마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이, 이건…… 금이 아닙니까?”
현재 금값은 황궁의 재건과 동시에 황제가 승하(昇遐)하며 더욱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만한 양의 금은 가치가 엄청났고 조금 과장을 더 하자면 이 돈으로 중경 전체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금의 휘황찬란한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갔던 제갈영은 문득 금 사이에 쪽지 하나가 끼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조심스레 빼낸 제갈영이 모두의 앞에서 펼치자 그곳에는 모용진의 필체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하북(河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