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8
광마전생 (18)
5장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부드러운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그 후로 콧속 깊은 곳으로 들어오는 달콤한 꽃의 향기가 온몸으로 퍼졌고 대지의 차가운 기운과 햇살의 따뜻한 기운이 번갈아 가며 몸속에 퍼져 나갔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전율과 함께 나는 숨을 갈구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입이 벌어진 그 순간.
“스읍…… 하아…….”
깨어났다.
햇살과 꽃이 가득한 숲속에서.
“이곳은…… 신선계인가? 아니면…….”
나는 본능적으로 오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작은 하루살이.
느껴질 리가 없는 하루살이의 날갯짓이 느껴졌고 그 날갯짓으로 인한 미미한 소리가 천둥처럼 귓가를 울렸다.
그 하루살이가 비행하다가 앉은 꽃.
나는 어지러울 정도로 향기로운 그 꽃의 냄새를 맡았으며 꽃잎 한 장에 담긴 꿀을 맛보았다.
마치 모든 게 처음인 듯한 신비한 감각.
하지만 이로 인해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 내가 살아 있는 건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그저 확실한 것은 내가 살아 있고 그리고…….
“하하…….”
나만…… 살아 있었다.
눈가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
슬픔이라는 감정이 이렇게 사무칠지 몰랐다.
분노라는 감정이 이렇게 들끓는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부정의 감정만 껴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희열.
나는 모용진으로 다시 살아났을 때도 딱히 살아났다는 기쁨을 느끼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천기린으로서의 나는 이미 모든 것에 만족하고 떠날 준비가 되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쁠 수가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만일 그대로 죽었다면 이 모든 부정의 감정이 한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악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아……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나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감사를 그것도 전혀 믿지 않았던 것에 감사를 표했다.
뭐가 감사한지에 대해서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지금 내 안에서 차오르는 이 끝없는 분노와 슬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지 몰랐으니까.
그저 감사를 표하는 내 머릿속엔 갈가리 찢겨 나가는 무림맹과 불타오르는 중원만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후읍…… 하아…….”
정신을 차리며 크게 숨을 내뱉었을 때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꽃들은 어느새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생기가 없어져 바스러지는 꽃잎들.
나는 들이마신 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고 곧바로 가부좌를 틀었다.
조심스럽게 불러일으켜 보는 내기.
아직 이 몸이 어떤 몸인지 전혀 모른다.
외형은 모용진과 똑같았는데 느껴지는 감각은 차원이 달랐으니까.
내기를 일으키려 조심스럽게 단전을 자극시켰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이내 알 수 있었다.
이 몸은 완전히 텅 빈 몸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곧바로 외원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만일 이 몸뚱어리가 구양절맥이었던 모용진 그대로라면 외원공 말고는 사용할 수 있는 내공심법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호흡과 함께 손끝에 내기를 생성해 내려는 그때.
호흡에서 청아하고 맑은 자연의 기가 느껴지더니 온몸을 충만하게 채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폐에서 퍼져 나간 청아한 기운이 순식간에 혈도를 타고 전신으로 퍼진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몸이 ‘모용진’의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모용진의 것이되 모용진의 것이 아닌 몸이었다.
구양절맥으로 너덜너덜했던 경맥들이 모두 뚫려 있는 것은 물론 그 크기도 상당했으며 가슴에서 엄청난 양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은 똑같았으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기가 이를 융화시키며 양기를 활기(活氣)로 바꾸고 있었다.
단순히 구양절맥이 치료된 몸이 아니었다.
음과 양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활기가 피어나는 신체.
음양활강지체(陰陽活强肢體).
전설로 내려오는 ‘천무지체(天武肢體)’ 만큼은 아니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신체 중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신체는 없었다.
애초에 일 년이면 일 갑자의 내공을 모을 수 있다는 천무지체(天武肢體)는 존재 자체도 증명된 적이 없으니까.
“내가 죽음이 아닌 환골탈태라도 한 것인가. 난 분명 주화입마에 빠진 것도 모자라 자폭술까지 시전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게다가 더 신비한 것은 아무런 내공심법도 사용하지 않고 그저 호흡만 할 뿐이었는데 흘러 들어온 자연의 기가 몸 안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 내기처럼 곧바로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이를 내기로 바꾸게 된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자명했다.
호흡 몇 번에 흘러넘치려는 자연의 기를 느끼며 나는 단전의 앞에 손을 가져갔다.
왠지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야심결(天夜心訣).
천기린이 직접 만들고도 스스로 사용하지 못했던 내공심법.
수백 개가 넘는 내공심법의 이점만을 모아 만든 최강의 내공심법이었지만 구양절맥을 치료해 극양지체(極陽肢體)라는 신체를 얻은 그도 감당할 수 없었던 내공심법이었다.
최강의 내공심법이었는데 사용하지 못했던 아쉬움.
그 아쉬움과 구결을 떠올리며 나는 숨을 들이켰다.
“쓰읍.”
한 호흡.
하지만 그 호흡이 끝나고 정신을 되찾았을 때.
나는 밤하늘에 떠오른 달을 볼 수 있었다.
“이 무공을 처음 만들었을 때도 저런 멋진 달이 떠 있었지.”
천야심결이라는 이름은 내공심법의 특징과 관계없이 그냥 그날의 밤하늘을 보고 지은 것이었다.
그날 밤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하지만 지금의 밤은 그날의 밤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나는 천야심결을 완벽하게 익힐 수 있었다.
천기린의 몸으로도 익히지 못했던 것을 되살아난 모용진의 몸으로 해낸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운기조식(運氣調息)이라는 행위는 쓸모가 없어졌다.
천야심결의 최대 강점은 숨만 쉬어도 자연스럽게 운기조식의 효과를 보는 것이었다.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평범한 호흡으로 들어온 기(氣)를 자연스럽게 몸속을 일주천시켜 내공을 쌓는 방법.
그게 천야심결의 묘리.
하지만 집중하지 않는 만큼 상대적으로 쌓이는 내공이 적을 수 있었지만 이 음양활강지체(陰陽活强肢體)가 모두 해결해 주었다.
천야심결이 호흡을 통해 평범한 기에서 내기를 얻어 낼 때 음양활강지체로 인해 발생한 활기 역시 내기로 같이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가만히 서서 숨을 쉬기만 해도 지금 내 몸에 쌓이는 내공은 열화신공(熱火神功)의 화룡호염술(火龍呼炎術)을 사용할 때보다 곱절은 더 많았다.
심신이 안정되고 머리가 맑아지자 그제야 나는 주변을 둘러볼 수가 있었다.
사람의 인기척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깊은 숲속.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커다란 나무와 식물들뿐이었다.
등 뒤에는 거대한 절벽이, 옆에는 물이 줄기차게 흐르는 좁고 거센 계곡이 있었다.
“인적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군.”
나는 달빛에 몸을 맡기고 숲을 탐사했다.
이곳은 그리 좁은 곳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널찍한 숲.
하지만 사방이 절벽으로 막혀 있었고 절벽의 형태 역시 마땅히 뭔가를 잡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나마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는데 그 물살이 워낙 거칠어 보통 힘으로 올라갈 수 없는 형태였다.
물론 이는 평범한 사람의 기준이다.
지금 내 몸에 붙어 있는 근육과 실시간으로 차오르고 있는 내공 그리고 오랜 경험으로 단련된 기술만 있다면 충분히 빠져나가고도 남으니까.
하지만 나는 나갈 생각이 없었다.
“딱 좋은데……?”
이 장소는 수련에 너무나도 적합한 장소였다.
인적이 아예 없는 데다가 먹을 물도 충분하고 식물과 나무도 많았다.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는 뜻이었다.
지금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그 명교 놈들이 나를 발견한다면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니 나는 여기서 반박귀진(返璞歸眞)의 경지를 이루거나 최소한 그들을 상대할 수준이 되어야만 했다.
그날 이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더 써야 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확신했다.
내가 그리될 때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음양활강지체(陰陽活强肢體).
천야심결(天夜心訣).
그리고 내 몸과 뇌가 기억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외공까지.
내가 다시 한 번 창천신검(猖天神劍)을 대성하는 그날이 오면 그때의 모용진은 이미 ‘천기린’을 아득하니 뛰어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떠올리는 즐거움도 잠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내 마음은 차갑게 식어 슬픔만이 가득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모용혁과 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듯한 느낌.
한없이 친절했던 정소촌의 이웃들이 떠오르자 왠지 더 마음이 아려왔다.
고작 십오 년…… 아니, 모용진으로서의 팔 년의 세월이 천기린의 삼십구 년보다 훨씬, 수천 배는 더 무거운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건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모용혁.
실제로 내가 몰락시킨 것은 아니지만 천기린을 세가의 원수로 알고 있던 아버지.
눈물이 워낙 많아 누읍곡마(淚泣哭魔)라는 별호를 붙여 주었고 그 별호에도 아들이 지어 주었다면서 좋아하던 분.
한참 어린 아들의 거센 지도에도 강해질 수 있다며 오히려 개의치 말라며 나를 위로해 주던 그 사람.
한집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으며 같이 씻고 같이 즐거워하던 그분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나는 몰랐었다.
내가 이렇게나 그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분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떠나는 그 순간에도 그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원래 내가 있던 절벽 아래로 돌아온 나는 진심을 다해 절을 올렸다.
오직 아버지만을 위한 재배(再拜).
나는 환하게 비추는 달을 바라보며 맹세했다.
억울하게 죽어 간 나의 모든 이들을 위한 최고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少林寺(소림사)
天魔神敎(천마신교)
武当派(무당파)
血敎(혈교)
華山派(화산파)
拜敎(배교)
峨嵋派(아미파)
死越喬派(사월교파)
崆峒派(공동파)
明敎(명교)
丐幫(개방)
南宮世家(남궁세가)
四川唐門(사천당문)
그리고 石家莊(석가장)의 깃발을.
그 깃발 아래 서 있는 것은 공성 대사와 석산우.
그리고 오랜 기간 함께했던 팽이종이었다.
달빛 아래의 맹세.
그 맹세 속에 펼쳐진 것은 비명과 혈흔이 솟구치고 모든 것이 불타오르는 무림이었다.
나는 곧바로 다리를 벌린 채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체력 단련의 기초가 되는 마보(馬步) 자세.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모용학관의 모두와 아버지 그리고 나를 위해.
나는 지금부터 쉼 없이 달려 나가야 했다.
“너희가 그렇게 부르짖던 광마(狂魔). 그 광마가 진짜 광마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내가 똑똑하게 보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