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85
광마전생 (185)
37장
모용진을 만나기 위해 항주에 도착한 제갈영과 조종려.
하지만 그들을 반겨 주는 것은 모용진과 유미옥이 아닌 혈강시와 이에 쫓기는 마을 주민들이었다.
조종려에게 혈강시를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천수수뢰장(千手水瀨掌)은 순식간에 혈강시를 찢어발겼고 마을 주민들은 그러한 조종려의 모습에 환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어디선가 하나둘씩 계속해서 등장하는 혈강시들.
점점 숫자가 늘어나자 조종려 혼자서 감당하기는 힘들어졌고 제갈영을 지키는 것조차 힘겨워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무려 여섯 마리나 되는 혈강시에게 둘러싸여 조종려가 공격을 받아 내기도 급급해진 그때.
어디선가 한 자루의 검이 날아와 혈강시의 어깨에 깊숙이 박혔다.
“가자!”
기합 소리와 함께 나타난 그들은 해남파의 검수들이었다.
조종려는 그들이 해남파라는 것을 푸른 깃발에 적힌 글귀가 없었다고 해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모든 검수들이 좌수검(左手劍)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좌수검은 왼손으로 검을 드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오직 해남파가 가진 특징 중 하나였다.
조종려를 돕기 위해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바로 방금 전 검을 던진 장본인이었다.
혈강시의 얼굴을 걷어차며 검을 뽑아낸 그는 바로 해남일검(海南一劍)이라 불리는 건마사였다.
화경은 아니지만 초절정의 고수인 그는 해남파를 대표하는 고수였다.
“괜찮으십니까, 어르신!”
“도와줘서 고맙네. 지금 인사를 나눌 겨를 따위는 없는 것 같으니 우선 이 괴물들부터 처치하지.”
“알겠습니다.”
조종려의 말에 수긍한 건마사는 해남파의 검수들과 조를 이루어 혈강시들을 상대하기 시작했고 해남파 특유의 쾌검은 빠르게 혈강시들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혈강시의 피부는 강기가 아니면 뚫을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무척이나 단단하였기에 이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조종려와 건마사뿐이었다.
콰직!
“휴우……. 듣던 대로 무척이나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군.”
건마사가 간신히 한 마리의 목을 베어 내며 다음 혈강시를 제거하려 뛰어드는 그 순간.
그의 눈앞에 한 마리의 수룡이 스쳐 지나가며 목표로 하던 혈강시의 목을 꿰뚫었다.
“헉!”
수룡을 보고 깜짝 놀라 멈춰 선 건마사.
그런 건마사를 바라보며 조종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시간을 벌어 줘서 고맙네. 해남파의 검수.”
조종려의 양손에 어려 있는 수기(水氣) 그리고 그 위에는 수룡이 그의 손을 휘감듯 움직이고 있었다.
“수룡파(水龍波).”
조종려의 손끝에서 옅은 수기의 파동이 일어나더니 그의 손위에서 노닐던 수룡들이 일제히 혈강시를 향해 쏘아졌고 한 번에 세 마리의 혈강시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놀라운 광경에 건마사는 물론 해남파의 검수들까지 말을 잇지 못하였고 그사이에 조종려는 남은 마지막 혈강시의 목을 수강으로 잘라 버렸다.
“수강(手罡)에 섬세한 수룡까지……. 설마 당신이 장강왕 조종려이십니까?”
“날 알아보다니. 꽤나 눈썰미가 좋은 청년이군.”
“해남파의 일대제자 건마사가 장강왕을 뵙습니다.”
놀랍게도 건마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무릎을 꿇으며 조종려에게 고개를 숙였고 이는 다른 검수들까지 마찬가지였다.
“허허. 고작 흑도의 수괴에게 머리를 숙이다니. 그대들이 곤란해질지도 모르니 자리에서 일어나게.”
“아닙니다. 이는 수공(水功)을 대성하신 분께 마땅히 차려야 할 예의입니다. 이것은 비록 서로 파(派)가 갈린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니 부담스러워하지 마시지요.”
해남파는 정파에서도 유일하게 수공을 익히는 문파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해남지검(海南之劍) 역시 수공의 한 종류였다.
검술에 있어서 검신이니 검성이니 하며 서로 파가 다름에도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있다면 이는 수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공에서 가장 높게 쳐주는 것은 바로 수룡.
수룡은 정말로 완벽한 한 마리 용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떤 수공이든 수공은 극에 달하면 수기의 형태가 약간 거칠게 변하는데, 그것이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보이기에 수룡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현재 수공에 있어서 수룡을 부릴 수 있는 것은 무림에 단 두 명.
그 두 명은 수공을 익히는 자들에게 수해이룡(水海二龍)이라 불렸는데 그중 한 명은 해남파의 장문인인 건소대였고 다른 한 명이 바로 장강왕 조종려였다.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군. 그나저나 자네들은 여기 절강에 무슨 일로 온 것인가? 해남파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을 텐데.”
“저흰 절강이 혈강시의 습격을 받고 있다며 도와달라는 무림맹의 서신을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무림맹이?”
“예. 지금 무림맹 전체에 퍼진 일이니 아마 다른 문파들 역시 곧 이곳을 도우러 나타날 것입니다.”
건마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뒤편으로 하나의 깃발이 나부끼며 지나갔는데 그 깃발의 주인은 바로 아미파였기 때문이었다.
아미파의 여승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조종려가 손으로 가리키자 건마사가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장강왕께서는 이곳 절강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희야 같은 수공을 익힌 문파로서 장강왕께 아무런 거리낌이 없지만 다른 문파들과 마주치게 된다면 장강왕께 그리 좋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오문에 들를 일이 있어서 찾아왔지. 그런데 절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그렇습니까? 흐음…… 한데 조금 이상하군요. 무림맹에서 저희에게 연락이 닿을 정도라면 장강에서 이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아!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의심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 있네. 아마 내가 급하게 이곳을 향하느라 보고를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겠군.”
건마사가 흑도인 조종려를 충분히 의심할 수도 있을 법한 상황.
하지만 그는 전혀 장강왕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는 혈강시의 공격을 받고 있었고 이를 발견한 건마사가 그를 도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가진 수공에 대한 자부심은 흑도와 정파 따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저희는 마을 주민들을 구하러 가야 하니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좀 더 장강왕의 무공을 견식하고 싶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 듯합니다.”
“그래. 도와줘서 고맙네.”
건마사는 조종려를 향해 포권을 취하더니 검수들을 이끌고 마을 안쪽으로 사라졌고 조종려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제갈영을 찾아 움직였다.
해남파가 나타났을 때 조종려는 제갈영에게 아무 곳이나 그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 있으라고 했다.
혹시 모를 일에 대한 대비였고 정파인 그들에게 제갈영이 눈에 띄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혈강시에 부서진 가정집에서 찾은 제갈영은 혈강시에게 쫓기다가 다친 이에게 부목을 대어 주고 있었다.
“장로님! 무사하셨군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군사도 괜찮아 보이는군. 그런데 저자는…….”
“우연히 대피한 곳에 다치신 분이 있어서 간단하게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제갈영의 말에 조종려는 다리가 부서져 누워 있는 그를 보더니 제갈영을 쳐다봤다.
그 눈빛의 의미를 제갈영은 단번에 알아챘고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가시죠.”
조종려의 눈빛에 담긴 말은 지금 쓰러져 누워 있는 자에게 신경을 써 줄 겨를이 없다는 것이었다.
제갈영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군말 없이 그를 따라 그곳에서 빠져나갔다.
“괜찮나? 신경 쓰일 텐데.”
“부목을 대어 준 것만으로도 저는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봅니다.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누굴 챙겨 줄 상황이 아니니까요.”
다친 사람을 위험한 곳에 방치하고 나오는 것.
이는 정파인으로서 절대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지금 제갈영의 입장에서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준 것과 마찬가지였다.
“장로님, 아까 전의 그들은 해남파가 맞지요?”
“운이 좋았지. 같은 수공을 익힌 자들이라 그런지 수적인 나를 예로 대해 주더군. 그리고 방금 전 아미파의 깃발을 내건 여승들도 봤다네.”
“혈강시에 해남파 그리고 아미파까지……. 상황이 좋지 않네요. 특히 저희들에겐.”
“아무래도 무림맹에서 혈강시를 처치하기 위해 총소집령을 내린 모양이야. 지금부턴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해야겠어.”
조종려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제갈영은 작금의 사태에 대해 고민하며 조종려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그들은 하오문이 있는 천기정루를 향해 가는 동안 절강을 도와주러 온 공손세가와 화산파 역시 눈으로 확인했고 멀리 천기정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쯤 제갈영은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이 탄성을 내질렀다.
“아……! 장로님, 그 해남파의 검수가 분명 마을 주민들을 구하러 간다고 했었지요?!”
“그랬지.”
“혈강시를 처치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요,”
“음……? 뭔가 알아낸 것이라도 있나?”
조종려의 질문에 제갈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건 모두 통합무림의 계략이 분명합니다.”
“통합무림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혈강시를 절강에 뿌릴 리가 있나?”
“저희가 먼저 마교를 공격해 흑도 따위로는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되니 더 큰 사건을 일으킬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 대안이 바로 절강을 희생시키는 것이죠.”
제갈영의 말에 조종려가 설마 그러겠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가 본 제갈영의 두 눈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절강을 희생시킬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절강은 무림맹에 있어서도 중요한 곳일 텐데. 옛 무림맹이 있던 곳이자 동시에 그들이 벌어들이던 대부분의 돈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을 텐데. 차라리 혈강시를 불러일으킬 거면 혈교가 있는 산서가 좋지 않은가? 그곳엔 혈교 이외에도 산적들이 많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은 걸로 유명하니까. 손해도 가장 적고 편했을 텐데.”
“아마 통합무림이 절강을 희생양으로 선택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딱 하나는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뭔가?”
제갈영은 조종려의 질문에 대답 대신 눈앞에 보이는 천기정루를 가리켰고 이에 조종려는 더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오문을? 하오문은 흑천을 통해 통합무림이 몰래 써먹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정보처 아닌가?”
“최근 하오문에서 통합무림에 관련된 정보가 확실하게 줄었습니다. 그 청화 님이 저희를 배신했을 리는 없으니 아마도 정말로 정보가 없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앞서 통합무림이 흑도를 이용하려 눈을 돌릴 것이라 예측했지만 그 대상에서 하오문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제 오판이었던 것이죠. 정보처라는 이유로 우리의 눈을 가렸을 뿐 애초부터 통합무림이 노리고 있던 것은 하오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통합무림의 비밀 정보처로서 하오문은…….”
끼이익!
제갈영의 손에 열리는 천기정루의 대문.
분명 모용진의 명령으로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대문은 너무나도 쉽게 밀려났고 열린 문틈 사이로 진한 피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렸으니까요.”
크게 열린 천기정루의 대문.
그 안쪽에서 드러난 화원의 꽃은 모두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검고, 붉고, 보기만 해도 메슥거리게 만드는 피의 색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