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86
광마전생 (186)
결정을 내린 나는 곧바로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서쪽의 제갈세가 북쪽의 남궁세가와 무당파.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서쪽을 향해 내달렸다.
그곳엔 이젠 멀리서 봐도 익숙한 얼굴.
제갈중이 제갈세가의 무사들과 함께 혈강시를 상대하고 있었다.
저들이 사람들을 구하는 동안 홀로 혈강시를 박살 내러 돌아다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했지만 일단은 확인이 필요했다.
그들이 어떤 명령을 받고 이곳에 오게 된 건지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지금 절강에 있었다는 것도 밝혀야만 공성 대사의 계획을 조금 더 크게 흔들 수 있었다.
“제갈중 님!”
나는 제갈중과 무사들이 상대 중인 혈강시에게로 날아가며 그의 이름을 불렀고 이에 제갈중은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대협?!”
쾅!
곧바로 혈강시의 머리를 주먹으로 강타한 나는 주변에 보란 듯이 거대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
화르륵!
극양초월권의 불꽃에 혈강시는 순식간에 불타올랐고 나는 수강을 이용하여 단번에 혈강시의 목을 갈랐다.
목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불꽃에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리는 혈강시.
그리고 그 모습에 제갈중과 무사들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열화권자(熱火拳者) 이여립 대협을 뵙습니다!”
열화…… 뭐?
아무튼 누군가의 선창에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더니 제갈중 역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열화권자 이여립 대협을 뵙습니다!”
“아니, 제갈중 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열화권자는 또 뭡니까, 갑자기……?”
“아직 모르셨군요, 대협. 열화권자는 이번 무호제 이후 이여립 대협께 붙은 별호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대협께선 어째서 이곳에……? 북해로 가셨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아니었습니까?”
“예? 그럴 리가요. 제갈세가에도 지켜야 할 약속이 있는데 제가 북해로 가겠습니까? 오랜 학관 생활도 끝났고 무호제도 사실상 끝났으니 잠시 휴식을 취하러 절강을 찾은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어쨌든 대협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저희가 왔던 길은 혈강시들을 모두 몰아냈으니 뒤쪽으로 가시면 혈강시를 마주칠 일은 아마도 없으실 겁니다.”
“가다니요? 제가 어디를 갑니까?”
마치 나를 보내려는 듯한 그의 말투에 나는 곧바로 쏘아붙였고 제갈중은 약간 당황한 듯 뒤통수를 긁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디로 가시던 중 아니었습니까?”
“아닙니다. 지금 절강에 이런 난리가 일어났는데 정파의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혈강시를 퇴치하며 그들을 빠르게 제압할 여러 방법을 강구하다가 제갈중 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우선 전 혈강시가 나타나자마자 이것들의 자의로 이곳에 나타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누군가가 이를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술사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그러던 중 큰 기가 느껴져서 여기 근처로 왔는데 괴상한 이가 혈기를 내뿜고 있더군요.”
“예……?”
“알고 보니 그자는 혈마였습니다. 그래서 대충 죽여 봤는데 이상하게도 혈강시들은 여전히 멀쩡하게 돌아다니더군요. 아마도 혈마 말고 다른 술사가 있는 듯합니다.”
“아, 그렇습…… 예? 혈, 혈마라면…… 그 혈교의 혈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갈중은 내 말에 눈을 뒤집힐 듯이 크게 떴고 나는 일부러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본인이 본좌니 뭐니 하면서 혈마라고 하더군요. 마인답게 시체는 불타 사라졌기에 혹시 몰라 이 반지를 증표 삼아 주워 뒀습니다.”
나는 혈마가 놔두고 간 반지를 꺼내 그의 눈앞에 보여 줬다.
물론 이것이 혈마의 것인지 제갈중은 알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이여립인 내가 하는 말이기에 그는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 정말로 혈마를 죽였단 말씀이십니까? 정말로?”
“예. 설마 제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뭐, 믿기 힘들 수도 있겠군요. 그만큼 혈마는 강한 상대였으니까요.”
내 말에 제갈중은 그제야 입을 쩍 벌리며 크게 놀랐고 다른 무사들도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혈마의 죽음.
이것은 굳이 통합무림이 아니어도 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 큰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혈마를 죽인 사람이 최연소 화경으로 칭송받는 무림의 절대 신예 중 한 명인 바로 나 이여립이니까 더 놀랍겠지.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는 제갈중을 보며 나는 정신을 차리라는 듯이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러니 이만 일어나시지요. 혈마는 죽었으나 아직 이곳을 떠돌아다니는 혈강시가 많습니다. 빨리 사람들을 구하셔야지요.”
“아…… 예, 그래야지요…….”
아직 반쯤 얼이 나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제갈중은 잠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너무 놀라서 대협을 빤히 쳐다봤습니다.”
“아니, 무슨 그런 일로 사과를…… 괜찮습니다. 그보다 제갈중 님, 빠르게 움직여 주시지요. 저는 혈강시를 쓰러뜨리며 술사를 찾을 테니 제갈중 님께서는 빠르게 이 주변의 마을 사람들을 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옙. 그리하겠습니다.”
제갈중의 모습을 보아하니 확실해졌다.
공성 대사는 정말로 이곳 절강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었다.
그리고 내말에 어딘가 불안해하는 제갈중의 모습에서 그들이 적극적으로 혈강시를 제거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했던 예측이 모두 그대로 들어맞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제갈중에게 얼굴도장도 찍었고 확인도 끝났으니 이제 내가 할 것은 이 ‘혈강시사태’를 하루빨리 종결시키는 것이었다.
“제갈중 님.”
“예?”
“혹시 여분의 검이 있다면 빌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쓰던 검이 부서져서 말입니다.”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만 기다려 달라던 제갈중은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고 가장 뒤쪽에 있던 무사 한 명이 어딘가로 헐레벌떡 뛰어가더니 검 하나를 들고 재빠르게 돌아왔다.
“물자도 가져오신 겁니까?”
“아, 옙. 혹시 사태가 길어질지도 모르니 세가에서 챙겨 온 것들입니다.”
방금의 말로 내 예측은 더욱더 확실해졌다.
치밀하게 물자까지 동원한 걸로 봐선 공성 대사는 최소 몇 달간은 절강을 묶어 둘 심산이었나 보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내가 아니지.
무사가 들고 온 검을 챙긴 나는 잠시 쉬지 않겠냐는 제갈중의 제안을 거절하고 곧바로 그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일이 끝나면 제가 먼저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명운을.”
“예, 대협. 그럼 조심하십시오.”
나를 떠나보내는 제갈중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변수의 발생을 어떻게 고해야 할지 고민인 거겠지.
여차하면 그들은 나까지 제거하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히 그런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여기에 모인 모든 자들이 나를 공격한다고 해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나는 한때 무림의 모든 고수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끝까지 버티고 버텨 수많은 자를 지옥으로 같이 데려갔던 자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천기린보다 확실하게 강했다.
왜냐하면 그때의 나는 무아(無我)나 공아(空我)와 같은 새로운 영역의 무공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몸의 내력 역시 통합무림의 영약 창고를 간식처럼 탈탈 털어먹은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강대해져 있었다.
게다가 창천신검 칠성의 벽마저 깨드리고 지금 팔성의 끝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방면에서도 천기린보다는 모용진으로서의 내가 더 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자만하고 있지 않았다.
옛날 그때처럼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내가 자만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모용진이 아닌 천기린이었다면 당장 공성 대사에게 달려가 정면충돌로 박살 내려 했을 거니까.
“그러고 보니…… 혈마가 그랬지…… 공성 대사는 불로불사(不老不死)라고. 호태산과 비슷한 그런 것인가? 역시 내 기억이 틀릴 리가 없지.”
혈마의 그 말은 내 옛 기억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내가 죽은 그날, 나는 확실히 공성 대사의 목을 베어 넘겼지만 지금 그는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까.
“확실히 불로불사가 아니라면 살아 있을 리가 없지. 근데 불로불사라면 늙지도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흠…… 아니면 이미 늙은 상태에서 불로불사가 된 건가?”
나는 입으로 잡생각을 내뱉으면서도 눈으로는 혈강시들을 찾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술사를 먼저 찾을 계획이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무림맹에서 나온 놈들이 구조하고 있으니 굳이 술사를 먼저 찾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물론 어떻게든 찾을 수만 있다면 술사를 찾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솔직히 혈마의 죽음 이후론 이젠 술사가 확실히 있다는 것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혈강시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제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나는 최대한 무림맹 녀석들을 피하며 주변의 혈강시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서걱!
독각검이 아닌 일반 검은 왠지 오랜만이라 낯선 느낌이었지만 오히려 그편이 좋았다.
천일(天佚)을 찾기 전까지는 앞으로 이런 검을 계속 사용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비록 창천신검을 쓰진 못했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혈강시를 쓰러뜨리는 데에 창천신검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으니까.
“열악참파도(熱渥斬波刀)!”
도법이라고 해서 꼭 도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이화신공은 불길이 눈에 띄니 나는 혈강시를 상대할 때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도 않고 손에 익은 열악도(熱惡刀)를 사용했다.
“내가 만들었지만 참 잘 만들었단 말이지. 그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보다도 뛰어난 것 같은데 말이야.”
혈강시의 목을 가르며 오호단문도를 떠올리니 오랜만에 그 녀석 얼굴이 떠올랐다.
한때 내 제자로 믿고 오호단문도를 전수해 줬던 놈.
팽이종이.
그 녀석의 정체가 명교의 왕원장이라는 걸 알았을 땐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팽이종…… 그때 분명 왕원장이 역용술(易容術)과 축골공(縮骨功)을 이용해 팽이종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 그러면 원래 ‘팽이종’이라는 인물이 따로 있다는 것인가? 아니, 잠깐만. 이상한데……?”
뛰어난 역용술과 축골공으로 다른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없던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도 당연히 가능한 것이고.
그런데 지금에야 든 한 가지 의문.
그것은 바로 팽이종이 분명 밥을 함께 먹었다는 것이다.
팽이종의 몸은 왜소했다.
그에 비해 왕원장은 상대적으로 우락부락하고 덩치가 있는 몸.
아무리 팽이종이 몸이 좋아졌다고 해도 그 차이는 눈으로도 심하게 차이가 날 정도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바로 그 차이였다.
아무리 축골공이라고 해도 몸을 왜소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고 그것은 몸 안의 공간을 거의 압축시켜야 하는 일이었는데 덩치의 차이가 심하다면 몸 안의 공간을 숨만 쉴 수 있을 정도로 꽉 압축시켜야만 했다.
그렇기에 만일 왕원장이 계속해서 팽이종의 몸으로 자신을 숨겨 왔다면 절대로 나와 밥을 함께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팽이종은 왜소한 체구에 비해 엄청나게 많이 먹는 대식가였으니까.
“후우…… 하북팽가라…….”
생각이 끝나자마자 나는 긴 한숨을 내뱉으며 눈앞에 나타난 또 다른 혈강시를 가볍게 두 동강 냈다.
“쯧…… 괜히 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나 버린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