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87
광마전생 (187)
혈강시.
화경의 고수가 사용하는 강기가 아니라면 벨 수 없는 피부를 가진 괴물.
게다가 그 날카로운 손톱엔 강기가 어려 있어 모든 것을 찢어발길 수 있었다.
그런 혈강시의 전설이 내려온 것은 엄청나게 오래됐는데 그 전설에 따르자면 당시 혈교에서 중원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야심을 가진 혈마가 나타났고 그는 무공에 재능이 없었지만 강시를 만드는 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그로인해 탄생한 것이 바로 혈강시였고 당시 혈강시는 고작 십여 구에 불가했으나 그 십여 구의 혈강시는 무림의 절반을 죽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전설은 그저 전설일 뿐인 듯했다.
“이렇게 쉽게 처리가 가능한데 무슨 무림의 절반을 죽게 했다는 건지, 원.”
나는 지금 혈강시의 산을 만들어 쌓아 두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말 그대로 혈강시를 죽여 그 시체를 한곳에 모아 뒀다는 뜻이다.
혈강시는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점점 더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놈들은 그저 튼튼하고 손톱 강기의 위력이 강하다뿐이지 이렇다 할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일직선으로 돌진해 오는 게 놈들의 최선.
그 돌진이 벽을 뚫고 사람을 찢어발길 정도로 강력했지만 나에겐 아무런 위협조차 되지 못했다.
무림맹 쪽에서 마을 주민들을 구하고 있고 그 덕에 아무런 제약 없이 혈강시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기에 나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상황을 종결시켜 가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혈강시의 탑을 쌓아 둔 것도 더 이상 혈강시가 보이지 않기에 주변의 혈강시 시체들을 끌어모아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든 혈강시의 산이 다섯 개.
그 시체의 숫자만 해도 백삽십여 개가 넘었다.
이제 남은 곳은 하오문이 있는 남쪽.
저장강을 넘어 그곳에 있는 혈강시를 모두 제거한다면 상황은 종료된다.
“잘하면 오늘 하루 만에 끝낼 수도 있겠는걸?”
내가 다시 저장강을 넘었을 때는 이미 하늘에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혈강시를 처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항주는 절대 좁은 곳이 아니었다.
항락의 도시답게 그 규모도 크고 넓었기에 혈강시들을 찾는 데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여기서 내 행동에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왜 나는 하오문이 있는 남쪽을 먼저 돕지 않았을까.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그쪽이 가장 먼저가 아닐까라는 의문.
그리고 그 의문에 대답해 줄 자가 강을 넘자마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백!”
“가가!”
“다친 곳은 없어?”
눈앞에 나타난 설백을 가볍게 안아 준 나는 가장 먼저 그녀가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설백의 몸에는 티끌만큼의 흠집도 없었고 표정 또한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없어. 저 시체 따위가 북해빙궁의 대장군의 몸에 생채기라도 낼 수 있을 거 같아?”
“다행이네. 그럼 그쪽은, 어때?”
“하오문은…….”
내가 설백과 나누는 대화를 설명하려면 처음 천기정루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
천기정루에 도착하여 처음 유미옥을 마주했을 때.
나는 그녀의 뒤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흑천파를 배신한 것은 아니었다.
몰래 쥐새끼 몇 마리가 잠입해 있었을 뿐.
그들은 무희라는 가면의 뒤에 숨어 유미옥과 나의 대화를 감청하려 애썼고 유미옥이 어딜 가든 몰래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
잠입하고 있는 쥐새끼가 누구인지는 조사하지 않아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하오문에 몰래 잠입해 있을 만한 곳은 흑천 한 곳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유미옥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녀가 이 사실을 아는 것보단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하는 게 내겐 더 좋은 일이었으니까.
유미옥에게는 조금 안된 일이었지만 오늘 하오문은 흑천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공성 대사의 바람대로 된다는 게 조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하오문은 흑천파와 내게 있어서도 잘라 내야 하는 썩은 가지였다.
천기린의 바람이기도 했고 모용진으로서도 통합무림의 정보를 캐낼 정보통이었을 뿐 끝까지 함께할 동료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유미옥을 제외한 하오문의 그 누구와도 알아 가려 하지 않았고 흑천파와 하오문 사이를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었다.
아무튼 흑천이 하오문 내부에 사람을 심어 뒀다는 것을 안 나는 그날 밤 몰래 심도화를 침실에 불러들였고 설백과 함께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지금 여기에 ‘흑천파를 적대하는 세력이 숨어 있다’라는 말이지?”
“맞아.”
“그럼 아까 그 유미옥이라는 여자한테 말해야 하는 것 아냐? 그 사람도 네 수하라며?”
설백의 말에 나는 심도화를 쳐다보았고 심도화는 살짝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에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본 바로는 딱히 의심스러운 점이 없었습니다. 흑제 님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였고 흑천에서 누군가가 잠입했다는 것은…… 부끄럽지만 저도 몰랐던 일입니다.”
“그렇군. 그래도 유미옥에겐 알리지 않는 걸로 하자. 괜히 나서서 문제를 일으켰다간 놈들이 눈치채고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첫 회동이 있고 그다음 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흑천은 모습을 드러냈다.
흑천의 사장로 진철포.
그의 본명은 진철강이며 한때 무림맹 암행부의 삼조 조장이었다.
나는 그를 일부러 농락하며 가지고 놀다가 그의 정체까지 대놓고 밝힌 뒤에 죽였다.
이는 단순히 그를 욕되게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고 내 반응에 흑천이 어떻게 나올지 보기 위함이었다.
그날 밤 나는 또 심도화를 불러들였고 그녀와 설백에게 내 의도를 설명해 주었다.
“이로써 시간을 조금 벌었어.”
“예?”
“남편이 대놓고 진철포라는 놈을 압살해 버렸으니 흑천이라는 곳이 정면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어졌다는 뜻이야.”
“설백의 말이 맞아. 그래도 아마 며칠 이내로 놈들은 움직일 거라고 봐. 어찌 됐든 통합무림은 이곳 천기정루를 무너뜨리려 할 테니까. 문제는 설백인데…….”
“응? 나? 갑자기 나는 왜?”
설백은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띈다.
그녀의 모든 것은 중원에게 있어 특별했기 때문에 북해빙궁의 손님인 설백이 천기정루에 있다는 소식은 금세 퍼져 나갈 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모두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북해빙궁의 공주인 네가 천기정루에 있는데 그 천기정루에 흑천이 함부로 손을 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공성 대사도 지금 상황에서 국가적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놀랍게도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도 흑천은 조용했다.
흑천이 하루빨리 하오문의 뒤통수를 쳐야 공성 대사도 나도 서로 원하는 바를 얻을 텐데 설백이 그 사이에서 묘한 억제제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갈 것만 같자 나는 비장의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부부 싸움’.
설백과 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부부 싸움을 하며 갈라져 설백이 자연스럽게 이곳 천기정루를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흑천도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하오문에 쳐들어올 것이라 생각했고 계획 전날 밤 우리는 서로 부부 싸움의 대본까지 짜려고 했었다.
하지만 둘 다 그런 재주는 딱히 없었기에 우린 결국 ‘진짜로’ 싸우기로 했다.
여태껏 쌓여 있던 불만을 서로 말하는 것으로.
대신 서로 뒤끝은 없기로 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설백을 내보내고 흑천을 맞이할 계획이었는데 때마침 그게 나타난 것이었다.
그게 바로 혈강시였고 설백이 혈강시를 처치하자마자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때 나는 이 혈강시가 흑천이 생각해 낸 계획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기에 곧바로 부부 싸움 계획을 실행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이것은 흑천의 계획이 아닌 공성 대사의 큰 그림 중 하나였고 흑천은 그 사이를 노린 것이었을 뿐.
“가가의 말대로 하오문은 우리가 떠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복면인들에게 습격을 당했어.”
“유미옥은?”
“심도화랑 흑영단인가? 그들과 함께 천기정루를 빠져나갔어. 아마 지금쯤이면 그 장소에 가 있을 것 같은데.”
“후우…… 그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 번 설백을 끌어안으려 했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내 손을 쳐 내더니 살짝 물러났다.
“응?”
“서로 반말하는 게 불만이었어?”
“예?”
“아니, 나는 우리 가가께서 또 불만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지요.”
그녀는 갑자기 경어를 사용하며 우리 사이에 벽을 치기 시작했다.
“뒤…… 뒤끝은 없는 걸로 하는 거 아니었어……?”
“뒤끝은 전 잘 모르겠고요. 삐지는 건 제 마음 아닐까요?”
“삐졌다고……?”
놀랍게도 설백은 정말로 삐진 듯이 살짝 볼을 부풀린 채 내 눈을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아니, 분명 뒤끝 없이 하기로 했으면서…….
뭔가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등에 흐르는 이 식은땀은 뭘까.
그리고 잠시 후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금 당장 설백의 기분을 풀어 주지 않는다면 나중에 엄청난 후환이 몰려오리라는 것을…….
“흥!”
* * *
피범벅이 된 천기정루를 마주한 조종려와 제갈영.
그들은 급히 천기정루를 수색했으나 그곳에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자가 없었다.
“이것도 혈강시가 벌인 일일까요?”
제갈영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조종려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이건 검흔이라네. 혈강시의 조강(爪罡)에서 나올 법한 것이 아니지.”
“그럼 사람이 벌인 짓이란 말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그 순간 제갈영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녀는 황급히 유미옥의 시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유미옥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고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곁에 붙여 둔 심도화 역시 보이지 않았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미옥 님이 적의 습격을 피해 도망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에게 잡혀갔다는 것이지요.”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하지? 먼저 유미옥을 찾아야 하는 건가?”
조종려의 질문에 제갈영이 고민을 하며 천기정루의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해가 사라져 어두워진 상태였다.
한참을 말없이 고민하는 제갈영과 그 옆에 서서 가만히 기다리는 조종려.
“음…….”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연 그녀는 어딘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어진 것 같습니다, 장로님.”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이 모든 걸 예측하시고 먼저 절강에 내려와 있는, 흑천파 최강의 두뇌를 가지신 분이 저기에 계시니까요.”
그녀의 말에 조종려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아주 낯익은 이가 천기정루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제갈영이 인정하는 흑천파 최강의 두뇌.
왜 자신을 총군사에 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진 괴물.
모용진.
흑천파의 수장인 그가 언덕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응?”
“으음?”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눈에 띄다 못해 빛이 나는 것만 같은 여성과 함께였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그의 팔짱을 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야, 아저씨 옆에 붙어 있는 저 녹말가루 같은 여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