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88
광마전생 (188)
“오랜만이군. 혈요 장로.”
“오랜만이라니요. 그저께 본산에서도 보지 않았습니까. 주혼경 장로님.”
달이 높게 뜬 하늘 아래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두 남녀.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혈요라고 불린 여성은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어딘가 묘하게 이질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주혼경이라 불린 남성은 모든 게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면서 매우 눈이 작은 게 특징이었다.
혈요와 주혼경.
그들은 마교에서 각각 하나의 종파를 다스리는 수장으로 혈요는 혈여종(血呂種)을 이끄는 수장이었고 주혼경은 검환종(劍環種)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혈여종과 검환종은 마교 내에서도 서로 오랜 앙숙과도 같은 사이였기에 교류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 그들의 수장이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있는 이유는 아주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 서 있는 곳은 신강의 남쪽에 위치한 팔마곡(八魔谷)이라 불리는 좁은 협곡이었는데 전략적으로 따지면 매우 우수한 곳이었다.
마교가 있는 천산으로 향하려면 가장 먼저 지나가야 할 곳 중 하나이기도 했기에 그들은 천마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곳으로 향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었다.
“제 생각엔 굳이 이 좁은 곳에 혈여종과 검환종이 함께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조금 늦으신 검환종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어떻습니까?”
“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검환종이 늦다니. 누가 봐도 검환종이 먼저 이곳에 도착했거늘. 당연히 자리를 옮겨야 한다면 그것은 혈여종이겠지.”
“마교의 대선배이신 주혼경 장로님께서 그런 억지를 부리시다니, 누가 봐도 이곳에 먼저 도착한 것은 저희 혈여종입니다. 아니면 제가 백번 양보하여 늦은 거라고 해 드리겠으니. 선배께서는 넓은 아량으로 후배들에게 이곳을 양보하시지요.”
“어째서 선배가 양보를 해야 하는 거지? 후배가 선배에게 양보를 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둘은 아주 부드럽고 친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가고 있었지만 표정과 기세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서로를 찢어발길 표정으로 노려보며 대화를 나누는 혈요와 주혼경.
“선배가 영 선배답지 못한 것 같네요. 호호호.”
“후배가 후배답지 못한 거겠지. 하하하.”
둘 사이의 대화가 점점 험악해져 가며 서로에게 날카로운 살기를 내뿜는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와 그들을 덮쳤다.
콰아아악!
단순한 돌풍인가 싶어 혈요와 주혼경이 손을 들어 올리며 얼굴을 가리려는 그때.
바람 속에서 날카로운 섬광이 번뜩였다.
“습격이다!”
“호신강기를 펼쳐라!”
재빠르게 눈치를 챈 혈요와 주혼경이 황급히 소리를 지르더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물러나며 호신강기를 펼쳤고, 잠시 후 그 섬광이 그들을 덮쳤다.
티디디디딩!
그들의 호신강기에 마구 튕겨 나가는 섬광의 정체는 바로 암기였다.
뾰죡한 바늘 같은 암기가 거센 바람을 타고 그들을 덮친 것이었다.
“크억!”
“크아악!”
혈요와 주혼경은 딱히 무리 없이 그 암기들을 튕겨 낼 수 있었으나 그들의 병력 중 무공이 고강하지 못한 이들의 호신강기는 암기에 하나둘씩 관통당하며 엄청난 사상자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암기를 하나라도 맞은 이들은 하나같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고 이는 암기에 독이 발려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암기와 독이라면 사천당가인가!”
“어느새 놈들이 여기까지 오다니……!”
그렇게 말한 혈요와 주혼경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시에 호신강기를 크게 키우며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서로 앙숙 같은 사이였지만 그들은 같은 마교인이었고 우선순위가 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주혼경 장로님, 제가 암기를 막아 낼 테니 암기를 날리는 대상을 찾아 주시지요!”
“그래. 부탁하마!”
혈요의 말에 주혼경이 대지를 박차며 높게 뛰어올랐고 그러자 신기하게도 날아오던 암기들이 방향을 틀어 일제히 주혼경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에 혈요는 등에서 자신의 비파를 꺼내 들었다.
무기가 아니라 악기를 꺼내 든 것을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비파는 그녀의 무기였다.
혈여종은 마교의 종파 중에서 유일하게 음공을 다루는 종파로 그들이 연주하는 음색은 무척이나 아름다우면서도 잔인하기로 유명했다.
디링!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비파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마기.
그 마기는 아름다운 운율을 타고 흐르듯 하늘로 치솟더니 날카로운 강기가 되어 주혼경을 향하는 암기들을 마구 쳐 내기 시작했다.
혈요의 강기와 암기와의 격돌.
암기에는 내공이 실려 있었지만 그리 강하지 못했기에 혈요의 음공에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고 주혼경은 아무런 방해 없이 높게 뛰어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주혼경도 혈요도.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커헉!”
“크악!”
혈요의 음공에 암기가 밀려나나 싶더니 날카로운 무언가가 혈요와 주혼경의 가슴을 동시에 관통했다.
그것은 아주 짧은 단검이었는데 더욱 놀라운 점은 누군가가 그 단검을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 어떻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게 왜 놀라운 것이냐면, 그것은 혈요와 주혼경의 무공 실력과도 관련이 있다.
놀랍게도 둘은 마교에서도 열 손 안에 꼽는 고수로서 초마(超魔)의 경지에 오른 고수 중의 고수였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심장을 내어 줬다는 것은 실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나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낸 두 명의 복면인.
그들은 바로 은월령의 비사(飛司)와 지사(地司)인 홍련과 흑련이었다.
푸슉!
단검이 동시에 뽑히며 혈요는 곧바로 자리에서 쓰러졌고 주혼경 역시 허공에서 떨어져 내려 바닥에 부딪쳤다. 둘은 그렇게 허무하게 즉사했다.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이었지만 이는 실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오른 초마라는 경지를 무림의 언어로 바꾸면 화경의 경지와 비슷한 것이었으니까.
물론 결과가 허무하다고 해서 흑련과 홍련이 아주 쉽게 이 일을 해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확하게 목표물을 암살하기 위해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었고 한 발자국 옮기는 데에도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으니까.
‘초절정에 오른 암살자는 화경의 고수도 죽일 수 있다.’
무림에서 반 우스갯소리로 떠다니는 그 소문을 직접 증명한 그들은 혈요와 주혼경이 죽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곧바로 어둠으로 사라졌다.
“종주님!”
“어머니!”
수장들의 죽음을 목격한 혈여종과 검환종의 마인들은 모두 그들의 가족이었기에 미친 듯이 그들의 주검을 향해 달려왔지만 이는 크나큰 실수였다.
다시 한 번 세차게 부는 바람과 함께 허공에 휘날리는 암기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 암기들은 일자로 날아오지 않고 회오리치듯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끄아악!”
“커억! 사, 살려 줘……!”
사방에서 몰아치는 암기에 하나둘씩 쓰러지는 혈여종과 검환종의 마인들.
사실 이곳 팔마곡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혈여종도 검환종도 아니었다.
그들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해 진을 치고 있었던 자들.
그들은 바로 사천당가였다.
당철삼은 팔마곡이 마교에 있어서 천해의 요새이자 함정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철혈장로 걸우혁과 철혈대를 쓸어버리자마자 곧바로 이곳 팔마곡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물론 팔마곡에는 팔마곡을 지키는 마인들이 있었지만 은월령과 당철삼에게 그들을 처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의 매복이 크게 성공한 이유는 혈요와 주혼경의 공도 컸다.
만일 그들에게 공을 세우겠다는 급한 마음만 없었다면.
그래서 다음 날 낮쯤에 이곳 팔마곡에 도착했더라면.
그들은 가장 먼저 이곳을 지키는 마인들을 찾았을 것이었고 그랬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과까지 달랐을 거라 보기는 힘들었다.
조금 힘들긴 했겠지만 홍련과 흑련이 함께하는 사천당가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했으니까.
암기와 독 그리고 암살. 평범한 무림인이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운 모든 것들이 그들의 주력이자 무공이었다.
스악.
어둠 속에서 다시 나타난 흑련과 홍련은 빗발치는 당가의 암기 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암기로는 쓰러뜨리지 못하는 고수들을 차례로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암기의 바람이 모두 그쳤을 때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오직 흑련과 홍련 둘뿐이었다.
“역시 대단한 실력이십니다, 홍련 님, 흑련 님. 오늘도 한 수 배웠습니다.”
상황이 모두 정리되자 여기저기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당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인원수는 고작 여섯이 넘어가지 못했다.
게다가 당철삼은 그 자리에 없었고 방금 전 홍련과 흑련을 칭찬한 이도 당철삼이 아닌 소가주인 당하율이었다.
“아닙니다. 당가의 ‘연암혈풍진(聯闇穴風陣)’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연암혈풍진이란 방금 전에 당가가 불게 한 바람의 정체였다.
“하하. 이제 두 분은 바로 또 움직이셔야겠군요.”
“하아…….”
당하율의 말에 흑련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뒤처리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아버지를 잘 부탁드립니다.”
“예. 그럼 당하율 님도 몸조심하시기를.”
홍련의 대답에 당하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흑련과 홍련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은밀하면서도 빠른 그들의 행동에 당하율은 혀를 내두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우리가 흑천파의 일원이 된 것은 정말로 천운인지도 모르겠군.”
사실 이번 전쟁을 치르기 전엔 그는 아버지인 당철삼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굳이 통합무림과 척을 지고 힘겨운 길을 걸으려는 아버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생각은 그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버지가 흑천파를 선택한 것.
그것은 사천당가에 있어서 가장 큰 행운과도 같은 일이었다.
만일 아버지가 흑천파에 숙이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 바닥에 누워 있는 시체는 바로 사천당가의 사람들이었을 테니까.
타닥타닥!
하나둘씩 불타오르기 시작한 마인들의 시체들.
마인의 숙명인 그 죽음은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던 당하율은 잠시 주변을 살펴보더니 크게 소리쳤다.
“적들은 반드시 내일 또 이곳으로 몰려올 것이다! 마인들이 불타 사라지면 그 흔적을 지우고 자리에 남은 모든 것들을 회수하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묻어 버려라. 우리의 임무는 ‘연암혈풍진’을 유지하며 가주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이곳을 사수하는 것! 그 어떠한 흔적도 남아서는 아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