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0
광마전생 (190)
부용대 대장 왕겸.
그의 등장으로 무림맹은 어쩔 수 없이 항주성의 문을 열어야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을 들인 것은 아니었고 관군들에게만 문을 열어 주었다.
“아직 혈강시가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것은 내가 정하는 일이오! 당신들은 지금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소!”
무당파의 일대제자인 장산이 대표로 나서 왕겸을 돌려보내려 했지만 왕겸은 이에 곧바로 선을 넘었다며 소리쳤다.
“선을 넘다니요. 저희는 그저 혈강시의 위험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내가 말하는 선은 그 선을 뜻하는 것이 아니오! 내가 지적하는 것은 지금 항주를 점검한 그대들의 행태를 말하는 것이오! 언제부터 이곳 항주성이 무림인들 마음대로 통제하는 그런 곳이 되었소.”
“아니, 그것은…….”
“설마 지금 감히 황제의 땅인 이곳을 무림이 넘보고 있는 것이요?!”
왕겸의 말에 장산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고 이에 왕겸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그를 밀쳐 냈다.
“그럼 당장 비키시오. 계속해서 나를 막는다면 이 모든 일을 위쪽에 보고하겠소. 무림이 일부러 혈강시를 풀어 절강을 손에 넣으려 했다고.”
이에 무림맹은 결국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고 왕겸은 군사들과 함께 항주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몰래 왕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가 왕겸을 제거하거나 또 다른 혈강시를 불러일으킬지 몰랐기 때문이다.
“만일 항주 전체를 둘러봤는데 혈강시가 없다고 판단이 내려지면 무림맹은 이 사실에 대해 어떻게든 해명해야 할 것이오.”
왕겸의 말에 그를 뒤따라온 무림맹의 사람들은 모두 사색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이곳 항주엔 더 이상 혈강시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삼백여 명에 달하는 관군들은 항주 전체를 마구 헤집고 다녔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하늘에 석양이 붉게 물들어 갈 때쯤 관군의 조사는 완전히 끝이 났다.
당연히 조사 결과는 혈강시가 없다는 것으로 판결이 내려졌고 이에 왕겸은 무림맹 측 대표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날렸다.
왕겸의 쏟아지는 질타 속에 나는 혹시나 그들이 왕겸을 제거하려 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미친 짓은 벌어지지 않았다.
왕겸은 무림맹에게 내일 아침까지 이곳에서 철수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내가 쌓아 둔 혈강시의 시체는 그 자리에서 왕겸이 바로 불태워 버렸다.
모든 것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을 확인한 나는 왕겸이 떠나자마자 곧바로 제갈중을 찾아갔다.
제갈중은 다른 문파의 대표들과 함께 매우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는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어 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관군들이 찾아왔다면서요? 다들 괜찮으십니까?”
“이여립 대협님, 대체 여태껏 어디에 있으셨습니까?”
대체 어디에 있었냐며 인상을 찌푸린 채 다가오는 장산.
그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내 앞에 다가오더니 찡그린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남아 있는 혈강시가 있지 않을까 싶어 순찰을 돌고 있었지요.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럼 없겠습니까? 관군이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이럴 때 대협 같은 분이 옆에서 나서서 무림맹의 입장을 말씀해 주셔야지요.”
“제가요? 왜요?”
“지금 저희가 좋아서 이곳을 점령하고 있는 겁니까? 이게 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그건 여기 있는 당신들 생각이고요. 제 생각은 아닙니다만?”
“당신들이요……?”
“예. 애초부터 제가 왜 이곳을 점거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았습니까? 혈강시의 위협도 없어진 지금 무림맹이 이곳을 점거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보는데.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리고……?”
“면상 좀 치워라, 개새끼야.”
빠악!
위협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점점 다가오는 장산의 얼굴을 결국 참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후려 버렸다.
한 방에 날아간 장산은 그대로 벽에 크게 부딪쳤고 그대로 기절했는지 엎어진 채 작은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대협!”
“뭐 하기는 너네들도 봤을 거 아냐. 저 새끼가 면상을 들이미는 거 못 봤어?”
“아니, 그런데 왜 갑자기 반말을…….”
“아니꼬우면 너네도 하던가. 내가 속이 터져서 그런다, 속이 터져서.”
“이여립 대협! 예를 갖추시오! 아무리 그대가 화경의 고수라도 무림에서는 우리가 선배가 아니오!”
대뜸 나서며 삿대질을 하는 화산의 검수를 보자 뭔가 가슴속에 쌓여 있던 짜증이 갑자기 확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갑자기 아무 일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인데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짜증이 올라오는 순간.
사실 내가 이곳에 들른 이유는 말로 그들을 자극하여 이번 계획이 확실하게 공성 대사에게서 시작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다른 종류의 대화로 확인하는 수밖에.
어차피 계획도 박살 난 마당에 굳이 이여립의 이미지를 챙길 필요도 없잖아?
“선배? 누가 선배지? 나는 네놈 같은 나약한 선배를 둔 기억이 없는데?”
“뭐? 지금 뭐라고 지껄인 것이냐!”
“대협!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조금만 진정하시고…….”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 것을 보곤 제갈중이 황급히 나와 화산의 검수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가볍게 손으로 밀쳐 버렸다.
“같은 파도 아니고 본 적도 없는 사이인데 어디서 선배 타령이야. 찌그러진 양동이같이 생긴 놈이. 불만이면 실력으로 증명하던가, 선배가 될 자격이 있는지 봐 줄 테니까.”
“이노옴!”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화산의 검수는 검을 뽑아 들었고 이에 나는 대화를 나눌 준비를 했다.
내가 나누고자 하는 또 다른 종류의 대화.
그것은 바로 몸의 대화였다.
내 어깨를 노리고 날아오는 한 줄기 섬광.
하지만 나는 그것이 허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선배는 개뿔이, 이딴 것도 이십사수매화검법이라고…….”
내가 보기에 그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참으로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실력은 잘 쳐줘도 일류.
하도 영약을 많이 처먹어 내공만 많았지 검술 실력은 빈껍데기 수준이었다.
이딴 놈에게는 주먹도 아깝다는 생각이든 나는 손바닥으로 그의 면상을 날려 버렸다.
“키엑!”
괴상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그는 바닥에 퍼질러지듯 쓰러졌고 다른 이가 황급히 부축하여 그의 상태를 살펴봤으나 그 역시도 장산처럼 한 방에 기절한 상태였다.
무당파와 화산파의 대표 두 명이 단 한 방에 나가떨어지자 분위기는 급격하게 조용해졌다.
“후우……. 내가 고분고분하게 있으니 만만하게 보였나 본데. 이렇게 된 이상 억지로라도 알아내야겠어.”
“대협, 많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잠시만 진정하고…….”
“그럼 제갈중 님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대체 왜 무림맹이 이곳 항주를 점거하고 있는 것인지?”
“그건…….”
하지만 결국 그의 입에서 대답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나는 그들의 앞에서 대놓고 선포했다.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께 딱 십 초 드리겠습니다. 십 초 내에 누구라도 저에게 사실을 알려 준다면 저는 얌전히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하지만 십 초가 지나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면…….”
꽈아악.
보란 듯이 그들 앞에 손을 들어 올린 나는 손등에 핏줄이 설 만큼 주먹을 꽉 거머쥐었다.
“저는 여기 있는 모두를 때려눕혀서라도 그 내막을 듣고 말겠습니다. 설령 이 일로 누군가가 죽는다고 하여도 말입니다.”
빙빙 둘러 말했지만 내 말은 간단했다.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말에 저들의 반응 역시 단순했다.
스릉.
여기저기서 뽑혀 나오는 병장기의 소리.
그들은 아마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다 함께 입을 닫고 무기를 들면 내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설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추호도 그럴 생각이 없었고 나지막하게 숫자를 읊어 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
“아홉.”
“열.”
내 예상대로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나는 예고했던 것처럼 곧바로 움직였다.
쾅!
내가 주먹으로 가장 먼저 박살 낸 것은 바로 남궁세가의 대표인 남궁진의 검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박살 낸 것은 그 남궁진의 턱뼈였고 그다음은 그의 이빨이었다.
내가 남궁진을 먼저 박살 낸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제일 가까웠으니까.
원래라면 가장 강한 놈을 먼저 쓰러뜨리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겠지만 지금의 내게 이놈들은 죄다 거기서 거기였다.
남궁진이 쓰러지자 그들은 일제히 나를 향해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나는 한 명씩 차근차근 짓밟으며 그들에게 바닥의 차가움을 알려 주었고 그 소리가 많이 컸는지 밖에서 대기하던 무림맹의 인원들까지 가세하여 무림맹의 막사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어차피 모두 다 때려눕힐 생각이었으니까.
퍽! 빠각!
달밤에 울려 퍼지는 시원한 타격음.
그들의 검은 내 호신강기에 막혀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고 내 주먹은 막아서는 모든 것들을 박살 냈다.
따로 어떠한 무공을 쓴 것도 아니었다.
그들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으니까.
오랜만에 맛보는 순수한 주먹의 시원한 느낌.
그래서 그런지 어느샌가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알 수 없는 짜증은 어느새 모두 사라져 있었고 그곳엔 오직 주먹의 시원한 느낌만이 남아 있었다.
“그, 그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거의 모든 이들이 바닥의 차가움을 느끼고 있을 때쯤.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하나둘씩 항복을 선언하며 무릎을 꿇었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가 아는 것이라면 모두 말씀드리겠…… 컥!”
그중에는 자신이 아는 걸 모두 말하겠다는 자도 나타났지만 지금 내게 더 이상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근래에 나는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나도 모르게 속에 많은 것을 쌓아 둔 상태였다.
뜻대로 되지 않는 계획과 통합무림 그리고 친왕까지.
내 몸속 깊숙이 박힌 그 독소들은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절강에 내려온 일만 해도 그렇다.
설백과 유미옥에겐 흑천이 하오문을 노리고 있을 거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내려왔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그때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오랜 시간 공들였던 계획이 역신이라는 인물 하나로 박살이 났기에 나는 크나큰 혼란에 빠져 있었고 정말로 아무 이유도 없이 절강으로 내려왔다.
드넓은 바다라도 보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던 것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무작정 내려왔던 것이다.
복수를 꾀하는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절강에 내려올 만큼 무뎌진 마음.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마음이 조금씩 치유가 되어 감을 느끼고 있었다.
맨주먹으로 이들을 때려눕히는 것으로.
단순히 몸을 푸는 것으로 치유가 되는 것이었으면 혈강시로도 가능했을 텐데 왜 이들을 때려눕히는 게 이토록 신명이 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을 쓰러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들은 공성 대사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놈들.
반대로 말하자면 내 계획을 방해하려 드는 적이었다
그렇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들을 복수의 대상이라고 느낀 것이었다.
“후웁, 하아…… 하하하!”
차가운 밤하늘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나는 웃었다.
언젠가 진짜 복수를 하는 그날. 그 복수의 짜릿함이 얼마나 강렬할지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