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1
광마전생 (191)
“이유는?”
“저, 저희도 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건지 모릅니다. 저희는 그저 맹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흐음…… 그래?”
역시 가장 좋은 대화 수단은 주먹이었다.
남궁세가나 화산파 같이 통합무림에 깊게 연관되어 있는 자들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았지만 공손세가나 해남파 같은 이들은 조금 더 어루만져 주자 입에서 정보가 봇물처럼 튀어나왔다.
“그런데…… 어떻게 무림맹은 절강에서 혈강시가 나타날 걸 예측했을까?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해남이나 섬서 같은 곳에서 여기에 오려면 최소 며칠은 걸릴 것인데. 그런 명령을 받았다는 것은 무림맹이 혈강시가 출몰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되잖아? 대체 어떻게?”
내 말에 그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나 또한 그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떠본 것은 뒤에서 말없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 남궁세가와 무당파 쪽이었지만 당연히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른다면 내가 직접 알아내면 되겠지. 하지만 일개 무림인이 알아낸다고 한들 얼마나 알아내겠어? 그래서 내가 초대한 분이 있는데…… 자, 자, 다들 이쪽을 주목해 줄래?”
내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들이 하나씩 머리를 들기 시작했고 잠시 후 그들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초대한 사람이 바로 부용대의 대장 왕겸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본 장산이 손을 덜덜 떨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턱이 박살 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맞아. 이분은 내가 모시고 온 분이지. 너네가 이유도 없이 이곳 항주를 점거하고 풀어 주지 않길래 내가 안쪽의 사정을 모두 설명하고 데려온 분이다. 왕겸 님, 이런 이른 새벽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관아에 중요한 제보를 해 주신 분이 아닙니까. 그 원흉을 찾았다고 하셨는데 어찌 자고 있을 수만 있겠습니까.”
왕겸은 혼자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삼백이 넘는 관군들이 포진해 있었고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포승줄을 잔뜩 들고 있는 상태였다.
“듣거라! 이들은 모두 반역을 꾸민 악랄한 무림인들이다! 관아에서 철저하게 조사해야 하니 모두 추포하라!”
왕겸의 추포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관군들은 포승줄을 들고 무림인들을 죄다 결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항주성의 성문들을 지키던 무인들까지 모두 결박한 왕겸은 그들을 항주 밖으로 끌고 나갔고, 해가 뜨고 아침이 되었을 때 관군들에 의해 항주성의 문이 개방되었다. 사람들은 관군들의 엄격한 확인을 걸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항주가 원래대로 돌아가면서 통합무림의 계획은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들은 혈강시 사태를 최대한 끌어 보려 했지만 단 나흘도 버티지 못하고 혈강시 사태가 종결된 것이다.
하지만 내겐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첫 번째는 하오문의 사태.
나와 설백이 가짜 부부 싸움으로 천기정루를 벗어난 그날.
흑천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오문을 습격했다.
그것도 단순히 천기정루만 습격한 것이 아니라 절강 내에 존재하는 모든 하오문의 지부 전체를.
그리고 이를 도운 것은 사문방(死門房)과 흑룡파(黑龍派)였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하오문의 지부를 어느새 꿰차고 앉아 있었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대충 알고 있었지만 혈강시를 핑계로 방관했다.
왜냐하면 하오문은 나에게 있어서도 잘라 내야 할 꼬리표 중의 하나였고 천기린이 못다 이룬 복수의 대상이었으니까.
유미옥에게 조금은 미안한 감이 있었지만 나는 손을 전혀 대지 않고 코를 푼 셈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 이번 일은 손해가 아닌 이득이었다.
나는 당연히 이것을 유미옥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내가 알면서 그랬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직 나만이 아는 사실.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군사로서의 유미옥의 능력은 흑천파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고 앞으로는 그 능력이 더 빛을 보게 될 것이었다.
이제 유미옥은 진정한 흑천파의 일원으로써 하오문을 무너뜨린 자들에 대한 복수를 시작할 테니까.
사실 이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였다.
흑천은 이제 그냥 대놓고 조지면 그만이었으니까.
다만 청화로 돌아온 유미옥이 아직도 제정신을 찾지 못하고 얼이 빠져 있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녀라면 금세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 믿고 있었다.
지금 내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녹말가루와 콩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녹말가루와 콩은 진짜 녹말가루와 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내 아내가 된 설백과 흑천파의 총군사인 제갈영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천기정루의 앞에서 처음 마주한 그날.
첫 시작은 제갈영부터였다.
그녀는 설백을 보며 대뜸 이 녹말가루 같은 여자는 뭐냐며 눈꼬리를 치켜세웠고 이에 설백은 제갈영에게 콩만 한 게 뭐라고 하냐면서 곧바로 받아쳤다.
솔직히 그 상황에서 가장 당황한 것은 나였다.
왜 갑자기 그곳에 제갈영과 조종려가 있는 건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왜 제갈영이 대뜸 설백을 말로 공격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폭발을 일으킬 것 같은 두 사람을 말린 나는 그들을 모두 데리고 유미옥의 도피처로 향했다.
그사이에 나는 종려에게 그들이 왜 이곳으로 왔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나도 종려와 제갈영에게 설백을 소개해 줬다.
결혼한 아내라고.
이에 제갈영과 조종려는 정말로 충격을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날 이후 제갈영은 놀라울 정도로 입을 닫아 버렸다.
그렇게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유미옥과 입을 닫아 버린 제갈영 그리고 왠지 모르게 삐져 버린 설백.
이 세 명을 원 상태로 돌리는 것이 지금 나의 가장 큰 문제였다.
내가 그걸 왜 해결해야 하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유미옥의 도피처는 천기정루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 속에 위치했다.
겉으로 보기엔 폐가에 가까웠지만 안은 말끔한 구조.
하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방이 하나뿐이라는 문제였다.
흑영단의 인사를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가자 여전히 그곳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멍하니 바닥을 보고 있는 유미옥과 한쪽구석에서 대놓고 설백을 노려보고 있는 제갈영.
그리고 그런 시선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대놓고 검을 꺼내어 닦고 있는 설백까지.
나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오늘은 확실하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쿵!
일부러 크게 발을 굴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지만 놀라울 정도로 그녀들은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설백…… 설마 아직도 삐진…….”
“가가, 소녀는 지금 검을 닦고 있사오니 닥쳐 주시옵소서.”
“어…… 넵…….”
이제 경어도 모자라 욕설까지 합쳐진 설백의 말에는 살기가 가득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 살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고 말았고 고개를 돌리자마자 눈이 마주친 사람은 바로 제갈영이었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말도 하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획 돌려 버렸다.
“영아, 너까지 대체 왜 그러는 거니.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
내말에 영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대답이 날아왔으니 바로 설백이었다.
“우리 가가는 저를 녹말가루라고 부른 년에게 영이라고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군요. 두 분이 참으로 가까우셨나 봅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입을 꾹 닫고 있던 영이도 갑자기 입을 열었다.
“예, 무척이나 가깝지요.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콩 취급한 년보다는 말이지요.”
“하하. 그게 녹말가루만 할까요.”
“콩만 한 저랑 다르게 길쭉하셔서 참으로 좋겠습니다, 할머니.”
순식간의 둘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기 시작했고 일촉즉발의 상황이 찾아왔다.
그리고 결국 폭발하게 된 것은 바로 그들 사이에 있던 바로 나였다.
“그만.”
내 몸에서 흘러나온 살기는 순식간에 방 안을 무겁게 만들었고 이는 멍하니 있던 유미옥마저 깜짝 놀라 몸을 웅크리게 만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강제로 설백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바깥으로 던져 버렸다.
“가가, 지금 이게 무슨…….”
“나 지금 정말로 화났어.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
설백의 손을 잡아 방의 중앙으로 이끈 나는 그녀를 먼저 자리에 앉혔고 제갈영 역시 억지로 끌고 나와 설백과 마주 보게 했다.
“지금부터, 둘은 화해해.”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저씨. 저는…….”
“둘 다 닥치고 그냥 화해해. 제갈영, 너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진 몰라도 설백은 진짜 내 아내야. 갑자기든 뭐든 내 아내가 된 사람과 평생 보지 않을 생각이냐? 같은 흑천파의 식구끼리?”
“아니, 저는…….”
“그리고 설백 너도 그래. 뭐에 삐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하지 그래? 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그리고 제갈영은 내 친구의 딸이자 흑천파의 군사야. 당연히 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니겠어?”
내 말에 설백은 입을 꾹 닫고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억지로 제갈영을 향해 뻗게 했고 제갈영 역시 똑같이 손을 잡아 설백을 향해 손을 내밀게 했다.
“둘 사이에서 누가 봐도 먼저 잘못한 것은 제갈영이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녹말가루라며 비꼬았으니까. 그러니 영이 네가 먼저 설백에게 사과해. 그렇다고 해서 설백이 잘했다는 건 아니야. 그래도 영이가 나이가 많고 똑같이 콩에 빗대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억지로라도 둘을 사과시키고 상황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흑…….”
“음?!”
갑자기 제갈영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이에 설백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 어라?”
뭐지? 이게 아닌데……?
* * *
설백과 제갈영의 갑작스러운 눈물.
모용진은 왜 그녀들이 울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물 이후로 놀랍도록 분위기는 달라졌다.
설백과 제갈영은 여전히 서로를 차갑게 대했지만 모용진은 다시 평소처럼 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모용진은 여태껏 있었던 일을 제갈영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었고 그 결과…….
“그러니까 계획이 어그러졌다고 생각해서 가장 위험할 하오문을 지키러 왔는데…… 그 와중에 결혼도 하고 부부 싸움도 하고 혈강시도 잡고 혈마도 잡고 다시 화해하고, 많은 것을 하셨네요? 저희와 만나고 이 은신처에 도피한 후에도 항주를 점거하던 무림맹들을 관아에 넘기셨으니…… 보자. 하나, 둘, 셋, 넷…… 대체 몇 가지 일을 하신 거야?”
“그…… 설백과 혼인을 하게 된 건 그 이전의 일이랄까…….”
“아하. 그럼 그 일은 더 한참 전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여유 시간이 있었음에도 알려 주지 않으셨다는 뜻이네요?”
“그건…… 그 굳이 알리지 않아도…….”
“그러니까 흑천파의 총군사인 제가 몰라도 되는 일이었다?!”
높아지는 제갈영의 언성에 모용진은 절로 쪼그라들었다.
모용진이 지금 제갈영에게 이렇게 혼이 나는 이유.
그것은 모용진이 흑천파에 이렇다 할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모용진이 수장이기에 그가 보고를 해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이것은 약속이었다.
옛날 제갈영이 흑천파에 들어오면서 서로에게 숨기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약속.
제갈영은 그래야만 자신이 이 흑천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했고 모용진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 모용진은 제갈영에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수십여 가지나 되는 일에 대해서.
이에 제갈영은 당연히 화가 날 만했고 모용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자발적으로 반성하며 이처럼 무릎을 꿇고 있었다.
“미안…….”
“솔직히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진 않아요. 무슨 생각이신지는 알겠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어이가 없는 건 저기 저 북해빙궁의 공주님이시라는 설백 님과 혼인을 맺으신 겁니다. 대체 무슨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