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3
광마전생 (193)
38장
누군가가 보기에는 내가 유미옥과 하오문에게 가혹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오문에게 가혹하게 굴 수밖에 없다.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그 끔찍한 기억들.
힘도 없고 연약한 아이들을 멋대로 휘두르던 그들의 패악질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설령 하오문이 복수에 꼭 필요하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결국 하오문을 어떻게든 없앴을 테니까.
오히려 흑천이 그 일을 대신해 주었기에 지금 나는 한결 마음이 편했다.
가끔 문득 내가 스스로에게 ‘하오문이라고 해서 모든 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명확히 대답할 명분을 알고 있었다.
‘그게 무림이다.’
어떠한 불합리가 있어도 힘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 곳. 무림.
그 말은 내가 스승님께 무공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었다.
스승님은 이것이 무림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고 하셨고 나는 그 의미를 오래전부터 깨달아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의 위안으로 삼았다.
“그럼 하북에서 뵙겠습니다, 스승님.”
“아저씨, 이만 가 볼게요.”
제갈영과 조종려는 그날 저녁 곧바로 떠났다.
떠나기 전 제갈영과 설백은 둘만의 이야기 시간을 가졌고 그 때문인지 제갈영이 떠나갈 때 설백도 나와 그녀를 마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유미옥과 흑영단.
하지만 그녀들은 이곳에 남는다.
오히려 항주에서 떠나는 것은 바로 나와 설백이었다.
“유미옥, 대략 내일쯤이면 성아가 은월령의 사자들을 대동하고 이곳에 올 것이다.”
“예.”
“흑천의 본거지가 어디에 있는지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본거지는 물론 그놈들이 자주 애용하는 객잔과 지부까지 모두 상세히 꿰고 있습니다.”
“아마 놈들은 네가 먼저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걸 잘 이용해 봐. 그리고 성아와 은월령 역시 흑천의 수장인 도원영과 서로 원수지간이니 아마 적극적으로 널 도와줄 거야.”
“감사합니다, 흑제 님. 반드시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다독여 준 뒤 먼저 집안으로 들여보냈고 그 후 설백과 함께 은신처를 빠져나가며 몰래 심도화를 불러냈다.
“도화.”
“예, 흑제시여. 말씀하십시오.”
“아니, 굳이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넌 알고 있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인 심도화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고 나는 설백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와 곧장 항주성이 보이는 곳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갈 거야? 흑천이라는 놈들도 유미옥이랑 은월령에게 맡기고 흑천파를 이주시키는 것도 제갈영 언니에게 맡겼으니 따로 할 게 없지 않아?”
“언니? 언제부터 영이가 언니가 됐어?”
“그거야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언니지, 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둘 사이는 훨씬 더 가까워진 듯했다.
언니라니.
그 설백이 누군가를 언니라고 부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럼 나는? 나는 영이에겐 아저씨인데?”
“아저씨든 뭐든 가가는 가가지. 내 남편이니까.”
그녀는 빙그레 웃더니 내 팔짱을 끼며 빨리 앞으로 뭘 할 건지에 대해서 대답하라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뭐……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갈 거야. 비록 조금 먼 길이 되겠지만 너라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거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 북해?”
나는 설백의 말에 피식 웃고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전장. 그것도 현재 무림에서 가장 불타오르고 있는 곳이지.”
* * *
혈강시에게 점령당했던 항주가 다시 해방되었다는 소식.
사람들은 그 소식에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지만 여기 지금 전혀 기뻐하지 못하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그는 공성 대사였다.
그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며 주변의 집기를 몽땅 박살 냈고 죄 없는 원불의 뺨을 후리고 발로 그의 명치를 걷어찼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왜 부용대의 대장이 그곳에 갔단 말이냐, 대체 왜!”
“큽……. 그것이, 이여립이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이여립이? 이여립이 어떻게 부용대 대장을?”
“그게…… 저도 명확히 듣진 못했으나 이여립이 항주에 파견된 무림맹원들을 모조리 두들겨 팼다고 합니다. 왜 항주의 문을 개방하지 않냐고 따지면서 말입니다. 결국 그 폭력에 이기지 못한 이들이 입을 열었는데 그때 부용대의 대장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아직 가격당한 명치가 아픈 듯 흉부를 만지며 원불이 대답했지만 이러한 대답에 날아온 것은 공성 대사의 분노가 잔뜩 담긴 따귀였다.
짜악.
원불에게 딱히 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번 계획은 모두 공성 대사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원불은 그저 자신에게 올라온 보고를 그대로 공성 대사에게 읊어준 것이었는데 이처럼 얻어터지는 중이었다.
그 폭력엔 이유란 없었다.
다만 공성 대사가 화풀이가 될 대상이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이런 개만도 못한 것들이. 그렇게 함구하라고 했거늘 감히 입을 열어? 그 입을 연 놈들을 몽땅 알아내서 명단을 가져와라. 내가 직접 그놈들이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혀를 뽑아내 버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원불이 고개를 숙이며 방 안을 빠져나가려는 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더니 누군가가 문을 박차며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박살 내듯이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청동색의 갑주를 입은 무관들이었고 이에 공성 대사는 크게 노한 듯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감히 누가 무림맹주가 묵고 있는 이 방에 함부로 들어온단 말인가! 썩 나가지 못하겠느냐!”
심후한 내공이 담긴 공성 대사의 외침.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공성 대사의 말에 비웃기라도 하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이 열로 도열한 그들 사이로 한 인물이 나타나더니 동그란 패를 공성 대사에게 보이며 천천히 걸어왔다.
“본 관은 황제 관할 직속부대. 동창(東廠)군 소속, 사마소라고 한다.”
사마소의 떳떳한 자기소개에 원불과 공성 대사는 동시에 움찔거리며 놀라고 말았다.
동창군.
이는 금의위와 함께 관을 대표하는 군으로 금의위가 황제의 친위대에 가깝다면 동창은 정보대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는 그렇게 알려져만 있을 뿐이었고 실질적으로 동창은 황제의 직할부대와도 같았다.
한마디로 오직 황제의 명령에만 움직이는 부대.
그들이 바로 동창이었다.
상대가 동창이라는 것을 안 공성 대사는 간신히 화를 추스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무아미타불. 제가 잠시 좋지 못한 일에 분노해서 본의가 아니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동창에서 한낱 소승을 찾아오셨는지요?”
“그대가 무림맹주인 공성 대사인가?”
“예. 맞습니다.”
“부용대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절강성의 항주. 그곳에 무림인들을 보낸 게 공성 대사라고 하더군. 사실인가?”
“맞습니다. 항주에 혈강시가 나타났다고 하여 이는 혈교와 관련이 있고 무림의 일이었기에 제가 해결하기 위해 무림맹의 사람들을 항주로 내려보냈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그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문제 말입니까? 저희는 다만 도의적으로 항주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서서 그들을 도운 것뿐입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시기이다.”
사마소가 손을 들어 손짓하자 뒤쪽에 서있던 동창군 한 명이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와 그의 옆에서 펼쳐 보였다.
“여기 보고서에 따르면 혈강시가 나타난 날짜와 무림맹에서 각 세가와 문파에 서신을 보낸 날짜가 다르더군. 그리고 놀랍게도 그 서신을 보낸 날짜는 무려 혈강시가 나타나기 한참 전이었지. 마치 혈강시가 그곳에 나타나리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야.”
“그것은…… 저희 무림맹에도 정보기관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알아낸 첩보를 통하여 미리 대비한…….”
“이상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야. 여기 부용대의 대장인 왕겸이 직접 들었다고 하더군. 항주에서 최대한 시간을 오래 끌라고 했다지? 어떤 자의 활약으로 이미 항주 내의 혈강시가 모두 제거되었음에도 말이야.”
“그것은 혈강시가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니 최대한 안정적으로…….”
“그건 제남으로 가서 듣도록 하지.”
제남.
제남은 산동성에 위치한 도시로 황하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도 유명하지만 다른 것으로도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
그것은 바로 죄인을 가두는 감옥.
저옥구(著獄區).
저옥구는 분명하게 죄를 지은 자들을 가둔다는 의미를 가진 곳으로 황궁이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딱!
사마소가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뒤에 서 있던 동창군들이 일제히 움직이더니 공성 대사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갔다.
이에 공성 대사는 저도 모르게 내공을 끌어 올리며 그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손을 휘둘렀고 이에 강력한 강기가 주변을 휩쓸며 한쪽 벽을 강하게 강타했다.
쾅!
폭음과 함께 손바닥 모양으로 뚫린 벽면.
그 위력은 가히 놀라울 수준이었지만 놀랍게도 사마소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공성 대사를 쳐다봤다.
“우리 군이 아무도 맞지 않아서 다행이군. 만약 누구 한 명이라도 다쳤다면 넌 죽었을 것이다. 우리를 건든다는 것은 황제 폐하를 건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자신들을 황제에 빗대는 오만함.
하지만 이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중원에서 동창을 건드렸다가 살아남은 이는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이건 관무불가침을 어기는 일이오! 무림의 일에 감히 관이 끼어들다니, 무림과 관 사이에 다툼이라도 벌이려는 것이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먼저 관무불가침을 어긴 것은 그쪽이지, 관이 아니야. 무림인은 자기 좋을 때만 관무불가침을 내세우는 건가?”
그렇게 말한 사마소는 스스로 앞으로 나서며 동창군 사이를 비집고 공성 대사를 향해 다가가더니 그 앞에 당당하게 마주했다.
“무림인 개개인의 실력이 아주 뛰어난 것을 알고 있다. 하물며 무림맹주인 그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의 동창군을 없애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겠지. 하지만…… 감당할 수 있겠나? 황제께선 너희들을 두려워하여 ‘관무불가침’이라는 다섯 글자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대들도 이 중원의 일부이며 한 명의 백성이기에 관대하게 바라봐 주시는 것뿐이지. 그분이 마음만 먹는다면 무림맹과 무림 따위는 다소 큰 피해는 보겠지만 확실하게 이 중원에서 사라질 것이다. 동창군의 장군으로서 장담하지.”
한 걸음 더 공성 대사에게 다가간 그는 눈을 날카롭게 뜨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는데 그 순간 공성 대사는 여태껏 평범해 보이던 그의 몸에서 엄청난 투기가 발산되는 것을 느꼈다.
그 투기는 내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그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전장에서 생존한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투기였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정말로 공성 대사의 상대가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사마소의 말대로 공성 대사가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상대.
하지만 결국 꼬리를 내린 것은 공성 대사 쪽이었다.
“조사해서 문제가 없다면 정식으로 항의하겠소이다.”
“그러지. 그땐 내가 직접 사과할 테니 지금은 얌전히 오라를 받거라.”
“후회할 것이오.”
그렇게 그날 무림 역사상 처음으로 무림맹주가 동창에게 잡혀가는 일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그 죄명은 반역죄.
공성 대사는 지금 뜻하지 않게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던 것이다.
무림인에게 아주 부끄러운 치부가 될 역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