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5
광마전생 (195)
석산우는 정말로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거대한 상과 음식을 준비했고 내 입맛을 기억하고 있는 듯 죽엽청과 동파육 역시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앉으시지요. 은공.”
석산우의 권유에 나는 자리에 앉았지만 그가 권하는 술을 받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마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으음?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제가 술김에 뭔가를 말하게 되면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석산우는 눈을 번뜩이더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큼, 큼……. 그전에 제게 묻고 싶으신 건 없는 겁니까? 제가 어떻게 여기에 장주님이 계신 줄 알고 있는 건지. 그리고 혈강시에 대해서도 말이지요.”
“여쭤봐도 되는 것입니까?”
“물론이지요. 저흰 사천을 내놓고 사들인 관계입니다.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는데 무엇을 더 숨기겠습니까?”
“은공…….”
석산우는 정말로 감격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박수를 크게 치며 소리쳤다.
“은공이 긴밀이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니 다들 나가도록! 그 누구도 엿들어서는 아니 된다!”
석산우의 말에 시종을 들던 이들과 경계를 선 무사들이 일제히 방을 빠져나갔고 열려 있던 창문과 문은 빠르게 닫혔다.
살짝 어두워진 실내.
하지만 몰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딱 좋은 밝기였다.
나는 일부러 동파육을 젓가락으로 자르며 살짝 뜸을 들인 뒤에 입을 열었다.
“우선 장주님이 이곳에 계시다는 것은 혹시 몰라 심어 둔 제 사람이 말해 주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장주님과 석가장을 감시한 것이 아니라 당가가 완전히 비었는지 확인하던 도중에 알게 된 것이었으니까요.”
“아하하. 제가 은공을 경계할 리가 있습니까. 제가 궁금한 것은 혈강시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현재 맹주님이 동창에 잡혀갔다는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고자가 은공이라는 소문도 들었는데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아마 들으신 소문은 사실일 겁니다. 제가 공성 대사님을 콕 집어 고한 것은 아니지만 부용대장인 왕겸 님께 신고를 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내 생각보다 석산우는 많이 무덤덤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한 표정.
“생각보다 별로 놀라시지 않는군요.”
“뭐, 공성 대사께선 저와 꽤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도용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공성 대사께서 잡혀간다고 한들 제 돈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이때 나는 깨달았다.
석산우는 정말로 돈에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통합무림이니 무림맹이니 하는 것보단 오직 돈을 좇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호재였다.
“그렇지요. 인생사 뭐든 돈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크, 역시 은공은 저랑 생각이 잘 통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씀이 그게 전부입니까?”
뭔가 다른 게 있지 않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석산우의 눈빛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어 버리고 말았다.
“하하.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돈이 될 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요.”
“제가 돈 냄새 하나는 잘 맡지 않습니까. 은공의 몸에서 이리도 돈의 향기가 진동을 하는데 어찌 제가 모르겠습니까?”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며 목소리를 다듬는 것으로 일부러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들리는 소문에 석가장은 무림맹의 많은 지원을 받고 있고 또 물질적으로 지원을 해 주는 상부상조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번 일로 관에서 대대적인 무림맹에 대해 조사를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관에서 말입니까?”
“예. 아마도 이번 일로 관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금 조사까지 하려는 중인 것 같습니다.”
“세금이라…….”
“지금 무림맹에 들어가는 물자는 대부분 석가장이 차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고로 그 조사가 나오게 되면 석가장 역시 피할 수 없게 되겠지요. 설령 그곳에 위배되는 것이 없다고 해도 관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막대한 세금을 물리려 들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현 항주에서 입은 피해를 메꿔야 할 곳이 필요하니까요. 현재 관은 무림맹주인 공성 대사를 잡아갈 만큼 무림맹을 크게 의심하고 있습니다. 설령 조사 결과 무림맹의 죄가 아님이 밝혀져도 결국 세금 조사는 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석산우는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나는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갔다.
“그러니 이쯤에서 발을 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발을 빼다니요?”
“무림맹과의 연을 끊는 겁니다. 이제 사천도 얻으셨고 수많은 지부에 중원 여기저기에 물자를 나르고 있으니 굳이 무림맹과 엮이지 않아도 큰돈을 벌 수 있으시지 않습니까?”
그가 내 말에 동의하며 연을 끊겠다고 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아쉽게도 그것은 할 수 없습니다. 여태껏 거래해 온 신의가 있고 은공께서 모르는 다른 무언가도 있으니 함부로 연을 끊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관에서 세금 조사가 나오게 된다면 막대한 피해를 입으실지도 모릅니다만? 자칫 잘못하면 무림맹이 이 석가장을 방패막이로 쓰려 들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군요. 방금 그 말은 제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내 말을 못들은 걸로 하겠다는 석산우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또 다른 뭔가가 있습니까?”
“미리 대비해 두는 겁니다. 석가장이 무림맹의 헛짓거리에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를 한다라…….”
내가 그에게 제안한 것은 바로 화공(火攻)이었다.
불같이 뭔가를 하자는 게 아닌 진짜 불을 이용한 화공.
그것은 바로 무림맹의 기록관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기록관을 불태우자니……. 장부를 없애자는 말이십니까?”
“예. 장부가 없다면 설령 관에서 조사를 나온다 한들 무림맹과 석가장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힘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신의도 지킬 수 있고 장주님의 돈도 지킬 수 있게 되지요.”
놀랍게도 석산우는 내 제안에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 말이 완전히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좋은 제안이긴 하지만…… 너무나도 위험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장주님의 돈을 지킬 수 있지요.”
“기록관에는 저희의 장부 말고도 무림맹에 중요한…….”
“그것들이 장주님의 돈을 지켜 주진 못하지 않습니까?”
나는 석산우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속해서 밀어붙였고 이에 그의 두 눈은 점차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기록관입니다. 사람이 실수로 촛불 정도는 엎을 수도 있지요. 제가 실력이 좋은 자를 알고 있으니 장주께서 기록관에 들여보내 주시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그가 전부 해결할 것입니다.”
계속되는 밀어붙임에 결국 석산우는 결심을 한 듯 술을 한 잔 크게 따라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그자가 누굽니까?”
넘어왔다.
나는 승천하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막아 내며 최대한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
“바로 접니다. 제가 직접 기록관을 불태워 장부를 없애도록 하지요.”
“은공께서 직접 말입니까?”
“예.”
석산우는 크게 놀란 듯 나를 아래위로 쳐다보더니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려는 것입니까? 설마 기록관에 뭔가 얻어 낼 것이 있으셔서 그런 겁니까?”
“얻어 낼 것이라……. 있기야 합니다만 그것은 기록관에 있지 않습니다.”
“기록관에 있지 않다라. 그럼 그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있다니요……?”
그 질문에 나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손바닥을 들어 올려 석산우를 가리켰고 이에 그는 크게 놀란 듯이 자신을 가리켰다.
“저 말씀이십니까?”
“제 자랑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이 어린 나이에 화경에 올랐습니다. 이게 무의 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화경에 오른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공허함입니다. 공허함. 아무리 뛰어난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어 봤자 뭐 합니까? 모두 자기만족이자 과시일 뿐인데. 제 몸 하나 건사하기엔 좋지만 뭣 하나 제가 가진 게 없었습니다.”
“설마…….”
“예. 저는 무호제가 그렇게 끝나고 난 이후. 한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힘과 무공보다는 바로 이 동전 하나.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는 일부러 보란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석산우가 말릴 새도 없이 무릎을 꿇고 크게 절을 올렸다.
“이번 일. 제가 기록관을 불태우고 돌아온다면 저를 석가장에 받아 주십시오. 중원 최고의 갑부이신 장주님께 돈에 대하여 진지하게 배우고 싶습니다. 이번에 제가 제공해 드린 정보의 값은 바로 저 열화권자(熱火拳子) 이여립입니다.”
* * *
신강 곡화성(曲和城).
흑련의 꼼수로 이미 천마를 향해 서신을 보낸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교와의 전쟁이 소강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마교의 저항은 더 거세졌는데 그 이유는 마교의 구대종파가 적극적으로 곤륜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유혼은 어떻게들 그들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아 내고 있었으니 그 이유는 바로 지리적 우세였다.
먼저 팔마곡과 구곡경을 점령해 두니 아무리 이 주변을 훤히 꿰뚫고 있는 마교라도 딱히 방법이 없었던 것이었다.
크게 돌아서 오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도 많이 소모되었고 개척되지 않은 길이라 매우 험난하기도 했다.
진유혼은 천마에게서 답변이 올 때까지 돌아가며 휴식을 취하도록 했는데, 그렇게 서신을 보낸 지 삼 일째가 되던 날 홍련은 드디어 해인 도장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해인 도장님. 흑천파의 홍련이라고 합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해인 도장의 막사 앞에서 홍련이 예의를 갖추며 들어가도 되냐고 묻자 잠시 후 안에서 답변이 돌아왔다.
“들어오게.”
해인 도장의 답변에 홍련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엔 해인 도장이 검을 내려 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홍련 그대의 이름은 소문주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네. 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우리 곤륜을 지켜 주고 있었다고 하더군.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하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제 주인의 뜻을 따랐을 뿐입니다.”
“듣자 하니 자네도 그 어린 나이에 화경의 고수라고 하더군. 그 아이는 재주도 좋구.나 화경의 고수를 이리도 많이 곁에 두고 있다니. 지금 나를 만나러 온 것도 네 주인의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말해 보거라.”
해인 도장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홍련은 쪽지에 적혀 있던 내용을 그대로 읊기 시작했고 이에 해인 도장의 눈빛이 시시각각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홍련의 말이 끝났을 때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평생을 곤륜에서 살아온 노구에게 곤륜을 버리라, 이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