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96
광마전생 (196)
“이런 제안을 내가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것을 그 아이가 더 잘 알 텐데?”
“선택은 해인 도장님께서 직접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걸 내게 전해 준 거지? 지금 실질적으로 곤륜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은 유혼이가 아니더냐.”
“아직 모두를 설득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곤륜을 움직이기엔 파성룡 해인 도장께서 더 적임이라고 생각하셨겠지요.”
“크흠……. 아무튼 난 이런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건 곤륜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야.”
파성룡의 거절에 홍련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막사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홍련은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만일 이러한 것을 그저 알리려고 했던 것뿐이라면 왜 굳이 자신에게 전적으로 일임한 것인지.
사실 굳이 자신을 거치지 않고 흑련이 내용을 전달해도 똑같은 답변을 받았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홍련은 비로소 왜 모용진이 자신을 콕 집어 이런 일을 맡겼는지 깨달았다.
“해인 도장님.”
“또 할 말이 남았더냐?”
“저희 은월령도 월곡이라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해 살았습니다. 하지만 흑제 님의 명에 그곳을 떠나 중경으로 거처를 옮겼지요. 그 결과 저희는 살아남았습니다. 만일 저희가 흑제 님의 명에 따르지 않고 그곳에 계속 거주했다면 지금 폐허가 된 그곳처럼 저희는 모두 이승의 사람이 아니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어디에 있는지 보단 누구와 함께 있는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월곡을 벗어났어도 그대로 은월령입니다. 그리고 이는 곤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미래의 곤륜을 위해서라도.”
말을 끝낸 홍련은 해인 도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막사를 빠져나갔다.
홀로 막사에 남은 해인 도장.
그는 잠시 주먹을 꽉 쥐며 고뇌하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고얀 놈. 감히 다 죽어 가는 노구에게 이런 시련을 안겨 주다니 말이야…….”
* * *
이여립의 제안.
그것은 석산우에게 있어서 달콤하다 못해 미칠 듯이 매력적인 것이었다.
화경의 고수인 데다가 돈도 벌 줄 아는 놈이 자신의 아래로 들어와 돈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이걸 거절하는 이는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석산우가 지금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통합무림과 공성 대사 때문이었다.
이번에 사천당가를 자신에게 넘기는 것으로 봐서는 의와 협에는 큰 뜻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여태까지 석산우가 본 이여립은 누구보다 사파를 경멸하는 듯했다.
게다가 공성 대사가 일찍이 점찍어 둔 놈이었기에 괜히 석가장으로 들였다가 공성 대사의 눈 밖에 나는 것도 좋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석산우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모용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여 사파에 대한 제 적대감 때문에 고민하시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건을 팔고 돈을 버는 것에 있어서 정파와 사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 이제 더 이상 무림맹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몸입니다. 그들의 수장인 무림맹주를 감옥에 보냈는데 어디에서 절 받아 주겠습니까?”
모용진의 말은 석산우의 가려운 곳만 집중하여 살살 긁어 주었지만 석산우는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용진의 말은 직접적으로 가려운 곳을 긁기보다는 교묘하게 돌려 긁어 주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럼 정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은공, 기록관은 무림맹에서도 가장 경계가 삼엄한 곳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되자 이미 석산우의 머릿속엔 굳이 기록관을 불태우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가 없어졌다.
모용진의 제안은 자신이 기록관을 불태우고 장부를 없앤 뒤에 석가장이 받아 주는 것.
이미 그 내용에서부터 기록관을 불태우는 것은 당연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만 믿으십시오. 이래 봬도 그 사신무와 무호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화경의 고수가 바로 저 이여립 아니겠습니까?”
* * *
모용진이 석가장을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였다.
곧바로 설백이 있는 숙소로 돌아온 모용진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설백에게 타박을 받으며 저녁 식사를 하였고,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숙소 뒤쪽의 공터를 향했다.
“그런데 그 기록관이라는 데는 뭐 때문에 불태우려고 하는 거야? 무슨 이유라도 있어?”
“사실 내 목적을 위해서라면 불태울 이유는 없지. 하지만 장부를 없앨 방법은 불태우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그리한다는 거야. 그 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놈들이 순순히 장부를 보여 줄 리가 없잖아?”
“그럼 장부가 아니라 다른 게 목적이란 뜻이야?”
“응. 신검(神劍) 천일(天佚). 사부님이 물려주신 검을 찾으려고.”
기록관에는 무림맹이 했던 모든 일이 기록되어 있다.
물론 타락할 대로 타락한 놈들이 정직하게 그것을 작성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죽고 난 뒤 유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는 적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수고를 할 바에는 새로운 검을 구하는 게 좋지 않아? 북해에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있는데, 내려오라고 할까?”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문제가 아니야. 최소한 한철(寒鐵) 정도는 돼야 버틸 수 있을 테니까.”
“한철?”
한철이라는 말에 설백도 깜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
왜냐하면 말이 한철이지 검신 전체가 한철로 되어 있는 검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백이 들고 있는 북해검(北海劍) 역시 손잡이 부분에 만년한철(萬年寒鐵)이 쓰였다는 말만 있을 뿐 진짜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고, 설사 맞다고 해도 그 양이 매우 적었다.
“그렇다면 지금 찾는 그 검은 검신 전체가 한철로 되어 있단 말이야?”
“음……. 사실 나도 잘 몰라. 그냥 잘 버틴다는 것만 알고 있어.”
“대체 그 창천신검이라는 무공이 얼마나 강하기에…….”
“한번 보여 줄까?”
모용진의 말에 설백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모용진은 임시로 들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조금만 뒤로 가 있어. 파편이 튀면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왜 이래, 가가. 나도 화경의 고수야. 그 정도도 못 피하면 고수라고 할 수 있겠어?”
“하긴, 네 말도 맞다.”
웃으며 검을 든 모용진은 천야심결(天夜心訣)의 구결을 떠올리며 내공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순백색의 내기가 그의 몸에서 일렁이듯 일어났다.
단전에서 일어난 백색의 기운은 순식간에 검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두터운 검강이 되었고, 이는 설백이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정갈한 기운이었다.
“창천신검(猖天神劍) 육초식 파성폭일(破星爆一).”
오른손에 쥔 검을 왼쪽 어깨까지 들어 올린 모용진의 검이 내뻗어지는 그 순간 강렬한 기운이 한곳에 응집되더니 거대한 폭발과 함께 대기가 크게 흔들렸다.
쾅!
그리고 방금 전까지 날카롭게 세워져 있던 검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모용진의 손에는 그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봤지?”
손잡이만 남은 검을 흔들며 보여 주는 모용진.
하지만 그는 이다음 벌어질 일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와아……! 나도 나도 배울래, 그 검!”
모용진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설백이 무공에 가지는 그 엄청난 욕심을.
순간 아차 싶었던 모용진이었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이었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검 배우려면 뭐부터 해야 돼? 그 새하얀 기가 올라오는 내공심법부터 익혀야 하나? 아니면 자세부터?”
“아니, 그러니까 이건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라……. 흔히 말하는 일인전승 같은 무공인데…….”
그렇게 모용진이 설백을 설득하려 진땀을 빼고 있는 그 시각.
항주에 남은 유미옥과 흑영단은 드디어 은월령을 맞이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있어 조금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로님.”
예를 갖추고 고개를 숙이는 유미옥.
그녀는 이제 완전히 회복된 듯 또렷한 눈을 하고 있었다.
“흑제 님께 전달받아 들었습니다. 흑천에게 하오문이 기습을 받았다고…….”
“예. 애석하지만 저희의 전력은 류성아 장로님이 데려온 사자들과 저희 흑영단이 전부입니다.”
“후우…….”
갑자기 류성아가 한숨을 내쉬자 유미옥은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녀가 한숨을 내쉰 것은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부군사님.”
“예…….”
“흑천의 수뇌가 도원영, 몸이 가늘고 여리여리한 더벅머리의 남성 맞습니까?”
살짝 살기가 묻어나오는 류성아의 질문에 놀라면서도 유미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니요. 그저 확인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도원영 그자는 저희 은월령에 있어서 목숨을 걸어서라도 제거해야 할 원수니까요. 우선 부군사님, 부군사님이 흑천에 대해 알고 계시는 정보를 저에게 모두 말씀해 줄 수 있으십니까?”
둘은 은신처 내부로 자리를 옮겨 서로가 가진 정보를 교환했고 류성아는 이번 흑천에 대한 작전 전체를 유미옥에게 일임하겠다고 했다.
“장로님께서 계시는데 제가 사자들을 이끌고 직접 지휘하란 말씀이십니까?”
“흑제 님의 뜻입니다. 저와 사자들을 이끄는 것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라고 하시더군요.”
류성아의 말에 유미옥은 깨달았다.
이것이 모용진이 주는 진짜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그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흑천파의 군사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뒤 유미옥은 은신처에서 하루 동안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해가 뜨고 다시 밤이 찾아왔을 때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류성아를 불러내 자신이 짜 낸 작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흑도의 사문방(死門房) 말씀이십니까? 어찌 흑천으로 바로 쳐들어가지 않고 굳이…….”
“이번에 하오문을 친 곳은 흑천뿐만이 아니라 사문방과 흑룡파도 가담해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계획이 제 개인적인 복수 같은 것은 아닙니다.”
절강과 강서 그리고 안휘의 지형이 그려진 지도를 펼친 유미옥은 돌을 이용해 각 문파의 위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흑천은 정확하게 이 세 개의 성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각각 북쪽에는 사문방이 있고 서쪽에는 흑룡파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하오문이 있었지요. 그들이 이렇게 자리를 잡은 것은 언제든지 다른 흑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둘러싸이지 않게 북쪽의 사문방을 먼저 치자는 것이군요.”
“그런 것도 있지만 우선 알고 계셔야 할 것은, 흑천은 흑천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전 장박형이 이끌던 하오문이 그러했듯이 사문방과 흑룡파 두 곳 모두 흑천의 도원영에게 충성을 맹세한 곳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허무도와 용전소라는 수장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두 곳을 이끄는 것은 흑천의 이장로인 양조양과 삼장로인 주모적입니다. 이제는 사라진 하오문 역시 흑천의 일장로인 유운호가 실질적인 주인이나 마찬가지였었지요.”
유미옥의 말에 따르면 사문방과 흑룡파는 애초부터 흑천 그 자체였다는 뜻이었다.
“사실 흑천이 실질적으로 보유한 무력은 숫자로만 따지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각 장로가 열 명 내외의 사람을 이끌고 있고, 그들의 수장인 도원영 역시 따로 사람을 부리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문방과 흑룡파를 먼저 무너뜨리게 되면 그들이 힘을 끌어올 곳이 없어진다. 이런 말이군요.”
“예.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다고 해도 숫자가 가진 힘은 무시하지 못하니까요. 하오문을 무너뜨리고 그들이 방심하고 있는 지금 사문방과 흑룡파를 먼저 무너뜨린다면 흑천은 자연스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미옥의 계략을 들은 류성아는 잠시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유미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좋습니다. 부군사님의 계획대로 하시지요. 저희는 전적으로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